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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선관위
2007/06/20   대통령의 권력 [42]
대통령의 권력
언제부터 대통령이 왕이었냐? (oldman),
와우!! 삼권분립따위 깨끗이 무시해주는 센스!! (屍君),
오 주여... (기린아) 에서 트랙백


리처드 노이스타트(Richard Neustadt)란 미국 정치학자가 있다.

그는 트루먼 행정부에서 대통령 특보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통령의 권력(Presidential Power)이란 책을 썼는데, 나오자마자 이 분야의 고전이 되었다. 케네디는 이 책을 읽고 감탄해서 그를 정권 인수위 핵심 참모로 기용했을 정도이다. 그 후 존슨, 레이건, 듀카키스, 클린턴, 고어 등이 대통령학에 대해 그의 조언을 받았고, 이 책은 40년 이상, 대통령학, 즉 민주정치제도 내에서 대통령이 어떤 권력을 갖고 어떤 식으로 일해가는지를 연구할 때 반드시 읽고 넘어가야 하는 고전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 책은 한국에도 번역되었다. "이병석 역, 『대통령과 권력』, 효형출판, 1995 )

형식에 있어 모든 대통령은 지도자다.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 이것은 그에게 서기(clerk)로서의 직책 이상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은 백악관의 주인이 모든 일에 대해 무엇인가 하기를 기대한다. …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발밑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단지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려면 대통령의 재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는 뜻일 뿐이다. … 그들이 보기에 대통령의 재가는 자신들의 일에 매우 유용하다. … 대통령은 없으면 안 될 서기이다. 워싱턴의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는 서기이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이와 전혀 별개의 이야기이다.

가죽장화를 신고 말 위에 높이 걸터앉아 모든 결정을 주도하는 대통령(President-in-Boots)이라는 이미지는 겉보기만 그럴 뿐이다. 실상에서 대통령은 고무신을 신고 고삐를 말아 쥔 채 마부석에 앉아 각 채 각 부처의 장관이며, 하원의원이나 상원의원과 같은 정치인들에게 마차에 오를 것을 권하는 마부에 가깝다(President-in-Sneakers).

정부는 그 행정력의 각 부분을 이루는 여러 관료적 요소와 정치적 인맥이 함께 어울려 복잡한 흥정을 벌이는 하나의 장이다. 정부의 행동은 곧 이들 간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가 어떠한 행동을 취했는지가 아니라 그가 결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이다.
대통령이 영향력을 구축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들은 공공정책의 생존능력, 즉 정부정책이 끝까지 실행될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여러 요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 이는 곧 정치적, 행정적, 심리적, 개인적 실현가능성의 균형이다. … 대통령이 어떤 일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맡은 부서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고, 지지자로 하여금 지지할만하다고 여기게 만들어야 하며, 그 결과로 영향을 입을 사람들이 참을만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지지와 용인을 확보하려면 시점의 선택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 이처럼 대통령의 권력을 결정하는 요인들은 곧 정부정책이 끝까지 실행될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들과 흡사한 것이다.

대통령의 권력은 설득하는 권력(power to persuade)이다.

노이스타트의 핵심주장은 대통령의 권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르고 달래고 빌고, 이번에 이거 하나 해주면 다른 것으로 보상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끊임없이 타협하고, 대통령이 반대파들에게도 유용한 정치적 도구임을 입증하면서 자기 정책이란 마차에 여러 세력들이 올라타도록 설득한 후 목적지까지 갈 때까지 합승시킨 승객들이 열받아 뛰어내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관리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끌고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보면, 노무현집단(대통령과 안희정 같은 핵심참모그룹)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의 꿈속에 존재하는 정책목표와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정책수단인 현실의 대통령직 사이의 괴리가 매우 크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사실 아무리 반대가 극렬해도 정부의 권력이 무제한이라면 그 모든 저항을 분쇄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내가 예전에 소개했던 사례 같은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

6공화국 이래 대통령의 권력은 그 이전 대통령과 비교할 수 없이 약화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정부를 운영해 그들의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최소한 전두환, 아니 박정희 못지 않은 권력의 집중이 필요하다. 전이나 박처럼 정부를 운영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그 정도는 한번 믿어주자).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 그들의 이상에 맞추어 정부나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고 믿는 폭은 그런 권력 없이는 달성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다.
(정권 후반에도 2015년 혹은 2020년을 목표로 한 장기 계획들을 계속 발표한다든가 하는 것을 보면 이 점은 명백하지 않은가?)

