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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개혁개방-북한
2010/05/19   북한 농업, 몇 가지 [421]
2009/10/24   garry's comments(1) [83]
북한 농업, 몇 가지
Commented by S3 at 2010/05/19 05:49
이곳에 오시는 여러 분들께 질문입니다. 북한정권이 무능해서 주민들이 굶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만, 그럼 북한정권 이전의 북쪽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요?
설마 예전에도 북쪽이 남쪽의 식량을 소비하는 구조는 아니었을 것이고 비료를 보내주든 안 보내주든간에 현대의 토지당 농업생산력은 분명 과거보다 훨씬 나을 것인데 지원이 없다고 수백만이 굶는것은 참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단순히 광복 이후 북한의 산업구조가 바뀌어서 농업의 비중이 줄어 농업의 경제구조가 식량을 지원(혹은 수입)하지 않으면 자생하기 힘든 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북 정권의 무능때문에 근로의욕이 급격히 떨어진 노동자가 제대로 생산을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인가요? 가장 궁금한것은 북한의 농업생산효율이 광복 이전과 비교해서 얼마나 달라졌는지입니다.

말씀하신 요소들은 다 어느 정도 관계가 있습니다.


1. 인구의 증가

일단 제일 먼저 전제해 두어야 할 점은 인구입니다. 해방 직후 북한의 인구는 약 800만 정도였으나 현재는 2,300만~2,400만 정도로 약 3배로 늘었습니다. 인구가 3배가 되었으니 식량생산도 3배가 되어야 균형이 맞겠지요. 서방세계의 상식으로는 모자라는 식량은 수입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북한은 자급자족 자력갱생이 경제의 대원칙이다보니까, 다른 무역으로 번 돈을 갖고 식량을 수입하겠다는 생각은 거의 하질 않았습니다. (북한의 자력갱생형 농업무역 패턴에 대해서는 다음 글 참조)

김일성은 1973년 1월 17일 황해남도, 평양시, 평안남도, 평안북도 농업일군협의회에서 한 연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무들이 다 아는바와 같이 지난해에 우리나라에서는 농사가 잘 안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농사가 가장 잘 된 해는 1968년 입니다….그런데 1969년부터는 알곡생산이 빨리 올라가지 못하였습니다. 농업생산이 빨리 올라가지 못하는 것은 엄중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인구가 해마다 수십만명씩 늘어나고 있습니다…인구가 늘어나면 그만큼 농업생산이 빨리 높아져야 하겠는데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인구의 장성에 농업생산의 장성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일성, “농업생산에서 일대 전환을 일으키기 위하여”, 김일성 저작집 제28권, 10-11쪽). [이석,2004b:43]

여기서 우리는 북한의 식량생산이 인구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게 된 것은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발생한 현상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이 해 전시비축미 명분으로 한 달치 배급에서 4일치(약 13%)를 떼는 방법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 감축을 거듭해 결국 1인당 배급량이 30% 이상 줄어들게 됩니다.

[이석,2004:18]


하지만 인구가 3배가 되는 상황에서 두끼먹기 운동(1991년에 실제로 실시함) 정도가 통할 리 없습니다. 결국 한정된 농지를 가진 북한에서 3배의 식량을 생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원래 북한은 산지가 많고 위도가 높아 농사, 특히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자연환경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했지만 북한은 무오류를 자랑하는 수령의 교시(뒤의 '주체농법')와 (천리마 운동 같은) 정신력을 믿고 자력갱생의 길로 돌진해 들어갑니다.



