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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도서유통
2005/05/29   매절거래는 도서유통을 구할 수 있는가? [13]
매절거래는 도서유통을 구할 수 있는가?
루나벨양의 포스팅을 트랙백.

루나벨양에 따르면, 도서 유통의 위탁판매는 좋지 않다고 한다.
대략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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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탁판매 위주의 유통체제에 의거한 폭리적이고 불합리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체제에서는 좋은 책이 나오기 어려운게, 일단 출판사가 책을 직접판매하는 유통업체의 요구와 수익에 매우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만드는 책들도 지극히 시장성에 맞춘 책들이 됩니다. 게다가 더 곤란한건, 출판사들이 반품 부담비와 (사실 안 해도 되는)초과생산비와 유통업체가 맡긴 보증금에 대한 부담금을 몽땅 책 가격에 포함시킨다는 겁니다.
(중략)
유럽의 출판-유통시장은 위탁판매와 매절판매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매절판매라는건 유통업체측에서 출판사의 상품을 일정값을 치루고 '구입'하는 것이고, 남는 재고는 반품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현재 인터넷 서점이 취하는 방식이죠. 당연히 가격은 더 쌉니다. 이렇게 되면 독자의 부담은 훨씬 적어져서 이런저런 책을 부담없이 구입하기 쉬워집니다. 뿐만 아니라 출판사측이 유통에 대해 지는 부담이 위탁판매체제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대중성이 좀 적더라도 다양하고 문화적으로 발전적인 책들을 출판하기 더 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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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루나벨양에게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 주장은 경제학에서 오랫동안 연구해온 몇가지 기본적인 원칙과 논리전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따라서 몇가지 수상쩍은 논리에 대해서 지적하기로 한다.


1. 위탁판매에서는 '출판사가 책을 직접판매하는 유통업체의 요구와 수익에 매우 의존'하게 된다?

수익 분배의 비율이 어떻던 간에 책의 제조와 판매에 따르는 수익은 출판사와 유통업체간에 배분된다. 즉 책이 더 많이 팔리게 되면 출판사와 유통업체는 모두 수익이 증가한다. 책이 더 팔려서 유통업체의 이익은 늘어나는데, 출판사의 이익은 한푼도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은 있을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인가? 맞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 판매의 방식이 위탁이건 매절이건 출판사의 수익증가는 유통업체의 수익증가와 정의 관계에 있으며 직접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위탁판매일 경우 출판사가 유통업체의 수익에 매우 의존한다'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유형의 판매에서도 형성되는 당연한 관계이다.
(엄밀히 말하면 위탁 혹은 매절은 1권씩 이루어지지 않고 보다 큰 단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단위 이하의 판매변동은 거래주체인 출판사와 유통업체간에 배분되지 않을 수 있다.)


2. 위탁과 매절은 결국 어디에서 차이가 나는가?

그 차이는 누가 사업상의 위험(Risk)를 지느냐의 문제이다.

매절해온 상품이 팔리지 않을 경우 유통업체는 직접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다. 반면 위탁거래였다면 이를 반품함으로서 유통업체가 입을 손실의 상당부분을 출판사로 전가할 수 있다.
(반품하더라도 유통업체에게는 재고유지 및 기회비용 등 각종 부차적인 손실은 남는다)

출판사의 입장은 반대이다.
매절거래를 하면, 위탁 시에 떠안아야 할 재고 손실의 위험(risk)을, 유통업체에게 떠넘길 수 있다.

즉, 책이 더 팔리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출판사와 유통업체가 같이 이익을 볼 수 있는 Positive Sum 게임이었지만, 위탁이냐 매절이냐는 상대방이 손해를 봐야 내가 손해를 면할 수 있는 Zero Sum 게임이다.

따라서 유통업체가 다른 이유 없이 위탁을 매절로 변경하는 것은 '기대되는 수익도 없이 사서 손해를 볼 가능성을 높이는(불필요하게 Risk를 떠안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한마디로 비합리적인, 머리에 총맞지 않은 이상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유통업체는 매절로 인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손해를 능가하거나 혹은 적어도 그 손해를 상쇄할만한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매절거래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유통업체가 risk를 질 수 있는 경우는 크게 봐서 다음 두가지 경우가 있다.
1) 유통업체가 판매에 대한 예상을 정확하게 할 수 있어서 재고로 인한 손해를 억제할 수 있는 경우
(소매업체나 최종소비자로부터 선주문을 충분히 확보한 경우, 혹은 국정교과서처럼 몇 권쯤 팔릴 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경우, 유명작가 등이 썼기 때문에 최소한 이정도는 나갈거라고 확신하는 경우 등)
2) 매절에 따르는 Risk를 상쇄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할인을 출판사로부터 받는 경우


3. 사업상 위험(risk)는 어떻게 해결되는가?

현실세계의 사업상 거래에 있어서 risk는 피할 수 없는 존재이다.
당사자인 출판사와 유통업체가 모두 절대 자신은 risk를 질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 거래는 결렬될 수 밖에 없다.
즉 거래가 성립하려면 누군가 한쪽이, 혹은 양쪽이 임의의 비율로 이 risk를 나눠서 질 필요가 있다.

