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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반일
2008/08/17   이승만 반일 정권 [475]
이승만 반일 정권
건국절 논란의 본질(이녁)에서 트랙백

"이승만, 박정희 정권이 가지고 있는 '친일' 이라는 원죄"라는 표현에서 글 쓴 이가 품고 있는 묘한 인식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아 약간 적어보기로 합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를 '친일'로 연결시키기 위한 가장 흔한 시도 중 하나가 그의 만주군 장교 경력을 거론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승만과 박정희를 한데 묶어 '친일' 딱지를 붙이는 것은 아주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들 잘 알고 있듯이 이승만은 한민족을 대표하는 가장 저명한 독립운동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인 면 외에 정부의 정책 측면은 어떨까요.

한일국교정상화 협상은 1951년 10월에 시작되었지만 곧 중단됩니다. 일본의 비협조적 태도에 분노한 이승만은 1952년 1월 한반도 주변 60마일에 '평화선'(이승만 라인)을 긋고 그 안을 영해라고 독단적으로 선언합니다. 이러한 영해설정은 당시의 국제기준인 3마일을 훨씬 초과하는 것으로 국제법상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이었지요. 이 조치는 정치적으로 전쟁도발행위와 같은 것으로 간주되어 일본측을 격분하게 만듭니다. 물론 우리의 고집불통 이박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더 강수를 둡니다. 1952년 10월,한국 정부는 평화선을 침범했다는 이유를 들어 실력행사를 감행, 1천 명의 일본인 어부를 감금합니다. 이들은 1957년 12월이 되어서야 석방되므로 5년을 썩은 셈입니다.

또한 미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아시아에서 반공을 위한 연합전선을 수립해야한다", 즉 한국과 일본이 제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자, "한국인들은 소련보다 일본에게 더 큰 불안감을 느낀다"라고 주장하며 그 제안을 일축한 것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 당시 한국은 사실상 미국이 먹여살리고 있는 나라였던 만큼 후원자의 요구를 이렇게 일축했다는 것은 그 반감의 강도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이승만은 한일관계 개선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그가 축출되고 나서야 한일국교정상화를 다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제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이승만 정부는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 중 최고로 그리고 일관되게 일본에 적대적인 정책을 취한 정부란 것입니다. 이후의 그 어떤 정부도 이정도로 완고한 반일정책을 취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승만 정권에게 친일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승만은 지도자의 개인적 측면에서도 확고한 반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끈 정부의 정책 측면에서도 확고한 반일이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즉 이승만 정권은 친일 논쟁에서 가장 자유로운 정권이어야 마땅한 것이죠.


물론 뭔가 불만스럽게 느끼는 분도 계실 겁니다. 제가 지금까지 다루지 않은 논점이 한 가지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이승만 정권이 과거의 친일 경력을 가진 사람들을 폭넓게 숙청하지 않았으며 종종 재기용하기도 하였다라는 쟁점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주의권의 맹주이자 전세계 무산계급의 첫번째 조국™의 지도자였던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동지께서 "변한 것은 시가"라고 명쾌하게 선언하신 바 있습니다.



- 이집트 언론인 무하마드 하이칼 모스크바에서 흐루쇼프와 면담하다, 1957년 -

흐루쇼프: 당신은 자본주의자요? 왜 시가를 피우는 거요?
하이칼: 거야 내 취향입니다.
흐루쇼프: (시가를 뺏아 잿떨이에 대고 끄며) 시가는 자본주의의 물건이오.
당신은 나세르의 친구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자일 수 없소!


- 6년 후, 다시 만난 두 사람 -

흐루쇼프: (최고급 시가 한 상자를 내밀며) 이건 내 선물이오.
하이칼: 놀랐습니다. 의장 각하. 지난번에 제 시가에 대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네까?
흐루쇼프: (미소지으며) 나는 변하지 않았소. 변한 것은 시가요.
쿠바 혁명 이후 이 시가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시가가 되었다오.


흐루쇼프 서기장에게 혁명 이후의 쿠바산 시가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시가라고 한다면, 철저한 반일노선을 걸었던 이승만 정권에 참여, 협력했던 舊친일파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더이상 친일행위를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지요. 원하든 원하지 않던 반일정권에 부역(?)한 것이니까요.

또 다른 저명한 사회주의권 지도자인 덩샤오핑 동지도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말씀을 남긴 바 있는데 이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친일파를 등용해서 썼기 때문에 이승만 정부=친일일 거라는 딱지붙이기는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그들을 썼든 안 썼든 간에 분명한 반일정부였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이승만의 반일 정부에 참여한 舊친일파가 있다면 자신의 친일 문제를 다소나마 속죄할 기회를 가졌다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by sonnet | 2008/08/17 00:05 | 정치 | 트랙백(6) | 핑백(7) | 덧글(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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