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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미어셰이머
2007/07/29   네오콘은 현실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 (3) [11]
네오콘은 현실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 (3)
네오콘은 현실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 (2)에서 셀프트랙백

이글은 원래 앞선 글에 첨부할 보론으로 작성되었던 것인데, 원문이 좀 길어진 관계로 제외했던 것이다. 사실 독자들도 내 관점을 자명하다고 받아들인다면 사족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되기에 그에 맞추어 수정해서 공개하기로 한다.

님이 현실주의라고 하는 것이 그럼 린드블룸의 점진주의를 말하는 것이었습니까? 이름이야 붙이기 나름이지만 린드블룸류의 점진주의는 주로 행정학, 정책학에서 논의하는 것이고 국제정치학에서의 현실주의와는 큰 관련이 없지요. 저는 지금까지 님이 국제정치학에서의 이상주의/현실주의 논의를 가지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님이 말하는 이상주의란 저로서는 모험주의로 이해하면 되겠군요.

그렇다면 네오콘은 결코 점진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국제정치학에서의 현실주의 논의에 입각해서는 현실주의자입니다. 왜냐하면 국제정치에서의 현실주의는 국제관계를 국가의 이기적 국익추구행위와 그 상호관계로 이해하는 것이고, 네오콘이 추구하는 것은 미국의 권력을 증대하고자하는 것이니까요. (인형사)


앞선 글에서 나는 주로 이상주의를 먼저 특징짓고, 이에 현실주의를 이에 대조되는 개념으로 가볍게 위치지은 후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주요한 현실주의자와 네오콘 정객의 사례를 들어 실제로 이들을 분석할 때 이러한 특징에 따른 구분이 적절함을 보였다.

여기서 나는 일부러 「정의」라는 개념을 피하고 있으며, 기존에 널리 사용되는 「현실주의자」같은 용어들을 새로 정의하지 않고도 내가 지적한 특징들이 호환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취급하였다. 그러나 위 반론처럼 실은 내가 개념을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것과 상당히 다르게 「재정의」하고있기 때문에 설명력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해볼 수도 있다.
과연 그런지는 이제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내가 외부의 권위를 이용하는 편한 방법을 쓰지 않고 이런 식의 접근방법을 취하게 된 한 가지 이유는 이상주의의 실체에 대해서는 이상주의자 본인들에 의한 정교한 논의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주의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역사학자이자 외교관인 케난(George Kennan), 정치학자 모겐소(Hans Morgenthau) 등이 그때까지의 국제정치이론에 “이상주의(Idealism)”, “법률주의(Legalism)”, “이상향주의(Utopianism)”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에 대한 대안이론으로 현실주의를 주창한 것이다. 그 이래 이 이론적 입장은 학자들뿐만 아니라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도 오랫동안 지배적인 위치를 점해왔다. 이들은 미국인들에겐 순진한 낙관주의적 성향이 있다고 보고 인간본성의 악마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그와 같은 성향을 제어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이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본성의 하나다. 따라서 정치란 곧 권력투쟁이며, 이상이 아닌 현실에 기초한 정책(realpolitik policies)이야말로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Allison, Graham T., Zelikow, Philip D., Essence of Decision: Explaining the Cuban Missile Crisis (2nd Ed.), New York:Longman, 1999
(김태현 역, 『결정의 엣센스』, 모음북스, 2005, p.69)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상주의란 것은 초창기 현실주의자들이 물리치고자 했던 경쟁이념을 규정한 말이라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스스로를 이상주의 학파라고 주장하는 학자나 관료는 찾아보기 힘들고, 이에 따라 이러저러한 사람들에 적용해봐서 잘 들어맞으면 맞는 정의라는 식의 검증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식의 경쟁자 성격 규정하기는 대개 대중적 동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인 만큼, 일반적인 어의가 상징하는 것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즉 내가 앞선 글 서두에 제시한 이상주의의 특징들은 이런 이상/이상향의 어의(목표지향성)나 낙관주의 성향 등을 반영한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러한 구분들은 어느 정도 상대적이다. 여기서부터 이상주의가 시작된다는 것 같은 명확한 경계선은 없다. 그것보다 현실세계에서는 위에서 본 용법처럼 보다 현실주의적인 그룹이 보다 이상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그룹을 지칭해 "저자들은 이상주의자요"라고 공격하며 쓰이는 일이 더 많다.


