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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북한
2011/09/06   리비아가 준 교훈(Vali Nasr) [68]
2011/02/01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41]
2010/08/15   이왕 왔으니 개혁개방 이야기나 들어 보시게 [44]
2010/07/25   미-북 '연락사무소' 개설 협상 [43]
리비아가 준 교훈(Vali Na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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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chell: 다른 교훈도 있지 않을까요? 이란이나 북한 같은 핵확산국들에 대한 교훈도 말이죠. 카다피는 자기 핵무기 프로그램 구성요소들을 포기했고, 그걸 테네시[의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로 넘겼거든요. 우리가 그게 거기 보관되는 걸 확인했다는 점이, 협상 카드를 버려서는 안된다는 메시지가 된 것이 아닐까요?

Nasr :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국제사회의 규칙에 따라, 음지에서 벗어난 것은 카다피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로커비[여객기 폭파 사건]에 대해 배상금을 지불했습니다. 핵무기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순간이 찾아오자, 그는 NATO라는 외부세력의 개입에 취약해져 버렸습니다. 그러니 시리아, 이란, 북한 같은 나라들은 리비아를 보고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가 이걸 포기했다간, 그러니까 핵무기를 포기한 다음에 민중들이 나를 향해 들고 일어나게 되면, 아마도 외부세계는 개입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 무기를 꼭 쥐고 있는게 낫다고.
by sonnet | 2011/09/06 12:05 | 정치 | 트랙백 | 덧글(68)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작년 말에 북한이 공개해 큰 파문을 일으킨 우라늄 농축 시설에 대한 UN무기사찰관을 지낸 올브라이트의 칼럼 번역입니다. 올브라이트는 이란과 북한의 핵문제를 끈질기게 추적하며 핵 비확산 문제의 기술적 측면에 대해 지속적으로 권위있는 논평을 제시해 온 민간 연구자로, 불량국가들이 핵문제를 일으킬 경우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가 제일 먼저 찾아가 사안의 의미에 대해 독립적인 논평을 부탁하는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불능화
* 필자: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폴 브래넌
* 출처: ISIS
* 일자: 2011년 1월 20일

2010년 11월 12일, 북한은 스탠포드 대학 교수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영변 핵단지의 핵연료 제조공장 자리에 신설된 2천대의 가스 원심분리기를 갖춘 우라늄 농축 공장을 공개했다. 북한 관리들이 헤커 박사에게 구두로 설명한 사항이 정확하다면, 북한은 더 짧은 기간 안에 이란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P2 원심분리기를 복제해낸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이란이 복제해 나탄즈 핵연료 농축 시설에 대량으로 설치한 P1 장치보다 한층 발전된 모델이다. 북한은 헤커 박사에게 이 공장은 원자로의 연료로 사용하기 위한 저농축 우라늄(LEU)을 생산하기 위한 시설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농축 공장은 그렇든 아니든 간에 핵무기를 위한 무기급 우라늄(WGU)을 제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손쉽게 이용될 수 있다. 사실, (파키스탄의) 칸 연구소(KRL)의 설계를 이용한 무기급 우라늄 제조공정은 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한 단계적인 방법을 포함하고 있다. 이 공정에 따르면 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한 전체 원심분리기의 약 70%는 전적으로 저농축우라늄을 제조하는 일에만 투입된다. 이렇게 확보된 저농축우라늄을 원료로 하여 매년 50kg의 무기급 우라늄을 제조하기 위해서 북한은 단지 1천대의 원심분리기를 갖춘 (제2의) 공장을 갖추기만 하면 된다. 이는 1년에 2기의 핵무기를 제조하는데 충분한 양이다.

이 공장의 계속된 가동은 6자회담에서 체결된 합의 위반이다. 미국과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이 이 시설의 가동을 중단하고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이 공장을 불능화할 것을 협상재개의 선결조건으로 요구해야만 한다.


