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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밥우드워드
2009/07/28   부시의 크로포드 목장 인터뷰에서 북한 언급의 맥락 [40]
2009/07/11   『실패한 외교』에 그려지는 부시1기의 대북정책 [47]
2008/09/12   도덕적 명료성, 혹은 정의는 승리한다? [69]
2008/09/09   'The War Within' (Bob Woodward) [92]
부시의 크로포드 목장 인터뷰에서 북한 언급의 맥락

2002년 8월 20일,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워싱턴포스트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밥 우드워드는 크로포드 목장을 방문해 부시 대통령과 2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나는 큰 목적을 완수할 기회를 잡을 것입니다.” 부시가 말했다. 우리가 앉아 있는 큰방으로 커튼을 통해 미풍이 불어와 안락한 느낌이었다. “세계평화를 완수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의 답변이 계속되었다. “행동은 꼭 전략적 목표나 방어적 목표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당신이 알다시피 이라크 같은 경우요. 콘디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좀 있어봐. 여담인데 말이요. 이것이 어떤 결실을 맺는지를 보게 될 거요. 우리가 더 나아간다면 이라크의 정권교체에 전략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겁니다. 그러나 내가 관여하는 한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것도 있는데, 그것은, 거기에는 한없는 고통이 뒤따릅니다.”
부시가 라이스를 흘낏 보았다. “또는 북한 말이오.” 그가 재빨리 덧붙였다. “북한 얘기 좀 합시다.” 그러나 그는 이라크를 싸잡아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라크, 북한, 이란은 그가 연두교서에서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나라들.
대통령은 상체를 앞으로 내민 자세로 앉아있었는데, 북한 지도자에 대해 말할 때에는 자리에서 껑충 뛰어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격앙되었다.
“나는 김정일을 증오합니다.” 그는 허공에다 손가락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나는 이 자에 대해서는 내장에서 우러나오는 본능적 반발심을 가지고 있어요. 자기 백성들을 굶기고 있지 않습니까? 그곳 범죄수용소에 대한 첩보를 봤소. 엄청난 규모요. 이 큰 시설들을 이용해 가족을 갈라놓고 사람들을 고문합니다. 질렸…”
“미 정보기관에서 제공한 정치범수용소의 위성사진을 보았습니까?”
“물론이오. 질리게 만들더군.” 어떻게 문명세계가 백성들을 기아선상에 빠뜨린 북한 대통령(국방위원장을 잘못 지칭한 것)을 방관하고 버릇없이 굴도록 놓아두는지 의아해했다. “이것은 내 본능이오. 종교일 수도 있고, 또 나의… 어쨌든 나는 이 문제에 열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북한이 미국의 우방인 남한을 전복시키기 위해 막대한 군사력을 배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고도 했다.
“나는 바보가 아니오.” 대통령은 계속 말했다.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시도할 경우 -이 자가 쓰러질 경우 국민들이 져야하는 재정부담이 너무 클 것이라는 거요. (그렇게 되면) 누가 이들을 챙겨야 하느냐? 글쎄요, 난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자유를 믿든가, 그래서 자유롭게 인간답게 살든가, 아니면 그렇지 않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하는 거지요.”
그는 자신의 진의가 제대로 전달됐는지 모르겠지만 “이라크 국민들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하게 느끼고 있다”고 부연했다. 사담은 시아파의 영향권에 있는 변두리 국민들을 굶기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염려해야 할 인간의 조건입니다.”
“이라크의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공격할 수도 있고 공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어요. 하지만 모든 것은 세계를 더 평화롭게 만들기 위한 방향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해방군으로 인식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가 한 마디 덧붙였다.

Woodward, Bob, Bush at War, Simon & Schuster, 2002
(김창영 역, 『부시는 전쟁중』, 서울, 따뜻한 손, 2003, pp.459-461)


2002년 8월은 부시가 한참 이라크 침공 준비에 집중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리고 이라크 문제는 세계적인 화두로 다뤄지고 있었습니다. 거물급 논객들이 신문 지면을 통해 이라크 전 찬반론을 열심히 펼치고 있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부시는 이라크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에 갑자기 자청해서 북한 이야길 꺼낸 다음 김정일 정권을 비난하는데 열을 올립니다. 그리고는 북한의 악행에 대한 이야기를 발판으로 삼아 도로 이라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강화합니다.(In case I didn’t get the message, he added, “And I feel that way about the people of Iraq, by the way.”)

