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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4   왜 휴전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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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1   the Civil War [16]
왜 휴전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가?


왜 휴전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가?

- 그건 양 측에게 다음 번 공세를 준비할 시간만 준다 -


* 필자: John A. Stevenson
* 출처 : Slate
* 일자: 2014년 2월 17일


전 세계에서 가장 최근에 탄생한 국가인 남수단의 정치지도자들은 자국의 민간인을 대량학살하고 있다. UN에 따르면 교전세력들은 12월 중순 싸움이 시작된 이래 최소 1,000명의 민간인을 살해하고 870,000명이 피난길에 오르게 만들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재빨리 휴전을 요구했다. 캐이틀린 헤이든 대변인의 말에 따르면, “상황을 안정시키고 민간인들에 대한 전면적인 인도적 지원을 보낼 수 있게 즉각적인 적대행위의 중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월 하순, 동아프리카의 지역협력체인 정부간개발기구(IGAD)의 중재에 의해 양 측은 평화회담에 참석하여 휴전에 서명했다. 하지만 그 이래 전투는 더욱 격화되었다. 남수단 정부 측 군대가 사방을 휩쓸고 있고, 반군은 군사표적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며 반격했다. 그리고 이번 주 금요일부터 새로운 회담이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제 나쁜 뉴스와 더 나쁜 뉴스를 이야기해야겠다.

우선 나쁜 뉴스는 이 회담들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으며 양 측 교전세력들은 계속해서 민간인을 대량으로 살해하고 이주케 만들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쁜 뉴스는 이렇다. 휴전이 이런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거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불편한 진실은 특별히 남수단에만 한정된 이야기도 아니다. 휴전은 거의 언제나 분쟁을 악화시키고, 정치적 협상을 지연시키며, 살육을 연장하는데다 싸움이 오랫동안 계속되도록 만든다.

남수단의 민간인 피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는 존경할 만하다. 그러나 신생 국가의 경우, 승자와 패자를 가려내기 위해 외세나 국제기구가 직접 개입하는 한 휴전과 평화 프로세스라는 처방은 민간인의 안전에 있어 전쟁보다도 나쁘다.

1900년 이래 건국되어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174개국을 대상으로 대량살상사례들을 조사한 나의 연구는, 민간인 대량살상이라는 폭력 현상에 대처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국제사회의 개입은 더 큰 폭력과 파괴를 가져올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이유인즉 휴전이란 것이 민간인에 대한 폭력의 원인을 제거하는 데는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양 측은 살육의 중지기간을 다음 번 공격을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외교적, 군사적 지원을 긁어모으는데 쓰게 된다.

‘2012년도 인간 안보 보고서’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04년 사이에 이루어진 휴전 중 62퍼센트가 향후 5년 동안 분쟁의 재개 없이 성공으로 끝났다고 한다. 이렇게 휴전 중 2/3가 성공했다는 사실은 휴전의 유용성을 지지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생 국가에서 발발한 내전의 경우, 휴전은 보통 여러 번의 실패 후에야 성공한다. 그 동안 양 측 교전세력들은 그들의 민간인 적대세력들을 색출해 죽이기 바쁘다.

보스니아 전쟁이 그 좋은 사례다. 이 전쟁은 1995년 12월 데이튼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서 끝이 났다. 하지만 유럽공동체(EC), UN특사, UN중재단, 그리고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독일로 이루어진 소위 5인방 같은 국제사회의 폭넓은 개입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에 있었던 4차례의 휴전과 평화안은 실패했었다. 흥정과 개탄이 오가는 사이, 1995년 11월 최종협상이 시작될 때까지 최소 100,000명의 민간인이 죽고, 20,000명의 여성이 강간당하고, 220만 명이 피난을 갔다. 그리고 남수단은 이러한 국제사회의 자멸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최신 사례다.

그런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

평화를 수립하기 위한 과정(process) 속에서 신생국가의 교전당사자들은 그들이 이번 전쟁을 통해 얻은 성과에 대한 국제사회의 사실상의 승인을 얻는다. 교전당사자들은 또한 이 신생국가의 중요 지역에서 경쟁세력을 제거하려고 시도하면서 자기네 정파가 이 나라에서 유일한 합법 권력임을 주장하는데 도움을 주는 외교적 지원을 끌어 모으는데 귀중한 시간을 번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신생국가의 정부는 통치하기를 원하는 모든 정치 지도자들을 대표하는 정치적 기관에서 합의를 통해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국제사회가 보이는 전형적인 대응은 이 나라의 수도를 통제하고 있는 지도자를 승인해주는 것이다. 이 통제권을 쟁취하기 위해 정치지도자들은 수도를 장악하는데 도움이 될 어떤 이점이라도 없을까 눈에 불을 켠 채, 다른 지도자들과 싸우게 된다.

