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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골드풀
2009/03/08   (외환)준비금 바꿔주기 [23]
2009/01/05   글로벌 불균형(Barry Eichengreen) [67]
(외환)준비금 바꿔주기
미국국채는 한번 사면 팔 수 없나? (알파헌터) 에서 트랙백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설명이 요점을 잘 짚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국채는 세계에서 가장 유동성이 풍부하고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것은 사고 파는 것이 언제나 자유라는 것입니다.
만일 일부가 주장하듯 (이런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없다면... 미국국채란 세상에서 가장 기피하여야 할 시장으로 벌써 붕괴되어 사라졌겠지요. (알파헌터)


이 설명은 사실 이 자체로 충분한 것이지만, 저는 좀 다른 각도 -역사적 사례- 에서 이 문제를 다뤄 볼까 합니다.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들이 기축통화국 통화로 표시된 외환보유고를 대거 처분하려고 할 경우 해당국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2억 5000만 달러(7월)에 더하여 추가로 차입했던 4억 달러(8월)로도 충분하지 않자 영국은 9월 21일 파운드화 지지를 중단하고 금본위제를 이탈했다. 프랑스은행은 영국인들에게 배려해준 자제심을 미국인들에게는 전혀 내비침이 없이, 다른 금블록 가맹국들과 함께 미국에 있는 7억 5000만 달러의 예금을 일거에 금으로 바꿔 갔다. 이로 인해 미국의 금보유고가 줄어든 데다, 파운드화 및 이에 고정된 여타 통화들의 외환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유발된 미국의 디플레이션 압력이 미국의 은행 시스템을 약화시켰다. 프랑스가 미 달러화 예금을 금으로 바꿔 갈 때, 뉴욕연방준비은행은 도움이나 심지어 관용도 요청하지 않았다. 중앙은행총재의 업무 수칙은 총살 집행장의 사격분대 앞에 서서도 눈가리개를 거부한 월터 미티(Walter Mitty)를 연상하게 하는 완강한 어조를 요구한다. 1929년 해리슨이 노먼에게 뉴욕연방준비은행이 매입해 놓은 영국 파운드화가 금으로 태환 가능한 것인지를 물었을 때, 그는 짤막한 답신을 받았다: “물론입니다. 파운드화는 금으로 환급 가능합니다. 이것이 금본위제입니다.” 1931년에는 해리슨이 이런 식으로 모레(Moret)에게 프랑스 은행이 보유한 모든 달러화 전액을 금으로 전환하는 일을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외국의 인출요구에 직면한 영란은행 총재 몬태규 노먼과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조지 해리슨은 이처럼 쾌히 응합니다. 각각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 보지요.


우선 영국.

1929년 상반기에 미국은 2억 1,000만 달러의 금을 취득하고, 프랑스는 1억 8,200만 달러의 금을 취득하였다.
런던에 대한 압박은 유독 극심하였다. 뉴욕의 금리가 높았기 때문에, 다양한 차입자들 -독일, 헝가리, 덴마크, 이탈리아의 차입자들- 은 실제로는 달러가 필요했지만 파운드 화 차관을 받고자 하였다. 노먼은 금의 무한정한 축적에 우려를 표명하였다. 잉글랜드 은행의 준비금은 영 안의 위기가 지난 5월 말에 7억 9,100만 달러라는 연중 최고 수준에 달했으나, 그 후 감소세로 돌아서고, 7월 들어 급격히 감소하였다. … 9월 말까지 잉글랜드 은행의 금 준비고는 6억 4,000만 달러로 감소하였다. 4개월 사이에 거의 20% 감소한 것이다. 8월 5일에 노먼은 재무위원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변화가 없다면, 특히 프랑스와 미국에 변화가 없다면,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일부 나라들은 금본위제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 『대공황의 세계』 p.146,148


이렇게 영국은 두 달 만에 준비금(요즘 식으로 하면 외환보유고) 20%를 잃고 금본위제 이탈(평가절하) 위기에 몰리지만, 때마침 뉴욕 증시가 박살이 나는 바람에 간신히 숨을 돌립니다. 이게 바로 “물론입니다. 파운드화는 금으로 환급 가능합니다. 이것이 금본위제입니다.”라고 보장했을 때의 상황인 것이지요.