이처럼 크로포드 인터뷰에서 등장한 북한에 대한 강렬한 묘사는 북한 그 자체를 주제로 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건 맥락을 보면 방향을 약간 흐린 듯 하면서도 결국은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예시로서 등장했던 것입니다. 이는 '악의 축'이란 개념이 원래 이라크 한 나라를 겨냥해 만들어 진 것이고 북한과 이란은 너무 명백한 의도를 희석하기 위한 목적을 겸해 나중에 추가되었다는 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시는 이 인터뷰가 끝나고 우드워드를 데리고 직접 농장 구경을 시켜 주는데, 그 와중에 다시 이라크를 강조합니다.

되돌아 걸음을 옮기면서 부시가 또 이라크 문제를 꺼냈다. “이라크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 전쟁을 하든 나의 계획이나 정책결정 모델은 당신이 쓰려고 하는 그 책에 다 담겨 있을 겁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처음 몇 달과, 전 세계 테러리즘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CIA 비밀작전 말이오.”
“당신은 그 내용 전부를 다 알고 있어요.” 부시가 거듭 확인했다. 당신이 들은 얘기를 중시하라고 다짐하는 것 같았다. 한 조각 한 조각을 모두 꿰어 맞추면 전체가 완성된다. 그는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대통령직을 수행해 나갔고 광범위한 목적에 어떻게 초점을 맞추었으며, 어떻게 결론을 내렸고 왜 전시내각을 자극하고 국민들이 행동하도록 압력을 가했는가.
나는 이것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긴장했다. 이 언급과 그 전의 발언은 이라크 공격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 같았다. 인터뷰 초반에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모든 위험성이 평가되었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면 끊임없이 분석하고 위험성을 바탕으로 결심을 합니다.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 하는 목적과 연관시켜 위험에 뛰어드는 전쟁 중에는 특히 더 그렇지요.”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은 명백한 것 같았다. - 사담 제거.
트럭으로 돌아오기 전, 부시는 이라크 퀴즈에 한 가지를 문제를 덧붙였다. “아직 이라크에 대한 성공적인 계획을 보지 못했소.”그는 조심스럽고, 또 인내해야 했다.
“대통령은 성공적인 군사계획을 좋아합니다.”

같은 책, pp.464-465

보시다시피 이는 부시의 관심이 온통 이라크에 집중되어 있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 책은 이라크 전이 발발하기 전에 출판(2002년 11월)되었다는 점을 언급해 두는 게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르겠군요. 참고로 우드워드는 같은 인터뷰를 이라크 침공을 완료한 후에 나온 자신의 다음 책에서도 소개하는데, 여기는 북한 이야기는 빠지고 이라크 이야기만 나옵니다.

8월 20일, 나는 크로포드 목장에서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주제로 부시와 2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했다. 『부시는 전쟁중』을 저술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세계를 재편하는 것에 대해 허풍으로 들릴 만큼 거침없이 포부를 피력했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원대한 목표를 이루고자 합니다.”
그는 ‘세계를 개량하고 평화롭게 만드는 전체적 목적에 걸맞게 미국은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청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라크가 바로 이런 경우요. 여담이지만 -그리고 결실을 맺을지 지켜볼 일이지만- 우리가 계속 추진해 나간다면 이라크의 정권 교체에 전략적인 측면에서 깊은 뜻이 담겨있을 것이 확실해요. 그러나 내가 관련돼 있는 한 그 이하입니다. 그것은 이라크가 고통의 땅이라는 점이지요.”
후세인은 이라크 내의 시아파 교도들을 굶주리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우리가 염려해야 할 인간의 조건입니다. 이라크의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공격할 수도 있고 공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어요. 하지만 모든 것은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기 위한 방향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시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서도, 또 후세인이 미국에 어떤 위협을 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무력과 이의 사용에 대해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고자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부연함으로써, 국제적 연대나 UN 차원에서는 불량국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했다.
“그러나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행동, 확신에 찬 행동을 하면 찜찜해 하던 국가나 지도자들도 결국 우리를 지지하고 평화를 향한 어떤 긍정적인 진전이 있음을 스스로 입증하게 되는 부수적 효과를 얻게 됩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대통령은 나를 자신의 픽업트럭에 태우고 목장을 구경시켜 주기도 하고, 같이 걷기도 했다. 산책을 하면서 그는 이라크 문제로 되돌아갔는데, 나는 당시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던 다양한 작전계획에 대해 전혀 낌새를 채지 못했고, 부시 또한 ‘아직까지는 성공을 보장할만한 작전안을 갖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그래서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헤어졌다. 다음날 부시는 기자들에게 이라크에서의 정권 교체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면서 스스로를 “참을성 있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Woodward, Bob, Plan of Attack, Simon & Schuster, 2004
(김창영 역, 『공격 시나리오』, 서울, 따뜻한 손, 2004, pp.215-216)