공통의 조상

이란과 북한은 모두 원심분리기 설계와 원심분리기 실물 견본을 A.Q. Khan[1]이 운영하는 파키스탄의 칸 연구소로부터 입수했다. 그러나 북한은 원심분리기 제조와 관련하여 칸 연구소 전문가들로부터 이란보다 훨씬 더 많은 지도를 받았다. 또한 북한은 훨씬 덜 효율적인 P1 원심분리기를 건너뛰고 대신 P2 원심분리기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란의 나탄즈 핵연료 농축 공장의 경우처럼 영변 공장에서 북한이 제조하게 될 3~4% LEU는 핵무기를 제조하기 위해 우라늄을 농축하는 과정의 거의 70%에 해당한다. 향후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다면 북한은 영변 공장 혹은 더 규모가 작은 미신고 시설에서 그들이 보유한 LEU 재고를 비교적 신속하게 무기급으로 추가 농축할 수 있을 것이다.

리비아는 칸 네트워크로부터 WGU를 만들기 위한 파키스탄 농축 공장의 설계도를 받았는데, 북한도 유사한 정보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칸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북한에는 LEU를 만들기 위한 설계를 제공했다고 한다. 칸의 잦은 둘러대기를 고려할 때, 이 말은 그가 북한에도 무기급 우라늄을 만들기 위한 설계를 제공했음을 뜻할 가능성이 높다.

리비아가 제공받은 설계는 연간 약 100kg의 WGU를 제조하기 위한 것인데, 약 6천 대의 원심분리기를 네 공정으로 나눠 배치하도록 되어 있다. 제1단계는 천연우라늄을 3.5%로 농축한다. 두 번째 단계에선 3.5%를 20%로, 세 번째 단계에서는 20%를 60%로, 마지막 단계에 가서는 60%를 90% 또는 무기급으로 농축하게 된다. 그런데 이 첫 번째 단계에 거의 4천대의 원심분리기가 투입되며, 이는 전체 원심분리기의 약 70%에 해당한다.

이 설계를 영변 시설에 적용한다면, 북한은 영변 공장에 설치된 2천 대의 P2 원심분리기를 연간 50kg의 WGU를 생산하기 위한 3천 대로 구성된 원심분리 시스템의 일부로 활용할 수 있다. 이 경우, 북한은 영변에서 생산된 3.5% 저농축 우라늄을 WGU로 전환하는데 그 나라 어딘가에 단 1천 대의 P2 원심분리기로 구성된 공장 하나만 있으면 된다. 이상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시스템에서라면, 대부분의 농축 노력은 2천 대의 윈심분리기로 구성된 영변 공장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나탄즈 핵시설 보다 용량이 커

이 원심분리기의 산출량에 대한 북한의 설명에 따르면, 영변 공장의 시설용량은 (잘 알려진 이란의) 나탄즈 핵연료 농축 공장의 대략 2배에 상당한다. 작년에 나탄즈 공장의 실질 연간산출량은 대략 3,500 분리작업량(SWU) -이는 원심분리기의 산출량을 재는 단위임- 이었다. 북한은 헤커 박사에게 영변 시설의 원심분리기는 연간 4 SWU의 설비용량을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2천 대의 원심분리기가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영변 원심분리 공장의 시설용량은 연간 8,000 SWU로, 나탄즈 시설의 두 배이다.

나탄즈 공장은 근래 월 평균 3.5% 6불화(hexafluoride) LEU 133kg을 생산하였다. 북한 공장이 매월 270kg의 3.5% 6불화 LEU를 생산한다고 치면, 4개월마다 저농축 6불화우라늄 약 1,080kg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3] 향후 농축도를 높일 경우, 이는 1기의 핵무기를 만드는데 충분한 양이다. 즉 북한은 향후 추가적인 농축을 통해 3기의 핵무기를 제조하는데 충분한 양의 LEU를 1년 안에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설령 가까운 시일 내에 이 원심분리공장이 안전조치(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하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계속 운영된다고 한다면, 북한은 언제든지 감시요원이나 사찰관을 추방한 후 LEU를 비밀 농축시설로 옮겨 무기급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북한은 무기급 우라늄 생산을 미룸으로써 잃어버렸던 시간을 언제든지 신속히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다.