2년 후인 1931년, 이 해 영국이 주저앉자 이번에는 인출 요구가 미국에 몰려듭니다.

1931년 9월 21일, 파운드 화가 절하된 그 날에 프랑스 은행의 모레 총재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달러를 금으로 바꾸어 가도 괜찮은지 문의하였다. 해리슨은 문제없다고 확인해 주었다. 9월 22일 프랑스 은행이 5천만 달러를, 벨기에 국립은행이 1억 660만 달러를 금으로 바꾸어 갔다. 프랑스 은행은 뉴욕 은행의 대외 업무 책임자인 크레인에게 설명하기를, 프랑스 은행이 벨기에와 스위스에 일정량의 금을 선물(先物)로 매도했는데, 금의 인도 이전에 달러를 금으로 대체하여 회계보고 상에 금의 손실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고 싶어서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연방준비제도의 보고에는 금의 손실이 나오는 것이 불가피했고, 그것이 보도되자 외환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10월 1일에 프랑스 은행은 추가로 2,500만 달러를 지정(earmark)하고, 10월 8일에도 2,500만 달러를, 또 10월 13일에는 2,000만 달러를 추가로 지정하였다. … 연방준비제도이사회 … 비망록은, 프랑스 은행과의 토의와 신문 기사에 의거한 파리로부터의 보고를 인용하고 있는데, 그 취지는 “(연방준비당국이) 달러의 현재 가치를 지지 및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적 정책에 충실하고 인플레이션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프랑스 은행은 기존 달러 보유고를 유지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것은 반대를 야기하였고, 12월 18일 해리슨은 메이어에게 뉴욕 연방준비은행으로서는 아무런 확약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프랑스 은행은 자유롭게 금을 인출하였고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원하는 신용 정책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택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은행이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보유하고 있던 1억 9,000만 달러의 인수 어음과 예금은 8,600만 달러로 감소하였다. … 9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연방준비제도가 상실한 금은 7억 5,500만 달러에 달하였다. … 1931년 12월 17일자 비망록에는 벨기에 국립은행이 1억 3,100만 달러, 네덜란드 은행이 7,700만 달러, 스위스 국립은행이 1억 8,800만 달러의 금을 취득했다는 기록과, 이들 중앙은행들 간의 공황 상태에 대한 언급이 들어 있다. 나머지의 대부분은 프랑스로 갔다.

1931년 12월 미국에서는 유동성 부족 상태에 있는 기업과 은행들에 금융지원을 해주기 위한 부흥금융공사(RFC, Reconstruction Finance Corporation)가 창설되었다. 정부 세입의 급속한 감소는 대폭적인 적자로 이어졌다. 컬럼비아 대학의 금융론 교수 파커 윌리스(H. Parker Willis)는 이와 같은 요인이 인플레이션에 직결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파리의 경제통신사(Agence Economique)에 타전한 유명한 급전에서 그런 말을 하였다. 그의 전보는 프랑스 당국과 일반 여론을 불안에 빠뜨렸다. 프랑스 은행의 모레 총재는 전보를 인용하여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대해 금의 지정(earmark)과 선적 재개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이에 따른 작업은 공연히 서둘러서 불리한 평판이 나오지 않도록 질서있게 수행되는 가운데 1주일에 두 차례 선적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해리슨은 모레에 대해 금을 가져가는 일을 중지하도록 요청할 의향은 없었다. 오히려 매 단계마다 그는 달러 보유 규모가 1월 중순 경 약 6억 달러에 달하던 프랑스 은행이 그 보유 달러의 전부 또는 일부를 금으로 교환하는 일을 지원해 주겠다고 제의하였다.