by sonnet | 2009/07/28 09:23 | 정치 | 트랙백 | 덧글(40)
『실패한 외교』에 그려지는 부시1기의 대북정책

sonnet님의 '2차 북핵위기를 돌아보며'에 대한 단상 (udis)에 트랙백

일단의 열기를 식힐 만큼은 시간이 지난 것 같으니 이제 이 견해를 한 번 검토해 보지요.

들어가기 전에 하나 지적해두고 싶은 것은 제 글을 "sonnet님은 불카누스라는 그룹이 주로 북한에 대한 전쟁을 주장했고, 부시는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해 온건한 입장이었던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이라고 받아들인 것은 심각한 오독이라는 점입니다. 이 점은 shaind씨께서 잘 정리해 주셨기 때문에 별도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위 글에서 거론되는 우드워드의 부시 인터뷰는 한 가지 사실을 보여줍니다. 부시가 개인적으로 북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는 겁니다. 이는 부시의 생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료이긴 합니다만, 그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왜냐면 북한 정권에는 그런 비판을 받아 마땅할 만한 이유가 산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지요. 샤란스키 등에 공감하는 이상론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북한에게 그정도 불쾌감을 표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은 몇 차례에 걸쳐 북한과의 전쟁을 단단히 결심한 바 있다"(udis) 같은 주장처럼 부시가 북한을 공격하려 했다는 것을 뒷받침하지는 않습니다. sprinter씨가 잘 지적했듯이, 미국의 국가지도자가 1)개인적으로 북한을 싫어한다는 것과 그 국가지도자가 그런 동기 때문에 2)북한과의 전쟁을 정책으로 추진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후자를 설득력있게 보여주려면 북한과의 전쟁을 선택하고 추진했음을 보여주는 다른 근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 추진과정에 대해 엄청난 양의 자료를 갖고 있고, 1994년 클린턴 행정부가 협상과 병행해 준비했던 영변폭격안에 대해서도 믿을 만한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전쟁 추진 과정에 대해서는 그런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udis씨는 프리처드의 책 『실패한 외교』가 그에 대한 분명한 근거를 제공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책을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용도로 쓸 수는 없습니다. 프리처드의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그 책은 그런 이야기 대신 전혀 다른 이야길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우라늄 농축의 길로 들어서서 기본합의의 정신을 어긴 것은 북한이었다. 그러한 결정에 대한 책임은 북한이 져야 한다. 평양이 얼마나 부시 행정부를 싫어하고 불신했는지와 관계없이, 기본합의문의 파기 결정을 부시 대통령 책임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다른 한편 부시 행정부가 하는 일 없이 평양으로 하여금 향후 핵무기 프로그램의 진전 선언을 하도록 내버려두고, 예고된 조치들을 하나하나 행동으로 이어갈 때도 지켜만 보고 있었던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가 했던 것에 비해 확실하게 온건했다. 1993년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이 사용후 연료를 재처리해서 플루토늄을 추출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전쟁을 준비했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사용후 연료를 재처리하고 플루토늄을 두 번 추출해 추가적으로 8기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을 얻을 때에도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1]

여기서 "확실하게 온건"은 significantly softer를 옮긴 것인데, 이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당근을 주었다는 의미에서 온건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클린턴 행정부와는 반대로] 채찍을 휘둘러야 할 순간에도 채찍을 휘두르지 않고 물렁하게 대했다는 의미라고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 1기의 대북정책은 실로 당근도 없고 채찍도 없는 상당히 이상한 정책이었던 것이지요.