반면 현실주의자들은 우리가 왜 현실주의자라고 불리며 그것이 왜 옳은가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기 때문에 기존 논의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자유주의와는 반대로, 현실주의자들은 국제정치에 대해서는 비관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다. 현실주의자들은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일이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그들은 국가들간의 안보경쟁(security competition)과 전쟁이라는 처절한 모습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쉬운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평화적 세상을 창조하는 일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지만 현실적인 일은 아니다. 카가 말하듯 현실주의는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기존의 힘, 기왕의 국제질서가 나가는 방향에 대한 필연성, 그리고 이와 같은 힘과 경향을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하려는 것이다.

Mearsheimer, John J.,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 New York:W. W. Norton, 2001
(이춘근 역,『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나남출판, 2004, p.58)

이렇게 현실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을 바꾸기 어렵다고 본다. 그러니 주어진 세계와 그 동작 방식을 가능한 잘 이해해서 적응하자는 것이다. 즉 옷은 이거밖에 없으니까 옷에 몸을 맞춰 살자는 체제순응적 태도야 말로 현실주의자의 가장 기본적인 마인드이다.

내가 앞서 지적한 현실주의자의 특징인 "목표(이상)의 존재, 그 도달 가능성이나 도달 방법에 대한 확신부족"은 이런 설명과 잘 맞아들어간다. 위 설명의 경우 이상의 존재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지만, 그 점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어짜피 이상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칭 3세대 현실주의자인 미어셰이머는 1세대에 해당하는 카의 『20년 간의 위기』를 인용해 이러한 견해가 현실주의자 전반에 공통된 입장임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이런 세대 마다 좀 입장이 다를 텐데 내가 묘사하고 있는 현실주의자의 특징이란 그 모두에게 잘 들어맞는가?

우선 1세대 현실주의자의 대표격인 조지 케난을 보자. 그의 명성은 주로 냉전 초기 냉전의 설계사로서의 통찰력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냉전은 동유럽에서 소련이 이미 차지한 세력권을 인정하고 세월의 힘을 빌려 점진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현상유지적이고 점진적이며 온건했다.

미국이 도움 없이 혼자서 공산주의 운동의 생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으며, 러시아에서 소련의 권력을 빨리 멸망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특정한 상황에서 소련의 정책 실행에 엄청난 긴장을 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최근에 크렘린이 보여준 행동보다 훨씬 많은 절제와 신중함을 강요할 수 있으며, 이런 방법으로 미국은 소련이 결국 권력의 붕괴로 나아가는 경향 또는 소련이 점진적인 성숙 쪽으로 그 배출구를 찾게 하는 경향을 촉진할 수 있다.

George Kennan, "The Sources of Soviet Conduct", Foreign Affairs, 1947년 7월

실제로도 그랬다.

그 시점에 국무성으로 다시 돌아온 조지 케넌은, 그(봉쇄) 정책이 너무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미국을 문제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외교정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공식화하는데 반대했다. … 봉쇄에 대한 케넌의 생각은 전통적인 외교의 사고와 유사했다. 그의 봉쇄정책은 더 적은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었고 좀더 선별적이었다. 그 좋은 예가 티토(Joseph Tito)하의 공산주의 전제정부를 갖고 있던 유고슬라비아였다. 1948년에 티토는 그리스 공산주의에 대한 소련의 지원을 포함하여 소련이 유고슬라비아의 외교정책을 지배하려는 노력에 반대하면서 스탈린과 결별했다. 봉쇄정책의 이데올로기적 면에서 보면 미국은 공산주의 국가인 유고슬라비아를 도울 수 없었다. 반면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은 소련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유고슬라비아를 도와야만 했다. 후자가 실제 미국이 취한 정책이었다. 트루먼 독트린이 세계의 모든 자유 국민을 방어한다는 목표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전제주의적 공산정부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다. 미국은 세력균형을 이유로 원조를 했으며, 그 정책은 유럽에서의 소련 패권에 큰 상처를 남겼다.