프랑스에 의한 달러의 금 교환 규모는 1월에는 주 당 1,250만 달러였다. 프랑스의 예를 따라 네덜란드 은행은 4,000만 달러를 금으로 바꾸었다. 5월 말에 모레는 환금 규모를 늘리고자 한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였다. 해리슨은 처음에는 모레에게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가, 모레가 주 당 2,500만 달러로 올리자, 남아 있는 9,300만 달러 전부를 환금해 가라고 권고하였다. 권고는 그대로 시행되었다. 다만 1,000만 달러가 외환 준비금으로서 남겨졌다. 금환본위제는 불황의 바닥에 있던 1932년 6월 중순에 종식되었다. - 『대공황의 세계』, pp.232-233, 235

미국은 영국 이상으로 단호하게 맡긴 돈을 다 빼줍니다. 자꾸 빼가니까 그냥 그러지 말고 한 번에 다 가져가라고 할 정도니까요. 미국은 좀 뒤에 결국 금태환을 정지하고 평가절하에 들어갑니다.

보시다시피 여기엔 비교적 평범한 규칙이 하나 있는데 끝이 어떻게 나건 간에 "무너질 때까지는 기를 쓰고 의연하게 바꿔준다"는 것입니다. 처분을 방해한다면 그건 이미 무너졌단 소리죠. 나중에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골드풀이 무너졌을 때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쯤 되면 재앙의 전조를 읽을 수 있다. 1967년 11월부터 1968년 3월까지 골드풀은 회원국 전체 금 준비금 총액의 약 10%에 해당하는 약 30억 달러를 매각했다. … 3월 1일로 끝나는 주에 골드풀의 금 매각은 1억 2천6백만 달러로 급증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 다음 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다음 주에는 매각 규모가 3배로 증가했다. 3월 13일 이탈리아가 골드풀에서 탈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다음 날 거의 패닉 상태에서 영란은행은 신디케이트를 대신해서 4억 달러 어치의 금을 매각했다. 파리 금화 시장에서 거래액은 15톤으로 상승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는 평소 거래액이 많았던 날의 30배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이즈음 미국의 금 준비금은 110억 달러로 감소했는데 그중 은행권 발행의 준비금으로 필요한 금액이 105억 달러였다.
영국 당국은 이런 ‘금 탈출’에 압도되어 영국 금시장의 폐쇄를 명령하고 은행 휴업을 선언했다. 미국은 FRB 채권 발행시 금 준비금 보유 규정에 관한 법률을 정지시켰다. 그리고 3월 14일, 미국 당국은 금의 시장 가격은 변동하도록 하지만 공정 가격은 온스당 35달러에 계속 고정시키는 이중적 금시장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사를 유럽 회원국들에게 전달했다. 골드풀에 참가하는 중앙은행 총재들을 소집하여 이런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대통령 전용기가 유럽으로 급파되었다.
회원국 대표들은 3월 17일 토요일 아침에 착잡한 심정으로 FRB 빌딩 이사회실에 모였다. 그들은 이중적 금시장 제안을 미국이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며, 나아가 달러 평가절하를 위한 첫 번째 단계로 생각했다. 그 후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이들은 미국이 새로운 협정을 기정사실로 발표하는 데 대해 불쾌해 했다. 그러나 그 구상이 실현되면 회원국들은 적어도 추가로 개입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게 되므로 미국의 제안이 채택되었다. 상황이 정상화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 런던 금시장은 4월 1일 월요일까지 총 11영업일 동안 폐쇄된 채로 있었다. 골드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 『글로벌 불균형』 pp.107-111


자기 돈 찾아가려는 나라의 팔을 비틀어 돈을 못 찾아가게 한다면, 누가 그 나라 화폐로 준비금을 운영하겠습니까? 인출요구를 틀어막으려는 행동은 이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 통화는 대외준비금으로 부적합한 2류 통화'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기축통화국(혹은 그에 준하는 역할을 맡을 생각이 있는 나라)이라면 어디나 질 때 지더라도 한 번 싸워보다 지려고 하지, 현재의 공인된 최강자가 지레 겁부터 먹고 인출요구를 처음부터 틀어막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집어서 말하면 경제적으로 맷집이 안 되는 약골들은 이런 역할을 맡을 수도 없거니와, 맡게 된다면 서로(맡은 쪽이나 맡긴 쪽이나)에게 재앙이라는 말도 되는 것이죠.


