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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부자와무두장이
2009/12/30   북핵문제를 둘러싼 세 가지 우화 [96]
북핵문제를 둘러싼 세 가지 우화

1. 해와 바람

해와 바람이 누가 더 힘이 센지를 놓고 다투었다. 길가는 나그네를 보고 해가 말했다.

"좋은 생각이 있어. 우리 중 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수 있는 쪽을 더 강하다고 인정하는 게 어때? 자네부터 해 보게나."

그래서 해는 구름 뒤로 숨고, 사나이를 향해 바람이 있는 힘껏 불어제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람을 더 세차게 불수록 나그네는 외투를 단단히 여미었다. 결국 바람이 좌절하고 물러나자, 이제 해가 앞에 나섰다. 해는 나그네를 향해 따스한 햇볕을 쬐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그네는 외투를 입고 걷기에는 너무 덥다고 생각하게 되었다.[1]

이 이야기는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되고 노무현 정부에서 계승된 저 유명한 '햇볕정책'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잘 잘려져 있다. 그 정책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나는 늘 왜 우화였던가라는 의문을 품어 왔다. DJ라는 사람은 후세에 자신의 평가를 좌우하게 될 핵심적인 대외정책을 왜 그 우화에 담아 국민들에게 제시했을까? (대중에게 쉽게 전달된다는 강점도 있지만, 틀릴 경우엔 아주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잘 보면 바람에게 내기를 제안하기 전에 해는 이미 '나그네'의 예상되는 행태에 대해 통찰력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랬기 때문에 자신있게 바람보고 먼저 하라고 권할 수 있었던 게 아니겠는가. 이와 비슷하게 DJ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시작하기 전부터 자신의 대북 포용정책의 결과로 바뀌게 될 북한의 행태에 대해 나름의 청사진을 갖고 있고, 또 그 결과에 대해 자신도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2. 전갈과 개구리

전갈은 강을 건널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헤엄칠 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한참을 서성이고 있으려니 문득 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폴짝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개구리야, 나 좀 태우고 강을 건네 주지 않을래?"

전갈을 본 개구리는 겁이 덜컥나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싫어. 너를 태우고 가다가 독침에 찔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란 말이야?"

"에이, 그럴리가. 내가 너를 찌르면 같이 물에 빠져 죽을텐데 설마 내가 그러겠어?"

들어보니 그도 그럴 듯 했다. 개구리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설마 자기 죽을 일을 하랴 싶어 마침내 전갈을 태우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물결이 출렁였다. 깜짝 놀란 전갈은 자기도 모르게 개구리를 찌르고 말았다. 개구리가 고통에 겨워하며 물었다.

"왜 그랬지? 너도 죽게 되었잖아!"

"미안, 어쩔 수 없다. 난 원래 그래."

둘은 함께 물 속으로 가라앉아 갔다.[2]

이 이야기에서 전갈은 전술적 목적에서 일시적으로 자신의 본성을 자제하려고 노력하지만, 끝내 해로운 본성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과 주변 모두에게 큰 피해를 끼치게 된다. 이것은 보수 진영, 특히 안보 문제에 집중하는 보수들의 북한관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경험이나 사례를 바탕으로 북한 정권의 예상되는 행태에 대한, 햇볕정책 진영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우화가 더 대북정책의 비유로 적합한가는 결국 외부 세계에 대한 북한의 실제 행태가 '나그네'와 비슷한지 '전갈'과 비슷한지에 달려 있다. 양 쪽 진영은 서로 자신들의 비유가 더 적합하다고 주장하는데, 아직 양 쪽 모두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종적인 승부는 가려지지 않았다고 해 두자. (혹시 누가 햇볕정책은 이미 파산이다라든가 그렇게 주장한다면 이렇게 답해 주겠다. "그럼 당신은 민주당이 재집권해도 햇볕정책이 재개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가?")

그것보다 나는 세 번째 우화를 제시하고 싶다.


3. 부자와 무두장이

어느 부잣집 옆에 무두장이가 이사를 왔다. 그런데 무두질 작업장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고약해 참을 수가 없었다. 부자는 무두장이를 찾아가 말했다.

"냄새가 너무 나 참을 수가 없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 준다면 내 응분의 사례를 하겠네."

무두장이는 곧 이사를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무두장이가 계속 머무르며 시간이 흐르자, 부자는 그 냄새에 조금씩 익숙해져, 처음처럼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부자는 더 이상 돈을 주고 무두장이를 이사보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3]

전문가들의 견해, 특히 [햇볕정책에 대한 찬반에 매달려있는 국내 논쟁에서 벗어나 있는] 미국이나 중국 전문가들이 북한이 결국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 쪽으로 수렴되고 있는 현상은 이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이 글이나 이 글, 이 글을 참조)

이런 상황에 대해 국내에서 너무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며,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과거 DJ가 햇볕정책을 대중에게 홍보하는 수단으로 우화를 활용했던 것처럼, 세 번째 우화를 갖고 대중에게 접근해야 하지 않나 한다.

참고

[1] 이솝우화 The North Wind and the Sun.
[2] wikipedia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흔히 이솝 우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다만 이솝 우화에는 이와 유사한 농부와 뱀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3] 이솝우화 The Rich Man and the Tanner. 국내에 소개된 이 이야기는 대부분 부자가 무두장이에게 금전적 보상을 약속하고, 무두장이가 더 큰 보상을 노리고 버티다가 결국 손해를 보게 된다는 식으로 되어 있는 듯하다. 이와 같은 판본의 예로는 다음을 참조.
by sonnet | 2009/12/30 23:11 | 정치 | 트랙백 | 덧글(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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