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by sonnet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rss

skin by 이글루스
태그 : 막스베버
2011/10/11   정치의 윤리적 역설(Max Weber) [15]
2008/05/10   여물통 쟁탈전 [22]
2008/02/21   어떤 비정규직 이야기 [11]
2008/02/02   베버가 본 미국정치 [14]
정치의 윤리적 역설(Max Weber)
오늘의 한마디(Hans Morgenthau)에 약간의 보충

모겐소의 생각은 상당부분 베버에게서 영향받은 것인데, 아래 인용문들을 보면 그 점을 분명히 느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신념윤리가는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는 우주적․윤리적 〈합리주의자〉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도스토예프스키를 아는 사람들은 대심문관이 나오는 장면을 기억할 것입니다만, 거기에 바로 이 문제가 탁월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조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며, 설사 우리가 목적에 의한 수단의 정당화라는 원칙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목적이 어떤 수단을 정당화하는지를 윤리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이 문제, 즉 세계의 비합리성의 경험이라는 문제가 모든 종교발전의 원동력이었던 것입니다. 인도의 업보이론, 그리고 페르시아의 이원론, 원죄설, 예정조화설, 그리고 〈숨어 계신 신〉 등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세계의 비합리성에 대한 경험에서 발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들도, 세상은 악령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권력과 폭력적 강제력을 수단으로 하는 정치에 뛰어드는 자는 악마적 세력과 계약을 맺는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정치가의 행위에서는, 선한 것에서는 선한 것만이, 악한 것에서는 악한 것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반대일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도 매우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는 정치적으로는 정말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pp.125-127)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 특히 정치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상기한 윤리적 역설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하고, 또한 이 역설들의 중압에 눌려서 그 자신이 변질된다면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p.135)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옳은 말이며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도자이면서 또한 - 매우 소박한 의미에서 - 영웅인 자만이 이렇게 불가능한 것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도 영웅도 아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든 희망의 좌절조차 견디어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지금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 아직 가능한 것마저도 달성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pp.141-142)

Weber, Max, Politik als Beruf, 1919
(전성우 역, 『직업으로서의 정치』, 나남출판, 2007)

볼드체는 원문의 강조, 붉은 색은 필자의 강조
by sonnet | 2011/10/11 12:02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15)
여물통 쟁탈전
근래 다음과 같은 일련의 뉴스가 내 눈길을 끌고 있는 중이다.

경제 인문 사회
‘재신임 관행’이냐 ‘사퇴 강요’냐 (문화일보, 2008년 4월 30일)
19개 국책연구기관장 일괄사표 제출 (연합뉴스, 2008년 4월 29일)
정부출연연구소(과학기술 등)
출연硏 기관장 일괄사표 배경은? (연합뉴스, 2008년 4월 25일)
금융공기업
금융공기업 기관장 사표제출 잇따라 (연합뉴스, 2008년 4월 15일)
복지부 산하(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복지부 주요 기관장들 사표 (조선일보, 2008년 3월 26일)

사실 이 문제는 좀 더 온건하게 생각한다면 기관장들의 임기만료를 기다려 차례차례 취향에 맞는 사람을 임명할 수도 있을 텐데, 장관과 총리급에서 공개적으로 압박의사를 표명해 가며 전례없이 표독하게 몰아치고 있어서 구설수에 오른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듣고 떠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사실 시간이 오래 흘렀어도 설명력이 퇴색하지 않는 것이 고전의 장점이라면 장점이 아니겠는가.