Nye, Joseph S., 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 An Introduction to Theory and History, 3rd Ed., Longman, 2000
(양준희 역, 『국제분쟁의 이해: 이론과 역사』, 서울:한울 아카데미, 2001, p.180, 189)

케난의 견해를 막강한 소련을 상대로 한 냉전 초기라는 특수한 상황에 돌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케난은 100년 넘게 살았고, 냉전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도 역시 이러한 신중한 현상유지에 대한 관점은 일관된다.

1996년 케난은 애이브럴 해리먼의 미망인이자 당시 주프랑스 대사였던 파멜라 해리먼의 연설을 들으러 콜럼비아 대학에 갔다.

행사가 끝나고 케난의 열렬한 추종자 중 하나이자 국무부 부장관이던 스트로브 탈보트를 포함한 일군의 저명인사들이 콜럼비아대 총장의 저택에서 만찬을 가졌다. 디저트를 끝낸 후 사전 예고 없이 우리는 케난에게 연설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92세의 전설적 인물은 천천히 일어나 약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폴란드, 헝가리, 체크를 받아들여 NATO를 확장한다는 탈보트와 내가 무엇보다도 깊게 관여하고 있던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정책의 기둥 중 하나를 잘 짜여졌지만 거칠게 공격했다.
케난은 그 달변과 역사인식을 이용해 NATO를 확장한다는 것은 유럽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으며 "엄청난 역사적 전략적 과오" 임을 그 만찬에 모였던 인사에게 경고했다.
……
그는 냉전의 끝과 유고슬라비아 인종분쟁의 발발을 정확히 예측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이 그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과 발칸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혼자서라도 무력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우리가 오래묵은 인종적 증오를 멈추려고 시도해야 하나?" 내가 설명하려고 하자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대사를 지낸 적이 있었고, 나는 그가 내 말을 이해하고 내게 동의해 줌으로서 발칸문제를 다루던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승인 도장을 찍어줄 것을 원했었다.

