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by sonnet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rss

skin by 이글루스
태그 : 노블리스오블리주
2009/04/10   '노블리스 오블리주'라... [108]
'노블리스 오블리주'라...
내 글을 지목해 논한 목수정때리기와 진보 혐오증 (가브리엘) 에 트랙백

그러나 이 예시는 적절하지 않다. 첫째 정명훈은 동종업계의 종사자라는 동지적 지위에 있다. 특히나 폐쇄적인 음악계에서는 더더욱 이러한 지위는 강조된다. 둘째, 정명훈은 대한민국에서 막대한 금전을 벌어들이며, 각종 혜택과 후원을 받는 사회적 명사로서 공인의 의무가 있다. 즉 보수주의자들이 항상 강조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있는 것이다. 오블리주는 권리가 아닌 의무를 말한다.

… 정명훈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국립오페라단 합창단의 폐지와 그들의 부당한 해고에 귀기울이고 동참해야할 의무가 있다. "유일한" 국립오페라단 합창단의 폐지는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의 후퇴를 의미하며, "부당한" 경제의 논리에 최소한도로 보장해야할 예술, 나아가 문화의 영역이 굴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문학적, 사회적 의미를 정명훈이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서명을 거절하였다면 이것은 그의 존경받는 예술가로서의 지위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공인으로서의 지위에서 요구되는 "의무의 유기"인 것이다. 이것은 특정 종교에 포교될 의무와 돈을 빌려줄 의무가 없는 개인의 거절의 문제가 아니라, 즉 개인에 불과한 당신(독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불의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동참하여야 하고 발언하여야 할 공인,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명사로서의 의무의 문제이다. (가브리엘)



일단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구속력 있는 의무가 아니다.

정명훈이 갚아야 할 돈이 있고, 목수정이 갚기로 한 날에 돈을 받으러 갔다고 해 보자. 이런 사안에서는 정명훈이 이 돈을 갚을지 말지를 결정할 권리가 없다. 그에게는 정해진 날에 돈을 갚아야 할 의무만 있는 것이다. 반면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그런 의미에서는 의무가 아니다. 그건 사회적 명사라면 자신이 속한 사회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권장사항 정도에 불과하다.

정명훈에게 이런 저런 방법으로 사회를 도울 수 있는 기회 100번이 있을 때, 100번 다 도와야 그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지키는 것일까? 사람마다 기준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다섯 번이나 열 번 정도 도왔다면 그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100번 중 어떤 다섯 번을 도울지 고르는 것은 정명훈의 선택이다.

이처럼 노블리스 오불리주가 적용될 사안은 기본적으로 당사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린이들에게 특히 관심이 있으니 어린이들을 돕는 데 집중하겠다는 식으로 할 수도 있고, 기부금을 내되 반드시 특정 종교단체를 통해서만 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을 돕는 게 바람직하고 어떤 것을 도울 마음이 일어나는지는 전적으로 그의 마음에 달렸다.

물론 100번의 기회가 있을 때 한 번도 돕지 않는다든가 하면 그건 '좀 너무하지 않느냐'라는 평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특정 사안 하나에 대해 거절했다고 해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운운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비판이다.



게다가 소위 진보 진영이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기대어 주장을 전개하는 것도 상당히 기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고귀한 자(noble)는 그에 상응하게 고귀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이 개념은 사회가 엘리트 그룹의 자존심(혹은 허영심)을 인정해 주는 대신, 그들에게 상응하는 봉사를 요구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느 정도 사회적 기여를 하는 사람들을 노블하게 대접해 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 그룹은 본질적으로 평등주의적 성향이 강해 그런 관념을 받아들일 생각이 별로 없다고 판단해 그런 이야길 꺼낸 적이 별로 없는데, 원한다니 노블리스 오블리주 같은 것이 통용되는 전통적 관념의 세계에서 남에게 부탁을 하는 전범이 어떤 것인지 묘사해 보겠다.


삼국지의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인 삼고초려를 보자. 이 이야기에서 유비는 당시 무명의 서생이던 제갈량을 자기 진영에 초빙하기 위해 두 번의 헛걸음을 하고도 직접 다시 찾아가는 성의를 보인다. 그런 광경을 보며 그간 유비에게 충성을 다하느라 죽을 고생을 한 부하들은 입이 잔뜩 튀어나왔음은 물론이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장비다.

“형님은 생각을 잘못하셨소. 그까짓 촌놈이 무슨 크게 어진 선생일리 있습니까. 이제 형님은 가실 필요 없습니다. 그자가 만일 오지 않으면 내가 오랏줄로 결박지어 끌고 오겠습니다.”

유비는 장비를 간신히 뜯어말려 세 번째로 제갈량의 집을 찾아가지만, 제갈량은 낮잠을 잔다며 나와 맞지도 않는다. 장비는 화가 치밀어 관운장을 보고 외친다.

“저 선생이란 것이 어찌 저리도 오만한가. 우리 형님이 댓돌 아래에 저렇듯 공손히 서 계시는데, 높이 자빠져서 자는 체하고 일어나지 않는구나. 둘째 형님은 구경이나 하십시오. 내 이 집 뒤에다 불을 지를 테니 그래도 저것이 일어나나 안 일어나나, 어디 두고 봅시다.”

… 좀 거만하게 굴며 몇 번 튕긴다고 집에다 불을 지르고 오랏줄에 결박지어 제갈량을 끌어왔으면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겠는가? 이를 "만약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면, 예술가적 양심마저 버린 그를 비난하면 된다. 결국 찾아가서 잃을 것은 없다고 판단"(목수정)과 대조해 보기 바란다.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로서 목수정은 장비만도 못하다. 목수정 본인의 주장을 들어보면 다혈질이긴 해도 솔직함이 매력인 장비에게는 없는 음침함이 있기 때문이다.