2. 북한의 농업생산효율

이어서 궁금해 하신다는 '북한의 농업생산효율'은 다음 자료가 참고가 되시지 않을까 합니다.
[이석,2004:188]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우리는 1990년대 북한의 곡물생산 실패와 관련된 제 가설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이 기간 중 곡물생산 실패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것은 자본(비료) 투입량의 감소였다. 따라서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경제권의 붕괴와 이에 따른 북한산업의 황폐화로 농자재 투입량이 감소했고, 이것이 다시 곡물생산의 실패를 불러왔다는 이른바 ‘농자재 투입 붕괴설’이 현재까지는 북한의 식량위기를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가설로 보인다. 둘째, 이 기간 중 곡물생산 실패의 또 다른 원인은 농업 생산성 하락이었다. 더욱이 이 기간 중의 농업 생산성 하락 폭은 그 이전 시기에 비해 현저히 큰 것이었다. 따라서 현 수준에서 북한의 식량위기를 설명하는 두 번째의 유력한 가설은 식량위기 자체가 급격한 농업생산성의 하락을 불러왔다는 이른바 ‘생산성 충격설’로 파악된다. 셋째, 북한의 농업생산성은 1961년 이후 줄곧 (-)를 기록하였다. 이는 북한 사회주의 농업체제가 비효율적이라는 기존의 가설을 지지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농업생산성의 감소폭은 1990년대 이전과 이후가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따라서 북한 사회주의 농업체제의 비효율성 자체를 가지고 1990년대의 식량위기를 설명하는 것에는 일정한 한계가 따르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석,2004:190]

장기적으로는 농업생산성의 끝없는 하락, 단기적으로는 자본(비료) 투입량의 감소가 원인으로 요약됩니다. 앞서 본 배급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990년대의 대기근이 닥치기 전에 별로 많지도 않은 배급량을 30%나 삭감해 전국민의 허리띠를 이미 한껏 조여 놓은 터라, 이미 농업 부문 자체로서는 어떻게 좀 덜먹어서 해결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지속불가능한 농업: 과잉투입, 환경파괴, 비효율

북한 농업의 특징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하지요.

북한의 곡물생산함수는 자본(비료)의 투입량보다도 노동의 투입량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비료) 투입량이 1퍼센트 증가할 경우 곡물생산은 0.34 퍼센트가 증가하는 반면, 노동 투입량이 1퍼센트 증가할 경우에는 곡물생산이 0.66 퍼센트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북한은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농업인구를 산업부문으로 이전하는 대신, 이로 인해 야기되는 농업부문의 노동력 부족현상은 비료나 기계, 전기 등 자본을 과잉 투자함으로써 해결하려 시도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북한 농업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자본 투입 의존도가 높은 농업부문의 하나로 인식되어져 왔다. [이석,2004:188]

바로 비료, 기계, 전기 등의 과잉투입과 사회주의 농업으로 인한 지극히 낮은 생산성이 결합된 것이 북한의 소위 '주체농법'의 특징입니다. 생산성이 점점 더 떨어지니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서 생산량을 맞춰야 하는데, 이런 농법은 일시적인 효과는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역효과가 납니다.

농지가 부족하다 -> 산을 개간해 계단식 논이나 비탈밭을 만든다. -> 토양이 유실되고 삼림이 파괴됨.
농지가 부족하다 -> 벼를 빽빽히 심는다. -> 지력이 고갈됨.
농지가 부족하다 -> 토지를 쉬지 않고 활용해 2모작으로 돌린다 => 지력이 고갈됨.
농지가 부족하다 -> 비료를 더 ………
………
………
이런 식이지요.


또한 북한에서는 밀식재배를 계속하고 있는 것도 지력저하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남한에 비해 평당 벼를 120주 이상 심도록 추천하는 것도 지력저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남한에서의 평당 80~90주와는 대조적이다.

이로 미루어보아 지원에 의한 화학비료 이용 농사는 결국 토양 내 여러 양분을 지속적으로 수탈하기 때문에 이는 결과적으로 수확량에 영향을 주어 식량생산량 감소에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이 매년 식량부족의 악순환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며 이의 해결방안으로 축분생산을 통한 퇴비증산의 장려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작물생육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겉보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실제 여러 지역의 논에 들어가 벼의 작황을 관찰하여 본 결과 벼의 유효경수는 8~9개로 남한의 절반 수준이고 벼알은 주당 80알로 남한의 160~200알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것마저 쭉정이가 30~50%에 달하고 있다. 예로 황해남도의 연백평야의 경우 벼의 초기 생육은 상당히 좋았다가 수확 후 탈곡해 보면 35~50% 정도가 쭉정이로 전형적인 추락답 지역이라고 한다. 이를 자세히 관찰하여 보면 벼의 생육도 불균일하고 고추선 이삭과 목도열병에 걸린데다 등숙이 불량하여 수확한 벼를 도정하면 40% 이상 쭉정이가 발생될 정도로 수량감소가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원인은 첫째, 토양내 유기물 함량이 1.0% 내외 (남한 1.8~2.0%)로 토양에서 양분을 계속 수탈하는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미등숙이나 쭉정이 비율이 높은 것은 병충해 피해와 비료부족, 특히 카리질 비료의 절대적 부족에서 기인된다는 것이다.