Richard Holbrooke, The Paradox of George F. Kennan, 워싱턴포스트, 2005년 3월 21일

클린턴 행정부의 국무부의 실세들, 스트로브 탈보트나 리처드 홀브룩 같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도 존경하고, 명성도 드높은 케난에게서 자신들의 동유럽/발칸 정책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려고 힘썼다. 전대의 절정 고수가 동의만 해 주면 국내적으로 반대가 적지 않았던 그들의 개입주의적 외교정책을 뒷받침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케난은 그들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묵사발냈고, 결국 홀브룩은 노선배의 죽음을 맞은 순간조차도 케난이 틀리고 자기가 맞았다며 그 섭섭함을 감추지 않은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결과적으로 홀브룩의 말이 맞은 셈이다. 현실주의자도 늘 맞는 게 아니라 틀릴 때도 있다. 아주 완고한 현실주의자라면 장기적으로 봐서 러시아가 힘을 회복하면 NATO의 동유럽 확장은 결국 재앙으로 판명될 것이라고 여전히 주장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라면 누구나 케난이 무엇을 걱정했는지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그는 내가 현실주의자들의 특징 중 하나라고 지적해온 개입에 뒤따르는 의도치 않았던 귀결을 걱정하는 것이다.
유고 내전을 가리켜 "왜 우리가 오래묵은 인종적 증오를 멈추려고 시도해야 하나?"라고 했던 케난과 레바논 파병을 가리켜 "천년 묵은 말벌의 소굴에 손을 집어넣은 것"으로 규정한 콜린 파월의 생각의 유사성을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번엔 2세대 격인 신현실주의(neorealism) 혹은 구조적 현실주의(structural realism)의 대부인 케네스 월츠를 보자. 월츠는 자기 이전의 국제정치학엔 (체계적) 이론이랄 게 없다고 선언하면서, 국제사회의 무정부적 구조가 현실주의가 득세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그러나 월츠는 국제체제가 강대국이 힘을 얻기 위해 공격적 행동을 하도록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반대의 주장을 전개한다. 국제정치적 무정부 상태는 국가들이 세력균형을 깨는 일을 하도록 하기보다는 오히려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행동하도록 권장한다는 것이다. 월츠는 “국가들의 첫 번째 관심은 국제체제 속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일이다”고 쓰고 있다. 국제정치 이론가 랜달 슈벨러(Randall Schweller)가 말하는 것처럼 월츠의 이론에는 “현상유지적 편향성”(status quo)이 있는 것 같다.
월츠는 국가들은 상대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힘을 증가시키려는 동기가 있으며 상황이 좋을 경우 이런 동기에 의한 행동은 훌륭한 전략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월츠는 이 주장을 더 이상 정교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역으로 그는 강대국이 공격적으로 행동할 경우 잠재적 피해국들은 공격자들에 대항하여 균형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취하게 되며 그럼으로써 힘을 증대하려는 노력을 좌절시키게 된다고 말한다. 월츠는 균형을 위한 다른 나라들의 노력은 공격자를 좌절시킬 것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월츠는 강대국은 너무 많은 힘을 가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힘이 너무 강해지는 것은 다른 나라들이 이에 대항하는 연합을 형성하도록 하며, 그 결과 어느 정도 힘을 보유한 후 더 이상 힘을 추구하지 않고 자제하는 것보다 더 못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말한다.

Mearsheimer,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p.65-66

이는 비판자에 의한 요약이지만 월츠 이론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월츠의 이론은 강대국이라고 너무 망나니 짓을 하다간 다굴을 맞을 위험이 있으니 가끔 기회주의적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방어적인 게 좋다는 것이다. 월츠가 방어적 내지는 현상유지를 선호한다는 것은 본인이나 비판자들 모두 인정하는 것이니 더 설명이 필요없으리라 본다.

이와 거의 비슷한 논리구조를 갖는데 단 한가지, 가끔씩 선택의 기회가 찾아올 때 공격적으로 구는게 좋은가 방어적으로 구는게 좋은가를 놓고 의견이 갈리는 것이 미어셰이머이다.

나의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도 국제정치학의 구조주의 이론이다. 방어적 현실주의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나의 이론도 ‘강대국이란 자신들의 안전을 다른 나라들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상부기관이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생존여부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라고 본다. 강대국들은 힘이야말로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핵심요인이라는 사실을 곧 알아차린다.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은 국가들이 얼마나 큰 힘을 요구하는가에 관해 방어적 현실주의와 의견을 달리한다. 방어적 현실주의자에게 국제정치구조는 국가들에게 어느 정도 이상 힘을 증가시키겠다는 자극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세력균형상태를 유지하는 데 힘쓰도록 국가들을 몰아간다. 국가들의 중요한 목표는 힘을 증강시키는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기왕의 힘을 유지하는 것이다.

반면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은 실제의 세계정치에서 현상유지를 목표로 하는 나라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국제체제는 국가들에게 남을 희생시키더라도 힘을 증가시킬 계기를 찾으라고 유혹하기 때문이며, 희생과 이득이 더 크다고 생각할 경우 국가들은 상황에서 오는 이익을 포착하는 것이다. 국가의 궁극적 목표는 국제체제에서의 패권국이 되는 일이다.

Mearsheimer,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68

앞서와 비슷한 식으로 요약하자면 미어셰이머의 이론은 이 세상에 다굴맞을까 두려워 조신하게 사는 강대국은 드물다. 강대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의 등을 치는 공격적 행동에 나서기 마련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인형사 씨의 해석은 이렇다.

