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조쉔코와 쥬다노프쒸나

벌과 사람

한 꼴호즈에 붉은 군대 병사가 손님으로 왔다. 그는 친척들에게 꽃꿀 한 단지를 선물로 내놓았다. 그 꿀의 맛이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맛본 사람마다 혀를 찼다. 꼴호즈원들은 대번 꿀벌을 치자고 이구동성으로 떠들었다. 꼴호즈원들 가운데는 이반 빤필류치라고 부르는 72살의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젊은 시절에 꿀벌을 친 경험이 있었다.
“차에 꿀을 타 마시자면, 아무데고 찾아가 우리 마음에 맞는 벌을 사와야 해.”
그가 말했다.
꼴호즈에는 경비를 마련해 이반 빤필류치를 땀보프로 보냈다. 땀보프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꿀벌은 거의 공짜로 드릴 수 있습니다만, 어떻게 꿀벌을 운반해 가느냐가 문제입니다. 벌은 종이에 쌀 수도 없는 날개 달린 상품이 아닙니까?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사방으로 날아 흩어집니다. 우리는 당신이 결국 벌통과 유충만 운반해 가게 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운반해 가야지요. 나는 꿀벌을 잘 알아요. 평생을 꿀벌과 사귀어온 사람이 나요.”
빤필류치는 이렇게 대답했다. 빤필류치는 두 채의 수레에 열여섯 개의 벌통을 싣고 역으로 갔다. 그는 무개화차에 벌통을 싣고 비닐로 덮었다….
마침내 열차는 출발했다. 열차는 온 종일을 달리고도 하루를 더 갔다. 사흘이 지나면서 빤필류치의 걱정은 커지기 시작했다. 열차가 너무도 더디게 갔던 것이다. 부지하세월로 가는 이 열차로는 언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 도대체 짐작할 수가 없었다.
빤필류치는 <뽈랴> 역에서 내려 역장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 역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게 되는거요?”
역장의 대답은 이랬다.
“나도 잘 몰라요. 어쩌면 저녁때까지 머무를 수도 있구요.”
“그렇다면 벌을 이 고장의 벌판에 풀어놔야겠군. 먼 길을 오느라 모두 몹시 기진맥진했을 테니…. 벌들이 배를 곯았소. 도중에 아무 것도 먹질 못하니까, 새끼 벌을 먹이지 않더란 말이오.”
빤필류치는 무개화차로 돌아가 비닐을 벗겼다.
화창한 날씨였다. 푸른 하늘에서 7월의 해가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었다. 드넓은 벌판에는 꽃풀이 자라고 있었고, 밤나무도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을 때였다. 빤필류치가 비닐을 벗기자마자 꿀벌대군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꿀벌들은 한동안 원을 그리더니 벌판과 숲으로 날아갔다. 여객들이 무개화차를 둘러싸고 구경했다. 빤필류치는 그들 앞에서 꿀벌의 유익성에 관해 강연을 했다. 한참 강연을 하는 중이었는데, 역장이 출발신호를 하는 것이 아닌가!
빤필류치는 아연실색에서 역장에게 말했다.
“제발 열차를 출발시키지 말아주시오! 벌이 모두 날아다니고 있잖소.”
역장은 말하기를
“그럼 호각을 불어 빨리 타라고 하시오! 나는 열차를 3분 이상 지체시킬 수 없단 말이오.”
빤필류치는 말하기를
“제발 부탁하겠소. 해가 질 때까지 열차를 붙들어주오! 해질 무렵이면 벌들이 제 자리에 돌아올거요. 기관차를 붙들어 둘 수 없거든, 이 무개화차만이라도 떼 놓아주시오. 나는 벌들을 두고 갈 수 없소.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천 마리 밖에 되지 않소. 1만 5천 마리는 벌판에 날아다니고 있단 말이오. 내 사정 좀 봐주시오! 제발, 사정 좀 봐주오!”
역장이 다시 말하기를
“영감님, 여기는 꿀벌요양지가 아니라 철도역이예요. 벌이 날아간 것이 무슨 큰일입니까? 그게 큰일이라면, 아마 다음 열차에서는 파리가 달아났다고 하거나 객차에서 벼룩이 뛰어내렸다고 야단일거요. 그럴 때마다 기차를 붙들어두어야 하겠소? 제발 사람 좀 작작 웃기시오!”
말을 마친 역장은 다시 기관사에게 출발신호를 했다. 열차는 떠나기 시작했다.
창백해진 빤필류치는 무개화차에 서서 두 손을 휘저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온몸이 후들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차는 떠나갔다. 몇 마리의 벌은 그래도 달리는 차에 올라탔다. 그러나 대다수는 벌판과 숲에 남고 말았다. 열차는 멀리 사라져갔다.
역장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일에 몰두했다. 그는 서류에 무언가를 써 넣으면서 레몬차를 마셨다. 그 때 갑자기 홈 쪽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역장은 그쪽으로 난 창문을 열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여행객들 속에서 무슨 소동이 일어났는지, 모두들 부산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역장이 물었다.
