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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동아시아
2018/08/07   동아시아의 전통 붕당관 [23]
동아시아의 전통 붕당관
원래 동아시아에서 전통적 붕당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앞서 언급했듯, 하나는 옹정제가 쓴 「어제붕당론」이 대표하는 것으로, 모든 붕당을 악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모든 신민은 군주에게 직접적으로, 일원적으로 충성을 바쳐야지, 그 사이에 붕당이 끼어드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이때 붕당은 권력 정통성의 유일한 담지자인 군주에 대한 충성을 방해하는 존재로 가차 없이 규탄된다.

또 하나는 송나라 학자 구양수의 「붕당론」으로 대표되는 것으로, 군자의 붕당과 소인의 붕당을 준별하여, 전자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양수의 붕당론 역시 군자당만을 인정하고 상대 당을 소인당으로 매도하여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복수 정당의 공존을 인정하는 근대적인 정당관과는 다르다. 구양수는 군자당만을 유일당으로 인정하고 이 유일당이 군주 권력을 보다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오히려 옹정제의 군주독재 체제를 옹호하고 보완하는 길로 들어설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근대 이후 중국의 국민당이나 공산당의 일당 통치와 당국 체제(黨國體制)의 옹호, 군국주의 일본의 대정익찬회(大政翼賛会) 등은 바로 이런 붕당관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조선에서는 17세기에 복수 붕당의 공존 가능성이 잠시 보였으나 결국 격렬한 당쟁의 반복, 그리고 이를 억누르려는 왕권 측의 반격(탕평책)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19세기 들어 처음으로 활발한 당파 정치와 당쟁을 경험한 일본에서 역시 당파 정치와 붕당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당파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경우에도 자신의 당은 정의당이고 상대 당은 속론당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난 예는 거의 없었다. 구양수 「붕당론」의 재판인 것이다. 당파 정치의 장점을 인정하고 복수 정당 공존을 긍정하는 이론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그 연장선상에서 메이지 초기 정당론도 정당 무용론과 ‘올바른 유일 정당론’[公黨]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판자들은 정당이 공익과는 관계없이 사적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결국 공적 이익을 해친다고 보았다. 그리고 정당 간의 투쟁은 사회적 낭비이며, 나아가 사회를 동요시키는 불안 요소로 파악했다. 이런 관점은 현재 한국이나 일본의 시민이 정당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동아시아의 정당들은 100여 년 동안 이런 자신들에 대한 혐의를 불식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군(君)과 민(民) 사이에 정당이 끼어들지 않는 일군만민(一君萬民)적인 정치체제를 지향하든가, 정당을 인정하는 경우라도 유일정당만이 군(君)과 민(民)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메이지 시기 정당 활동을 하던 사람들도 대체로 이런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초의 정당인 애국공당(愛國公黨)은 자신들이 사당(私黨)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당명에 ‘공당(公黨)’을 붙였으며, 자유당(自由黨)은 자신들이 진정한 당이고 상대 당은 가짜 당(僞黨)이라고 규정하여, ‘위당박멸(僞黨撲滅)’을 모토로 삼았다. 이것은 막말기 당파 정치기에 당파들이 스스로를 ‘정의당’이라고 칭하고, 상대방을 ‘속론당’ 등으로 매도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이런 논리는 상대 당의 타당 가능성과 자신들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 당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일 정당 체제로 가는 맹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자유당과 쌍벽을 이루던 입헌개진당(立憲改進黨)이 그 발기 취지서에서 목표를 ‘유일 정당’의 건설로 삼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나중에는 복수 정당의 공존을 받아들이게 되지만, 정당 도입의 초창기에 정당을 부정하거나 유일 정당을 지향하는 관념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는 점은 정당에 대한 이후 일본인의 태도를 크게 규정했다고 볼 수 있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초까지의 다이쇼(大正) 정당정치가 그토록 맥없이 무너지고 독일 나치당을 모방한 대정익찬회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탄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전후 완벽한 민주적 선거가 보장된 상태에서도 유권자들이 자민당의 일당 지배를 약 50년 동안 용인한 점, 그리고 현재의 정당정치가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점 등도 이런 맥락에서 보고자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박훈,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민음사, 2014, pp.219-221



널리 자리잡은 전통적 정치관이 지속적인 영향을 준 것도 있겠지만, 정의가 여기도 있을 수 있고 저기(반대당)도 있을 수 있다는 건 역시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지기는 함. 그런 의미에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자연스러운 장기존속가능한 다당제(loyal opposition)라는 개념은 때가 되면 세계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발명될 수 있는 그런 흔한 물건이 아니라 독특한 발명품인 것 같음.
by sonnet | 2018/08/07 12:16 | 정치 | 트랙백 | 덧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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