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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공자
2008/04/15   오늘의 한마디(Jefferson 외) [16]
2008/03/18   클래스체인지 [14]
2006/10/08   돌아온 진시황 [6]
2005/06/13   책 릴레이 [14]
오늘의 한마디(Jefferson 외)

작은 혁명이 이따금씩 일어나는 건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자유의 나무는 때때로 애국자와 폭군의 피를 보충해야만 합니다.

- Thomas Jefferson(1743-1826) -


평화시 인민정부의 토대가 덕성이라면, 혁명시 인민정부의 토대는 덕성과 공포입니다. 공포 없는 덕성은 무기력한 것이며, 덕성 없는 공포는 살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 Maximilien Robespierre(1758-1794) -


…… 苛政猛於虎也

- 禮記, 檀弓 -
by sonnet | 2008/04/15 14:26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16)
클래스체인지
문묘에 봉사된 공자에게 붙여진 칭호(封號)의 변천과정입니다.
클래스체인지를 할 때마다 스텟을 어떻게 찍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봉호 왕조 황제 연월
尼父 春秋 魯 哀公 16년 4월
褒成尼公 平帝 元始 원년 5월(AD1년)
文聖尼公 北魏 文帝 太和 16년 2월 丁未(492)
鄒國公 北周 宣帝 大象 2년 3월 丁亥(580)
先師 尼父 文帝 開皇
宣父 太宗 貞觀 11년(630)
太師 高宗 乾封 원년 정월 辛卯(666)
隆道公 中宗 嗣聖 7년 10월(690)
文宣王 玄宗 開元 27년(739)
元聖文宣王 眞宗 大中 祥符 원년 11월 戊午(1008)
至聖文宣王 眞宗 大中 祥符 5년 12월 壬申(1012)
大成至聖文宣王 武宗 大德 11년 7월 辛巳(1307)
至聖先師孔子 世宗 嘉靖 9년(1530)
大成至聖文宣先師孔子 世祖 順治 2년(1645)
by sonnet | 2008/03/18 15:53 | 문화 | 트랙백 | 덧글(14)
돌아온 진시황
若羊師댁 현문에 걸린 강철의 대원수 일화는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돌아온 생불진시황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사자성어?五二零工程紀要을 위한 해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림비공(批林批孔) 운동

여느 대회와 달리 불과 닷새 만에 제10차 당대회가 폐막된 후, 죽은 린뱌오를 정치적으로 또 한번 매장하는 일은 문화대혁명 때 류사오치를 제거했던 일보다 더 어려운 문제임이 곧 드러났다 류사오치는 동란의 주요 공격목표였지만, 린뱌오는 바로 그 동란의 주요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정부당국이 린뱌오에게 붙인 긴 죄목에 그가 공자의 제자였다는 허황된 주장을 더하기로 결정하자, 그의 몰락을 둘러싼 신뢰할만한 설명을 제시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고대사 시대구분논쟁, 구체적으로 말하면 B.C. 1000년경 중국이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이행하는 시기와 성격을 둘러싸고 전개된, 외견상의 학문적 논쟁이 1972년 마오주의 역사가이자 사상가인 궈모뤄(郭沫若)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역사논쟁은 얼마 가지 않아 역사적 전환기에 공자가 했던 역할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전반적으로 일치된 견해에 따르면 유교는 근대세계에서만 반동철학인 것이 아니라 공자 자신도 그의 시대에서 반동분자였으며 ‘노예사회’에서 ‘봉건사회’로의 역사 진보적 이행을 방해하는 이론의 창시자였다. 1973년 여름, 공자와 유교를 공격하는 논문이 대중적인 신문과 잡지에 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8월에 열린 제10차 당대회 이후 2천여 년 전에 죽은 공자에 대한 비판은 겨우 2년 전에 죽은 린뱌오를 비판하는 운동과 결합되었다.

‘비림비공’(批林批孔; 린뱌오를 비판하라, 공자를 비판하라) 운동은 1년이 넘도록 관영언론과 대중생활을 지배했다. 이 이상한 운동에 관여한 사람들이 쓴 대부분의 글은 우둔한 역사적 암시와 복잡한 문학적 은유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주된 특징은 (B.C.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秦)의 역사적 진보성을 찬양하고 시황제와 권위적인 법가(法家) 이론을 칭송하면서도, 이와는 대조적으로 유가(儒家)에 대해서는 죽어가는 노예 소유주 귀족의 이익을 대표하고 중국 고대의 정치적·영토적 분열을 고수하는 역사적 반동이라고 비난했다. 분서갱유를 자행한 시황제는 전통적으로 중국역사상 가장 악독한 폭군으로 간주되어왔지만, 이제는 중국의 위대한 통합자로 묘사되었다. 아무리 그의 방법이 잔인했다 하더라도 그는 역사발전의 진보적 조류에 맞추어 행동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현대정치에 던져주는 메시지는 명백했다. 마오쩌둥은 현대의 진시황제로서(*) 객관적인 역사변화의 힘을 인식하고 이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국가의 단결, 정치적 중앙집권화, 근대적 경제발전을 이룩했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린뱌오는 역사의 진보와는 정반대 편에 서서 정치적 파벌주의, 영토분리주의, 시대착오적인 사상과 낡은 사회관계를 조장했던 과거 유학자들의 현대적 화신(특히 친 유가적이었던 대신 여불위의 화신)이었다. 이렇게 린뱌오는 2,500년 동안 이어져온 반동적인 전통사상의 후계자로 묘사되었다. 역사적 사건을 봉인이라도 하려는 듯, 신문은 린뱌오의 집에 공자의 격언이 적힌 오래된 족자가 걸려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엄숙하게 보도했다.

