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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급변사태
2007/11/25   개념계획(CONPLAN) 5029 [26]
개념계획(CONPLAN) 5029
북한에 급변사태, 즉 정변이나 사회붕괴 등이 일어나는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한미연합군의 군사계획 중 하나로 개념계획(CONPLAN) 5029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지난 몇 년간 한미간, 그리고 한국 군부와 정치권 사이에 미묘한 갈등의 요소가 되기도 했다.

개념계획(Concept Plan)은 말 그대로 다소 추상적이고 개괄적인 성격의 계획을 말한다. 흔히 ‘컨플랜(CONPLAN)’이라 불린다. 한·미 양국군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정권 붕괴 등 급변사태에 대비, 군사적인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인 1999년 ‘개념계획 5029-99’를 완성했다.

그러나 개념계획에는 병력동원이라든지 부대배치 계획 등 구체적인 사안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2003년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개념계획을 구체화, 작전계획화(化)하기로 합의했었다.

유용원, 개념계획(작전계획) 5개 시나리오의 전략지침상 변화, 조선일보 2006년 3월 6일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개념계획 5029에 대한 한·미 양국 국방장관의 전략지침 합의는 그동안 양국 간 이견과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전략 지침은 5029 구체화작업을 이러이러한 틀 내에서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라는 지침을 담은 것이다. 북한 정권 붕괴를 상정한 개념계획 5029는 북한 김정일 정권 입장에선 용납하기 힘든 사안이었고, 북한을 많이 의식해온 노무현(盧武鉉) 정부 입장에서도 매우 껄끄러운 사안이었다. 반면 미국측은 북한 정권 붕괴 등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개념계획을 보다 구체화해 실전 상황에 곧바로 활용될 수 있는 작전계획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지난 10월 북한의 핵실험 실시 이후 국제 사회의 대북(對北) 제재로 북한 급변사태가 머지않은 시기에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미측이 개념계획 5029의 작전계획화(化)를 우리측에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미측은 작전계획화를 요구하지 않아 지난해 한·미 간에 합의된 범위 내에서 전략지침이 만들어지게 됐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한·미 간에 개념계획 5029의 작전계획화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 2003년 말. 당시만 해도 한·미 군 수뇌 간에 공감대가 형성, 양국 군당국 간에 작전계획 5029-05 작성이 추진됐다. 그러나 지난해 초 ‘주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문제 제기에 따라 제동이 걸린 뒤 지금까지 구체화작업이 지연된 것이다.

양국은 지난해 양국 정상회담과 국방장관회담 등을 통해 “개념계획 5029를 구체화하되 작전계획으로까지 발전시키지는 않는다. 양국 국방장관 간에 ‘전략지침’에 합의한 뒤 이 전략지침에 따라 구체화작업을 추진한다”고 합의했다. 그 뒤 양국 국방부와 한국 합동참모본부, 한미연합사, 주한미군 실무자들은 지난해 말까지 전략지침에 합의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계속 지연됐다. 여기엔 NSC 등 우리 정부 일각의 제동과 행정상 실수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유용원, 북한 유사시 핵무기등 유출 막는게 핵심, 조선일보, 2006년 12월 2일

이 건에 관련해서 한국측 기사들을 보면 예상외로 미국이 한국측에게 양보를 했다는 관점이 많은 것 같다. 즉 미국측이 개념계획 5029의 작전계획화(化)를 우리측에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 했지만 예상과 달리 미측은 작전계획화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작전계획을 세워두면 북한을 자극하고 미국의 세계전략에 포섭되어 한국 정부의 선택의 자유가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본 청와대 NSC의 반발이 미국에게 먹혀서 미국이 한발짝 물러선 것이 된다. 오 한국 외교의 승리로군.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러나 이 건에는 미군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계획 수립 체제에 대한 급진적인 변혁이 맞물려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즉 개념계획(CONPLAN)이 미국의 전쟁준비 과정에서 갖는 위상이 크게 변했기 때문에 더 이상 미국은 한국에게 작전계획을 세우자고 압박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 기사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2002년 6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그의 첫번째 공식 "비상계획수립지침" (Contingency Planning Guidance)을 하달했다. 이는 구체적으로 미군이 무엇을 계획할 지에 대해 9/11 이후 새로 나온 최고위 지침 문서였다.

이 지침은 2002년 초에 부시 대통령의 서명을 거쳤으며, 테러와의 전쟁을 해외에서 군 사령부들의 최우선 임무로 규정하는 한편, 각 지역 사령부가 적대적 국가에 관련된 구체적인 비상 계획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뒤이은 비상계획수립지침(CPG) 2003년판에서는 유연성과 신속성에 대한 럼스펠드의 집착을 담는 한편 미래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2003년 지침은 앞으로 수립될 펜타곤의 비상계획들의 기획과 작성에 관해 상당한 변화를 규정했다. 여전히 기존의 작전계획(이미 완성된 작전계획(OPLAN), 개념계획(CONPLAN), 또는 "기능별 계획"(functional plan)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럼스펠드는 더 유연한 일련의 "적응형 계획"(adaptive plan) - 때때로 살아있는 계획(living plan)으로도 불리는 - 으로 전환할 것을 지시했다.

적응형 계획 체제 하에서, 새로운 계획들은 비상사태의 필요에 따라 상세도의 차이가 있는 네 단계로 나뉘게 된다. 이들은 레벨 1에서 레벨 4 계획이라고 불린다.