실제 상황에서 누가 어떻게 risk를 지게 되는가라는 문제는 case by case이지만, 다행스럽게도 경제학에서는 이와 비슷한 문제를 이미 오랫동안 다뤄오고 있다. 그 문제는 '조세 귀착의 문제'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담배에 세금을 추가로 물렸을 때, 이 세금은 실제로 누가 내는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담배값은 그대로 둔 채 담배제조사가 스스로의 이익을 희생해서 낼 수도 있고, 담배값을 올려서 소비자가 내게 만들수도 있고(前轉), 담배잎 수매가를 후려쳐서 재배농민에게 뒤집어씌울 수도(後轉) 있다.
이와 같은 차이는 상품의 수요-공급 탄력성, 상품생산의 독점도, 생산비의 체증 또는 체감여부, 세율 등에 따라 달라진다.

조세귀착문제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조건들은 우리가 이 글에서 다루는 risk 귀착의 문제에도 대개 비슷하게 적용이 된다고 볼 수 있다.


4. 그래서 문제는 뭔가?
루나벨양의 논리는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갖는다.

위탁을 매절거래로 변경함으로서
1) 출판사들이 반품 부담을 안지 않게 되고
2) 따라서 가격은 싸지며
3) 결과적으로 독자의 부담이 훨씬 적어진다.

이것은 앞서 말한 담배에 세금을 물렸을 때, 담배회사가 자기 이익을 희생해 세금을 낸다 라는 경우와 같다. 즉 유통업체가 출판사나 독자를 건드리지 않고 자기 이익만 희생하는 이타적 행동을 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가장 그럴성 싶지 않은 행동인 것이다.

유통업체는 매절을 요구하는 출판사의 책을 아예 받지 않거나, 출판사에게 높은 할인을 요구하거나, 책값을 올려서 이 위험을 독자에게 전가하려고 할 것이며, 자신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단호하게 싸울 것이다.
이어서 출판사도 이러한 압력을 다시 다른 곳으로 전가하기 위해 저자의 인세를 깎거나 하는 방법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5. 정책의 차원에서

한편, 현재 잘 돌아가고 있는 유통구조가 바뀐다는 것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출판사들이나 유통업체가 집단행동으로 압력을 넣거나, 정부가 도서정가제처럼 법으로 거래과정의 어떤 부분을 규제하거나 하는 강제력의 적용없이는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기 힘들다.

어떤 법을 만들어 "위탁을 매절로 전환한다는 루나벨양의 아이디어"를 밀어붙였을 때, 과연 의도하던대로 저렴한 책값에 다양한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까?

...
그건 아니라고 본다. ([보론] 참조)


6. 끝으로
사실 출판사/유통업체간 관계에서 유통업체가 매절거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바람직할 수 있다면 저자/출판사간 관계에서 출판사는 인세거래를 줄이고 매절거래를 늘려야 한다는 말도 똑같이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출판사와 출판사/유통업체 관계는 모두 하나의 먹이사슬 위에 존재하는 유사한 관계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보론]출판사가 위탁판매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한 가지 이유

사업상 위험을 질 수 있는 능력은 거래 주체마다 다르다.
규모가 크고 자금력이 풍부하다면, 경기순환이나 유행에 따르는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 더 나을 것이고, 많은 종류의 책을 다룬다면 개개의 책이 갖는 위험의 편차를 합쳐서 평균으로 수렴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내가 보기에 출판사가 유통업체(도매상)에 비해 매절에 따르는 위험을 더 잘 질 수 있는 이유를 한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앞에서 나는 "판매에 대한 예상을 정확하게 할 수 있다면" 유통업체도 매절에 따르는 위험를 질 수 있다고 말했다.

책은 결국 마케팅 등 여러가지 요소가 있지만 "책의 내용"이 판매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다. (저울로 달아보고 책값 대비 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책을 고르는 독자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자.
어떤 책의 출판사와 그 책을 취급하는 도매상 중 어느 쪽이 보다 해당 책의 내용을 잘 파악하고 정확한 수요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답은 자명하다. 그것은 그 책을 출판하기로 결정하고, 편집하여 만들어낸 출판사이다.

원유나 철강, 시멘트 같은 대량으로 거래되는 매우 동질적인 상품이라면 유통업체들도 해당 상품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책처럼 종류는 엄청나게 많고 내용은 모두 다른 상품을 다룰 경우 (최종 판매자도 아닌) 유통업체가 개개의 상품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란 매우 힘들다. 도저히 출판사와는 상대가 안되는 것이다.

앞에서 출판사와 유통업체 사이에 재고 위험을 누가 지는가 하는 문제는 zero-sum 게임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둘 중 상대적으로 위험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주체가 있다면 그 주체가 위험을 맡을 때 전체적인 이익이 극대화될 수 있으며 장기적인 양자의 거래관계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한편 루나벨양은 매절거래로의 전환이 (문화적으로) 다양한 책이 거래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정 반대이다. 지금 설명한 것처럼 유통업체가 매절을 통해 위험을 떠안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유통업체는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잘 모르는 마이너한 상품"의 거래를 줄이고, "어느 정도 나갈지 자신도 예측가능한 메이저한 상품"의 거래에 집중할 것이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책의 매절거래가 메이저한 책을 위주로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마이너한 책을 위주로 이루어지는지를 조사해보면 답은 명확하리라고 생각한다.
by sonnet | 2005/05/29 20:13 | flame! | 트랙백(1)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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