‘비림비공’ 운동은 사실상 린뱌오나 공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것은 오히려 문화대혁명에 대한 일치하지 않는 평가, 그리고 문화대혁명 이후의 중국을 누가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다. 이 운동은 역사서술에 모호하게 공헌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의의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마오주의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정치투쟁이 절정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축포 같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에는 대부분 원로 혁명가, 즉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공격과 비난의 대상이었으며 지금은 저우언라이의 지도와 인도에 의존하는 노련한 관료와 간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선의 반대편에는 문화대혁명 동안 정치적 명성을 얻었고 자신들이 “갓 태어난 사회주의 산물”이라 부른 동란의 과실을 수호하려 했던 간부들이 있었다. ...... 그러나 비림비공운동의 기원과 원래 목적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이 운동은 곧바로 정치적 충돌을 격화시키는 매개물이 되었다. 비록 투쟁은 역사에 대한 학문적 연구라는 형태로 진행되었지만, 두 집단은 모두 경쟁자들의 정책을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계속되는 외견상의 역사논쟁 안에서 저우언라이 개인과 그의 정책은 특히 더 크게 부각되었다. 단, 총리는 대개 B.C. 3세기의 재상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저우언라이의 지지자들은 저우언라이와 유사한 역사인물로 이사(李斯)를 꼽았다. 그들은 시황제의 충성스런 재상이었던 이사를 경제발전을 추진하고, 기술혁신을 부르짖었으며, 군사할거상태를 정리하고 법제에 따라 운영되는 중앙집권적 국가를 건설한 인물로 묘사했다. 반면에 저우언라이의 비판자들은 선동적인 유가에 반대하는 이사의 비타협적인 자세를(그는 분서갱유에 열중했다) 강조함으로써 문화대혁명 기간에 타도되었던 관료들을 복귀시키는 저우언라이의 정책을 은근히 비꼬았다. 그리고 간부들의 전면적인 복귀는 국가기관을 잠재적인 반동분자들로 채우는 짓이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역사논쟁에 포함되었던 또 다른 현실문제, 즉 교육개혁, 여성의 사회적 지위, 외국기술의 도입 같은 문제들도 비슷하게 암시적인(그러나 종종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역사적 유비 속에서 다루어졌다. 이런 논쟁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또 그들을 위해 전개되었다. 반쯤은 잊혀진 유교를 비난하기 위해 열리는 의례화된 비판회에 참가하는 것이 전부였던 대다수 중국인민은 아마도 이 논쟁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1974년 겨울, 공자를 비판하는 문헌은 점점 더 모호하게 변해갔고 운동 전체는 망각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운동의 추진자와 참가자들은 지금까지 성취한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가 상당히 괴로웠을 것이다. 어느 쪽이 더 훌륭한 역사논쟁을 전개했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1975년 1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드러나듯이 저우언라이와 원로 간부들이 확실히 정치적으로 더 우세했다.

(*) 「'571공정'기요」에는 마오에 대항하는 린뱌오의 음모가 적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문서에서 마오는 '현대판 진시황'으로 비난받고 있다. 그러나 마오 주석은 이런 역사적 유비를 오히려 기꺼이 받아들였다.
(**) 이 족자에 쓰여져 있다고 알려진 글귀가 바로 극기복례(克己復禮)이다. 이들 포스터에 반복적으로 극기복례가 등장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인용자 주)

Meisner, Maurice J., Mao's China and After: A History of the People's Republic, Third Edition, Free Press
(김수영 역,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서울, 이산, 2004, p.557-560)

문화대혁명의 횃불을 올린 연극평론(?) 「역사극 '해서의 파직'을 논하다」도 그랬지만, 중공에서는 당이 누군가를 역사상의 어떤 인물에 비유하느냐가 그의 정치적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역사를 기술할 힘을 가진 자가 칼자루를 쥔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 역사적 인물과 비교된다는 것은 특히 위험한 징조다. 딸랑이들이 당신을 띄워주고자 한 희귀한 경우라면 그들은 혹시라도 당신의 역린을 건드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사전에 모종의 교감을 가지려고 했을 것이다. 즉 내가 모르는 사이에 역사적 인물과 비교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역사적 인물이 누구이든 관계없이 이미 과녁으로 찍혔다는 말과 비슷하다.

