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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대북협상
2009/07/13   작전계획이 문제다? [47]
2009/04/25   통역 최선희 [33]
2008/07/31   오늘의 한마디(Stephen J. Hadley) [23]
2008/07/17   북한식 협상술 [38]
작전계획이 문제다?
노무현의 대북정책은 설레발이었나? (Crete)에 트랙백


1. 작전계획이 문제가 되는가?

국제 핵사찰을 책임지는 IAEA 사무총장 모하마드 엘-바라데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있어 핵물질은 급소(choking point)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농축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갖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당신이 [핵폭탄을 위한] 컴퓨터 연구, 시뮬레이션 같은 걸 했을지도 모릅니다만, 핵물질만 없으면 핵무기는 없는 겁니다."[1] IAEA가 이렇게까지 핵물질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 부분이 피해갈 수 없는 핵심요소고 사찰을 통해 검증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처럼 미사일 등을 규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정교한 사찰 체제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어떤 군축/군비통제 체제도 상대국 작전계획의 입안을 규제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검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국 참모본부를 기습적으로 방문해 서류철을 하나하나 뒤져 볼 건가요. 진짜는 잘 숨겨 놓았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설령 그렇게 한다 치더라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리처드 핼로란은 이 문제를 아주 잘 지적합니다.

설령 미국이 그렇게 할 용의가 있다 하더라도, 이 같은 요구들 중 가장 실현되기 어려운 것은 미 핵우산 제공 중단을 입증하는 일일 것이다. 핵우산이란 한국이 핵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핵무기로 대응할 것임을 천명해 한국에 대한 핵공격을 억지한다는 것이다.

미 중서부 또는 태평양 해저의 잠수함들에 배치된 미국의 핵탄두 미사일들이 현재는 특정한 목표물을 겨냥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들 미사일의 발사를 통제하는 컴퓨터에 새로운 좌표들을 입력하는 것만으로 불과 몇분 만에 북한을 겨냥할 수도 있다.

따라서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핵미사일의 공격 목표가 아니라는 미국의 말뿐이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2]

또 다른 컬럼에서 두 명의 전직 미 국방장관은 지구상 어디서 테러리스트가 발견되든 간에 30분 안에 두들길 수 있는 무기체계로 트라이던트 잠수함발사탄도탄을 이용할 것을 촉구[3]한 바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현 전략핵무기 체제들이 필요하면 아주 신속하게 재프로그램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러시아 전략로켓군 사령관은 이 재프로그래밍 과정을 직접 보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한 전 6자회담 한국 측 대표 이수혁이 말하듯이 "미국이 군사적 선택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하여 군사력을 한반도에서 한국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는 행사하지 않을 것이며, 군사적 선택을 배제한다고 말했다고 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군사력은 사용되지 않는다고 믿을 수도 없다"[4] 이상의 입장을 갖기가 힘든 것입니다.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북한을 겨냥한 작계도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이 미국이 그런 작계를 실행할 의도나 결심을 내비쳤다고 해석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고립주의가 횡행하던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전간기에 미군은 속칭 color-code war plan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작전계획을 준비했습니다.
이런 작계들이 당시 미국이 품고 있던 전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 의도를 잘 보여주는 것일까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요. 2차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세계 각지에서 공산주의와 대결하게 되면서 이런 계획들은 더 많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나마 미국이니까 언론 보도나 공개된 정책문서 등을 통해 단편적이나마 작계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는 것이지, 정보 통제가 잘 이루어지는 사회의 경우 그 나라의 작계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고로 작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1)어지간한 작계는 이미 작성되어 있을 것이라 간주하되, 2)그 작계가 반드시 존재한다거나 반드시 실행된다고 확신하지도 말 것, 3)기회가 주어지는 한 공개/비밀 정보수집을 통해 작계의 존재와 관련 사항을 부단히 수집해 기존 지식을 업데이트할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것은 굳건한 동맹 하에서 북한을 겨냥한 미국의 작전계획에 가능한 많이 동참함으로서 정보도 얻고, 미국의 준비에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도 늘리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이 원하는데 우리가 거부하면 그들은 혼자서라도 준비를 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작계를 통제할 수 없다면 북한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북한은 기존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실천해 남북한 상호 핵사찰을 통해 남한에 미국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지 않고, 남한이 몰래 핵개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정작 이런 기회를 주면 판을 깨버립니다. 실제로 유의미한 뭔가를 서로 주고받기는 싫은 게지요. 이는 북한이 좋아하는 것이 검증 불가능한 문제를 꼬투리 잡아 부담없이 선전전을 펼치는 것임을 짐작케 합니다.



