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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라인홀드니부어
2007/12/11   묵자와 니부어 [26]
묵자와 니부어
현실주의의 요체 에서 셀프 트랙백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 생각하다가, 묵자와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를 비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자 非攻上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등장한다.

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불의라고 하며, 틀림없이 한 사람을 죽인 죄가 있다. 이렇게 볼 것 같으면 열 사람을 죽이면 불의가 열 배가 되고, 틀림없이 열 사람을 죽인 죄가 있는 법이다. 백 사람을 죽이면 불의가 백 배가 되고, 백 사람을 죽인 죄가 생긴다. 이에 대해 천하의 군자들이 모두 이를 알고 비난하며 이를 불의라 한다.

오늘날 누가 남의 나라를 크게 쳐들어가 [사람을 잔뜩 죽이며] 불의를 저지르는데, 이를 잘못인줄 모르고 그릇 쫓아 칭송하며 이를 의롭다 한다. 이는 실로 그것이 불의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말을 적어 후세에 전하기까지 한다. 만약 그것이 불의인지 알았더라면 감히 그것을 후세에 남길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리고 이 예를 일반화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지금 여기 한 사람이 있어 검은 것을 조금 보고 검다고 말하다가, 검은 것을 많이 보고 희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흰 것과 검은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쓴 것을 약간 맛보고는 쓰다고 말하다가, 쓴 것을 많이 보고는 달다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단 것과 쓴 것의 분별을 못한다고 할 것이다.

즉 묵자 논변의 요점은 개인 윤리의 원칙이란 게 있다면 그건 당연히 사회 윤리의 원칙이 되어야 하며, 그 원칙은 그대로 평탄하게 연장된다는 것이다.

이제 라인홀드 니부어를 보자.
니부어 목사는 1932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윤리와 정치에 대한 연구』(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A Study of Ethics and Politics)에서 묵자와 본질적으로 충돌하는 이론을 제기하였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이 그는 도덕적 인간이 모였다고 도덕적 사회가 나오는게 아니며 그렇게 접근해서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상당부분 2원적인 접근을 통해 풀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인간 사회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살펴보면, 사회의 요구와 예민한 양심의 명령 사이의 지속적이고 양립할 수 없어보이는 충돌이 드러난다. 이러한 충돌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윤리와 정치의 충돌이라 할 수 있는데 인간의 도덕적 삶에 두 개의 초점이 존재하도록 만든다. 하나는 개인의 내면적 삶의 초점이요.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의 사회적 삶의 초점이다.
……
이들 두 가지 도덕적 관점은 상호 배타적인 것도 아니고, 절대적으로 충돌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또한 쉽게 조화시킬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현실주의자들은 (개인의 행동원칙을 다루는) 미시 이론과 (사회집단의 행동원칙을 다루는) 거시 이론은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좀 다른 잣대로 다루어야 실용적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유력한 가설들이 있는데, 여기서는 어느 것이 그럴듯한지에 대해서는 생략) 현실주의자는 그 이유가 뭐든지 간에 경험적으로 볼 때 묵자처럼 미시이론을 거시이론으로 단순연장하면 현실과 맞지도 않고 성공할 수도 없다고 본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현실주의자들의 기본개념처럼 세상이 좋든 싫든 그런 것일 수밖에 없고 어지간해서는 바꿀 수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는 사실 2차적인 문제랄까 자연히 유도되는 측면이 있는 듯하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개인 윤리를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기 마련이고, 의식적으로 개인윤리와 충돌되는 제2의 기준을 마음 속에 받아들여 따르려면 늘 마음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조차도 현실주의 이론을 설파한 다음에는 또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겠구나란 생각에 씁쓸해지곤 하니까 말이다.
by sonnet | 2007/12/11 12:59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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