참고자료
Eichengreen, Barry., Global Imbalances and the Lessons of Bretton Woods, MIT Press, 2006
(박복영 역, 『글로벌 불균형: 세계 경제 위기와 브레튼우즈의 교훈』, 미지북스, 2008)
Kindleberger, Charles P., Aliber, Robert Z., Manias, Panics, And Crashes: A History of Financial Crisis (5th ed.), Basic Books, 1978(Palgrave Macmillan, 2005)
(김홍식 역,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굿모닝북스, 2006)
Kindleberger, Charles P., The World in Depression 1929-1939,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3(Revised Ed. 1986)
(박명섭 역, 『대공황의 세계』, 부키, 1998)
by sonnet | 2009/03/08 17:11 | 경제 | 트랙백 | 핑백(1) | 덧글(23)
글로벌 불균형(Barry Eichengreen)
글로벌 불균형이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유례없이 커진 반면, 미국 외 국가, 특히 중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가 대폭으로 증가해 지역별 불균형이 심화된 현상을 말한다.

GDP 대비 미국의 경상적자: 15년간의 증가 후 최근 2년간 꺾임새를 보이고 있다.


국제무역에 있어 누군가의 적자는 다른 누군가의 흑자로 모두 합치면 합계는 0이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이 현상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하의 설명에는 국민소득계정 항등식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덧셈뺄셈만 할 줄 알면 되는 간단한 것이지만, 글의 난삽함을 피하기 위해 별도의 글로 분리해 두겠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흥미롭게 느낀 점은 한국 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은 특정한 구도로 이해하는 관점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1. 미국은 거대한 경상수지 적자 하에서 분수 이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2. 중국이나 한국 같은 대규모 대미무역 흑자국은 외환보유고로 미국 국채를 쌓아놓아야 하다 보니 좋든 싫든 미국에 뼈빠지게 일해 벌어들인 돈을 저리에 빌려주어 이러한 미국의 과소비를 떠받치고 있는 중이다.
  3. 일이 이렇게 굴러가게 된 것은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고 있기 때문에 누리는 특권이다.

그런데 이런 시각은 현상에 유일한 설명이 아니거니와, 사실 이에 맞서는 그 이상으로 유력한 설명이 존재한다.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수출주도 경제성장을 노리는 개발도상국들이 인위적으로 낮은 환율을 고수하며 거액의 경상수지 흑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2. 그들이 환율방어 및 외환위기 대비용으로 거액의 외환보유고를 건설하다보니, 자금이 미국으로 밀려들어왔고, 이것이 미국 경제를 분수 이상으로 흥청망청하게 부추겼다.
  3. 일이 이렇게 굴러가게 된 것은 세계 각국이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인정하고 보유하기 위해 안달이기 때문이다.

당혹스럽게 들리는가? 하지만 이런 시각은 학계 주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Dooley, Folkerts-Landau, Garber, 그리고 미국의 중앙은행장인 Ben Bernanke도 그런 입장이다. [1]

Bernanke는 미국의 경상적자가 주로 미국 내부 요인에서 기인한다는 해석에 회의적이다.중국 탓이라니까... 그 대표적인 설 중 하나인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가 경상적자를 유발한다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 설에 대해 논평하면서, 그는 미국 재정이 흑자이고 당분간 계속 흑자일 것으로 예상되던 1996~2000년 사이에도 경상적자는 3천억 달러나 늘어났으며, 독일과 일본도 GDP 대비로 미국 못지 않은 재정적자가 있지만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낼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의 거대한 경상수지 적자와 개도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동전의 양면, 즉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상관관계가 특정한 방향의 인과관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위 두 설명은 인과관계의 방향이 반대이기 때문에 같은 정보를 갖고서도 판이하게 다른 결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어느 쪽 인과관계가 맞는지는 국제수지 통계만 봐서는 알 수가 없고, 보다 더 넓은 맥락을 살피며 증거를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자, 이제 이 글에서 소개할 책은 그러한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물건이다.


Eichengreen, Barry., Global Imbalances and the Lessons of Bretton Woods, MIT Press, 2006
(박복영 역, 『글로벌 불균형: 세계 경제 위기와 브레튼우즈의 교훈』, 미지북스, 2008),
15,000원, A5 하드커버, 259페이지. 평가 ★★★★

이야기는 우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글로벌 불균형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데서 시작한다.