이 책을 번역했던 역자들도 같은 방향으로 프리처드의 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양자대화 거부는 무시정책을 배경으로 한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재처리에 나서도 미국은 대응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를 비교할 때, 그 차이는 온건과 강경이 아니라 바로 ‘관심의 차이’였다는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이 재처리에 돌입하자 클린턴 행정부는 군사적 공격 가능성까지 모든 선택지를 고려했고, 결국 1994년 제네바 협상을 선택했다. 부시 행정부는 관심이 없었고 무시했으며, 북한의 핵 보유 과정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무시정책은 결국 무능으로 드러났다.[2]


그리고 이것은 제가 앞선 글에서 지적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부시 행정부 1기 대북정책에서 나타난 주요한 문제는 강경한 위협과 대결을 택한 데 있지 않았다. 진정한 문제는 미국이 북한을 진지하게 상대 -그것이 전쟁이던 협상이던 간에-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의 태도는 엉거주춤한 것이 문제였지, 단호해서 문제가 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sonnet)


여기서 "매우 중요한 시기에 부시를 보좌한 인물"(udis)이라고 묘사되는 저자 찰스 프리처드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기로 하지요.

프리처드는 클린턴 행정부 당시에 백악관 NSC에서 아시아국 선임국장으로 일하다가, 부시 행정부 들어서는 곧 국무부로 옮겨가(2001년 4월) 대북협상특사를 맡아 약 2년간 더 일한 후 제1차 6자회담이 열린 2003년 8월에 사직합니다. 즉 그는 클린턴 말기~부시 1기 사이의 대북협상에 대해 폭넓게 논평할 수 있는 경험을 갖고 있는 주요 실무자입니다. 반면 그는 부시의 의도나 의사결정과정을 관찰하고 논평하기에는 백악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 프리처드가 묘사하는 부시 행정부 1기의 대북정책은 어떤 것일까요?
대북정책과 관련해 「부시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은 누구인가」란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의 3장을 보도록 하지요. 여기서 그는 한국에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부시 대통령이 2001년 1월 20일에 취임했을 때, 이 [정권인수]팀에 참석했던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행정부에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이 로버트 조지프(Robert Joseph)로, 그는 반확산 선임국장이 되었다. 국가안보보좌관인 라이스와 부보좌관이었던 해들리와 친했고, 정권 인수기와 행정부 초기에 그가 추진한 업무 때문에 그는 NSC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였다. 조지프는 아시아 업무에 별로 경험이 없었지만, 북한을 자신의 전문 영역으로 삼았다.
과거 행정부에서 NSC의 반확산(이전에는 비확산) 부서와 아시아 부서는 부서 간에 공감할 수 있는 대북 정책이 실행되도록 보장했다. 지역 부서로 NSC 아시아국은 기능적 부처인 반확산 담당 부서에 비해 정책 발전을 주도해 왔다. 동맹국들과 지역 내 나라들과의 더 폭넓은 관계를 고려해서 NSC 아시아국이 인도주의적 관심사, 위조지폐, 안보 등의 현안을 주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1기에서는 조지프의 영향력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없었다. 조지프의 영향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지프가 반확산 담당 선임국장이었던 부시 1기 내내 NSC 아시아국 선임국장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지프는 북한에 대한 경험이 없었지만, 자신이 명명한 대북 정책 조정회의의 공동의장이 될 수 있었다. 사실상 이는 그가 대북 정책의 방향키를 움켜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국가안보 대통령 명령 1호에 따르면, 동아시아 정책조정회의는 의장을 국무장관이 결정하고, 차석급 회의와 각료급 회의에서 검토하는 북한 관련 의제에 대해 ‘정책 분석’을 하는 것이 임무였다. 그러나 실제는 전혀 달랐다. 국무부가 아니라 조지프가 이끄는 NSC 반확산 부서가 정책 문서의 작성을 담당했고, NSC 아시아국이 그중 극단적인 견해나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합리적 조정을 시도했다.

