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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독일통일
2011/11/11   오늘의 한마디(동독 시위대) [72]
2011/09/05   동독 지배계층의 청산, 형성, 변신 [24]
오늘의 한마디(동독 시위대)

서독 마르크가 우리에게 오지 않으면 우리가 너희에게 간다!
Wenn die D-Mark nicht zu uns kommt, kommen wir zu ihr!

- 1990년 2월 12일, 화폐통합을 요구하며 터져나온 동독 시위대 구호 -



by sonnet | 2011/11/11 09:11 | 한마디 | 트랙백(1) | 덧글(72)
동독 지배계층의 청산, 형성, 변신
주말에 『독일 통일과 동독 권력 엘리트 : 동독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독일 통일 그리고 권력의 변화』(한독사회학회 편)를 읽었는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 책이었다. 통일이란 과정은 수많은 사람들을 통에 넣고 주먹구구로 흔드는 거대한 실험 같은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고나 할까.

그 중에서 동독의 지배계층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띄어 좀 추려 보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소비에트 점령지역에서는 서독에서처럼 바이마르공화국의 부르주아 사회구조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일어나지 않았다. 동독에서는 사회구조적으로 봤을 때 실제로 혁명이 일어났다. 구 부르주아와 귀족 출신의 기능 엘리트(기업가, 은행가, 군인, 다수의 학자)은 탈나치화되어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되었다. 또한 1961년까지 서독으로 간 200만 명의 난민 대부분이 부유층이었으므로 상위 계층의 대손실이 초래되었고, 그에 따라 사회구조적 변화 압력이 크게 일어났다. 1940년대와 1950년대 후반부의 사회변동은 동독에서 주장하듯이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으로부터 이탈된 옛 부르주아 계급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능 엘리트의 급속한 배치를 의미한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중반까지는 엄청난 교육열망 속에서 새로운 교사, 기술자, 경영자, 고위 행정가, 안전요원, 정치간부들이 양성되었다. 적어도 초기에는 이들 사회주의적 교육상승자들은 대부분 숙련노동자 출신이었다.

교육의 수문을 조기 개방한 것과 책임 있는 직위로의 대량적 상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하에서 독일민주공화국 상층부의 사회적 공간 안에 국가와 당에 충성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즉, 사회주의 지배층을 만든 것이다. 이 사회주의 지배층은 세 집단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집단은 권력행정가(지위지향적 환경), 즉 사회주의 법과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당과 국가의 간부들이다. 두 번째 집단은 기술분야나 경제학을 전공한 사회주의 산업의 지도자(기술관료적 환경)들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로 교수나 의사, 그리고 문화창조자 부류가 있다.(인문주의적 환경). 동독 정부는 문화와 교육에 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분야의 전공자들에게도 지위상승의 기회가 제공되었다. 사회주의적 지배층은 국가의 지원으로 교육을 통해 지위를 높일 수 있었던 사람들로 구성되었는데, 사회주의가 몰락할 때까지 존재했다. 이들은 주로 194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의 기간에 동독 상층부에 폭넓게 자리 잡았다.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라고 하는 이러한 사회주의 지배층 내에는 소련 스타일의 모든 인민민주주의 국가에서 통일된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기능 엘리트들이 포함된다.(pp.172-173)


이처럼 구 지배층에 대한 광범위한 숙청은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는 한 가지 방편이 될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수혜 집단의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효과는 1회적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신분상승한 신세력, 즉 사회주의 지배층이 그대로 기득권화되면서 계층이동이 도로 어려워지게 된다.

1960년대 중반 사회주의적 교육혁명이 끝난 후 사회주의 지배층은 자체적으로 충원되었고, 독일민주공화국 후반기에는 마치 연판(Bleiplatte)처럼 전통적 생활세계를 뒤덮었다. 이로 인해 대량적 지위상승이 봉쇄되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이동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현저히 감소했다.(pp.174-175)


이 책의 또 다른 필자인 얀 빌고스도 비슷한 평가를 한다.

설립단계 세대. 예컨대 1925~1940년 사이에 태어난 하층계급 출신의 사람들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은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에 대한 감사함에 의해 확고했다. 그에 반해 1980년대 후반 서비스 계급에 속한 자들은 ‘늙은’ 사람들에 의해 계급 상승의 통로가 막혀버렸다는 좌절감에 의해 충성심을 잃어버렸다.(p.93)


보다 구체적인 사례들도 있다.

국가안전부는 인구비례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밀경찰이다. 이들은 스스로 ”보이지 않는 전선에서 싸우는 전사“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서도 세 종류의 경향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

(1) 하위 관료들은 지속적으로 승진 병목, 혹은 적체 현상을 경험했다.
(2) 고위 간부급들의 고령화가 가속화되었다.
(3) 신규인원은 대개 세습이나 연결망을 통해 자체적으로 충당되었다.

1989년 전체직원 현황에 따르면 기밀요원 50% 이상은 친척 중 최소 한 명이 국가안전부 소속인 것으로 파악되었다.(pp.37-38)


이는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을 괴롭힌 고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인데, 그들은 끝내 만족스러운 해법을 발견해내지 못했다.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유일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서 훨씬 일원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다원적 엘리트 집단 간의 경쟁에 기대는 식의 해법을 취하기 어려웠다.

물론 실험적인 해법이 전혀 시도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한 가지 해법은 주기적으로 기성 엘리트 집단을 숙청하고 계속 밑에서 (덜 오염된) 「신생세력」을 뽑아 그 자리에 꽂는 것이다. 이런 식의 해법에 집착한 대표적인 인물은 마오쩌둥이다. 그가 문화대혁명 시기에 홍위병이나 노동자 혁명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기성 당 간부들을 대체하려 시도한 것은 유명하다. 스탈린의 대숙청도 이런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폭풍과도 같은 대대적인 발탁-이용-숙청 패턴을 반복하거나 끊없는 혁명적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또 지식과 경험, 인적자원의 손실이라는 점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비용이 초래되었다. 이런 실험을 해본 나라 사람들은 다시는 이런 짓을 하면 안되겠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었을 뿐이다.



그건 그렇고 동독은 나중에 결국 서독에 흡수통일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정치적 숙청은 최소한으로 억제되었다. 그 결과는.

구동독의 기능 엘리트, 즉 사회주의 지배층은 사회변동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동독에서의 이러한 환경변화는 사회관계의 전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층부는 상층부에, 하층부는 하층부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다만 그들 간의 간격이 벌어질 뿐이다. … 독일 통일은 사회의 상층 영역에서 가장 잘 이루어졌다. 사회주의 지배층은 사회주의 이후 사회의 현대적 상층부로 도약에 성공했다.(p.181)



Hofmann, Michael. “사회주의 지배층 : 상승과 전환 경험”. 『독일 통일과 동독 권력 엘리트』. 171-183.
Kloss, Oliver. “독일 통일과정에서 동독 권력 엘리트의 처신”. 같은 책. 15-56.
Wielgohs, Jan. “사법적 처벌-배제-사회적 통합 : 1990년 독일 통일 전후 동독 권력 엘리트의 생애주기 모델”. 같은 책. 87-133.
by sonnet | 2011/09/05 12:27 | 정치 | 트랙백 | 덧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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