2.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꼭 미국 뿐 아니라 주변국 모두)가 북한에게 추천하는 방법은 빨리 핵개발을 포기해서 미국의 잠재적 표적 목록에서 빠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극적 안전보장(NSA)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앞선 글에서 아주 상세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물론 6자회담 참가국들은 핵포기만 확실하다면 여기에 더해 경제원조, 외교관계, 미국의 서면 안전보장이나 중국-러시아 등의 보증, 평화협정 체결 등 여러가지 선물을 덤으로 줄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키신저가 말하는 국가간 갈등의 구조 이야기로 돌아가 보지요.

물론 혁명적 세력의 동기는 방어적인 것일 수도 있다. 자신들이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은 솔직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혁명적인 세력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그들이 위협을 느낀다는 점이 아니다. 그런 인식은 주권국가들로 이루어진 국제관계의 본질상 당연히 따라오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어떤 것도 그들을 안심시킬 수 없다는 점에 있다.[5]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강대국들이 막강한 핵 공격력을 보유하고 있는 한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은 영원히 위협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현존 국제질서를 통해 그 위협을 제한하고, 그리고도 남는 부분은 감수하면서 살아갑니다. 위협을 완전히 없앨 수 없는 한 가지 이유는 의도가 아무리 없다고 해도 능력은 남기 때문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도 30분 만에 트라이던트 미사일을 재프로그램해서 날려보낼 수 있는 그런 능력이 남아있는 한 결코 위협의 일부는 없어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 같은 나라가 특별해지는 이유는 대부분의 나라가 따르는 길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국제질서나 국제질서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억압적이라고 간주"하는 태도를 버리고 "무엇이 정당한 요구를 구성하는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를 수용하면 외교에 의한 해결책은 이미 그들의 문 앞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3. 대북 안전보장에 대한 한국의 입장

이제 노무현 정부 당시 외교통상부 군축원자력과장을 포함한 3명의 현직 외교관이 기술하는 한국의 입장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한국의 입장

NPT 당사국으로서 동 조약상의 의무를 완전히 이행하고 있는 핵비보유국에 NSA[소극적 안전보장]를 부여하는 것은 정당한 요구이며, NPT 보편성 확보를 위한 인센티브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핵비보유국에 대한 P-5[5대 핵보유국]의 NSA 부여는 NPT 당사국으로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국가에 대해서만 적용되어야 하며, NPT 당사국의 불이행 문제가 국제사회의 당면한 안보 위협이라는 현실 하에서 핵 비보유국에 대한 무조건적, 자동적 NSA 부여는 적합지 않다는 입장을 동시에 보이고 있다.[*]

[*] 미·북 제네바 합의 3조 1항: The US will provide formal assurances to the DPRK, against the threat or use of nuclear weapons by the US.
-상기 NSA 제공은 여타 국가에 대한 미국의 공약과 동일하며, 북한의 AF 이행으로 비핵화가 이루어진 이후 제공한다는 의미
- 우리 측은, 이러한 대북 NSA는 미국의 대아국 핵우산 보호와 상충되어서는 안 되며, 북한의 우리에 대한 군사 침략 시에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임.[6]

이는 제가 앞선 글에서 설명했던 대로 제네바 기본합의 3조 1항에 입각해 미국이 북한에 제공하는 안전보장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 입증된 다음에나 제공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줍니다. 게다가 우리에 대한 북한의 군사 침략 시에는 또 미국의 핵우산 보호가 동작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면, 우리는 미국의 대북 핵투발 작전계획 입안을 부정할 수도 없는 셈입니다.



4. 그럼 북한은 왜 제네바 협정 3조 1항을 강조하는가?

