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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김상만
2007/06/18   선거 후 파티 [13]
선거 후 파티
다음은 36년 전인 1971년 7월 9일, 윌리엄 포터 주한 미 대사가 국무부에 보고한 기밀(해제) 전문인데, 한국 정치에 있어서의 미국 대사의 영향력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뒤집어 말하면 미국 대사가 한국 정치가 돌아가는 얼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오래 된 사건이지만 이 모임의 멤버였던 YS와 DJ(그리고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동세대라고 할 수 있는 JP) 등은 바로 얼마전까지도 현역으로 한국 정치를 주무른 실력자들인 만큼, 사실 그렇게 옛날 이야기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얼마 전에 소개했던 릴리 대사의 회고와 연결해서 생각해 보셔도 재미있을 법 하다. 87년은 대충 현재와 이 사건이 있었던 71년의 중간쯤 되는 시기인데, 그때 미국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선거 후 파티: 또는 신문발행인이 한국 같은 풍토에서 살아남는 지름길

“얼마 전 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동아일보』 편집국장의 고뇌에 대해 한번 언급한 적이 있다. 『동아일보』의 선거 보도에 대해 불만을 품은 학생들과 중앙정보부가 동시에 『동아일보』를 공격해 댔을 때의 일이다. 물론 학생들의 위협이 덜하긴 했지만, 『동아일보』의 발행인 집안이 고려대학교에 지원금을 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학생들이 『동아일보』를 위협했던 것은 보다 공정하고 균형 잡힌 보도를 해달라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동아일보』는 공정 보도에 가장 근접해 있는 언론이며, 따라서 김상만 발행인이 선거 이후 중앙정보부와 빚게 될지도 모를 마찰을 사전에 방지해보려는 것은 충분히 수긍과 동정이 가는 일이다.

선거가 끝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발행인이 편집국장을 통해 내게 그의 걱정거리를 전해 왔다. 정부와 대립한 것 때문에 선임 편집위원을 교체하라는 압력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내가 의아해 하자,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으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었다면서 예를 들어주었다. 김상만 발행인의 메시지를 내게 전달해 준 바로 그 편집국장이 사실은 이보다 덜 심각한 이유였는데도 2년간이나 런던에 쫓겨나가 있었다는 것이다. 발행인은 이런 일로 내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가 꼭 알고 싶어하는 것은, 선거도 끝나고 해서 서울 근교에 있는 발행인 별장에서 작은 모임을 마련했는데 혹시 내가 참석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김상만 사장은 그 모임에 몇몇 정치인들을 초대하겠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이 오는가? 내가 궁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편집국장이 명단을 꺼내놓았다. 이후락, 정일권, 김성곤, 김대중, 이철승, 김영삼, 『동아일보』 선임 편집자 2명.

아하,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다. 멋진 파티가 되겠는데. 당신 보스는 정말 기가 막힌 사람이다. 국회가 열리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서로 상대방 선거 운동을 비난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동아일보』의 보도) 이 초대를 받아들이리라는 것을 발행인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단 말인가? 편집국장은 내가 이해해 줄 것 같아 솔직하게 말하겠다면서, 다른 손님들에게는 내가 초대하는 것으로 알리겠으며 각자에게 다른 손님들 명단도 다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단정적으로 말하기를 ‘한국인을 이해하신다면’ 이 파티의 참석률은 분명히 100%일 것이라고 했다. 나는 김대중 씨는 자동차 사고 후에 아직도 병원에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편집국장은 그도 올 것이라고 선언하듯 말하면서, 이후락 씨가 온다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중앙정보부의 부장님이신데,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있나요? 그럼요, 편집국장의 대답이었다. 그러면, 이후락 씨가 전에도 김 사장의 별장에 갔었나요?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올 겁니다. 그런 걸 좋아할 겁니다. 부인들도 초대하나요? 물론 아니지요. 한국 남자들은 부인이 옆에 잇으면 마음놓고 쉬지를 못합니다. 어어? 그렇다면 이 소모임은 결국 ‘미국’ 대사가 만드는 게 되는 것이로군요? 그렇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만약 이후락 씨가 참석하겠다고 한다면, 그건 바로 선거기간에 당신이 쓴 사설 때문에 『동아일보』가 매질을 당하지는 않게 된다는 걸 뜻하는군요. 저희 사장님 생각이 바로 그겁니다. 나는 대답했다. 좋습니다, 가지요.

나는 『동아일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선 나는 김상만 발행인을 좋아했고 또 하나는 한국인의 심리전이 펼쳐지는 모험의 현장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참석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파티는 취소되는 것인가요? 전부 오겠다고 할 겁니다. 재미있을 거예요.