(굵은 글씨는 원저자, 붉은 색 강조는 인용자)
오늘날의 정당 지도자들이 충성봉사의 보상으로 배분하는 것은 정당, 신문사, 협동조합, 의료보험, 지방자치단체, 국가기관 등에 있는 모든 종류의 관직들입니다. 정당간의 모든 투쟁은 본질적 목표를 위한 투쟁일 뿐 아니라 관직 수여권을 위한 투쟁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독일에서 지방분권주의자와 중앙집권주의자 간의 모든 투쟁은 어느 파가, 즉 베를린파, 뮌헨파, 칼스루에파, 그리고 드레스덴파 중 어느 파가 관직 수여권을 장악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투쟁입니다. 정당들은 관직 참여에서 뒤지는 것을 자신들의 본질적 목표를 배반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당 정책에 의한 지방장관의 교체가 정부의 정강 수정보다 더 큰 변혁으로 간주되고, 또 더 큰 소동을 야기했습니다. 실제로 정부의 정강은 순전히 상투어들의 나열이라는 의미밖에는 가지지 못했습니다. 많은 정당들, 특히 미국의 정당들은 헌법 해석에 대한 과거의 대립이 사라진 후에는 순전히 관직사냥 정당이 되어버렸으며,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핵심적 정강도 득표 가능성에 맞추어 바꾸어 버립니다. 스페인에서는 최근까지도 상부에서 조작한 <선거>라는 형태를 빌려 양대 정당이 관습적으로 정해진 주기에 따라 서로 정권교체를 했는데, 이것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관직을 보급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스페인의 식민지에서는 이른바 <선거>라는 것도, 또한 이른바 <혁명>이라는 것도 그 목적은 사실은 국가의 여물통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승리자는 이 여물통에서 관직이라는 사료를 얻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스위스의 정당들은 비례대표제를 통해 관직을 서로 사이좋게 할당합니다. 그리고 독일의 상당수 <혁명적> 헌법초안들, 이를테면 바덴의 1차 헌법초안은 이 관직할당체제를 장관직에까지 확대하고자 했는데, 이것은 국가와 국가관직을 순전히 봉급자 부양기관으로 취급하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톨릭 중앙당은 바덴에서 이 초안을 열렬히 지지하면서 업적에 관계없이 종파에 따라 관직을 비율대로 배분하는 것을 심지어 강령으로까지 만들었습니다. 관료제가 일반적으로 관철됨에 따라 관직의 수가 증대하고, 각별히 보장된 생계수단의 한 형태로서의 관직에 대한 수가 증대하면서 모든 정당에서는 상기한 경향이 강화되고 있으며 당원들은 점차 정당을 그런 식으로 생계를 보장받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게 됩니다.

Weber, Max, Politik als Beruf, 1919
(전성우 역, 『직업으로서의 정치』, 나남출판, 2007, pp.43-44)
by sonnet | 2008/05/10 00:16 | 정치 | 트랙백 | 핑백(2) | 덧글(22)
어떤 비정규직 이야기
앞서 이공계위기론에 대한 개인적 인상을 조금 소개했었는데, 그 중 무당의 비유가 몇 분의 관심을 끄는 것 같아서 조금 덧붙여 본다. 그것은 적성, 관심, 직업관, 소명의식 같은 것이 조금씩 합쳐져 있는 그런 것이고 내가 나를 돌이켜 볼 때 이외에도 사용된다.

그런 의미를 되새기는 차원에서 어느 유명한 비정규직종에 대한 내 인상을 정리해 보았다.


정치를 자신의 직업으로 삼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정치를 <위해서>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에 <의존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식은 결코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적어도 이념적으로는, 그러나 대부분 실제로도 이 두 가지 방식을 동시에 따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 그러나 정치를 <위해서> 산다는 것과 정치에 <의존해서> 산다는 것 사이의 상기한 구분은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문제가 가진 훨씬 더 실질적인 측면과 관련되어 있는데, 그것은 곧 경제적 측면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은 정치를 지속적 소득원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인데 반해, 정치를 <위해서> 사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유재산 제도의 지배 하에서 한 개인이 이러한 경제적 의미에서 정치를 <위해서> 살 수 있으려면 몇 가지의, 말하자면 매우 통속적인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그는 -일상적 상황에서는- 정치가 그에게 가져다줄 수 있을 소득에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아도 되어야 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는 부유하거나 아니면 충분한 수입을 보장해주는 개인적 생활여건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일상적 상황에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 일상적 경제하에서는 독자적 재산만이 경제적 독립을 보장해 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독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정치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자는 이에 더하여 경제활동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여, 그 스스로가 직접 지속적으로 자신의 노동력과 사고력을 전부 또는 상당부분 영리활동에 투여하지 않고도 자신의 수입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활동에 묶여있지 않은 가장 완벽한 경우는 금리 내지 지대 생활자입니다. 그는 완전히 불로소득 생활자입니다. …