NSC의 봅 조지프, 국방부 정책 담당 부장관[sic, 차관] 더글라스 페이스, 국무부 군비통제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보[sic, 차관] 존 볼턴, 부통령실의 에릭 애들먼, 국제안보정책 담당 차관보 크라우치를 포함한 비공식 네트워크가 공식적으로 또는 막후에서 부시 행정부 1기의 대북 정책을 만들었다. 볼턴을 제외하고 이들은 국가적 견해나, 그들의 상관인 부통령·대통령(국가안보 보좌관과 부보좌관을 통해)·국방장관의 심정을 대변했다. … 내가 참석했던 몇몇 혼란스러운 회의에는 조지프, 애들먼, 볼턴과 페이스의 부하 직원들이 참석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상관의 견해를 대변했지만 합의할 수 있는 권한(아마도 능력)은 갖고 있지 않았다. 이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활용했던 돌아버릴 논리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도덕적 순수성’(Moral Clarity)인데, 이 말은 조지프의 부하 직원인 존 루드가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이었다. 특정 논리 -혹은 예상되는 결과- 에 직면했을 때에 루드는 왜 그것이 정책이 되어야 하는지, 바로 ‘도덕적 순수성’을 근거로 내밀었다. 나도 도덕성이나 순수성에 대해 박수를 치지만, ‘도덕적 순수성’은 특정한 요소가 왜, 그리고 어떻게 특정한 정책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부적절한 개념이었다. 정책의 변경을 위해 고위급 논의인 차석급 혹은 각료급 회의를 활용하기보다 이 부하 직원들은 ‘도덕적 순수성’을 일상적인 발언 자료나 연설에서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이유로 자주 사용했다. 이것은 하위 직원들이 미국 정부의 정책으로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다.[3]


이 견해를 또 다른 자료와 맞춰 보기로 하지요.

부시 정권의 대북 정책 혼란은 파월·아미티지와 체니·럼즈펠드의 대립 때문에 일어난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매일 매일의 정책 결정 과정은 “국무부 대 국방부의 대립이라기보다 지역 전문가와 비확산 전문가 간의 싸움이었다”고 정부 고위 관리는 지적했다.
지역 담당 그룹과 비확산 그룹은 켈리 방북 여부, 방북 전략, 기본합의의 평가, 대북 중유 공급 지속 문제, 나아가 2003년 봄이후 3자회담과 6자회담의 전 과정에서 모든 쟁점을 놓고 대립했다. 양쪽의 투쟁은 백악관의 NSC에서 가장 격렬한 긴장과 대립을 일으켰다.
비확산 그룹의 대표 격은 로버트 조셉과 존 볼턴이었다. … 조셉은 또 북·미 기본합의와 6자회담은 본질적으로 핵 문제를 다루는 것이므로 자신이 그 문제를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동아시아 담당의 토컬 패터슨, 제임스 모리아티, 마이클 그린 등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입지 강화와 북한의 핵 포기 두 가지를 동시에 목표로 삼고 있는 대통령의 대북 정책 재검토를 방패로 저항했다. …
“네오콘은 담당 업무가 아닌 일도 저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의 의견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언론에 흘리거나 막후에서 공작을 했다. 그 덕분에 일이 헛돌고 18개월이나 허비했다. 18개월이나”라고 국무부 고위 관리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2003년 여름 무렵의 일이었다. 18개월은 부시 정권 출범에서부터 켈리 방북까지의 약 1년 반을 가리키는 것이다.
미국의 6자회담 대표단 구성은 관여파와 비관여파(또는 지역 그룹과 비확산 그룹)가 같은 택시에 합승한 것과 같았다. 비관여파는 볼턴 사무실, 백악관 NSC 비확산 부서, 체니 사무실, 국방부 등에서 나온 중견 간부들이었다.
“과거 소련이 서방에 보낸 무역 대표단 같았다. 대표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고, 그를 감시하는 사람이 또 있고…”라고 아미티지가 쓴웃음을 지어 가며 말한 적이 있다.[4]

후나바시가 취재한 관련 인사들의 견해도 프리처드가 말한 것과 잘 맞아들어갑니다.