그리고는 가뜩이나 약화된 권력을 물려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도끼로 제 발등찍기를 계속했다. 외교부를 숙청하고, 검찰과 맞서 싸우고, 국방부와 군을 대표적 개혁대상으로 삼는 식으로 대통령의 전통적인 권력기반이자 수족을 전방위적으로 두들겨 댄 것이다. 그리고는 권력공백이 커지자 통일부를 외교안보정책의 실세로 끌어올리는 식의 무리수로 대응했다. 물론 그런 기관들도 때때로 개혁해야 될 필요성은 있다. 그러나 지금 정도의 대통령 권력이나 임기로 볼 때, 한번에 그렇게 여러 곳을 들쑤셔서는 권력만 훼손되지 개혁이 될래야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또 다른 권력기반인 여당을 챙기는 데도 소홀했다. 요즘 열린우리당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만들과 탈당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문제가 곪은지 오래 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주류 언론, 종교계와 사립학교재단, 부동산 자산가들, 농민(FTA) 등과도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한마디로 적을 너무 많이 만들어서 수습이 힘든 상황이다.


박정희의 용인술은 대조적이다. 박정권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회고에 공통적인 이야기는 "임자, 자네만 믿어"하는 식으로 여러 부처에 일하는 다양한 관리자들에게 개인적인 관심과 지원을 제공하여 충성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절대권력을 가진 지도자조차도 자기 부하들은 꼼꼼히 챙겼던 것이다.

노무현 집단은 이런 문제를 권위주의 정권의 권력이 갖는 내적 허약성 때문이고 자신들은 정통성과 정의를 구현하는 세력인지라 그런 정치적 꼼수는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무시하는 것 같다. 하지만 노이스타트에 따르면 사실 민주정권의 대통령이야말로 그런 정치적 제휴가 엄청나게 중요한 자리라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 선관위의 결정이 왜 그렇게 나왔나는 그라함 앨리슨의 말로 잘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설명은 대통령 밑에 있는 행정부처들을 염두에 둔 것이므로 선관위같은 헌법기관은 더 큰 자율성이 있다.)

헌법의 규정, 정치적 전통, 정부 관행, 또 여러 민주주의 이론은 모두 한 가지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즉, 이 모두가 정부에 참여하는 각 개인들에 대해 각자의 필요와 이익의 차이를 더욱 부풀리는 동시에 영향력을 분산하는 쪽으로 귀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자는 각자의 책임을 수행해야 하고 그 책임은 스스로 정의한다. 그래서 대통령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도 대통령의 책임에 전적으로 복종만 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 그 일을 해야 할 담당자의 입장에서 보면 시시한 것일 수 있다. 게다가 담당자들은 대통령의 의사를 대통령의 책임이 아니라 자신의 책임에 비추어 판단한다.

선관위는 선관위의 책임을 수행해야 하고 그 책임은 스스로 정의한다. 대통령이 옳다고 생각한 행동도 선관위의 입장에서 보면 시덥잖은 소리일 수 있고, 선관위는 스스로의 역할을 자신의 책임에 비추어 판단할 수 밖에 없다.

공정한 선거의 운영과 정치적 중립성은 선관위란 조직의 생명인데, 대통령은 선거로 뽑혔고 선관위는 그렇지 않다고 해서 조직이 자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선관위가 자살하고 나면 이 나라 민주제도는 누가 책임지나?
by sonnet | 2007/06/20 21:14 | 정치 | 트랙백(4) | 핑백(3) | 덧글(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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