그건 전형적인 공산권 협상전술, 특히 일반원칙의 자의적 해석 전술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방 국가들의 협상전문가들은 회담 개막단계에 공산권 국가들과 합의한 뜻이 애매한 ‘일반원칙들’(agreements in principle)이 이행단계에 공산국가들에 의하여 이행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후속 협상에서 그들이 일방적 해석을 함으로써 분쟁의 근원이 되었다고 하면서 이러한 합의를 하지 않도록 경고를 하고 있다.

소련이 일반적 용어로 된 협정을 선호하는 것은 협상전략의 일환으로서 … 추후 협정을 해석함에 있어 폭넓은 자유를 가지고 세부적 협정이 갖는 즉각적 의무 이행을 피하면서 선전을 위하여 활용되었다. 협정 용어를 자의(恣意)로 해석하는 소련 측의 이러한 경향은 미·소간 외교사에 있어서 소련의 협정 이행의 신뢰도에 의구심을 낳았다.

중국도 협상 초기에 일반원칙들을 상대방에게 제의하여 그 원칙들을 명문화한다. … 중국이 협상 모두(冒頭)에 ‘원칙’ 합의를 중요시 하는 것은 ‘평화공존 5원칙’과 같이 상대방 정부에게는 일견 문제가 없는 극히 일반적인 행동 기준에 동의하게 한 뒤 원칙의 해석을 자국에 유리하게 하여 차후 협상시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 대표들은 구소련과 중국에서 배운 대로 1970년대 초 회담 개막기에 남한 측이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매우 추상적인 일반원칙들을 제시하여 합의서에 명문화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1970년대 초기 이후 지금까지의 대화 과정을 보면 북한 측은 일반원칙들이 포함된 합의서를 남한 측과 합의한 후 추후 협상 과정에서 이 원칙들을 북한 측에 유리하게 해석하여 북한 측 제의를 수락하도록 요구하였으며 종국에는 동 원칙들이 준수되지 않은 책임이 남한 측에 있다고 하면서 회담 중단을 선언하였다.[7]

7.4 남북공동성명, 남북적십자회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 북한이 이 수법으로 물타기를 시도해 망가진 남북협상은 수도 없습니다.

일반적인 문구로 표현된 총론에 합의한 뒤 각론 단계에 가서 협상을 깨버리게 되면, 북한은 지켜야 할 의무는 지지 않은 채로, 총론을 무기로 남한이나 미국의 여론을 공략할 수 있습니다. 민주 사회의 대중들은 대북협상의 세부에 대해 피상적 인상 이상을 갖기 힘들기 때문에, 이런 선전술에 취약하기 마련이지요. 앞서 제가 설명한 것처럼 북한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은 비핵화가 끝난 뒤에 제공되는 것인데, 북한의 논리는 이를 얼버무리면서 책임을 미국에게 덮어씌우는 것입니다. 이것을 꿰뚫어 보는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1] Charbonneau, Louis., UN to Inspect Iran's Parchin Military Site, reuters, 2005년 1월 5일
[2] Halloran, Richard., Table talk for six, Washington Times, 2005년 7월 31일 (번역)
[3] Brown, Harold., Schlesinger, James., A Missile Strike Option We Need, Washington Post, 2006년 5월 22일
[4] 이수혁, 전환적 사건: 북핵 문제 정밀 분석, 중앙북스, 2008, p.77
[5] Kissinger, Henry A., A World Restored: Metternich, Castlereagh and the Problem of Peace 1812-22, Boston: Moughton Mifflin Co., 1957, pp.1-3
[6] 류광철, 이상화, 임갑수, 『군축과 비확산의 세계』, 평민사, 2005년, p.438
[7] 송종환, 『북한 협상행태의 이해』(개정판) , 오름, 2007, pp.182-185
by sonnet | 2009/07/13 02:08 | 정치 | 트랙백(1) | 덧글(47)
통역 최선희
1. 다음은 중국이 주최한 중국-미국-북한 3자회담 만찬 석상(2003년 4월 24일)에서 벌어진 북한의 핵보유 통고 사건에 대한 묘사이다. 이 글을 잘 보면 재미있는 인물이 눈에 띈다.

