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by sonnet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rss

skin by 이글루스
태그 : 리처드아미티지
2007/02/01   깅리치 대 아미티지 [12]
2006/08/15   세이무어 허쉬의 레바논전 관련 기사 요약 [5]
깅리치 대 아미티지

지난 5개월간의 쓴 교훈을 얻은 후, UN, 유럽연합, 러시아가 주기적으로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3:1 -혹은 대통령에 대항해 국무부가 그 문화적 신조에 따라 투표한다면 4:1- 로 제압할 수 있는 체제를 미국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After the bitter lessons of the last five months, it is unimaginable that the United States would voluntarily accept a system in which the UN, the European Union, and Russia could routinely outvote President Bush's positions by three to one (or four to one if the State Department voted its cultural beliefs against the President's policies).


- 이라크전에 대승을 거둔 국방부에 비해 부시 대통령의 발목만 잡아온 국무부는 무능하고 반동적이며, 바닥부터 뒤집는 대 개조를 필요로 한다며, 공화당 전 하원의장 뉴트 깅리치, 2003년 -





깅리치가 투약과 치료를 중단한게 확실하군!

It's clear that Mr. Gingrich is off his meds and out of therapy.


- 깅리치가 국무부와 파월 장관을 씹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美국무부 부장관 리처드 아미티지 -
by sonnet | 2007/02/01 10:08 | 한마디 | 트랙백(3) | 덧글(12)
세이무어 허쉬의 레바논전 관련 기사 요약
세이무어 허쉬는 월남전에서 밀라이 학살사건을 특종해 퓰리처상을 받은 탐사보도 전문기자이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대조적인 인물이다. 우드워드가 정권측 인사들의 특별배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명 소식통을 이용한 책을 많이 쓰는 인사이더라면 허쉬는 전형적 아웃사이더 스타일로 익명을 조건으로만 이야기하는 소식통에 의존한다.
허쉬의 장점이자 단점은 그러한 익명의 소식통들은 정책결정과정에서 소외되거나 불만이 있어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솔직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편향된 의견인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허쉬의 기사는 기밀문서들이 해제되지 않아 전모를 알기 힘든 최근의 사건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는 가시가 있는 장미와도 같다. 가능한 다양한 출처들을 이용해 cross-check한다는 조건 하에서는 하나의 유용한 출처가 될 수도 있으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background briefing으로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

그러한 허쉬가 이번에는 이스라엘-히즈불라 전쟁에 관련해 기사를 냈다. 흥미롭지 않은가?
본문이 상당히 긴 관계로 요점만 발췌 정리해 둔다.

Watching Lebanon (New Yorker, 8월 14일, Seymour M. Hersh)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이란공격계획과의 관계
* 이란 핵시설에 결정타를 가할 수 있는 전쟁계획을 내놓으라는 백악관으로부터의 강한 압력을 받고, 미 공군의 고위 전략기획자들은 이스라엘 공군의 상대역들과 협의하기 시작했다.

* 미국 정부 내에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습의 연습경기로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

* 전직 고위 정보관리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계획은 "미국이 이란에 대해 세우고 있던 계획의 판박이"였다. 공군은 이 계획에 열심이었지만, 육군/해군/해병대는 결국 지상병력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며 이에 반대했다.

* "이 지역 최강의 군대 -이스라엘군-이 인구 400만에 불과한 레바논 같은 나라를 평정할 수 없다면 그런 수법을 전략적 종심도 있고, 인구 7,000만의 이란에 적용하는데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폭격이 달성한 유일한 효과는 민중을 이스라엘에 대항해 단결시키는 것이었다." (전 국무부 부장관 Richard Armitage)


하마스-헤즈볼라-이란-시리아
* "헤즈볼라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두세달에 한번 꼴로 작은 도발을 했었다. ... 그러나 그들은 병사들을 납치함으로서 판돈을 올렸다."

* 이스라엘군 신호정보부대 Unit8200은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하마스-헤즈볼라-칼리드 메살 사이의 통화를 도청했다. 하마스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전부터 테러 전술을 축소했었다. 그러나 "테러를 줄였지만 얻은게 없으며 팔레스타인 민중들 사이에서 지지도만 떨어지고 있다며, 테러 사업으로 복귀해서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이스라엘의 정책결정
* 이스라엘의 당면한 안보 문제는 부시 행정부가 원하던 원치 않던 히즈불라와의 대결을 불사하는데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고 이스라엘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 7월 12일의 납치사건이 있기 훨씬 전부터, 이스라엘은 히즈불라를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그것을 부시 행정부 관리들과 공유했다.

* 이스라엘은 고속도로, 연료저장소, 공항 활주로 등을 두들기면, 레바논의 기독교도와 수니파 무슬림들이 히즈불라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설 것으로 믿었다.

* "이스라엘은 코소보 전쟁을 모델로 연구했다. 이스라엘은 콘디 라이스에게 '당신네는 70일 걸렸지만 우리는 절반이면 충분하오'라고 큰소리쳤다."

* 작전계획의 핵심 기획자는 공군출신의 IDF참모총장 단 할루츠 중장으로, 이란에 대한 항공작전 계획도 수립했었다. 예루살렘 시장 출신의 올메르트 총리나 노조지도자 출신의 페레츠 국방장관은 경험이나 전문성에서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 "내 평생에 전쟁에 뛰어든다는 결정이 이렇게 빨리 내려진 것은 처음이었다. ... 우리는 보통 면밀한 분석을 통해 결정을 내리곤 했다." (전 모사드 요원 Uzi Arad)


미국의 정책결정
* 체니 부통령과 엘리엇 에이브럼스 국가안전부보좌관은 이스라엘의 계획을 지지했다.

* 엘리옷 에이브럼스가 이란 문제와 이스라엘-히즈불라 전쟁에 대한 핵심 정책결정자로 대두함에 따라, 라이스 장관의 입지가 퇴색했다.

* 8월 초에 라이스 국무장관이 시리아와 직접 대화를 해보자는 의견을 꺼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 이라크전을 촉구하던 공격적인 행보와는 대조적으로 럼스펠드 장관이 상대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을 시사한다. 혹자는 럼스펠드가 이스라엘과 히즈불라 간의 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부시와 체니의 입장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그들은 한 팀이란 점에 변함이 없다.

* 히즈불라가 이스라엘의 공격을 잘 버텨내고 계속 반격하자, "백악관 내에서 이란 공격을 지지하던 파벌에게 이는 심각한 패배였고, (이란을) 폭격하면 이란 내부에서 불만세력이 터져나와 반란을 일으킬거라고 주장하던 세력들도 자세를 낮췄다."

* 사우디 외무장관 사우드 알-파이잘이 워싱턴에 찾아와 즉각 전쟁을 끝낼 것을 요청하자 백악관은 실망했다.


오판
* 이스라엘은 고속도로, 연료저장소, 공항 활주로 등을 두들기면, 레바논의 기독교도와 수니파 무슬림들이 히즈불라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설 것으로 믿었다.

* 미 국무부 내에서는 [이스라엘의 공격이] 레바논 정부가 히즈불라가 통제하고 있는 남부 지역을 장악할 수 있도록 레바논 정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 미 행정부 내에서 히즈불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지지하는 사람들 조차도 레바논 국민이 히즈볼라에 대립하도록 만든다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by sonnet | 2006/08/15 20:33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5)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