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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근본주의
2011/05/23   오늘의 한마디(Hubert Schleichert) [25]
오늘의 한마디(Hubert Schleichert)
근래 근본주의란 말을 다룰 일이 자꾸 생겨서 예전에 봐 두었던 것 중에 인상깊었던 설명 하나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근본주의란 실용적으로 부드러워진 정통이 겪는 양심의 가책이다.

- Hubert Schleiche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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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너무 자주 필요해서 유감이긴 하지만, ‘근본주의’라는 말은 사실 아주 적절한 용어다. 근본주의를, 본색은 양처럼 순하고 절대적으로 착한 어떤 이데올로기나 종교가 변질되었거나 위조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근본주의자란 성직에 몸담고 있는 관료들의 것과 똑같은 교의를 좀 더 철저하고 일관되게 따르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데올로기의 기초로, 원래의 성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교조체계의 말로 하는 급진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근본주의가 무엇이 다른가. 마약이 병에 다시 들어간 것뿐이다. 더구나 이것은 어떤 점에서는 더 솔직한 것이기도 하다. 음료의 내용물이 상표의 내용과 다시 일치되었으니 말이다(근본주의적인 철저함은 실제로는 언제나 부분적으로만 나타나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원래 불관용적인 교조체계에서는 끊임없이 싸움과 공격과 전쟁이 터져 나오게 되어 있다. 교조체제라는 것이 워낙 불관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데올로기가 설사 일시적으로 평화적인 태도를 취할지라도, 만약 이론의 저 깊은 한구석에 숨겨져 있는 불관용적이고 비인간적인 요소를 용인한다면, 결코 그 이데올로기를 믿어선 안 된다. 그것이 기독교 이데올로기건, 유대교 이데올로기건, 이슬람이나 마르크스주의, 무신론, 인종주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건, 그 밖의 다른 그 무엇이건 간에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는 언제라도 근본주의가 터져 나올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근본주의는 실용적으로 부드러워진 정통이 겪는 양심의 가책이다. 어떤 불관용적인 이데올로기가 느슨하고 불철저한 적용을 통해 현실 속에서 견딜 만한 것이 될 수는 있지만, 때가 되면 근본주의에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성경에 그런 말이 나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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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호적인 실천이 ‘엄숙주의적인’ 실천보다 더 편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불관용적인 교조가 배후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한 결코 안전한 미래를 보장한다고 할 수는 없다. 계몽가들은 언제나 바로 이 점을 지적해야 하며, 가능한 한 적나라하게 그 교조를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어떤 교회나 모두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결국에는 그 교조를 받아들이도록,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교조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신자는 어느 세대에나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단을 화형시키는] 장작더미에 불이 피어오르느냐 마느냐가 교의 그 자체보다는 잘 짜여진 위계질서의 사려깊음에 달려 있는 이상, 계몽가는 결코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권력관계가 달라지면, 굳이 교의를 바꾸지 않고도 언제든지 장작더미에 불을 지필 수 있기 때문이다. 불관용 이론의 무기고는 전과 다름없이 건재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계몽가는 그럴 시간이 아직 있을 때, 불관용을 공격하고, 폭로하고, 무너뜨려야 한다. 그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해당 교의를 철저히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결코 콜라에서 실제로 코카를 뺐다는 데 현혹되지 않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너그럽지 않으면서 현실에서는 부드럽고 우호적인 교리를 따르는 사람을 위선자나 사기꾼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평화적인 태도는 코카콜라에서 코카가 빠진 사실을 모른 데서 비롯된다. 비판가는 이와 반대로 도그마의 콜라병에 적혀 있는 표시를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일시적으로는 돈키호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음 근본주의가 얼마나 빨리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근본주의가 일단 도래하면, 어떤 논증도 더 이상 쓸모가 없다.

Schleichert, Hubert., Wie man mit Fundamentalisten diskutiert, ohne den Verstand zu verlieren: Anleitung zum subversiven Denken, München:C.H.Beck, 2001 (최훈 역,『꼴통들과 뚜껑 안 열리고 토론하는 법』, 뿌리와 이파리, 2003, pp.186-187, 184)
by sonnet | 2011/05/23 08:07 | 한마디 | 트랙백 | 핑백(2) | 덧글(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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