그리고 만약 어떤 세력이 외부 세력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타낼 수 있다면, 이 세력은 그만큼 국내의 동맹자를 확보하거나 폭넓은 정치적 연합을 형성하고 관리하는 힘든 노력을 기울일 이유가 줄어들게 된다.

까놓고 말하자면, 일단 기존의 정치적 동맹세력이 정부를 운영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파트너가 아니게 되면, 그들은 그냥 앞으로의 통치에 대한 방해물일 뿐이다. 그러고 나면 살육이 시작된다.

남수단에서 벌어진 이번 유혈사태는 대통령 살바 키르와 부통령 리에크 마차르의 제휴가 무너짐에 따라 발생한 것이다. 최근까지 키르와 마차르는 최근까지 '수단인민해방운동(SPLM)'을 통해 공동으로 통치해 왔다. 독립을 쟁취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그들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지난 11월 중순, 키르가 기습적으로 부통령과 장관들, 그리고 당 간부들을 해임하면서 바뀌었다. 몇 주 후 키르는 마차르가 쿠데타를 계획했다는 혐의를 씌웠다.

키르는 남수단 최대의 부족 출신이며, 이 나라의 석유 덕택에 외국의 지원도 부족하지 않다. 오일달러는 남수단 정부수입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게다가 우간다의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 자신의 보안군을 남수단 수도 주바에 파견해 키르의 정권을 보호하고 있으며, 동아프리카 국가 정부들이 두 번째로 큰 부족 출신인 마차르를 격퇴하기 위해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이번 전쟁이 발생한 첫부부터 다양한 아프리카의 중재자들이 회담을 주선해 왔지만, 반군의 주장에 따르면 1월 휴전에도 불구하고 우간다 보안군은 적극적으로 활동 중이라고 한다.

남수단 담당 UN사절단이 보호와 피난 임무를 담당하게 된 이상, 이들이 민간인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UN사절단은 우연히 정치적 망명자를 숨겨주다가 피해를 입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평화 프로세스라는 외형을 통해, 키르와 마차르 양 측에게 아군을 결집시키고 끝장을 보는데 필요한 용병과 외국인 전사들을 고용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허용하게 된다.

국제적인 개입은 쿠바가 앙골라에 파병했던 것처럼 작은 나라에서 오든, 남베트남에 들어갔던 미국처럼 초강대국이 하든, 보스니아 전쟁에 유럽공동체가 개입했던 것처럼 국제기구가 하든, 이 모든 것은 반생산적이었다. 외부세력의 지원은 설령 선의로 한 것이라 하더라도, 교전당사자들이 제휴, 연합, 어렵게 얻어낸 선거 승리 등을 통해 통치하는 대신 싸우는 데 인센티브를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량학살로부터 민간인을 구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추진해볼 수 있는 정책이 하나 있다. 민간인 학살을 통해 권력을 다진 어떤 새로운 정부도 국제적으로 승인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UN이나 WTO에 가입할 수도, 외국으로부터의 원조도, 월드컵이나 올림픽 참석도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이러한 정책은 쉽게 약화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특히 러시아나 중국 같은 강대국들이 주권 보이코트를 무시하기로 하고 이들 국가를 승인하고 지원하는 경우에 그렇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신생국가는 기본적으로 승인되지 못한 국가군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현재 그런 국가들로는, 소말릴랜드 공화국,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남 오세티아 공화국, 트란스니스트리아 몰도바 공화국이 있다. 그 누구도 이런 2등 국가 명단에 오르길 원치 않는다.

남수단의 살육과 파괴는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살인 정부들의 손으로부터 권력을 항구적으로 빼앗아 인명을 구할 쉽고 저렴한 방법이 있는데, 이러한 살육행위를 더욱 나쁘게 만들 프로세스에 노력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




(굵은 글씨 강조는 번역자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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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번역인데, 글 말미에 필자가 내놓은 대안적 정책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은 이탤릭체로 표시를 하였다. (필자는 왜 타이완 -중국 외교의 최고 승리- 을 거론하지 않나 모르겠다.)

어쨌든 이 글을 번역한 이유는 (맨 뒷부분의 처방은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레바논 평화협상이 이런 문제가 있었고, 최근의 시리아 평화협상도 이런 식으로 흘러갈 거라고 본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시리아, 베네수엘라 등에 완전히 묻혀 있는 남수단의 근황에 대한 소개도 약간 겸하고 있다.
by sonnet | 2014/02/24 02:15 | 정치 | 트랙백 | 덧글(39)
동화된 사회와 분절된 사회
최근 통 글을 못 쓰고 있기 때문에 간단히 화두라도 제시하는 의미에서.