한 국가나 정당이 (경제적 의미에서) 정치에 의존하여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적으로 정치를 위하여 사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된다 함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지도층이 <금권정치적>으로 충원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곧 그 역도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하여, 금권정치적으로 즉 자산가들에 의해 국가가 운영된다고 해서 이런 정치적 지배계층이 정치에 <의존해서>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 다시 말해서 이들이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사적인 경제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그렇지 않았지요. 사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지배권을 경제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지 않은 지배계층은 지금껏 없었습니다. 따라서 금권정치에 대한 위의 명제가 의미하는 바는 이런 것이 아니라 단지 다음과 같은 것일 뿐입니다. 즉, 금권 정치적 조건하에서의 직업 정치가는 자신의 정치활동에 대해 곧바로 경제적 보상을 추구할 필요가 없는 반면에 재산이 없는 정치가는 이런 보상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재산이 없는 정치가는 오로지 또는 주로 정치를 통한 자신의 경제적 생계확보만을 염두에 두고 있지 <대의>에는 전혀 관심이 없거나 또는 주된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 따라서 재산이 없는 정치가에 대한 위의 언급이 의미하는 바는 단지, 만약 우리가 정치지망생, 지도층 및 그의 추종자들을 비금권 정치적 방식으로 충원하고자 한다면, 그것의 당연한 전제조건은 이 정치지망생들이 정치활동을 통해서 정기적이고 확실한 수입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는 <명예직으로> 수행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정치는, 흔히 말하듯이, <독립적인> 사람들, 즉 자산가, 특히 금리생활자에 의해 수행됩니다. 아니면 재산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정치적 지도층으로의 길을 열어줄 경우, 이들은 보수를 받아야 합니다.

Weber, Max, Politik als Beruf, 1919
(전성우 역, 『직업으로서의 정치』, 나남출판, 2007, pp.38-42)

베버는 먹고 살기 위해 정치에 의존하는 직업정치가(von der Politik leben)와 정치를 위해 사는 직업정치가(fuer die Politik leben)를 구분해서 해설했는데, 이 문제는 가능한 폭넓은 사회 계층의 이익을 적절히 대표해야 한다는 현대민주정치의 원리와 얽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즉 베버에 따르면 정치에는 소명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만(인용되지 않은 부분에 길게 등장), 그렇다고 먹고사니즘을 너무 배제해버리면 가만있어도 먹고사는데 지장없는 실력자들만 정치를 하는 금권정치가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일찌기 공자는 이런 문제에 대한 윤리기준을 제시하기를 「나도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고 하였다. 나는 사람이란 무의식적으로라도 팔이 안으로 굽기 마련이기 때문에, 남들의 행동은 내가 스스로 원하는 것 보다 한 두 단계 정도는 관대하게 보아 넘겨야 겨우 균형이 맞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본다.

즉 내가 평소 이 오래된 비정규직 종사자들에게 기대하는 것만큼은 나도 사회생활에서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개인적 기준이란 거다. 다만 그 기준은 피드백된다. 즉 내가 그들을 평가할 때 쓸 뿐 아니라 그들이 하는 걸 보고 내 처신도 거기 준해 조정될 수 있다.


by sonnet | 2008/02/21 02:57 | 정치 | 트랙백 | 덧글(11)
베버가 본 미국정치
보론: 미국 연방정부와 폭력의 독점의 코멘트와 관련해.

Commented by 나츠메 at 2008/01/26 22:03 # x
베버가 관찰하여 도출해 낸 결론이 주로 "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생각되므로, 미국을 베버의 개념과 일치시키는 것은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고 사료됩니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는 현대적 정당정치를 다루면서 영국, 미국, 독일 세 나라의 사례를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미국이 배제되었다고 생각하긴 힘들다. 하지만 베버가 생각한 미국정치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정치와는 좀 다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1919년에 베버가 이 강연을 했던 당시 염두에 두었던 미국 정치란 아무래도 90년 전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당시는 19세기 말엽 미국의 엘리트들은 독일을 진보주의적 헌정(憲政)국가로서 모방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든가 하는 식으로 민주적 미국과 군국적 독일이라는 오늘날의 정형화된 이미지와는 좀 동떨어진 인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 과연 베버의 눈에 비친 미국 정치란....