"화풀이 만으로 이렇게 독한 글, 앞으로 피곤한 일이 아주 많아질 이런 글을 쓸 만큼 에너지가 넘치지 않습니다. 더 큰 용도가 분명히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설픈 입장에서 서명하는 대신, 이렇게 화끈하게 자신을 커밍아웃해 준 정명훈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 하고 있답니다. … 이러한 그의 참모습을 공개하고, 전선을 더 분명히 하고자 했던 것" (목수정)

지금 장난하나? 부탁을 하러 간 것인가 아니면 함정을 파러 간 것인가? 유비가 제갈량이 건방지다고 잡아다 족쳤으면 연의에서 유비는 어떤 사람으로 그려졌겠는가? 이 삼고초려 일화가 그 오랜 세월을 전해지며 그처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그 내용이 감동적일 뿐더러 전통적인 사회관에서 부탁을 하는 이상적인 방법론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선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정명훈은 대한민국에서 막대한 금전을 벌어들이며, 각종 혜택과 후원을 받는 사회적 명사로서 공인의 의무가 있다. 즉 보수주의자들이 항상 강조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있는 것이다. 오블리주는 권리가 아닌 의무를 말한다.

… 정명훈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국립오페라단 합창단의 폐지와 그들의 부당한 해고에 귀기울이고 동참해야할 의무가 있다. "유일한" 국립오페라단 합창단의 폐지는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의 후퇴를 의미하며, "부당한" 경제의 논리에 최소한도로 보장해야할 예술, 나아가 문화의 영역이 굴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문학적, 사회적 의미를 정명훈이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서명을 거절하였다면 이것은 그의 존경받는 예술가로서의 지위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공인으로서의 지위에서 요구되는 "의무의 유기"인 것이다. (가브리엘)


자, 저런 태도를 유비가 취했다면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나는 한 황실의 종친인 유비다. 내가 황상의 밀지를 받잡고 역적 조조를 치기 위해 얼마나 동분서주해 왔는지 그대도 잘 알리라 믿는다. 지금 한조는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대도 글줄이나 읽었다 하면 스스로 한조의 두터운 은혜를 입은 신하임을 잘 알 터. 마땅히 출사해 나를 도와 한실 중흥에 일조하리라 믿는다"라는 편지를 손건이나 미축 같은 별볼일없는 인물들에게 들려 보냈다고 해 보자. 사실 이 편지가 언급한 대의는 후에 제갈량이 평생을 바쳐 추구한 것 그 자체이다. 그럼 제갈량이 유비 밑으로 달려와 일했을 것 같은가?



함흥차사 설화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이성계는 태종 이방원이 보낸 사자를 만나기 싫어서 오는 족족 죽여버리지만, 도저히 그렇게는 대할 수 없는 인물인 무학대사를 보내자 꺾이고야 만다. 전통적인 세계에서 부탁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의 격이나 그들이 몸으로 드러내는 성의는 그 메시지 만큼이나 중요하다. 상대를 감동시켜 움직이려면 상응하는 인물과 태도가 필요한 법이다.

내켜하든 내켜하지 않든 정명훈 정도의 명사(앞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주장한 쪽에서 그가 대단한 명사이니까 그만한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었다)를 꼼짝없이 움직이게 만들기에 목수정은 전혀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 인선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인사가 찾아가면 상대는 내용은 둘째 치고 나를 우습게 본다고 받아들일 뿐이다. 이게 무슨 똥폼이냐고? 지금 이건 '노블'에게 상응하는 의무를 요구하는 데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진보신당에 정명훈을 버선발로 뛰어나오게 할 정도의 거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노회찬이라고 하자. 비서가 "저, 선생님… 노회찬 (전) 의원님께서 선생님을 꼭 뵙고자 서울서 날아오셔서 지금 로비에서 몇 시간 째 기다리고 계십니다"라고 말을 전한다면 어땠을까? 나는 정명훈의 반응은 상당히 달랐을거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그 정도 성의를 보였는데 씹는다는 것은 주류 사회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상대는 상당한 성의를 표시했고 공은 정명훈의 코트에 떨어져 있다. 그리고 여기서 결례를 범하면 정치인 하나를 평생 적으로 삼게 될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삼고초려에서 장비와 관우가 투덜대었다는 점은 앞서 지적한 바 있다. 관우가 조조에게서 받았던 대접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이들은 초일류 무장이며 전국구 명사이다. 유비는 본인도 거물이지만, 이들까지 달고 가서 몇 배로 성의를 보였던 것이다.



진보세력은 기본적으로 평등주의 성향이 강하고 주류사회의 질서나 권위에 대해서 도전적이며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진리를 대변한다고 확신하는 정도가 아주 강하기 때문에 이런 전통적인 개념들을 받아들이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리고 그런 점을 어느 정도 감안해서 사실 사람들은 진보세력(이나 정당)으로부터 대단히 극진한 대접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걸 당연하다거나 고맙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해는 해 주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것을 '노블'에 반대되는 의미에서 '상스럽다'(노블 대접을 안 해준다)고 느끼지만 쪼잔하게 따지기 싫어서 참을 뿐이다.

그러나 그 쪽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들이대면서 그게 구속력있는 의무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하면 황당할 수밖에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부탁을 하는 것이지, 맡겨둔 물건 내놓으라고 따지는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by sonnet | 2009/04/10 20:26 | flame! | 트랙백(5) | 덧글(108)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