농축문제에 초점을 맞출 때

여러 해에 걸쳐 신고 되지 않은 가스 원심분리기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추진되고 있다는 증거가 점점 더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6자회담은 북한의 플루토늄 프로그램이 가져온 위협에 적절히 초점을 맞춰 왔다. 이에 따라 2007~2008년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용 원자로와 플루토늄 분리 시설에서 성공적인 불능화 과정이 이루어졌었지만,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이 협상에 올라올 경우 그러한 일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시절은 어찌되었건 간에 지나갔다. 북한이 가하는 새로운 핵위협은 그들의 가스 원심분리기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서 나온다. 6자회담은 북한이 그들의 핵 프로그램의 일부라고 인정한 유일한 시설인 이 공장이 계속 가동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 공장은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불능화되어야 한다.



한 줄 요약: 북한 우라늄농축이 고농축이냐 저농축이냐를 따지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게 그거다.
by sonnet | 2011/02/01 02:57 | 정치 | 트랙백 | 덧글(41)
이왕 왔으니 개혁개방 이야기나 들어 보시게
물가를 안정시켜 개혁을 빠르게 진행하자
담화: 덩샤오핑
일자: 1988년 5월 19일

우리 당의 제13차 대표대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제7기 제1차 회의의 정신은 모두가 지금보다 진일보하게 사상을 해방시키고 생산력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물가를 해방시켜야 개혁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물가문제는 역사가 남겨놓은 것입니다. 지난날 물가는 모두 나라에서 정했습니다.

예를 들면 식량과 여러 가지 부식품은 오랫동안 수매가격이 아주 낮았습니다. 이 몇 년간 몇 번 올리긴 하였으나 여전히 비교적 낮습니다. 그런데 도시의 판매가격은 높일 수가 없었습니다. 수매가격과 판매가격이 거꾸로 서니 나라에서 보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치법칙에 어긋나는 이 일은 한편으로는 농민들의 적극성을 동원시킬 수 없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라에서 커다란 부담을 안게 되는 것입니다. 해마다 물가 보조금에 쓰는 지출이 몇백억이 됩니다. 따라서 나라의 재정수입은 경제건설에 투자되는 게 적고, 더구나 교육, 과학, 문화사업 발전에 쓰는 것은 더욱 적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가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부담을 벗어버리고 가벼운 몸으로 전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는 고기, 계란, 야채, 설탕 네 가지 부식품 가격을 풀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먼저 한 걸음 내디딘 셈이지요. 중국에서는 ‘다섯 관문을 넘기어 여섯 명의 적장을 죽인’ 관공(關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관공보다 더 많은 ‘관문’과 ‘적장’이 있을 것입니다. 한 관문을 넘긴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아주 큰 모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부식품 가격이 풀리니 다투어가면서 물건을 사들이는 사람도 있고 의논이 분분합니다. 불만에 찬 말도 많습니다.

그러나 많은 인민대중들은 중앙을 이해합니다. 이 결심은 반드시 내려야 합니다. 지금 넘은 이 고비가 성공할 수 있겠는지는 오늘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공하기를 희망합니다. 성공하자면 매 한걸음 전진할 때마다 모두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부지런히 일하고, 대담하면서도 세심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그때마다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발견하면 조절하고 실제 상황에 부합되게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물가개혁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어려움을 맞받아 반드시 처리해야 합니다. 전당과 전국인민들에게 이것이 아주 어려운 사업이고 완전무결한 방침과 방법은 없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하고, 우리가 봉착한 것은 모두 새로운 사물들이고 새로운 문제이므로 경험은 우리 스스로가 창조해야만 함을 알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라고 했습니다. 물가를 풀어주고 개혁을 빠르게 하는 것이 정확한가 아닌가의 여부는 실천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순조로운 상황도 있고 위험한 상황도 있습니다. 다행이 이 10년 동안 중국에 만족스러운 발전이 있었고, 인민생활도 개선되었습니다. 그리고 위험에 적응하는 능력도 어느 정도 증대되었습니다. 나는 늘 동지들에게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 대담해지라고 합니다. 소심해서 이것저것 두려워하다 보면 길을 걸을 수도 없으니까 말입니다.