40여년 전에도 국제체제에는 중심부와 주변부가 있었다. 중심부는 대외 준비금으로 사용되는 통화를 발행할 특권을 갖고 분에 넘치는 생활을 했으며, 중심부를 따라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주변부는 저평가된 환율을 갖고 수출주도 성장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는 지금처럼 중심부 국가가 자국 통화 단위로 발행한 저수익 대외 준비금의 대규모 축적이었다. 1960년대 중심부는 미국이었고, 주변부는 유럽과 일본이었다. 거의 반 세기가 흘러 유럽과 일본이 졸업하고 나간 추격자의 자리에 아시아의 개도국들이 들어와 똑같은 전략을 다시 한번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의 대표자는 앞서 잠깐 언급했었던 Dooley, Folkerts-Landau, Garber인데, 이들은 이것을 부활한 브레튼우즈 체제(Revived Bretton Woods System)라고 부른다.

이들의 전략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주변부의 추격자들은 중심부 국가에 대규모 수출을 하여 흑자를 만든다. 이때 정상적이라면 수출 대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달러의 공급이 늘어나 달러가치는 떨어지고 추격국가의 화폐가치가 올라 자연스럽게 수출은 가격경쟁력을 잃고 줄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수출을 계속할 심산인 추격국가의 중앙은행은 외환시장에 개입해 넘치는 달러를 사들여, 자국 통화가 오르는 것을 막는다. 이들의 외환보유고가 급증하는 것은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의 당연한 귀결"이다. 이렇게 하면 단기적으로는 소득과 생활수준을 억제해야 하지만, 높은 성장률을 통해 미래에 훨씬 더 높은 생활수준을 가질 수 있다면 좋은 전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중심지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달러가치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데, 이것은 추격자들이 미국 시장 점유율을 잃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격자들 중 상당수는 1990년대 일련의 외환위기에서 쓴 맛을 본 다음, "Never again!"을 곰씹으면서 외환보유고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며, 저수익 미국 국채를 쌓아놓는데 따른 이자손실 같은 것은 IMF의 비정한 구조조정 철퇴를 맞는 것에 비하면 값싼 보험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경쟁적으로 외환보유고를 늘린 결과는 황당하게도 개발도상국들이 집단적으로 흑자를 내어 선진국에 돈을 빌려주는 꼴이 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팽창적 통화/재정 정책을 쓰고 달러표시 국채를 찍어내도 중국과 다른 개도국들이 공급을 증가시켜 짝을 맞추어 주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렵게 허리띠를 졸라매어 공공지출을 억제하고자 하는 압박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주머니끈이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부활한 브레튼우즈 체제'론자들은 중심부의 이익과 주변부의 이익이 일치하고 중국 등이 주변부를 졸업하려면 아직 멀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한참 동안은 이렇게 굴러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저자 아이켄그린은 이 지점에서부터 '부활한 브레튼우즈 체제'론자들과 결별의 길을 걷는다.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40년 전과 지금은 비슷한 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아서, 그들이 생각하듯이 이 체제가 오래 지속될 거라는 낙관론은 근거가 허약하다는 것이다. 그는 여섯 가지 이유를 든다.
  1. 골드풀 카르텔에 참여했던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중국과 개도국들은 입장이 다양해 담합을 성사시킬 가능성이 낮다.
  2. 브레튼우즈 시절과 달리 유로라는 달러에 대한 대안이 있다.
  3. 달러 가치를 안정시킬 미국의 결의가 허약하다. 옛날엔 금태환이라도 있었지만...
  4. 자본자유화 때문에 중앙은행들의 담합이 더욱 어려워졌다.
  5. 금융자유화 때문에 환율을 낮추고 국내저축을 올렸을 때, 수출이 가능한 교역재 분야에 투자되는 대신 자산 버블이 생길 가능성이 늘어났다.
  6. 아시아 정책담당자들도 역사를 안다.