식량사정이 악화될수록 파종면적이 늘어나 자연히 경지이용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 이번 방북을 계기로 북한농촌 현지 답사를 통한 소견은 한마디로 사계절 내내 작물이 재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경지이용률이 높다는 얘기다. [김운근, 2001:43,44,47]

이런 상황이다 보니까 비료를 엄청나게 쓰게 됩니다. "북한은 1980년대만 하더라도 ha당 비료샤용량이 349kg에 달할 정도로 세계에서 비료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국가중 하나"[권태진,2000:88]였던 것이죠.

억지로 농지를 늘리려는 노력도 역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북한은 한정된 농지자원으로 충분한 식량공급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면서 일찍이 식량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농지확장정책을 추진하여 왔다. 소위 20만정보의 새땅찾기와 다락밭 건설, 그리고 간척지 개발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시책에 부응하여 경사 16° 이상의 경사지를 무리하게 개발한다든가 연료채취를 위한 남벌 등으로 산림훼손이 확산일로에 있었다. 이러한 산림훼손은 여름철 집중호우시 홍수피해를 가져왔고 홍수로 인한 수리관개시설 파괴로 가뭄피해도 가중되었다. 동시에 산림훼손은 산림의 사막화를 초래하여 매번 가뭄이 나타나는 등 산림훼손은 자연파괴와 함께 매년 홍수와 가뭄이 되풀이되는 기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김운근,1999:31]


농업용수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 가뭄과 홍수가 되풀이되면서 북한의 관개체제는 거의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존의 관개체계는 자연유수에 의한 관개가 아니고 대부분 인공관개체제로 되어 있는 데다 경제사정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80년대 중반에는 거의 투자가 되지 않았으며 에너지 집약적 인공관개체계로 설계되어 있어 에너지 부족으로 인공관개가 거의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관개시설 및 농촌의 전력시설은 30~40년 전에 건설된 것으로 이들 상당수는 기술적으로 폐물이며 이로 인한 농업생산의 손실도 막대하다.
따라서 기존의 관개방식 개편이 시급하다. 현재 양수식의 관개방식 의존에서 탈피하든가 충분한 전력을 공급하든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다. 후자의 경우 경제사정 악화와 맞물려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 따라서 관개시설 개편은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분야이며 기존의 양수식 관개방식을 중력식 관개방식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김운근,1999:30]

즉 소련과 중국이라는 사회주의 형제국들로부터 거저 내지는 그에 가까운 가격으로 석유를 원조받는 것을 전제로 설계된 인공관개 시스템은 만성적인 에너지난에 있는 나라에게 적합한 방식이 아닌 거지요.

결국 유엔개발계획(UNDP)의 북한농업지원 프로그램(AREP)는 북한의 실태를 조사한 후, '계단밭'도 줄이고, 삼림은 복원하며, 양수식 관개시설은 중력식 관개시설로 가능한 바꾸고, 비료도 토지의 잠재력에 맞추어 사용하는 등 많은 것을 지금까지 하던 것과 반대로 하라는 처방을 내립니다.[김영훈,2000]

앞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트랙터 등의 농기계, 살충제, 비닐 등의 기타 농자재 등 거의 모든 것이 부족하고, 또 기존에 갖고 있던 것 대부분이 유류나 예비부품 부족으로 가동율이 아주 미미한 상황입니다.