국가는 결코 현재의 권력에 만족하지 않으며 항상 패권을 추구한다고 주장하며, 현상유지세력의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이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네온콘이 취하고 있는 입장과 상당히 유사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미셰이머의 주장은 국가의 안전보장에 국가간의 합의나 양해가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부정하고 전적으로 자신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모든 국가가 무한권력을 추구한다는 이야기로 보이는군요. (인형사)

내가 볼 때 미어셰이머와 네오콘의 입장이 유사하다는 것은 미어셰이머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모종의 요약만 보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분명히 미어셰이머는 "국가의 궁극적 목표는 국제체제에서의 패권국이 되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결론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그는 자기 이론이 구조주의 이론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국제정치구조는… 국가들을 몰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정치 상황은 누가 의식적으로 고안한 것도 아니고 의도한 것도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비극적 상황이다. 서로 싸워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강대국이라 해도 -즉, 오직 자신의 생존에만 관심을 가지는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자신의 국력을 증강시키거나, 국제체제에 있는 다른 나라를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추구해야 한다는 대안 이외의 다른 것을 택할 수 없다.

Mearsheimer,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p.34-35

이는 결국 상황의 논리, 즉 선한 사람도 악한 상황에 빠지면 악당이 된다는 식의 이야기이다. 그러니 책제목부터가 비극인 게다. 네오콘이 정말 미어셰이머 같은 입장을 갖고 있다면, "너희들도 우리를 욕하지만, 우리가 앉은 자리에 앉게 되면 우리와 똑같이 굴 수 밖에 없을걸"이라고 생각해야 된다.

정말 네오콘이 그렇게 생각할까? 지난번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네오콘의 특징은 당위의 논리이지 상황의 논리는 절대 아니다.


사실 이들 중 케난이나 키신저 같은 고전적 현실주의자 그룹과 케네스 월츠, 로버트 저비스, 잭 스나이더, 스티븐 반 에베라 같은 구조적 현실주의자 그룹은 모두 현상유지와 세력균형 내지는 점진주의를 지지한다.
구조적 현실주의자의 방계로 공격적 현실주의를 표방하는 미어셰이머는 현상유지와 세력균형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도 역시 변화는 점진적일 것으로 본다. (공격적 성향이 나타나는 이유가 기회있을 때마다 세력확장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기회주의의 유혹과 관계가 있으므로)
이렇게 보면 현실주의자 그룹은 전반적으로 봐서 내가 묘사한 특성들을 잘 가지고 있는 편이다. 이들 중 네오콘과 유사한 그룹은 하나도 없다.



님이 현실주의라고 하는 것이 그럼 린드블룸의 점진주의를 말하는 것이었습니까? 이름이야 붙이기 나름이지만 린드블룸류의 점진주의는 주로 행정학, 정책학에서 논의하는 것이고 국제정치학에서의 현실주의와는 큰 관련이 없지요. 저는 지금까지 님이 국제정치학에서의 이상주의/현실주의 논의를 가지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상당히 답답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국제문제를 다루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미국은 결정했다", "중국은 침공에 나섰다"처럼 국가를 의인화하여 그 나라의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위를 이야기한다. 국제정치학에서도 열에 아홉은 이런 식으로 국가나 그 정부의 행위를 설명한다.

즉 인간의 행동을 묘사할 때 뇌와 심장, 심장과 폐가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해 그 결과 인간의 행동이 결정되는 식으로 다루지는 않듯이, 대부분의 국제정치학 이론들도 뇌가 판단해 지시하면 몸이 그에 따라 움직이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부 내부에 네오콘이라는 분파와 현실주의자라는 분파가 있어서, 서로 미국이 이렇게 행동하는게 옳다며 상반된 의견을 내놓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싸우는 현상을 다루고 있다. 이들이 다투는 주제는 대외정책이라는 전형적인 국제정치학의 주제이다. 그러나 이들이 다투는 현상 자체는 국제정치가 아니라 국내정치 내지는 (정부 내) 정책결정과정이다.

국제정치이론 그 자체는 이런 문제를 직접은 잘 다루지 않는다. 다음을 보기 바란다.