(미국이 주의깊게 회피해서) 만찬장에서 북·미 양자 협의를 주선하려고 했던 중국의 트릭은 불발로 끝났다. 식사가 끝났을 때 옆 테이블에서 어께 너머로 이근을 바라보고 있던 통역 최선희가 이근에게 매서운 시선을 보냈다. 이근은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켈리를 붙잡았다. 주최 측과 손님이 거의 만찬장 밖으로 나간 것을 지켜본 뒤에 이근은 켈리에게 영어로 말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다. 이를 물리적으로 보여 주는 것, 국외로 이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켈리는 미측의 통역 통 킴(한국명 김동현)을 시켜 이근에게 방금 말한 것을 다시 한번 한국어로 반복할 것을 요구했다. 이근은 이번에는 한국어로 했다. 그것을 최선희가 통역했다. “미국은 알고 있는가. 우리는 핵 능력을 갖고 있다. 그것을 물리적으로 보여 주는 것도, 국외로 이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게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행동에 달렸다.” “우리는 1994년에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미국에 명확히 했다. 미국은 거기에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북한이 미국에 ‘핵 보유’를 선언한 것이다. (p.469)

일전에도 지적한 바 있지만, 북한 협상단은 전형적인 소련식으로 "대표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고, 그를 감시하는 사람이 또 있고" 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이 최선희라는 통역은 통역은 간판이고 본업은 (중앙의 신뢰가 두터운) 감시역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2. 또 다른 사례를 보자. 2002년 10월 4일, 평양을 방문했던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북한 외무성의 강석주 제1부상으로부터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HEU) 계획을 갖고 있다는 "그럼 어쩔래?" 풍의 시인을 듣고 돌아오게 된다. 제2차 북핵위기가 발발하는 순간이었다.

강석주는 고농축 우라늄(HEU)에 대해 언급했다.
“우리가 HEU 계획을 갖고 있는 게 뭐가 나쁘다는 건가. 우리는 HEU 계획을 추진할 권리가 있고,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만들게 돼 있다.”
켈리는 눈앞의 메모지에 무엇인가를 서둘러 적고는 그것을 옆 자리에 있던 찰스 잭 프리처드 대북 협상 담당 특사에게 건했다.
“들었지? 방금 이야기, 틀림없이 말했지?”
강석주는 자기 쪽에서 먼저 HEU에 대해 언급했다. 이 대목에서 켈리가 끼어들었다.
“방금 말한 것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면 안 된다. 지금 발언을 한 번 더 되풀이해 달라.”
강석주는 계속했다.
“부시 정권이 이처럼 우리들에 대해 적대시 정책을 취하는 이상 우리가 HEU 계획을 추진한다 해서 무엇이 나쁜가. 그것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한 억지력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p.149)


당시 미국 측 참석자들은 이 발언이 너무도 중요했기 때문에 당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관계자 전원의 합의 하에 본국에 보고했다고 전한다.

켈리 일행은 (영국)대사관에 방 한 칸을 얻었다. 거기서 통역을 포함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세 사람이 작성한 메모를 서로 대조하고, 그것을 북한 측 통역의 영어 번역을 기록한 메모와 맞춰 보면서 전보를 작성했다. 그리고 비밀 장치가 걸린 통신 회선을 통해 워싱턴으로 보냈다. (p.153)

8명의 대표단 중 5명은 한국말을 못 했고, … 우리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그 중 하나는 미국 대통령의 통역이었다)들을 별도로 모아 북한 통역이 영어로 말한 것 말고 강석주 제1부상이 한국말로 말한 것을 그들이 기억나는 대로 정리하게 했다. 세 사람은 합의에 이를 수 있었고, 강석주의 말을 정확하게 반영한 문서를 만들었다. ([Pritchard] p.78)


그런데 이 때 북한 측 통역 또한 최선희였다.

강석주의 발언은 북한 측 통역인 최선희가 영어로 옮겼다. 켈리의 발언은 미국 측 통역인 통 킴이 한국어로 번역했다. (p.163)

이 고농축 우라늄 보유 시인 발언은 그 이후 북한이 말을 얼버무리며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물러섰기 때문에 (북한에 호의적인) 일각에서는 미국측 통역의 실수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단순한 통역의 실수였다면 이 때 대미관계를 파탄에 빠트린 단순 통역이 목이 붙어서 그 다음 해의 3자회담에 버젓히 통역으로 다시 나타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발언은 잘 조율된 발언이라고 보아야 한다.