그런데 여기엔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습니다. NSC에는 정책 결정을 위한 수석 회의(장관급)와 차석 회의(부장관급)가 있고, 그 밑에 각 부처의 실무진들이 모여 갖는 정책조정회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프리처드나 후나바시가 묘사하는 바에 따르면 대북정책을 둘러싼 노선 투쟁과 상호 견제는 주로 이 실무진 회의를 축으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건 그만큼 고위층들은 [뭔가의 이유로] 북한 문제에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최고위층에 의한 지속적인 관심과 정치적 결정이 충분히 주어졌더라면, 실무진들 사이에서 그렇게 18개월씩 교착상태가 장기간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지요.

대북정책에 대한 파월 국무장관의 역할을 묘사하면서 프리처드도 이런 관점을 따릅니다.

나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대북 정책의 발전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특히 강경파들이 그토록 심하게 그의 구상을 음해하기 위해 뛰어다닐 때 그가 왜 그들을 제어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곤 했다. 나는 파월이 우리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의 지지를 지속시키고 유도할 미국의 정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했다고 믿는다. 파월이 하지 않은 것. 그것은 바로 대북 정책의 조정자 역할이었다. 국무장관으로서 그의 책임감은 대단했다. 나는 파월을 막대기 위에서 돌고 있는 여러 접시의 평행을 유지하려는 ‘접시 돌리는 사람’으로 비유한다. 접시 하나의 속도가 떨어지고 비틀거리면 달려가 균형을 잡고, 다시 그 다음 흔들거리는 접시로 달려갔다. 대북 정책은 파월의 많은 접시 중 하나일 뿐이었다. 파월이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관심을 돌리면, 강경파들은 부시 행정부의 고위층에게 그가 북한이라는 접시를 잘못된 방향으로 돌리고 있음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했다.[5]


결론적으로 말해 부시 대통령이 군사력으로 북한 정권을 작살내겠다는 결의가 분명했으면 이런 결과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그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자연스럽게 NSC 수석회의(장관급)이 정책논쟁을 주도해 나갔을 것입니다.

이는 앞선 글에서 제가 소개했던 "불카누스들은 북한문제만 만나면 미봉책으로 대처"했다는 설명과 잘 부합합니다. 이 그룹(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월포위츠 국방 부장관, 파월 국무장관, 아미티지 국무 부장관,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은 부통령, 장관 세 명와 부장관 두 명으로 이루어진 부시의 안보 내각 그 자체입니다. 대통령의 정책추진이 이들과 따로 놀 수 있겠습니까?



[1] Pritchard, Charles L., Failed Diplomacy: The Tragic Story of How North Korea Got the Bomb, Brookings Institution Press, 2007
(김연철, 서보혁 역, 『실패한 외교: 부시, 네오콘 그리고 북핵위기』, 사계절, 2008, p.84)
[2] 같은 책, p.13 (역자 서문)
[3] 같은 책, pp.89-92
[4] 船橋洋一, 『ザ·ペニンシュラ·クエスチョン 朝鮮半島第二次核危機』, 朝日新聞社, 2006
(오영환 외 역, 『김정일 최후의 도박』, 서울:중앙일보시사미디어, 2007, pp.222-225)
[5] Pritchard, 같은 책, pp.28-29
by sonnet | 2009/07/11 07:03 | 정치 | 트랙백(2) | 핑백(1) | 덧글(47)
도덕적 명료성, 혹은 정의는 승리한다?
지난 글에 이어 밥 우드워드의 『The War Within』 발췌기사를 계속 재미있게 보는 중입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밑에서 오랫동안 이라크 정책 조정관으로 일한] David Satterfield는 라이스는 동의하지 않는 매우 비판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만약 부시가 어떤 것이 옳다고 믿는다면, 그는 그것이 성공할 거라고 믿는다. 그것이 옳다는 점이 궁극적인 성공을 보장해준다. 민주주의와 자유는 옳다. 그러니 그것은 결국 승리하고야 말 것이다.

Woodward, Bob, A Portrait of a Man Defined by His Wars, Washington Post, 2008년 9월 9일

이걸 보니까 딱 "justice prevails!"란 구호가 생각나더군요. 이건 JLA같은 아메리칸 코믹북에선 통할지 몰라도 현실정치에선 어림도 없는 생각이지요. 그러나 이런 생각은 대통령의 뇌내망상에 그치지 않고 도덕적 명료성(moral clarity)란 구호를 앞세워, 실제 대외정책으로 연결되어 많은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실제 부시 행정부에서 일했던 중견 외교관들, 아프간 특사였던 제임스 도빈스와, 대북 특사였던 잭 프리처드의 이야기를 들어보지요.