편집국장은 이틀 후 내 사무실에 다시 왔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잘 되었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있는 김대중 씨나 이후락 씨도 다 참석한다는 겁니까? 물론이지요. 다른 참석자의 명단을 보고 나더니 단 한사람도 참석하지 않겠다는 말은 안 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발행인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부인들은 초대하지 않는다고 했지요? 부인들은 아닙니다. 그 대신, 여자들은 올 겁니다. 호, 여자라? 그렇다면 산기슭에서 기생들을 희롱하며 노는 것이란 말인가? 아니요, 기생은 아닙니다. 김상만 사장이 텔레비전 여배우들을 좋아하지요. 하지만 그 여자들은 파티에서 접대만 할 겁니다. 몇 시에 시작하나요? 오후 다섯 시부터입니다.
자, 이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김상만 발행인이 이후락 씨를 잠깐 어리둥절하게 만들기 위해 정교하게 짜여진 한국판 시나리오에 내가 출연하는 것이다. 결과? 누가 알겠는가! 어쨌든 좋다. 다들 참석하게만 된다면 흥미진진할 것이다.

6월 2일 편집국장과 나는 덕소로 향했다. 덕소는 발행인의 별장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서울 남쪽의 산자락을 50분 가량 달려서 한 기차역 앞에 섰다. 아주 평범한 간이역이었다. 역 앞에는 놀랍게도 미니스커트 차림을 한 여덟 명의 젊은 아가씨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편집국장에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여기서 파티를 하는 겁니까? 저 여자들은 누구인가요? 나는 그들이 발행인의 별장에 갈 차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차 문을 잠그면서 저 여자들을 우리 차에 태우면 안 된다고 말했다. ‘갑시다.’

그때 『동아일보』의 선임 편집위원인 미스터 리가 역 안에서 더 많은 아가씨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는 차로 다가오더니 이 아가씨들을 태우고 온 미니 버스가 고장이 나서 꼼짝 못하고 있으니 아가씨들을 좀 태워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편집국장에게 안 된다고 거절했다. 파티 장소에 카메라 기자들이 있을 텐데, 『동아일보』가 아가씨들을 (역에) 그냥 두고 왔다고 비난을 받든 말든 어쨌든 내가 같이 별장에 도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편집국장은 그렇게 하겠다면서 별장에 도착해 위스키를 좀 마시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말했다. 도대체 아가씨가 몇 명이나 이 잔치에 동원되었느냐고 묻자, 편집국장은 정확한 인원은 모르겠지만 꽤 많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미니스커트 아가씨들과 동승을 거절한 것은 잘 한 일이었다. 5분여 후 산자락을 따라 잘 다듬어진 잔디밭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카메라맨들이 사진을 찍어댔다. 그날 행사의 초청자인 김 발행인과 악수를 나누자마자 편집국장은 대사가 역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는 아가씨들과 동승하길 거절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발행인과 정일권·이후락·김성곤·김영삼 씨 모두가 걱정을 하면서 운전기사들에게 빨리 가서 아가씨들을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다채롭고 흥미로운 세 시간이었다. 날씨도 좋았고, 아담하면서 보석 같은 한국식 집도 정다웠으며 접대 또한 융숭했다. 박 대통령의 측근 참모들을 비롯해 그곳에 참석한 김대중 씨 등은 불과 얼마 전의 선거에서 서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자제해가며 술을 한잔씩 나누고 화기애애하게 한자리에서 어울렸다. 그런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내게 무척 유익한 기회였다. 그들은 정치 이야기를 나누었고, 몇몇씩 모여 그룹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파티 도중에 잠시 동안이기는 했지만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경호원들이 기자들을 쫓아내는 자그마한 소란이 있었다. 그들은 『중앙일보』 기자들이었다. 평소 지시에 따라 경호원들은 기자들에게 주먹세례를 퍼부으면서 발길질을 해댔고, 기자들은 빈 포도주 병으로 위협을 받고 나서야 언덕 아래에 쫓겨 내려갔다. 손님들은 계속해서 파티를 즐겼다. 이튿날 『중앙일보』는 파티가 끝난 뒤 허섭쓰레기만 남은 별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이날의 파티 모임을 헤드라인으로 장식했다.

밤 9시, 김상만 발행인과 이후락 씨는 서로 얼싸안았다. 나는 이 모습을 지켜본 다음 참석자들에게 전원의 이 목가적인 풍경과 이별할 때가 되었으니 나는 이만 자리를 뜨겠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듣더니 참석자들은 모두 당황해 했다. 이 산 언덕 위의 어둠 속에 자기들만 남겨놓겠다는 것이냐고 농을 하면서 가지 말라고 나를 붙들었다.

