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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모두가피해자뿐
2008/04/13   우리 사회의 기득권 논의란 것을 듣고 있으면... [42]
우리 사회의 기득권 논의란 것을 듣고 있으면...

마루야마 마사오가 50여년 전(1957) 강연했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피해자의식의 범람

게다가 이런 식으로 개별적인 집단이 문어항아리화하고 더욱이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범위가 점점 더 확대됩니다. 다시 말해서 사회가 점점 더 큰 사회로 발전하게 되면, 각자가 속해 있는 집단 상호간의 이미지 충돌이 점점 더 강하게 인상지어집니다. 게다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이라는 것은, 사회가 방대해짐에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거대한 세력을 가지게 되는 것도, 그 집단 자체의 눈에는 아주 작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곳에서는 각자의 그룹이라는 것이 각각 자신들을 마이노리티(minority)로 의식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각자의 그룹이 각각 일종의 소수자의식, 아니 과장해서 말하면 강박관념 -자신들은 무언가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압도적 세력에 둘러싸여 있다는 식의 피해의식을, 각 그룹 특히 집단의 리더가 각각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씨가 전면강화를 주장하는 저명한 한 학자를 가리켜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말로 매도했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 공격의 대상이 된 학자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이지 어이없는 딱지이며, 그 학자의 전쟁 중 혹은 전쟁 이전의 말과 행동을 보면 그야말로 곡학아세라는 타입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요시다 씨는 그 학자를 아마 정말로 곡학아세하는 무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실제로 요시다 씨만이 아니라, 이른바 일본의 올드 리버럴리스트(old liberalist)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적잖게 그런 요시다 씨의 말에 은근히 혹은 공공연하게 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현대일본에 대한 이미지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자신들이 일본에서 압도적인 힘을 가진 진보적 세력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도도하게 흐르는 속론(俗論)에 맞서서 폭풍우 속의 등불을 지키고 있다는 그런 기분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반대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완전히 사태는 거꾸로 여서. 그런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이나 그것을 떠받쳐주고 있는 세력 쪽이 압도적으로 강하고, 또 적어도 현재는 적극적 의견으로서는 아닐지라도 소극적인 동조로서 다수 국민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진보파의 논조는 겨우 한둘의 종합잡지에서 우세할 뿐이고, 현실의 일본의 궤적은 대체로 그것과 반대되는 방향을 걸어왔습니다. 속론에 맞서는 마이노리티는커녕 국민의식에서는 머저리티(Majority)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보수세력조차 피해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니, 진보적인 문화인들에게는 한층 더 그런 마이노리티로서의 피해자의식이 있었습니다. 보수세력도, 진보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민주사회주의자도, 코뮤니스트도 모두 정신의 깊은 곳에 소수자의식 혹은 피해자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전체 상황에 대한 퍼스펙티브(perspective)가 서로 어긋나 있는 것입니다. 흔히 매스커뮤니케이션이 만능이라 말하는 것을 자주 듣곤 합니다. 곧 말씀드리겠지만, 확실히 일본에서는 특히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획일화 작용은 강대합니다만 개개의 신문기자를 만나보면 결코 그런 사람들은 매스커뮤니케이션 만능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꾸로 일반적으로 신문(에 대한) 비판에 대해 매우 신경질, 신경과민이 되어 있습니다. 신문에 대한 공격이나 비판이 너무 많아서 언제나 그 나름대로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일본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관료들이라는 것도 많은 사람들의 상식이 되어 있습니다. 제 고등학교나 대학 친구들 중에는 당연히 관리가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같은 반모임 같은 데 나가 보면 국장이나 부장급 관리들이 역시 피해자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깥 사회에서 보면 관료는 현재 아주 거대한 권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당사자인 관료 자신들은 지배자라고 할까 아니면 권력자라고 할까, 그런 의식을 놀랄 정도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리라는 것은 사방팔방에서 공격받고, 정당의 간부들로부터는 쿡쿡 찔리고, 신문으로부터는 눈엣가시와도 같다는 말을 듣는, 그야말로 겉과 속이 아주 다른 직업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큰 신문의 이른바 ‘여론(世論)’은 그런 관리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같이 자신들에게 적대적이어서 그것에 대한 심한 초조, 고립감, 혹은 분노 같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입장이나 논리는 전혀 통하지 않으며, 또 통하게 해주지도 않는다는 고립감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 전체가 모두 피해자뿐이며 가해자는 어디에도 없다는 기묘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런 의식이 어느 정도의 환상(illusion)인가 하는 것은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자신의 ‘세상’에 대한 기대가 매스컴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과 하나가 되어 다른 세력 혹은 집단에 대한 이미지를 낳고, 그 이미지가 사방팔방에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곳, 게다가 인간관계가 문어항아리형이어서 그들 사이의 자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없는 곳에서는 자연히 그런 사태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주): 이 글에 등장하는 문어항아리 유형이란 개념은, 예전에 소개한 적이 있으므로 그 쪽을 참조.

丸山眞男, 『日本の思想』, 岩波書店, 1961
(김석근 역, 『일본의 사상』, 한길사, 1998, pp.223-226)


정치인, 변호사, 의사, 약사, 교수, 기업인, 공무원, 공기업직원, 기자, 직업군인, 대기업노조, 명문대 재학생 등 그 무엇이라도 좋은데,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술이라도 사 주면서 그러한 유형의 공격에 대해 그가 느끼는 바를 넌지시 물어 보면 거의 백이면 백 이런 반응을 얻게 된다. 내가 개인적으로 탐문해본 범위 내에서는 마루야마의 주장은 엄청난 설득력이 있었다.

우리는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내내 강한 피해자의식을 갖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 아마 요즘 특검에 불려다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그런 느낌을 갖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 남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by sonnet | 2008/04/13 19:02 | 정치 | 트랙백 | 핑백(4) | 덧글(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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