3. 최선희는 제1차 북핵위기(1994년) 당시에도 대미협상에 참가했기 때문에 북한의 대미협상팀의 베테랑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는 다른 기묘한 이야기들도 전해진다.

최선희는 북·미 교섭에 관여해 온 미국 측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명물로 알려졌다. 프리처드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의 교섭 상대가 김계관이었을 때 최선희가 미국 측 통역의 번역에 대해 “틀렸다, 틀렸다”며 고개를 저었다. 행동 자체도 이상했지만 그녀는 “이런 곳에서 바보처럼 일할 수 없다”는 듯이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하지만 김계관은 아무 말도 않고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 뒀다. 남은 시간 북한 측은 미국 측 통역에 의지하게 됐다.
그녀는 그 후의 6자회담에서는 북한 대표단 ‘외무성 연구원’이란 직함으로 출석했다. 통역이지만 다른 나라의 통역과는 일절 대화하지 않았다. 자신을 통역이라고 간주하지 않는 듯했다. (p.163)

이 정도면 이 여자가 감시역이고 중앙의 신뢰도 두터울 거라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싶다.



출처:
船橋洋一, 『ザ·ペニンシュラ·クエスチョン 朝鮮半島第二次核危機』, 朝日新聞社, 2006
(오영환 외 역, 『김정일 최후의 도박』, 서울:중앙일보시사미디어, 2007)

Pritchard, Charles L., Failed Diplomacy: The Tragic Story of How North Korea Got the Bomb, Brookings Institution Press, 2007
(김연철, 서보혁 역, 『실패한 외교: 부시, 네오콘 그리고 북핵위기』, 사계절, 2008)
by sonnet | 2009/04/25 22:47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33)
오늘의 한마디(Stephen J. Hadley)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자금에 대한 경제제재는]
우리가 그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sanctions were] "the first thing we have done that has gotten their attention,"

- 2006년 4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Stephen J. Hadley -


BDA에 묶인 북한 자금은 겨우 25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북한 측은 비정상적으로 이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주변국들의 흥미를 끌었다. 북한이 이 문제에 왜 이렇게 민감하게 굴었는지는 사실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몇 가지 추측이 있을 뿐이다.

BDA같은 데 묶어둔 푼돈을 절대 안 돌려준다고 해서 북한이 붕괴할 것도 아니요, 치명상을 입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북한을 상대로 뭔가 교환을 위한 팻감으로서 저런 작은 아이템들을 많이 발굴해 손에 쥐고 있을 수 있다면 유용하기는 할 것이다. 미국이 BDA 문제를 활용한 방식이나 위 발언은 이러한 '팻감'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David E. Sanger, U.S. Said to Weigh a New Approach on North Korea, New York Times, 2006년 5월 18일
by sonnet | 2008/07/31 11:18 | 한마디 | 트랙백(2) | 덧글(23)
북한식 협상술
북한의 협상술 이야기가 나온 김에 특기할 만한 것을 하나 더.

(일북) 평양 선언의 초안 작성 과정에서 북한 측은 마지막까지 단 한 장의 종이도 제시하지 않았다. 모든 문장이 일본의 안을 토대로 북한이 주문을 추가하고 일본 측이 다시 그에 답하는 식의 주고받기로 진행됐다. “외교 교섭으로는 참으로 보기 드문 사례”였다고 교섭자의 한 사람은 술회했다.

船橋洋一, 『ザ·ペニンシュラ·クエスチョン 朝鮮半島第二次核危機』, 朝日新聞社, 2006
(오영환 외 역, 『김정일 최후의 도박』, 서울:중앙일보시사미디어, 2007, pp.64-65)


언론보도에 따르면 올해 합의된 미북 "비공개 양해각서"라는 것도 "비공개 양해각서에 담기는 내용은 미국이 자신의 이해사항을 기술한 뒤 북한이 이를 ‘반박하지 않는다’고 명기"하는 내용이라고 하므로 이런 방식으로 작성되었던 것 같다. (당시 국내 언론 어디서 구체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길 본 기억이 있는데 다시 찾지를 못해서 일단 이렇게만 놔둔다)

by sonnet | 2008/07/17 09:08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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