1레벨 계획은 작전의 세부를 가장 적게 다루고 4레벨 계획은 가장 상세하다. 1,2 레벨에서 계획은 합참의장이 "경계 명령"을 내렸을 때 비상사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더 상세한 "위기 대응" 계획을 작성할 수 있게 하는 내용과 일련의 옵션을 담고 있다. 이들은 더 빨리 더 유연하게 "진짜" 계획으로 전환될 수 있다. 레벨 1,2 계획은 덜 중요하거나 우선도가 낮은 사안들에 대해 적용된다.

더 상세한 3, 4 레벨 계획은 군으로 하여금 진짜 비상사태들에 대한 계획을 세울 뿐 아니라 이를 실행하여 위기시에 더 빠르게 전쟁에 뛰어들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계획들은 완전한 기지계획과 일련의 내포된 옵션들이 포함된다. 3레벨 계획은 과거의 개념계획(CONPLAN)과 대부분 유사하다. 여기에는 기본계획과 일련의 완성된 부록(전문적으로 말하면 부속서 A, B, C, D, J, K, S, V, Z 등)이 포함된다. 3레벨 계획이 완료되었을 때 전투사령관은 전력, 병참, 수송의 가용성과 준비태세를 고려한 작전의 실행가능성을 평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국방장관은 결과의 변화에 대해 수시로 보고를 받게 된다.

예전, 즉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작전계획 수립과정은 너무나 융통성이 없고 틀에 박힌 것이었다. 대부분의 노력은 전력배치 데이터베이스와 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병참구조를 꼼꼼히 작성하는데 기울여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작전 그 자체, 즉, 전략과 작전적 초점의 상세는 뒷전으로 밀렸다. 예를 들어 이라크 전쟁의 경우, 2001-2002년에 사담 후세인과 싸우기 위한 작전계획(OPLAN-1003)이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2003년 3월 시행된 실제 작전(OPLAN 1003V) - 이라크 도시들을 건너뛰고 바그다드로 직행해 전력을 다해 빠른 정권교체를 달성한다 - 는 9/11 테러가 부시 행정부의 세계전략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그 시점에 존재하던 완성된 작전계획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럼스펠드의 새로운 유연한 계획수립체제 하에서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완성된 계획을 준비하는데 더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초점은 더 유연한 (이라고 쓰고 빠르게라고 읽음) 부분, 즉 작전의 "개념"과 우발적 사건들을 예측하는 데로 옮겨졌다.

이는 국방부는 온갖 종류의 일에 대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휘트먼 대변인의 말처럼, 예전부터 해오던 방법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은 지금까지 해왔던 "완성된" 계획을 만드는 과정과 그 결과물은 너무 융통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최고지도부에 군의 조언을 우습게 아는 총잡이가 잔뜩 있을 경우에는.

국방부는 이제 더 빠르고 더 "유연하게" 전쟁에 뛰어들 수 있는 시스템을 갖게 되었다.

… 나는 병참과 전쟁준비에 관련된 "낡은" 잡무들부터의 이탈이, 특히 럼스펠드 스타일의 전쟁, 즉 가볍고 빠르고 현실세계의 요구사항들에 눈을 감아버리는 전쟁을 추진하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을까 궁금해하고 있다.

Arkin, William M., Rumsfeld's Fast Iran Planning, 워싱턴포스트 기명 블로그, 2006년 4월 18일

전통적으로 미군의 작전계획의 핵심은 병력전개나 병참 같은 노가다성이 짙은 전쟁의 하부구조를 열심히 준비해 두는 것이었는데, 럼스펠드는 그런 관료적인 부분을 평가절하하는 한편 전쟁의 목표나 시나리오 같은 추상적인 상부구조에 집중하도록 시스템을 바꾼 것이다.
즉 럼스펠드가 만든 새 시스템을 따르자면 기본적으로 개념계획만 제대로 짜여져 있다면 원할 때 신속히 전쟁에 뛰어들 수 있어야 마땅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기존 "관료 노가다형" 작전계획에 대한 경시는 이라크전 당시 럼스펠드 자신의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Rumsfeld was under instructions from President Bush to oversee a massive deployment of hundreds of thousands of U.S. forces to the region around Iraq without telegraphing to the world and Saddam Hussein that war was inevitable. The president was still engaged in United Nations diplomacy. So Rumsfeld personally took charge of the mobilization and deployment system called the TPFDD (pronounced TIP-fid) for Time-Phased Force and Deployment Data. He believed he had lifted a big rock and found a system that was totally screwed up. Soon he was personally deciding which units would deploy and when. It was an extraordinary degree of micromanagement that frustrated and enraged the military.

Woodward, Bob, State of Denial: Bush at War, Part III, Simon & Schuster, 2006, pp.103-104

옛날식 작전계획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시차별 병력전개제원(TPFDD)을 장관이 직접 개입해 주물렀던 것이다.

그럼 럼스펠드가 퇴임하고, 신임 게이츠 장관이 들어섰으니 이런 변화는 원점으로 돌아갈까? 그것은 자신있게 말하기 힘들다. 럼스펠드는 국방장관으로서 재임기간도 길고, 미래의 미군이라는 원대한 목표에 많은 투자를 한 인물이었다. 반면 게이츠는 임기가 부시 퇴임까지로 한정되어 있고, 이라크전 뒷처리에 매달려야 하는 등 계투요원으로서의 한계 때문에 국방개혁 분야에는 그다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럼스펠드가 남긴 유산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미군의 계획수립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나는 북한 급변사태에 대해 개념계획만 세우고, 작전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선택이 한국에게 유리하기 보다는 더 불리하게 작용할 거라고 본다. 작전계획의 미수립은 미국의 발목을 잡지도 못하면서, 미국이 한층 더 엉성한 계획을 갖고 분쟁에 뛰어들게 만들 가능성만 키웠기 때문이다.
by sonnet | 2007/11/25 08:12 | 정치 | 트랙백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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