4. 개혁의 희망: 집단농업 해체

중국 개혁개방 1기의 최대 성공요인으로 꼽히는 것은 농업개혁, 구체적으로는 인민공사 해체와 자영농으로의 전환입니다. 이것이 가져온 성과를 한 번 살펴보지요.

[김운근,1994:43]

중국의 성공 경험으로 볼 때, 북한이 자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개혁은 역시 국영농장과 협동농장을 해체해 자영농 기반으로 돌아가는 것일 겁니다. 또한 텃밭이나 뙤기밭 등 현재 북한에 존재하는 개인 소유의 소토지의 효율성이 월등하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 방법만이 북한의 농업생산성의 성장을 담보해줄 수 있는 검증된 해법인 셈입니다.


5. 끝으로

외부세계가 직접 식량지원, 비료나 농자재 지원, 에너지 지원 등을 통해 북한의 농업난을 단기적으로 덜어주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인 농업생산성의 마이너스 성장은 다른 나라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한 내부의 개혁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골칫거리는 원조를 주면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으니까 더욱 더 개혁을 뒤로 미루려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누구에게나 개혁은 고통스러운 선택이니까요. 그리고 1980년대부터 중국이 원조를 주면서 꾸준히 개혁개방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늘 하겠다고 말만 하다가 개혁을 하지 않았다는 점으로 볼 때, 북한이 기회가 있는 한 개혁에 저항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참고

권태진. “북한에 대한 농기자재 지원방향.” 농촌경제 23.2 (2000): 87-102.
김영훈. 『북한의 "농업복구 및 환경보호" 계획과 국제사회의 지원』. 서울: 농촌경제연구원, 2000.
김운근. 북한의 곡물 생산량 추정: 1993년 작황을 중심으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94.
김운근. “남북한 농업협력의 필요성과 한국의 대북지원.” 통일문제연구 11.2 (1999): 19-42.
김운근. “북한의 식량수급 현황과 남북 농업협력 방안.” 농촌경제 24.4 (2001): 39-52.
이석. 『1994-2000년 북한 기근: 발생, 충격 그리고 특징』. 서울: 통일연구원, 2004.
이석. “1980년대 북한의 식량생산, 배급, 무역 및 소비: 식량위기의 기원.” 현대북한연구 7.1 (2004b): 41-86.
by sonnet | 2010/05/19 22:45 | 정치 | 트랙백(1) | 핑백(1) | 덧글(421)
garry's comments(1)
최근 제 블로그를 방문해 수 없이 많은 덧글을 남겨주고 계신 분이 계신데, 여기저기 덧글로 답하기에는 너무 산만해서 좀 모아서 답해볼까 합니다.


북은 식량을 수입할 외환이 원래 없어요. 만성적인 무역적자국으로 그 차액은 중국이 원조로 매꿔주고 있습니다. 중국의 원조 중에는 현물인 식량도 상당히 포함됩니다. 현물 식량을 기준으로 북에 가장 식량을 많이 원조한 나라는 중국이네요. 그러니까 외환으로 중국에서 식량을 구입할 필요가 그만큼 줄었겠지요. 사안을 입체적으로 봐야지, 선별된 단 한가지 통계만을 가지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소설이 됩니다. (출처)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소설을 쓴다라. 흐.
적어도 두 연구(정광민, 2005:150~154, Haggard&Noland, 2007:80~89)가 북한이 수입을 원조로 대체했다고 평가한다는 점을 이미 보여드렸습니다. 필요하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연구자 몇 명을 더 들어 줄 수도 있구요. 저는 이 점에 관해서 별로 고립된 입장이 아닙니다.

어쨌든 북이 식량을 수입할 외환이 없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지요.