여기서 문제는 브레튼우즈 시절과 마찬가지로 고전적인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이다. 즉 미국의 국제 수지 적자와 달러 유출은 기본적으로 미국 이외 지역의 경제 성장의 결과 증가하는 유동성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 밖의 달러 잔고 누적은 달러의 금 태환성(=가치 유지)을 위협함으로서 체제의 기초를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체로는 현 시스템을 지탱하는 것이 모두의 이익이지만, 어차피 무너질 것이라면 무너지기(달러가 폭락하기) 전에 내 외환보유고를 달러에서 다른 것으로 바꿔놓는 게 개별 국가의 이익인 셈이다. 배신자를 철저히 응징하는 강철의 규율이 없이는 이런 상황을 오래 끌고 나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개괄적인 설명에 이어, 사례연구로서, 2장에서는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글로벌 불균형을 관리하려고 노력했던 미국-유럽 중앙은행의 카르텔 Gold Pool의 탄생과 고난, 그리고 붕괴를 그리며, 3장에서는 저평가된 고정환율을 갖고 막대한 무역흑자를 쌓아올렸던 일본이, 고정환율에서 이탈해 나가는 과정을 분석한다.

개인적으로 2장은 이 책의 백미라고 평가한다. 어지간한 다른 책에서 보기 힘든 분량을 할애해 골드풀 체제의 흥망성쇠와 그 원인을 설명해 놓고 있다. 오직 이 부분만 잘라서 출판했다 하더라도 나는 이 책을 샀을 것이다.

반면 3장은 일본의 경험을 통해 현재의 중국이 달러 페그에서 벗어날 가능성과 경로를 탐색해 보는 것이 목적인데, 기술적인 분석에도 불구하고 그 정책적 함의는 2장만큼 명징하지는 않다. 하지만 정부가 신중한 이행과 좋은 타이밍을 선택한다면 경제성장을 죽이지 않고도 달러 페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역사적 사례를 제시함으로서, Dooley 등이 주장하듯이 중국이 경제성장에 목을 매달고 있는 관계로 충분한 성장이 이루어질 때까지 현재의 글로벌 불균형을 반드시 유지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결론 격인 4장에서 아이켄그린은 달러의 미래에 대해 다시 한번 도발적인 지적 자극을 제공한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어느 시점이든 금융의 세계에는 하나의 지배적 통화만 존재하는 경향"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달러가 전체 외환준비금의 85%를 차지했던 20세기 후반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기억이 투영된 것일 뿐이며, 역사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차대전 직전, 아직 대영제국의 위세가 한창이던 시절에도 스털링은 전체 외환 보유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기축통화가 강력한 네트워크 외부성을 갖는다는 추정도 근거가 빈약하다고 지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외환 준비금을 위한 통화로서 유로는 달러에 대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깊은 유동성 등 중요한 자질이 필요하긴 하지만 외환준비금 통화는 반드시 국제사회의 지배적인 거래 통화일 필요는 없다고 덧붙인다.

끝으로 조정의 이니셔티브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미국으로서는 꼭 필요하고도 불가피한 조정에 참여할 인센티브가 별로 없다. 그간 분에 넘치게 좋은 생활을 해왔는데 왜 그런단 말인가? 조정은 수출 주도 성장이 효용체감의 지점에 도달했다는 판단을 내린 후 아시아가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200쪽 남짓한 짧은 분량에 평이한 서술(3장에 기술적인 묘사가 좀 있는데 대충 뛰어넘어도 결론을 이해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로 당면한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중기적으로 국제경제체제가 직면한 중요한 도전에 대한 역사적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삼가 추천할만하다.


[1] Dooley, M. P., Folkerts-Landau, D., and Garber, P., "An Essay on the Revived Bretton Woods System," NBER working paper w9971.pdf, September 2003.;
Bernanke, Ben S., The Global Saving Glut and the U.S. Current Account Deficit, Speech at Homer Jones Lecture, St. Louis, Missouri. 버냉키는 미국의 무역수지를 '개의 꼬리'라고 부른다. 다른 원인에 의해 표면적으로 나타난다는 현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by sonnet | 2009/01/05 10:01 | | 트랙백(2) | 핑백(4) | 덧글(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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