현실주의자들은 강대국들의 행동은 주로 그들의 내적 속성보다는 그들이 처한 국제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믿는다. 모든 국가들이 대처해야만 하는 국제체제의 구조는 강대국 외교정책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현실주의자들은 나라들을 좋은 나라, 나쁜 나라로 분명히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강대국들은 그들의 문화, 정치체제, 지도자가 누구냐의 여부와 관계없이 똑같은 논리에 따라 행동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들은 힘의 세기라는 상대적 요인 이외의 다른 요인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다. 본질적으로 강대국들은 크기만 다를 뿐인 당구공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Mearsheimer,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p.58-59

미국과 한국이 크기만 다른 당구공으로 내부구조가 똑같다면 미국 정부 내부에 네오콘이라는 특수한 집단이 뿌리박고 있는게 무슨 이론적 의미가 있으며, 무슨 설명을 줄 수 있겠는가? 즉 국제정치이론으로는 이런 문제를 다룰 수 없다.

Charles Lindblom을 안다면 이야기가 간단하다. 내가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보이려 했던 것은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 즉 현실주의자는 정책의 적용에 대해서도 린드불룸이 말한 점진주의, 즉 속이 보이지 않는 진흙 속을 조심스럽게 헤쳐나가는 듯한 과정(Muddling Through)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즉 국제정치학 상의 현실주의자는 정책적으로 점진주의적 경향을 보이며, 그것은 경험적으로 볼 때 현실주의자의 속성이라고 할 만하다는 게 내 입장이다.

이는 꼭 점진주의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내가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라고 말한 것은, 보다 광범위한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 스펙트럼 상에서 진보주의 대 보수주의라는 식으로 환원해 설명할 수도 있다.

급진주의자(radical), 진보주의자(liberal), 온건주의자(moderate), 보수주의자(conservative), 반동주의자(reactionary) 등의 용어는 정치적 담론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단어들에 속한다. 이러한 단어들이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다섯 가지 용어와 정치적 변화 및 정치적 가치의 개념을 연관하여 논의를 진전해야 한다. 가장 좌측으로 치우친 급진주의자들은 현상(status quo)에 대해 극단적으로 불만스러운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현존하는 질서의 즉각적이고도 근본적인 변화를 원하며, 무엇인가 새롭고 다른 것을 요구한다.

급진주의자들보다는 훨씬 덜 불만스러워 하지만 여전히 상당한 정도로 체제를 변화시키기를 원하고 있는 이들이 진보주의자들이다. 진보주의의 철학적 기반은 전통적인 시기의 것과 현대의 것으로 나눠진다. 전통적 진보주의자들이 개인과 재산권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던 데 반해, 현대의 진보주의자들은 사회를 공동의 것으로서 이해하며 인권을 강조한다. 그러나 두 집단 모두 평등, 지성, 경쟁과 사람들의 선량함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온건주의자들은 현 사회에서 나쁜 점을 별로 발견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들보다 더 변화를 내켜하지 않는 것은 오직 보수주의자들뿐이다. 그들이 변화를 싫어하는 정도는 오직 보수주의자들에 의해서만 초과될 뿐이다. 진보주의자들과는 거의 모든 점에서 다른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의 도덕이나 지성에 대한 확신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비록 세상이 보수주의자들의 희망하는 만큼 유쾌한 것이 못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부적절한 참견이 실로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위에서 말한 스펙트럼 상의 각 입장들이 변화의 속도와 깊이, 그리고 방법에 있어 다르지만 그들 모두는 사회의 진보적인 변화를 옹호하고 있다. 오직 반동주의자들만이 이전 시대의 제도로 복귀할 것을 제안한다. 반동주의자들은 현대적 가치를 거부함으로써 사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이전의 정치 체제를 채택하려 한다.

Baradat, Leon P., Political Ideologies: their origins and impact, Prentice Hall
(신복룡 외 역, 『현대정치사상(제5판)』, 평민사, 1995, pp.38-39)

by sonnet | 2007/07/29 10:27 | flame!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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