북은 미사일을 중동에 팔아 연 5억~15억 불 정도를 번다고 합니다. … 미사일 판매 자금만으로도 핵 개발 비용의 충당이 가능할 것입니다. (출처)

["금강산 여행경비로만 북한이 받은 돈은 4억3천877만달러"라는 반박에 답하며] 금강산 관광사업은 북 군부가 관리하고 그쪽 자금으로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쓸데없이 관광객을 사살해서 중단시켰다고 후회한다는군요. 지금은 통일전선부로 소속이 바뀌였다고 합니다만.
한 나라를 꾸려 가는데에는 여러모로 외환이 많이 필요하겠지요. 북은 만성적인 무역적자국입니다. 국내 생산기반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에, 공산품의 80%를 중국에서 수입해서 사다 쓴다고 합니다. (출처)

이런 저런 경로로 외환이 확보된다는 것을 별 거리낌없이 인정하지만 "한 나라를 꾸려 가는데에는 여러모로 외환이 많이 필요"할거라는 말로 넘어갑니다. 이건 결국 "북이 식량을 수입할 외환이 없다"란 굶어죽는 사람이 나와도 식량을 수입하는 일 따위에 쓸 외환은 없다는 말인 거죠.

어디 그런가 한 번 볼까요?

북은 어짜피 남과 상대도 안되는 재래식 군비 확장에는 관심도 없는 것이고 유사시 남을 군사력으로 점령하겠다는 야심도 없는 것입니다. … 어짜피 핵 무기가 있으면 미국이 공격 못한다고 보고 거기에만 집중하는 것이지요. (출처)

여기에 대해선 다음 논평이 충분한 답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북한] 정부는 인도주의적 원조를 국내 생산과 교역을 통한 공급원에 추가하기보다는 국제수지를 보충하는 데 다량 사용했으며, 수입 감소 때문에 절약된 외화를 다른 우선순위, 군수용이나 상류층을 위한 사치품 수입 등에 할당했다. 예를 들어 1999년 교역을 통한 곡물 수입을 20만 미터톤 이하로 줄였던 시점에 정부는 외환을 미그 21 전투기 40대와 군용 헬리콥터 8대를 카자흐스탄에서 구매하는 데 할당했다. 더구나 이 시기는 실제로 북한의 안보 상황이 크게 개선되었던 시점이다.
첫 번째 핵 교착 상태를 종결시킨 북미기본합의서가 거의 5년 동안 정착되어 온 시점이었고, 북한은 더디기는 하지만 많은 잔여 현안, 특히 미사일 관련 문제에서 미국과의 협상에서 진전을 보이고 있었으며 이는 외교적 경제적,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조절 실패, 원조가 늘어나자 교역을 통한 수입을 줄인 점, 굶주려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데도 군사 지출과 사치품 수입을 계속한 사실은 기근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평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Haggard&Noland, 2007:91)

즉 "관심도 없"다는 재래식 군비도 사실 곡물 수입보다는 우선권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입장은 반복적으로 제기됩니다.

모든 체제는 자체의 유지가 지고의 가치입니다. 이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황장엽 선생의 지적에 따르면, 북의 경제체제는 당 경제, 군 경제, 인민경제로 3분되어 돌아간다고 합니다. 북의 경제난이 심화되더라도 핵무기 개발 등을 담당하는 당 경제, 군경제는 덜 위축됩니다. 결과로 경제난의 대부분이 인민경제에 집중되는 지렛대 효과(leverage effect)가 발생해서 사람이 대량으로 굶어죽고, 그럼에도 당경제, 군경제가 담당하는 핵무기 개발에는 아무런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는 매우 잔혹하고, 경제의 각 부분의 섹터화로 인해 비효율이 초래되는 방식이지만, 동시에 북 체제 유지를 위한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일 것입니다.
힘의 우위를 통해서 외부에서 북 내부의 자원 배분의 순위를 바꿀 수 없습니다. (출처)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북한 경제가 특권경제와 나머지 인민경제로 나뉘어 있고, 모든 면에서 우선권이 없는 인민경제가 경제난의 피해를 집중적으로 입게 된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당연히 북한 정권의 책임일 뿐만 아니라, 북한이 진정한 개혁(개방은 둘째 치고)의 의지가 있다면 제일 먼저 손대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별다른 개혁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북한에 개혁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케하는 대목입니다. 사실 김일성 사후 북한은 선군정치라는 형태로 이 특권체제를 공식화하고 강화했지, 단 한 걸음도 개혁의 방향으로 움직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북한이 변명하는 것이 있긴 합니다.