중국 경제의 발전 속도는 그렇게 느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1988년에 풍랑이 일게 될지 모르지만, 속도는 여전히 10%를 초과할 것입니다. 매일 풍랑 속에서 전진하는 상황이 되겠지만, 네 배로 늘리는 임무는 틀림없이 완수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 상황이고 전망입니다.



이는 『덩샤오핑 문선 제3권』에서 가져온 것인데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인솔한 북한 군사대표단을 접견했을 때 한 담화의 일부이다. 개혁개방을 권해본 중국에서도 다룬 바 있지만, 1980년대 중국은 이렇게 북한 대표단이 올 때마다 - 설령 그것이 경제와는 별 관련없는 군사대표단이더라도 - 귀에 못이 박히게 개혁개방을 하라고 요구했음을 잘 보여준다. 덩샤오핑이 장관급에 불과한 오진우를 만나준 것 자체가 중국 측의 배려인지라, 북한 대표단은 뭐라 말도 못한 채 묵묵히 개혁개방 실무에 관한 강의를 듣고 돌아갔을 게 뻔하다.
by sonnet | 2010/08/15 12:18 | 정치 | 트랙백 | 덧글(44)
미-북 '연락사무소' 개설 협상
1994년 타결된 「제네바 합의 틀」 2조 2항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있다.

(2) 양 측은 전문가 급 협의를 통해 영사 및 기타 기술적 문제가 해결된 후에 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

연락사무소는 단계적인 신뢰구축을 통해 대사관을 개설하는 정식 수교로 가기 위한 전 단계인데, 미중수교의 경우도 이러한 경로를 밟아 이루어졌다. 「제네바 합의 틀」 또한 이러한 발전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3) 미국과 북한은 상호 관심사항에 대한 진전이 이루어짐에 따라 양국관계를 대사급으로까지 격상시켜 나간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평양과 워싱턴에는 미국과 북한의 연락사무소가 설치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C. 연락사무소 개설 협상

미국과 북한 양 국의 수도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문제는 제네바 「합의 틀」이 타결된 후 6개월, 즉 1995년 4월 이전에 설립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경수로협정의 체결 지연과 북한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지연되고 말았다. 연락사무소의 개설 준비는 끝났지만 언제 개설하는지는 여전히 미정이다. 연락사무소 개설에 대한 미국 측 입장은 평양에 거점을 확보하고 이 거점을 북한 사회를 개방시키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자신들이 양국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한편 북한은 이 문제에 대해 비교적 소극적이다.
첫째, 북한은 미국의 연락사무소가 자신들의 정보가 유출되고 개방을 요구받는 경로가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미국은 판문점을 통해 외교 행랑을 포함한 특정한 물품들의 운송을 요구하고 있으나, 북한군은 자신들의 군 기지와 시설이 노출될 수 있다며 이에 반대했다고 전해진다.
둘째, 북한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워싱턴에 자국의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것을 서두르고 있지 않다. 워싱턴에 연락사무소의 장소와 건물을 확보하는 것은 그들에게 커다란 부담이다.
셋째, 그들은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설립할 절실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다. 연락사무소가 없어도 그들은 미국과 여러 가지 접촉 경로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뉴욕의 북한 UN대표부는 미국에 대한 그들의 공식 채널이며, 미사일 회담이라든가 다른 회담에 복귀하는 것 등 여러 가지 다른 비공식적 채널도 존재한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연락사무소가 개설되고 나면 우호친선조약이나 양국간의 대사 교환도 곧 뒤따르게 될 것이며, 그 결과 일본-북한 간의 우호조약 그리고 4대 강국의 교차 승인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문제에 있어 북한이 보이고 있는 소극적인 태도는 그들이 개방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Huh, Nam Sung. “Background and Strategy of North Korea`s Approach to the United States.” KNDU Review 2.2 (1997) pp.26-27