도덕적 명료성을 찾아 [부시] 행정부는 중동을 착한 놈들과 나쁜 놈들로 나누려고 시도했습니다. 미국은 중동 외교를 승리/패배 또는 제로섬 게임, 즉 시리아, 이란,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이익을 얻는 것은 정의상 미국이 지는 것이고 그 반대는 미국이 이기는 것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결과는 미국이 언제나 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지역 사람들에게 시리아, 이란, 헤즈볼라, 하마스를 한편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을 반대편으로 정한 후 한쪽 편을 들게 시키면 그들은 언제나 저쪽 편을 들 것입니다.

Dobbins, James., "Moral Clarity and the Middle East"(강연), New America Foundation, 2006년 8월 24일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문제는 대중동정책 뿐만 아니라 대북한정책에도 적용되었습니다.

NSC의 봅 조지프, 국방부 정책 담당 부장관 더글라스 페이스, 국무부 군비통제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보 존 볼턴, 부통령실의 에릭 애들먼(Eric Edelman), 국제안보정책 담당 차관보 크라우치를 포함한 비공식 네트워크가 공식적으로 또는 막후에서 부시 행정부 1기의 대북 정책을 만들었다. […] 내가 참석했던 몇몇 혼란스러운 회의에는 조지프, 애들먼, 볼턴과 페이스의 부하 직원들이 참석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상관의 견해를 대변했지만 합의할 수 있는 권한(아마도 능력)은 갖고 있지 않았다. 이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활용했던 돌아버릴 논리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도덕적 순수성’(Moral Clarity)인데, 이 말은 조지프의 부하 직원인 존 루드가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이었다. 특정 논리 -혹은 예상되는 결과- 에 직면했을 때에 루드는 왜 그것이 정책이 되어야 하는지, 바로 ‘도덕적 순수성’을 근거로 내밀었다. 나도 도덕성이나 순수성에 대해 박수를 치지만, ‘도덕적 순수성’은 특정한 요소가 왜, 그리고 어떻게 특정한 정책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부적절한 개념이었다. 정책의 변경을 위해 고위급 논의인 차석급 혹은 각료급 회의를 활용하기보다 이 부하 직원들은 ‘도덕적 순수성’을 일상적인 발언 자료나 연설에서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이유로 자주 사용했다.

Pritchard, Charles L., Failed Diplomacy: The Tragic Story of How North Korea Got the Bomb, Brookings Institution Press, 2007
(김연철, 서보혁 역, 『실패한 외교: 부시, 네오콘 그리고 북핵위기』, 사계절, 2008, pp.91-92)


도빈스가 말하는 일단 나쁜 놈들을 정하고 그놈들이 이익을 얻는 것은 정의상 미국이 지는 것이란 생각은 미국의 대북협상에서 아주 골때린 형태로 표출되었는데, 그것은 양자 접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정책 점검 기간에 정책 담당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몇 가지 기본 원칙이 백악관에 의해 정해졌다. 정책은 ABC 정신을 반영하고, 나쁜 행동에 대해 보상하지 않고, 기본합의는 나쁜 거래로 합의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정책 점검 논의 중 일부는 평양이 미국의 제안에 동의할 수 있도록 북한과의 대화에서 이익과 불이익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NSC 직원들은 우리에게는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부족했음을 열정적으로 지적하면서, 우리가 평양에서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양보하듯이 평양이 우리에게 무엇을 얻고 싶은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리적으로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적용은 논점에서 벗어났다. 그러한 주장은 평양이 워싱턴과의 양자 접촉을 희망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떤 경우에는 그러한 생각을 실제로 적용한 것이 최대의 오류였다. […]