한 아랍학자가 부족이나 종교, 종파 혈연 등 다양한 단체에 속하는 정도와 그 단체들 사이에 조화의 범위에 따라 중동 사회를 분류(*)하였다. 가장 동질성이 높은 사회로 이집트를 꼽고 그 다음 단계가 튜니지아, 리비아, 그 다음이 모로코, 알제리, 시리아, 이라크, 그 다음이 예멘, 바레인이며 가장 분절적인 사회로 수단과 레바논을 제시해놓았다. 동화된 사회는 위기 시에 [전체] 공동체나 사회에 충성을 하고 분절된 사회는 소속단체에 충성을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그리고 독립 후 1958년과 1975년의 내전을 통해서 정치와 사회면에서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어나가야 할지를 배운 것이 아니라 레바논은 더욱 분열되어 종파간의 상처의 골만을 키워나갔다.

(*) Halim Barakat, al-mujtama` al-`Arabi fi al-Qarn al-`Ishrin, Bayrut, Markaj Dirasat al-Wahdat al-`Arabiyya, 2000, pp.25-29

문애희. “레바논 종교운동의 현황과 전망”. 『중동종교운동의 이해 1 : 레반트 지역의 종교운동 현황과 전망』. 서울: 한울, 2004. p.130


이번 '아랍의 봄' 사태를 보면서 이 글이 제시하는 서열이 깊은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다. 대중시위를 통한 정권교체가 가장 잘 굴러간 두 나라(튀니지, 이집트)가 사회의 내적 통합도가 가장 높은 나라들이라는 것은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또 그것은 이 목록의 뒤쪽에 들어가는 시리아 예멘 등의 문제는 (현 통치자가 물러나느냐 하는 문제를 제외하고라도) 더 골치아플 것임을 뜻한다.

또 이번 '아랍의 봄'과는 직접 관계는 없지만 파괴적인 내전을 겪은 세 나라 - 레바논, 수단, 이라크 - 에 대한 설명력도 뛰어나다. 수단과 이라크는 최근까지 내전을 벌였고, 레바논은 내전이 끝난지는 좀 되지만 갈등이 해결된 건 하나도 없다. 레바논이 위태위태해 보이면서도 내전이 재발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단지 지난번 내전의 쓴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라고 보면 된다. 아, 예멘도 내전이 밥먹듯이 일어나는 나라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수단/남수단이 앞으로도 한참동안 골치아플거라고 예상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물론 분리독립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긴 아니다. 붙어있으면 끝없이 싸울게 뻔하니 떼어놓는 건 좋은데, 단지 두 개로 쪼갰다고 일이 끝나는 건 아니라는거...
by sonnet | 2011/07/15 14:03 | 정치 | 트랙백 | 덧글(31)
the Civil War
다음은 Egloos people에 일주일째 보이는 어떤 분의 글이다.

언어표현

언제부터인가 6.25를 한국전쟁이라고 많이 부른다.
서구에서 6,25를 표현하던 말이다. (특히 학술계)
이제 타자가 본 우리문제를 우리가 익숙해졌다.

옛날부터 미국 남북전쟁은 남북전쟁이라고 불렀다.
우리도 같이 남북전쟁이라고 부른다.
타자가 본 타자문제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6.25야 말로 우리에게 남북전쟁이고
미국의 남북전쟁이야말로 미국전쟁 아닌가. 적어도 미국 남북전쟁이라 하던가.
도대체 학문적 줏대란 게 어디 있는지..;(콘텐츠...빨리 번역해라..IT 강국이여-_-+)
(이상 법대 권오승 교수님의 말이었다...나의 생각이 아니다..ㅠㅜ)

전쟁이란 반드시 둘 이상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을 모두 아울러 표현한다.
보불전쟁, 청일전쟁 등등...근데 이라크는 이라크 전쟁이다. 미-이 전쟁이 아니다.
이건 미국이 일방적으로 두들겨패는 것보다 이라크가 두들겨 맞는 다는 건 환기시키지만 미국은 빠져있다...(이건 작년 해오름 논술에서...ㅠㅠ)

흠...미국이 한 전쟁은 다 그렇다. 베트남전, 페르시아만전(일명 걸프전;;좀 봐주자 얜)
이라크전..-_-;
그리고 그게 세계 공용 표기가 되는건가...??-_-;
이미 생각의 기반에 주체성이 없는데 무슨 주체적 사고란 말이냐!1(버럭;) 흠..
...

타자가 본 타자의 문제란 Civil War 내지는 american civil war 아닌가?
사실 Bruce Cummings는 한국전쟁과 남북전쟁의 유사성에 착안해 한국전은 내전(civil war)이다라는 관점을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기초적인 사실확인을 등한시하면 뷁멸의 리순신은 금방이다.
by sonnet | 2006/10/11 13:53 | flame!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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