더 나아가 보자면, 북 입장에서의 식량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으로 식량을 수입할 외환을 충분히 버는 것이며, 그럴려면 미국의 적대적 무시를 깨야 합니다. 이를 깰 수단은 핵 확산을 도저히 방치할 수가 없는 미국을 협상장으로 나오게 만들 핵무기 개발입니다. (출처)

이건 최대한 좋게 봐줘도 북한이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고, 냉정하게 말하면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않는 책임을 외부에 전가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왜냐면 이건 북한이 오래 전에 제맘대로 써놓은 희망사항일 뿐 이 각본이 북한의 경제발전을 전혀 담보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핵포기가 걸려 있어서 쉽지 않겠지만, 예를 들어 미국과 북한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다고 해 봅시다. 그런다고 미국이 북한에 대거 투자할 것도 아니고, 북한 상품이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소련과 미국이 외교관계가 없어 냉전을 했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미국과 북한 간의 외교관계는 미국-시리아 관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별볼일없이 냉랭하거나 아니면 미국-베네수엘라에서 보듯이 끊임없이 사소한 시비가 계속되는 그런 관계로 곧 전락해 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미국과의 공식외교관계가 없더라도 북한의 경제규모나 수준으로 볼 때 중국을 무역파트너로 삼아 1990년 이후 개혁개방 노선을 취하는 것은 가능했을 터이며, 20여 년간 계속된 중국의 빠른 성장에 편승해 커다란 이익을 누릴 수 있었을 겁니다. 북한은 이런 방향으로는 별 노력을 취한 게 없습니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 취했던 태도와 그 귀결은 다음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간에 온 세상이 나에게 적대적이라는 주장이 옳음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두 말할 나위 없는 특권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가 온 세상이 다 나에게 적대적이라는 주장을 충분히 자주 외치고 다니며 그 주장을 자기 행동의 근본으로 삼고 살다 보면 그는 결국 자신이 옳았음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 「소련 행동의 원천The Sources of Soviet Conduct」(1947), George F. Kennan -


김정일의 나이나 건강으로 볼 때, 그에게 아주 긴 시간이 남았다고 보긴 힘듭니다. 북핵문제 또한 최고로 잘 풀려도 4~5년 정도로 해결되진 못할 겁니다. 최소한 미북수교 이후에야 개혁 개방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라면, 결국 김정일이 천수를 누려도 그의 살아 생전에 개혁개방이 제 궤도에 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며, 사실 그 이후는 김일성-김정일의 기존 노선에서 얼마나 이탈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김정일이 김일성을 계승했던 것과 비슷하게 강한 연속성을 유지한다면 여전히 개혁개방은 요원할 것이며, 반대로 새 정부가 과거와의 단절을 택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북한을 갖고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뿐입니다. 그건 그 때 가서 상대의 행동을 봐가며 판단할 수밖에 없지요.


한편으로 원조가 (추가 경비가 들더라도) 분배 모니터링을 통해 북한의 취약계층에게 전달되건, (특권계층이 우선적인 이익을 누리는 것을 감수하고) 압도적인 물량을 퍼부어 포화상태를 야기해 취약계층에게까지 물량이 전달되건 간에, 둘 다 성공한다면 굶어죽는 사람을 구제한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왜 모니터링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까요?

앞서 나온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려면, 저는 garry씨께서 여기 오셔서 원조가 적절히 분배되는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데 극렬히 반대하며 그 대신 묻지마 원조를 줘야 한다고 역설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다음 주장에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북의 김정일은 건강도 안좋고 언제인가 죽을테인데, 그래도 북의 관료체계는 그대로 유지될 겁니다. 그러니 그들[북의 현 지배층]의 신뢰와 환심을 사두어야지요. (출처)

기근에 처한 북한 소외계층을 돕고 그들의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에서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부분일 겁니다. 하지만 북한의 현 지배층이 원하는 대로 해먹을 수 있게 판을 깔아준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가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런 입장은 끊임없는 논란과 분쟁의 소재일 뿐입니다. 이런 입장을 무리하게 끼워팔려고 들수록 인도적 원조 전체가 정치적 환경에 따라 흔들리게 될 수밖에 없지요.



