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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국민국가
2020/10/06   국민국가에 소속된 개인의 사과 [8]
2014/07/22   아프리카의 세 가지 미래(George Friedman) [27]
국민국가에 소속된 개인의 사과
우치다 그럴 겁니다. 세대에 따라서는 ‘왜 우리가 한국에 사죄해야만 하는가’라는 불편한 감정을 갖기도 하지요. 내가 한 일도 아닌데 전쟁의 책임을 추궁당해야 하느냐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테니까요. 그런데 국민국가는 일종의 연속성을 갖기 마련이고 연속성이 없으면 지탱할 수 없습니다. “전쟁을 한 놈들이 나쁘지, 나는 관계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국민국가는 환상의 차원에서 죽은 자들과도 공동체를 형성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나는 한국에서 전쟁 책임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쪽에서 정중하게 사죄하면 대부분의 경우 “아닙니다. 당신이 한국을 점령하거나 전쟁을 한 것은 아닙니다”라는 말로 이야기가 끝납니다. 이쪽에서 사죄를 했는데 “이봐, 그렇다면 성의를 보여야지, 성의를!”이라고, 마치 야쿠자처럼 말하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사죄하면 되는 일이죠, 사과란 상대에게 이쪽의 사죄 의사가 전달될지 아닐지의 문제이지, 무슨 말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단순한 언어 차원의 이야기는 아니지요. 실제로 ‘미안한’ 마음이 있으면 어떤 표현을 사용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구 식민지인에게 구 종주국민은 “수탈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합니다. 같은 국민인 한, 죽은 자들이 저지른 죄를 떠안을 의무가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나 자신이 죽은 자들의 핏줄로 이어졌기에 죽은 자가 저지른 죄나 짊어진 빚은 ‘나의 채무’입니다.

内田樹, 白井聡. 2015. 『日本戦後史論』. 東京: 徳間書店.
(정선태 역, 2019. 『사쿠라 진다 : 전후 70년, 현대 일본을 말하다』. 1판 용인: 우주소년. p.229-230)


이 정도만 하면 양심적인 지식인의 반열일 듯.

그건 그렇고 '야쿠자'를 안 만났다면 운이 매우매우 좋았다고 생각함.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이 잘못했다는 자백으로서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힘겨루기와, 거기서 이긴 승자가 전과확대를 위한 다굴빵을 펼치는 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느낌.

사과가 사과를 하는 개인의 "도덕적 회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인 승패의 인정으로 변질되면서 악질적인 세상이 펼쳐지고 있으며, 어떻게든 전자의 성격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함.
by sonnet | 2020/10/06 12:33 | 정치 | 트랙백 | 덧글(8)
아프리카의 세 가지 미래(George Friedman)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대해 미국이 고려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세 가지다. 첫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 세계적 구호활동의 길이다. 그러나 오늘날 아프리카의 공공생활을 그토록 많이 지배하고 있는 국제원조체계가 지속가능한 영향을 줄 가능성은 없다. 구호활동은 아프리카의 경계선이 지닌 비합리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적인 문제를 개선하는데 그칠 것이며, 최악의 경우 수혜자와 기여자 둘 모두의 부패를 악화시키는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후자의 경우가 더 자주 일어난다. 사실 아프리카에 제공되는 원조가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두 번째 가능성은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줄 외부 제국주의의 재등장이다. 그러나 이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랍과 유럽 제국주의가 빨리 발을 뺀 이유는 아프리카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경제생산은 가공되지 않은 원료 수출에 집중되어 있는데, 오늘날은 이를 얻기 위해 군대나 식민지 관리자를 파견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한 방법이 존재한다. 기존의 정부나 군벌들과 거래하는 기업들은 지배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도 훨씬 낮은 비용을 투여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오늘날의 기업 제국주의는 외국 세력이 현지에 들어가 최대한 낮은 가격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낸 다음, 일이 끝나면 떠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세 번째이자 가장 확률이 높은 가능성은, 앞으로 몇 세대 동안 전쟁이 지속된 후 그로부터 각각의 민족들이 합법적인 국가로 재형성되는 것이다. 냉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국가는 충돌을 통해 만들어지며 인간 역시 전쟁이란 경험을 통해 운명공동체를 의식하게 된다. 이것은 건국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사 전개에도 적용된다. 미국과 독일, 사우디아라비아는 자신들을 형성한 전투를 치르면서 국가의 기틀을 잡아나갔다. 전쟁은 꼭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이 가진 비극성은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공동체가 전쟁의 비인간성에서 기원한다는 데 있다.

아프리카에서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설령 서구의 제국주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전쟁은 일어났을 것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전쟁은 제국주의가 개입하던 당시에도 이미 진행 중이었다. 국가 건설은 세계은행이 원조회의를 하거나 외국의 공병대가 학교를 세워준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피로서 세워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지도는 다시 그려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회의실에 앉아 있는 사려 깊고 배려심 많은 위원회가 할 일은 아니다.

Friedman, George. The Next Decade: Where We’ve Been ... and Where We’re Going. 1st Ed. Doubleday, 2011.
(김홍래 역. 『넥스트 디케이드 : 역사상 가장 중요한 10년이 시작되었다』. 쌤앤파커스, 2011. pp.341-342)


적어도 1,2번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은 확실함. 3번은 가능성이 열려 있음.
by sonnet | 2014/07/22 19:29 | 정치 | 트랙백 | 덧글(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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