(굵은 글씨는 원저자, 붉은 색 강조는 인용자)
미국 사례

영국의 코커스 제도는 미국의 정당조직과 비교하면 이것의 약화된 형태에 불과한 것 같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정당조직은 국민투표적 원칙을 매우 일찍부터 그리고 매우 순수하게 실현했기 때문입니다. 워싱턴은 미국이 <젠틀맨>들이 관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젠틀맨은 미국에서도 그 당시에는 지주이거나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정당이 조직되기 시작하자 초기에는 하원의원들이 명망가 지배 시기의 영국에서와 같이 지도자 역할을 하고자 했습니다. 정당조직은 매우 느슨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1842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물론 1820년대 이전에도 이미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미국에서도 이들이 근대적 발전의 시발점이었습니다만- 당 기계(머신)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부 농민층의 후보였던 앤드류 잭슨이 대통령으로(1829~1837) 선출되면서 비로소 옛 전통들이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캘후운, 웝스터 등과 같은 유력한 의원들이, 지방의 당 기구에 대해 의회가 거의 모든 통제권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정계에서 은퇴하자, 중진 하원의원들에 의한 당의 운영은 1840년 후 곧 공식적으로 종식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국민투표적 <머신>이 그렇게 일찍부터 발전하였던 이유는, 미국에서는, 그리고 미국에서만, 행정부의 수반이자 - 그리고 이 점이 중요했습니다 - 관직임면권의 최고위 책임자가 국민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었고, 그는 <삼권분립>의 결과로 직무수행에 있어서 의회로부터 거의 독립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히 대통령 선거에서는 승리의 보상으로 엄청난 관직봉록의 전리품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잭슨이 지극히 체계적 방식으로 하나의 원칙으로까지 끌어올린 <엽관제>는 이러한 상황의 결과였습니다.