업무에 복귀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켈리 차관보에게 북한이 200년 10월 테러리즘과 관련하여 미국과 협력하기로 한 협정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평양의 공식적인 테러리즘 반대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북한이 9.11 테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유용한 과거의 접촉이나 최신 정보를 갖고 있는지를 알아볼 목적으로 그들과 접촉해야 한다고 말했다. […] 9월 19일 일반적으로 북한 문제를 다루는 관료들이 참석하는 부처 간 회의를 소집했다. 여기에는 국무부의 반확산 담당자뿐만 아니라 국방부 사람들까지 포함시켰다. 내가 북한과의 양자 접촉을 갖기 위한 구실을 꾸민다고 비판받았을 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정보기관과 반확산 부서의 대표들은 그러한 공격을 통해 그들의 의중을 드러냈다. 그들은 “확실한 것은 모르지만”이라고 말하면서, 평양이 테러리즘과 관련해 유용한 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결과는 최악으로 치달아 테러리즘과 관련하여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는 것에 만장일치로 반대했다. 반대의 이유는 양자대화가 평양에 보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Pritchard, 같은 책, pp.96-99

즉,
양자대화를 왜 안하느냐? 놈들이 원하니까.
놈들이 왜 양자대화를 원할까? 놈들에게 유리하니까겠지. 그럼 우리에겐 손해인게 틀림없다. 안해!
이런 식의 논리인 거지요. 저는 정책입안과정에 대해 기대 수준이 결코 높지 않은 사람입니다만, 그렇다 치더라도 허탈할 정도로 단순한 초딩논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원동력을 공급하는 굳건한 신념이 있습니다.

우리의 초창기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은 그가 선택한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당신이 믿기 힘들어할거란 것을 압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의심하지 않습니다. 나는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 내 마음 속에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데 대한 의심이란 없습니다. 단 한 점의 의심도."

이것은 그렇게 믿기 힘든 이야긴 아니었다. 여러 인터뷰 중에, 그는 거듭해서 자신의 확신은 자산이라고 선언했었다. "대통령은 등뼈의 칼슘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는 말했다. "내가 약해지는 일이 생기면, 전체 팀이 약해집니다. 혹시 내가 의문을 품으면 수많은 의심이 생겨날 것이라는 것을 장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에 대한 나의 신뢰수준이 떨어지면, 전체 조직에 파문이 번져나갈 겁니다. 내 말은 우리가 확신하고, 결의에 차며 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Woodward, 같은 기사


낮선 나라를 여행하던 청년이 다른 마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무리 기다려도 원하는 버스가 오지 않자,
지나가던 한 노파를 잡고 길을 묻기로 했다.
"할머니, 아무개 마을로 가는 버스가 몇 번인가요?"
사정을 들은 노파는 혀를 끌끌 차며 대답했다.
"여보우, 총각. 그곳까지 가려면 여기서 차를 타면 안된다우."
by sonnet | 2008/09/12 14:31 | 정치 | 트랙백 | 덧글(69)
'The War Within' (Bob Woodward)
워싱턴포스트의 Bob Woodward가 이라크전 관련 새 책을 또 내는 모양입니다. 제목은 The War Within.
출간을 앞두고 내용 요약이 워싱턴 포스트에 연재되고 있는데, 저의 관심분야라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하나만.


[부시가 이라크 병력증원에 반대하는 참모총장들을 설득하기 위해 합동참모본부를 직접 방문함]

병력증원을 하면 상황이 바뀝니까? [육군참모총장] 슈메이커가 물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 일을 합니까? 저는 각하가 증원을 해서 이 일을 계속할 충분한 전력을 만들 기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피터(슈메이커), 내가 대통령이야" 부시가 말했다. "그리고 내가 기회를 갖게 되는거야."

"알겠습니다. 대통령 각하", 슈메이커가 대답했다. "각하가 대통령이십니다."

참모총장들은 이 5개 여단이 실질적으로 미군의 전략 예비, 즉 전세계 다른 곳에서 일이 터질 경우 쓸 수있는 전력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돌발사태는 국제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고 참모총장들은 입을 모았다. [역자 주: 최근 그루지야 전쟁을 보면 러시아가 이례적으로 쎄게 나오는 배경에는 미국이 더이상 새 분쟁에 개입할 여력이 없다는 계산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음]

[…]

"일반적으로 말해서" 부시가 말했다. "총사령관이 찾아가서 말을 하면 끝난 겁니다. 그들은 '넵, 대통령 각하(Yes sir, Mr. President)'라고 대답하는 거지요."
by sonnet | 2008/09/09 13:58 | 정치 | 트랙백 | 핑백(2) | 덧글(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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