江의 퇴임 이후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상하이방에 떨어지는 유탄을 보면서 옛 우한과 펑전의 고사를 떠올리고 있는 사람은 나 뿐만은 아닐 것 같다.
by sonnet | 2006/10/08 18:26 | 정치 | 트랙백(1) | 핑백(1) | 덧글(6)
책 릴레이
제천대성 패밀리의 長兄 comrade 우마왕의 지명으로 트랙백.

1. 갖고 있는 책의 권수는?
6,800-6,900권 정도.
그중 3500권 정도는 만화책. 문고본이 1000+, 본업 관련이 500- 정도. 나머지는 일반서적.
집에서 분가해 나올 때 대거 정리해서 연속간행물의 비중은 500+ 정도로 매우 낮음 .


2. 최근에 산 책은?
최근 너무 바빠서 한동안 책을 못사다가 한번 주문한 것이라 편향되어 있지만,

* Nuclear Weapons and Aircraft Carriers -How the bomb saved naval avation- (Jerry Miller)
대전이 끝나고 핵시대가 닥치자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선 미 해군의 이야기.

* A History of the Pakistan Army: Wars and Insurrections (Brian Cloughley)
All Time Loser 파키스탄군에 대한 책.
좋고 나쁘고 간에 이 Loser에 대한 책은 이것 외에 마땅한 것이 없다.


3. 요즘 읽고 있는 책은?
* Nuclear Weapons and Aircraft Carriers -How the bomb saved naval avation- (Jerry Miller)
* Moving the Enemy: Operational Art in the Chinese PLA's Huai Hai Campaign(Gary J. Bjorge)
* 운영체제론(Andrew S. Tanenbaum)
* 이슬람법사상(이원삼)


4. 즐겨 반복해서 읽는 책, 혹은 사연이 얽힌 책 5권은?
* 2차대전 회고록(윈스턴 처칠)
The Second World War(Winston S. Churchill)의 번역판.
국민학교 3학년 때 사촌형에게 뺏은 책. 20회 이상 완독. 정치와 의사결정에 대해 배운 것은 주로 이책에서인 듯. 대전에 대한 책은 많지만 지도자로서 본격적인 책을 남긴 것은 이것이 유일하다. (루즈벨트나 스탈린의 자서전이 있으면 모를까...)

*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Thomas S. Kuhn)
20대에 본 책 중에서 가장 임팩트있었던 책. 쿤은 도서관에서 미친 듯이 책을 들이파다가 어느날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고 하산했다고 하는데.... 비슷한 경험.

* 論語 (孔子)
공자가 제자들이랑 잡담한 내용을 적은 책. 즉, 공자사상의 진수.
논어집주 같은 구질구질한 참고서를 보지 말고 읽으면, 공자는 단순한 옛날 사람이라서 단순한 이야길 한다는 것을 포착할 수 있다. 그리고 단순한 이야길 하기 때문에 현대사회에까지도 생활윤리로서 생명력을 가진다는 것도.
한 현학 해보고 싶으면 고금의 주석을 섭렵해 보는 것도 한번 도전해볼만 하다. 해석인지 창작인지 짐작도 안가는 삘소리 엄청나게 많다.

* Programmers at Work: Interviews With 19 Programmers Who Shaped the Computer Industry (Susan Lammers Ed.)
모 잡지에서 번역을 연재한 적이 있다. 여러 루트를 모색한 끝에 결국 외사촌형의 도움으로 원본을 입수해 본 책. 중학생때 보고 보고 또 봤다.
요즘은 이러저러한 식으로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는 류의 책이 많지만, 이 책은 그런 것과 차원을 달리하는 구닥다리 프로그래머들의 생활방식에 대한 책이다. 내가 구식인 것도 이 책의 영향일 듯.

* 인사이드 더 블랙박스(네이선 로젠버그)
Inside the Black Box : Technology and Economics(Nathan Rosenberg)의 번역판
30대 들어 본 책중 가장 영향력있는 책.
평소 갖고 있던 기술에 대한 생각을 확고히 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물론 이 배경엔 쿤의 책을 먼저 본 영향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예시 중에 "가스등을 손봐 당시 최첨단 기술인 전등과 40년동안 더 맞서 싸울 수 있게 한" 영웅적인 발명의 이야기가 나온다. 업계인으로서 내가 진정한 기술의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5. 바톤을 이어받을 5분은?

I'm a leaf node. but,

Emily The Esoteric, 중력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둘째 제자, 안개의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아나운서, 백만돌이와 미카링, 淸國欽差 儡之導漏夫 정도 하시면 어떻습니까?
by sonnet | 2005/06/13 04:07 | | 트랙백(2)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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