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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빅터차
2009/07/14   부시 행정부 2기와 '매파적 관여' 정책 [12]
부시 행정부 2기와 '매파적 관여' 정책

0. 관여정책

engagement policy는 포용정책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번역하면 상대가 좀 허물이 있어도 감싸준다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햇볕정책은 확실히 이런 느낌의 정책이지만 미국이 말하는 engagement policy는 이런 느낌이 아니라 그냥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으면서 협상이나 거래를 한다는 정도의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를 살리는 번역으로는 관여정책이 있는데, 이하에서도 관여정책이란 표현을 쓰겠습니다.


1. 빅터 차

부시의 유명한 '악의 축' 연설이 있었던 2002년, 조지타운 대학 교수 빅터 차는 「포린 어페어스」에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관에 대한 자신의 제언을 발표합니다. 당시 이 글은 잠깐 관심을 끌었지만, 곧 이어 터져나온 제2차 북핵위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그의 견해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가는 듯 했습니다. 그러자 곧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그의 글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 논문은 부시 행정부 고위층의 주목을 받았고, 콘돌리자 라이스는 그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아시아 국장으로 영입합니다. 그는 2004년 12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약 2년 반 정도 그 자리에 있으면서 부시 행정부 2기의 대북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는 북한과의 양자 협상에 나서도록 부시를 설득한 보고서를 썼고[1] 미국대표단 부대표로 직접 6자회담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그는 무대 뒤에서 움직였고, 따라서 언론을 타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제 2009년 시점에서 부시 행정부 2기 대북정책을 돌이켜 본다면, 저는 빅터 차의 제언인, '매파적 관여' 정책이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2. "매파적 관여" 정책

그런 의미에서 그의 2002년도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을 한 번 살펴 보도록 합시다.

“매파적 관여” 정책은 … 전통적인 [관여] 정책과 실질은 비슷한 것 같아도 그 철학은 다르다. 이는 그 가정, 근거, 잠재적 결론 측면에서 남한의 햇볕정책하고는 확실하게 구별되지만, 단기적 정책 집행 면만 보면 그리 차이나지 않는다. 김대중이나 일부 클린턴 행정부 관리들은 관여정책을 투명성과 신뢰를 구축하고 안보불안을 감소시키는 방법으로 본다. 반면 매파적 관여정책은 관여가 향후의 징벌을 위한 토대를 다지는 과정이라는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 매파들은 북한이 협력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는 데 회의적이지만, 북한의 거짓 탈을 벗기기 위한 방편으로 관여정책을 활용할 생각이 있다. …

매파적 관여정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런 [햇볕정책의] 논리와 상충된다. 매파적 관여정책은 외교가 유용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관여의 진정한 가치는 북한의 사악한 의도를 만천하에 폭로케 하는 데 있다고 본다. 핵, 화학, 생물 무기를 개발하려는 열망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한반도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남한 정권을 전복시키며 적화통일을 이룩하겠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매파적 관여는 단기적으로 북한과 협상을 하면서 동시에 향후에 북한에 대한 응징을 가하기 위한 토대를 깔아둠으로서 이러한 북한의 의도를 좌절시키기를 겨냥하는 것이다.

햇볕정책의 지지자들은 관여정책을 오늘날 김정일이 품은 고립감을 이해하고 그것을 해소시켜 줄 최선의 방안이라고 본다. 그러나 매파들은 관여정책을 내일의 징벌을 위한 연대를 구축하는 가장 실용적인 방안이라고 본다. 북한에 대해 실질적인 압력을 가하려면 그러한 연대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비 대결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 보았다는 데 인접국들이 동의해야만 그런 연대가 유지될 수 있다. … 매파적 관여는 동맹국들로 하여금 비 대결적 수단은 이미 다 써보았고 그래도 안 되더라는 것을 확신시킬 방법을 제공한다. 이에 대해 아미티지 보고서는 “강화된 외교적 노력의 실패는 북한에게 책임이 있음을 입증해줄 것”이라고 말한다.[2]

'매파적 관여' 정책은 부시 행정부 1기의 대북정책에서 보였던 고질적 병폐, 즉 개입정책을 원하는 협상파와, 북한과의 어떤 거래도 반대하는 거부파 사이의 갈등이 서로의 발목을 잡아 끝없는 교착상태에 빠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종의 타협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단기적 전술적으로는 협상파, 장기적 전략적으로는 거부파의 손을 들어 주며 양 쪽을 달랠 묘안이었던 것이지요.

그 뒤는 우리가 잘 알듯이 미북 양자협상을 통해 2.13 합의와 영변 원자로 해체라는 협상 결과를 얻어냈고, 또 그 비핵화 과정이 탈선되고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이라는 도발적 행위를 거듭하자 중국과 러시아 조차도 안보리에서 대북제재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보면 부시 행정부 2기의 대북정책은 빅터 차가 생각했던 대로, 협상파에게는 과감한 협상 기회와 합의를, 거부파에게는 "역시 협상해도 안 되더라"는 징벌의 명분을 각각 나누어 준 셈입니다.



[1] Kessler, Glenn., NSC Post a Real-World Lesson for Cha, Washington Post, 2007년 5월 1일
[2] Cha, Victor D., Korea's Place in the Axis, Foreign Affairs, 2002년 5/6월호
by sonnet | 2009/07/14 23:07 | 정치 | 트랙백 | 핑백(2)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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