반박만 계속하면 좀 지겨우니까 새로운 논거를 하나 제기해 보겠습니다.

남한과는 달리 북한이 자력갱생식 자립경제를 목표로 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식량의 자급자족 또한 김일성이 누누히 강조해 온 핵심 사안이죠. 북한의 전형적인 곡물무역 패턴이 잘 드러나는 1975~80년도의 통계를 가져와 이런 자력갱생 정책의 특징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 시기에도 무역수지는 10억 달러의 적자였지만, 곡물무역만 놓고 보면 약간의 흑자를 거둡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금액기준과는 반대로 물량기준으로는 적자라는 것입니다. 즉 균형을 유지하되 상대적으로 비싼 곡물(쌀)을 팔아 싼 곡물(밀)을 사옴으로서 양을 불린 것입니다. 이석은 이런 패턴이 (북한 농업 문제가 심각해지는) 1985년 이전까지 이어지는 북한 곡물무역의 기본 패턴이라고 지적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처럼 농업의 자급자족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대신 공산품을 수출해 농산품을 수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접근입니다. 북한이 시도한 것은 자급자족 원칙을 고수하되, 농업 부문이 교역을 통해 자체해결을 강화하는 정도까지는 허용한다는 것이지요.

북한의 그 다음 대책은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배급량을 10%씩 10%씩 줄여나가면서 소비를 억제한 것입니다. 결국은 더 줄일 수 없는 지점까지 줄어든 다음에는 배급 자체가 잘 나오지 않게 되지요.

다음은 후방공급사업입니다. 이것은 기관과 기업소가 부식류를 자체해결하게 하자는 계획이었습니다. 북한이 기대한 대로 잘 풀리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사실상 후방공급활동이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공장 부속지 등에서 직접 농업노동에 참가하여 식료를 획득하는 시스템"(정광민, 2005:132)으로 동작합니다. 잘 알려진 텃밭이나 뙈기밭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기근이 심화되자 김정일은 지방정부나 기업소가 외국과의 직거래로 식량을 조달할 수 있게 허용하는 소위 '외화벌이'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응합니다. 별로 내키진 않지만 장마당 등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련의 대책들에는 일관된 측면이 있습니다. 식량문제에 있어서 골치아픈 문제가 생길 때마다 북한의 중앙정부는 중앙이 보유한 힘을 이용해 다른 분야에 있는 자신의 자원을 끌어다 해결해 주는 것을 극력 피하고, 자체해결 혹은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해결의 책임을 남들에게 떠넘겼던 것입니다.

북한이 자신이 보유한 외환을 식량수입에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외국 원조에 부담을 떠넘긴다는 평가는 이런 관점에서 지지될 수 있습니다. 이건 과거 수십 년 동안 북한 정부가 해왔던 행동의 연장선으로 보면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이니까요.

북한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업적이자 딴에는 자신들의 자기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자주, 자립, 자급자족, 자력갱생, 자체해결 등이 사실 북한의 실패와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개혁 의지가 얼마나 쓸만한 것인지는 이런 것들과 결별했다는 근거가 있는지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 농업문제 연구자인 김운근의 논평으로 마무리를 짓도록 하지요.
문제는 김일성시대의 농업정책을 하나하나 변화시켜 나가는데는 여러 가지 제약이 가로놓여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각종 농업정책들이 김일성 교시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함부로 수정하거나 폐지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북한이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이것이 북한의 헌법이요 농업기본법이기도 하다.

어디 농업 뿐이겠습니까. 김일성의 유산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어디건 본격적인 개혁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은 태생적으로 아버지의 유산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인물이죠.
by sonnet | 2009/10/24 18:08 | flame! | 트랙백 | 핑백(4) | 덧글(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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