모든 연방관직을 승리한 후보의 추종자들에게 배분하는 시스템인 <엽관제>가 오늘날 미국의 정당구조에 대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전혀 이념적 원칙이 없는 정당들이 서로 대치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당은 순수한 관직사냥꾼 조직으로, 선거전이 있을 때마다 득표 가능성에 따라 정강을 바꾸어 버립니다. 유사한 현상은 다른 곳에도 있지만, 여기서 보는 이런 정도의 바꿔치기는 다른 곳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 것입니다. 미국의 정당은, 전적으로, 관직임면권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선거전인 연방 대통령 선거나 주지사 선거만을 겨냥하여 짜여져 있습니다. 정강과 후보자들은 정당의 <전당대회>에서 의원들의 개입 없이 확정됩니다. 즉 전당대회가 결정하는 셈인데, 이 전당대회는 형식상으로는 매우 민주적으로 대의원 대회 대표들로 구성되며, 이 대표들은 다시금 당의 제1차 유권자 대회인 <예비선거>에서 선출됩니다. 그러나 이미 예비선거에서 대의원들은 특정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표명을 바탕으로 선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개 정당 내부에서 <후보지명>의 문제를 두고 격렬하기 짝이 없는 투쟁이 벌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의 손에 30만에서 40만에 이르는 관료지명권이 놓여 있으며, 그는 이 지명권 행사에서 단지 각 주의 상원의원하고만 상의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원의원들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치가들입니다. 그에 반해 하원은 상원과 비교하면 정치적으로 매우 무력합니다. 왜냐하면 하원은 관직임면권이 없으며, 장관 -그는, 의회를 포함한 모두에 대한 권력행사의 정당성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대통령의 단순한 보좌역일 뿐입니다- 은 하원의 신임이나 불신임과는 상관없이 자기 직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삼권분립>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기반을 가진 엽관제가 미국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했던 이유는, 미국 문화가 아직 젊어서 순수한 아마추어적 국가경영을 감당해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에 충실히 봉사했다는 자격 이외에는 어떤 자격도 제시할 필요가 없는 30만에서 40만의 정당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상황이 엄청난 폐단, 전례 없는 부패와 낭비를 발생시켰을 것임은 당연합니다. 이런 상황은 단지 미국과 같이 아직도 무한정한 경제적 기회를 가진 나라만이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투표제적 당-기계의 이러한 엽관체제와 함께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보스>입니다. 보스란 어떤 인물일까요? 그는 정치영역의 자본주의적 기업가로서 자기 부담과 자기 책임 하에 유권자의 표를 모읍니다. 그는 아마도 처음에는 변호사, 술집 주인 또는 유사한 업체의 소유주 또는 대금업자로서 유권자들과 접촉했을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그는 이 연줄을 계속 확대하여 일정한 수의 표를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달성하고 나면 그는 이제 이웃 보스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열성과 민첩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밀엄수를 통해 그 자신보다 경력 면에서 더 앞서 간 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며, 이렇게 하여 그의 출세가 시작됩니다. 보스는 당 조직에서 필수불가결하고, 따라서 당 조직은 점차 그의 수중에 장악되어 갑니다. 그가 당 조직 운영자금의 대부분을 조달합니다. 그는 이 자금을 어떻게 형성할까요? 부분적으로는 당원회비를 통해서 조달하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와 그의 당을 통해 관직을 얻게 된 관료들의 봉급에서 공제하여 조달합니다. 그 외에도 뇌물과 사례금이 있습니다. 예컨대 그 수많은 법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어기고도 처벌을 면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보스의 묵인을 필요로 하며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여러 가지 불편한 일들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만으로는 필요한 운영자본을 다 확보하지는 못합니다. 보스는 재계의 거물들이 내는 기부금의 직접적 수령자로서 불가결합니다. 왜냐하면 재계인사들은 유급 당 관료나 또는 다른 어떤 공식적 회계담당관에게 선거자금을 맡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전문제에 관해서는 빈틈없이 비밀을 잘 지키는 보스가 선거비용을 대는 자본가들이 신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전형적 보스는 지극히 냉철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회적 명예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이 <직업 정치꾼>(프로페셔널)은 <상류 사회>에서는 경멸의 대상입니다. 그는 오로지 권력만 추구하는데, 그러나 재원으로서의 권력뿐 아니라 권력 그 자체를 위한 권력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그는 막후에서 활동하는데, 이것이 영국의 리더와의 차이입니다. 그가 공개석상에서 연설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는 단지 연설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이 적절한지 암시해주기만 하고, 그 자신은 침묵합니다. 그는 연방 상원의원직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관직도 맡지 않는 것이 상례입니다. 상원의원은 헌법에 의거하여 관직임면에 관여하기 때문에 유력한 보스들은 흔히 직접 상원의원직을 보유합니다. 관직분배는 우선적으로 당에 대한 공헌도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관직을 경매를 통해 낙찰시키는 경우도 자주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개 관직에 대해서는 일정한 요금이 매겨져 있기도 했는데, 이러한 매관매직 체제는 17~18세기에 교회국가를 포함해서 군주국가들이 흔히 사용했던 체제입니다.