아이러니하게도, 헬리콥터가 격추된 그 날 북한의 연락사무소 대표단이 워싱턴에서 평양으로 돌아왔다. 대표단의 임무는 「합의 틀」에 포함되어 있는 미북 양 측의 수도에 외교연락사무소를 개설하기 위한 교섭을 하는 것이었다. 워싱턴에서는 잠정합의문에, 상사들에 의한 최종점검이 남아 있다는 이니셜에 의한 가서명이 이루어졌다. 남은 미해결의 문제는 미국 외교행랑의 반출, 반입 경로를 확정하는 것뿐이었다.
미국 측은 연락사무소의 운영에 불가결한 공식의 외교문서나 비품, 물자가 들어간 크기에 제한이 없는 외교행랑(외교용어로 「파우치」라고 함)을 비무장지대(DMZ)를 경유해 서울로 왕복시킬 것을 요구했다. 북한대표단은 파우치의 반출입경로는 평양에서 북경을 경유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타협안이 도출되었다. 북한대표단은 귀국 후 윗사람들에게 미국의 요구를 단계적으로 실시해나가도록 제안하기로 합의했다. 헬기격추사건의 발생에 의해 이 문제는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DMZ상의 판문점을 통한 교류는 조선인민군의 관할이다. 헬기 사건 후 조선인민군의 장군들이, 미국은 DMZ 북방의 정보를 수집해 조선인민군의 동향을 탐색하기 위한 구실로 외교행랑의 통과경로로서 판문점을 사용하려하고 잇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은 충분히 있을법한 일이었다. 현명하게도 국무성은 이 문제를 더 이상 진행하려고 하지 않았다. 외교행낭의 통과경로문제는 여전히 평양에 미국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데 있어 장애물의 하나로 남아 있다.

… 작년 12월의 헬리콥터 사건 이래의 타격을 수복하기 위한 외교노력이 약 1개월간 계속된 후 「합의된 틀」의 이행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는 교착상태에 빠져 완전히는 수복되지 못했다. 미 국무성이 뉴욕의 북한 UN대표부에게 한국계 미국인이 북한측 연락사무소의 경비를 부담할 수 있도록 미국 국내법을 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하자, 연락사무소 개설 전망은 더욱 멀어졌다. 수도 워싱턴 DC에 북한이 세울 사무소의 임대료를 깎아주는 것도 미 국무성에게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Quinones, C. Kenneth., Beyond Negotiation: Implementation of the Agreed Framework, 미출간
(山岡邦彦, 山口瑞彦, 『北朝鮮II: 核の秘密都市 寧邊を往く』, 中央公論新社, 2003, pp.72-73, 189)


북한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이 이후로 연락사무소 개설 협상을 타결짓는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정말로 미국과의 수교를 원했다면 이 때 연락사무소 건을 결렬시킨 것은 그들의 크나큰 실수가 아닐 수 없다. 당시에 미국은 「합의 틀」의 약속에 따라 북한과의 협상에 응했고, 결과도 거의 나온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북한에 별 관심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북한 측이 이런 문제를 제기해 회담을 결렬시키자 그냥 그대로 이 문제를 선반에 올려놓고 잊어버리고 말았다. 미국에게 늘 달라붙어서 수교를 해달라고 조르는 쪽은 북한이니까, 아마도 급하면 북한이 다시 찾아올테고 그럼 그때 생각해도 될 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북한은 꼬투리를 하나 잡았으니까 늘 그렇듯이 일단 버티면서 참을성 없는 상대의 양보를 강요하는 벼랑끝 흥정을 시도해 볼 요량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때 실기하여 협상의 모멘텀을 잃고 나자 그걸로 끝이었다. 이는 북한식 협상술의 약점을 잘 보여준다. (다른 협상 지렛대가 별로 없기에) 버티기와 우기기에만 의존하는 북한식 협상술은 사소한 건수에 집착하다 시간을 낭비하는 경향이 있으며, 잠시 동안만 찾아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는 데 있어 무능하곤 하다.
by sonnet | 2010/07/25 16:00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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