정일권 전 총리가 한국식 해결책을 제시했다.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대사의 말에는 동의하지만, 만약 대사가 혼자 집으로 돌아간다면 여기 모인 사람들은 이 저녁을 즐기기가 정치적으로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당 사람들도 모두 이에 동의했다. 정일권 총리는 논리적이고 건전한 유일한 해결책은 우리가 모두가 함께 유명한 요정인 청운각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고 말했으나 그들은 같이 가자고 강권했다. 나는 결국 품위를 지키는 선에서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이후락 부장은 고맙다면서 ‘이후 진행될 파티는 포터의 평화 파티’라고 선언(?) 했다.

1시간 10분 후 나는 기생집에 와 있었다. 장소는 청운각이 아니라 이후락 부장의 사무실 근처에 있는 다른 요정이었다. 별장에 같이 있었던 아가씨들은 우리와 동행하지 않았다. 사실은 나중에야 몇몇 사람들이 아가씨들 얘기를 해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아가씨들은 아무런 교통편도 없이 그냥 별장에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가씨들 문제 때문에 우리 파티가 방해를 받지는 않았다. 다음날 아침 『동아일보』의 신문 배달 트럭이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이튿날 『중앙일보』는 별장의 모임이 매우 중요한 것이었으며, 성숙한 한국 정치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썼다. 나도 이 말에는 100% 동감이다.



첨부: 중앙일보 보도 기사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후 처음으로 여야의 정치 지도자들이 모인 이날 회동은 6월 5일 미 의회 증언을 위해 워싱턴으로 가는 포터 주한 미 대사의 환송식을 위해 한 일간지 발행인이 덕소에 있는 자신의 빌라에서 주선한 것이다.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이날 모임은 오후 6시에 시작하여 오후 8시 30분에 끝이 났으며, 새 임기의 국회 운영이나 여야 화해를 위한 심각한 얘기가 오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한 참석자는 이런 류의 모임은 솔직하고 흉금을 털어놓는 대화의 통로를 넓히는 기회가 되어야 하며, 이런 의미에서 이번 모임은 여야간의 향후 관계를 증진시키는 데 괄목할 만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은 참석자 전원이 가까운 참모들이나 동료들조차 모르는 가운데 비밀리에 추진된 회동으로, 모임에서 오간 대화 내용의 정확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김 발행인: 이 모임을 주선한 목적은 본국에 가는 포터 대사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한 가지 목적에서입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포터 대사: 여야 지도자들과 함께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김성곤: 제 얼굴은 원래 까맣습니다만, 얼굴들이 타신 걸 보니 선거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짐작이 갑니다.
김대중: 김 의장께서는 선거구에 자주 가시지도 않았으면서 당선이 되셨는데, 무슨 비결이 있으십니까?
김성곤: 저야 현역으로 계속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그렇다 치고, 이철승 씨는 현역에서 10년이나 물러나 있었는데도 큰 표 차이로 당선이 되셨으니, 이거야말로 오래된 비법을 다시 살려 내셨다는 걸 말하는 것 아닙니까?
김영삼: 저 개인적으로는 이효상 국회의장이 낙선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아마 지역주의를 거론하신 것이 악재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김성곤: (사진을 찍으면서) 김대중 씨 손에 붕대가 감겨 있는 걸 보면 누구나 오늘이 몇일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굳이 사진에 날짜를 집어넣을 필요는 없겠습니다(모두 웃음).
김 발행인: 국민들이 오늘 모임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우리 정치에서도 오래 지속되기를 바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후락: 저는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오늘 모임에 대해 한마디 할 것이 있다면, 음식이 아주 맛있다는 겁니다.
김대중: 오늘은 모든 것이 신선해 보입니다. 특히 이 시골 풍경이 좋습니다.
김성곤: 자 신선한 정치를 위해 건배합시다.
친밀감 넘치는 대화는 오후 8시까지 계속되었고, 이후 모두 서울 시내로 떠났다. 2차 모임은 시내 모처에서 마련되었는데, 신민당 인사들은 정중히 거절하고 각자 행선지로 향했다. (틀렸음) 선거 후 여야 지도자들의 처음 만남인 이날의 회동을 누가 제안했는지가 흥미로운 점이나, 김 발행인이 먼저 결정한 것인지 혹은 포터 대사가 초청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자문을 해서 이루어진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김종필 씨도 초대를 받긴 했으나 이날 모임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는 이흥환, 『미국 비밀 문서로 본 한국 현대사 35장면』, 삼인, pp.186-192 이다.

참고로 인터넷 상의 다른 곳에서도 이 텍스트의 번역본을 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신동아, 오마이뉴스(1), 오마이뉴스(2) 등.
by sonnet | 2007/06/18 15:54 | 정치 | 트랙백(1)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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