보스는 어떤 확고한 정치적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어떤 원칙도 가지지 않은 채 단지 무엇이 표를 끌어 모으는 데에 유리한가라는 문제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의 교육수준은 상당히 낮은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은 보통 흠잡을 데 없이 바릅니다. 다만 정치윤리 면에서 그는 당연히 정치행위에 대한 기존의 통상적 저수준의 윤리를 따르는데, 이것은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매점(買占)의 시기에 경제윤리 영역에서 취했던 태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그를 <프로페셔널>, 즉 직업 정치꾼이라고 경멸하는 것에 그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 자신 연방의 중요 관직을 얻지도 않고 또 얻으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 가진 이점은, 당과는 무관한 인텔리겐치아 또는 저명인사들이 - 만약 보스가 이들이 선거에서 득표력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 후보로 선정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항상 같은 당내 원로 명망가들이 거듭하여 후보로 선출되는 독일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경멸당하는 권력자들로 이루어진 바로 이러한 무원칙한 정당구조가, 독일에서 같으면 결코 출세할 수 없었을 그런 유능한 사람들이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물론, 보스는 자기의 자금줄 및 권력줄을 위험하게 할 수 있는 그런 국외자들에 대해서는 거부적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유권자의 지지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보스들은 부패반대자라고 간주되는 바로 그런 후보들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간혹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여, 미국에서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철저히 조직된 매우 자본주의적 정당조직이 존재합니다. 또한 이 정당조직은 테마니 홀같이 수도회식으로 조직된 매우 견고한 클럽들에 의해서도 뒷받침되는데, - 이것은 미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수탈대상입니다만 - 의 정치적 지배를 통해 잇속을 챙기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당생활 구조가 가능했던 것은, <신천지>로서의 미국이 가졌던 고도의 민주주의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천지라는 초기 상황에서 벗어나면서 이제 상기한 미국식 정당체제도 서서히 쇠퇴의 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미국도 더 이상 아마추어들만을 통해서 통치가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5년 전(1904)만 해도 우리는 미국 노동자들에게, “왜 당신들은 당신들 스스로가 공공연히 경멸하는 그런 정치가들이 당신들을 통치하도록 하느냐”라고 질문하면 이에 대해 그들로부터 아래와 같은 답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 나라에서와 같이 우리에게 침을 뱉는 관료-카스트를 가지기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침을 뱉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관료로 가지고자 합니다.” 이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옛 입장이었습니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은 이때도 이미 전혀 달리 생각했습니다만. 아무튼 이런 상황은 이제 더 이상 용납되지 않습니다. 즉 아마추어 행정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으며, 그래서 공무원법 개정을 통해 연금 수령권을 가진 종신직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제 대학교육을 받은, 우리 관료에 못지않게 청렴하고 유능한 관료들이 관직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10만 개 정도의 관직이 더 이상 선거전의 전리품이 아니라, 자격증명을 요구하고 연금 수령권을 가진 직책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엽관제를 점차 쇠퇴시킬 것이고 정당운영 방식 역시 아마도 개혁될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은 어떤 방향으로 개혁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Weber, Max, Politik als Beruf, 1919
(전성우 역, 『직업으로서의 정치』, 나남출판, 2007, pp.89-95)

여기서 언급된 미국의 보스정치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어 1960년대 말까지도 이어졌다. 예를 들어 1968년 민주당 후보지명전에서 허버트 험프리는 예비선거에 불참하고서도 보스들과의 거래를 통해 대의원들을 확보해 대선후보 자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문제가 시끄러워지자 1969-72년 사이에 조지 맥거번을 필두로 한 개혁세력이 이 시스템에 깊숙히 칼을 들이댔다. 개혁은 유의미한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맥거번은 당내 거의 모든 세력을 적으로 돌리고 만다. 심지어는 현직 상하원의원, 주지사, 고위당간부들에게 주어지던 당연직 대의원 자리를 몽땅 빼앗는 바람에, 당의 실력자들이 전당대회를 방청석에 모여앉아 구경하는 사태가 발생하기까지 하였다. 맥거번이 자신의 개혁에 힘입어 기득권층 후보들을 무력화하고 대선후보가 되자, 당내외에서 저항세력이 속출했다. AFL-CIO 같은 유력노조가 등을 돌리고, 심지어는 닉슨 지지 민주당 위원회라는 황당한 조직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결국 1972년 선거에서 맥거번은 기록적인 표 차이(520:17)로 닉슨에게 참패하고야 만다.

공화당도 곧 민주당의 개혁을 모방하면서 미국의 전통적 보스정치는 되돌릴 수 없이 쇠퇴하게 되지만, 맥거번 본인은 문자그대로 미국 민주주의의 거름이 되어 사라져 갔다.

by sonnet | 2008/02/02 19:32 | 정치 | 트랙백 | 덧글(14)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