“무슨 일이오?”
어떤 사람이 대답하였다.
“벌이 여객 셋을 쏘았소. 다른 사람들한테도 막 달려들고 있소. 벌이 어찌나 많은지 하늘이 온통 새카맣다오.”
정말 벌떼가 시커먼 구름덩이처럼 역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벌들이 자신들이 탔던 무개화차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역장이 막 창가에서 물러나 홈으로 나가려고 할 때였다. 성난 벌떼가 창문으로 날아들었다. 역장은 수건을 휘저으면서 벌들을 역무실에서 내몰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벌떼는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적수공권으로 달려들었다.
두 마리의 벌은 그의 목을 쏘았고 한 마리는 귀를 쏘았다. 그리고 또 한 마리는 그의 이마를 쏘았다. 역장은 수건을 동이고 소파에 누워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수가 달려와 말했다.
“방금 매표원, 당신의 부인 클라우지야 이바노브나가 벌에 코를 쏘였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져 못쓰게 되고 말았어요.”
역장은 신음소리를 더 크게 내며 말했다.
“그놈의 정신 나간 양봉쟁이가 탄 무개화차를 빨리 돌려와야 해.”
역장은 소파에서 뛰어 일어나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은 역에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좋소. 무개화차를 곧 떼겠소. 하지만 우리한테는 화차를 도로 끌어다 줄 기관차는 없소.”
역장은 다음과 같이 소리를 질렀다.
“기관차는 우리가 보내겠소. 무개화차를 빨리 떼어만 주시오. 벌이 우리 집사람까지 쏘았단 말이오. 우리 <뽈랴>역은 지금 텅 비었소. 여객들은 모두 헛간에 숨었소. 벌떼만 공중을 날아다니고 있단 말이요. 나도 밖에 나갈 수 없소. 열차 전복사고가 난다해도 난 몰라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무개화차가 되돌아왔다.
빤필류치가 타고 있는 무개화차를 보자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빤필류치는 무개화차를 바로 이전에 세웠던 곳에 세우라고 했다. 벌들은 그 무개화차를 보자 즉시 날아왔다.
벌들은 제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로 밀치락뒤치락 했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어찌나 사납게 울렸던지, 개가 짖기 시작하고 비둘기들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빤필류치는 무개화차에 서서 타이르듯 말했다.
“서둘지 말어라, 얘들아, 얘들아, 덤비지 말어! 아직 시간이 충분해. 모두 자기 자리를 차지하도록!”
10분이 지나자 벌들이 조용해졌다. 빤필류치는 무개화차에서 내렸다.
역장은 여전히 수건을 동이고 소파에 누워 아이고 아이고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빤필류치가 역무실로 들어오는 것을 보자, 신음소리를 더 크게 냈다.
빤필류치가 말했다.
“나의 벌들이 당신을 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오. 그렇지만 이 일은 당신의 잘못이 커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렇게 무관심하게 대해서는 안 되는 법이오. 벌은 참을성이 없소. 벌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 말이 필요 없이 쏘기부터 하니까.”
역장이 신음소리를 더 크게 질렀으나 빤필류치는 말을 계속했다.
“벌은 자기네 일에 대한 무관심과 관료주의를 전혀 참을 줄 모른다오. 당신은 벌도 사람들을 대하듯 했으니, 벌을 받은거요.”
빤필류치는 창밖을 내다보며 덧붙였다.
“해가 졌군. 나의 길동무들은 제자리를 차지했소. 안녕히 계시오! 우리는 떠나겠소.”
그 이튿날 저녁녘에 빤필류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꼴호즈원들은 풍악을 울리며 그를 마중했다.

(미하일 조쉔코)


미하일 조쉔코는 스탈린 시대의 인기있는 풍자작가였다. 안타깝게도 강철의 대원수는 대조국전쟁이 끝나자마자 자기 국민이 너무 풀어졌으며, 서구의 해로운 사상에 노출되어 오염된 게 틀림없다고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대원수의 심기 경호에 만전을 기하던 심복 안드레이 쥬다노프가 즉각 기치를 높이 들고 소련 문화생활에서 "올바른" 관점을 되찾기 위한 운동(Zhdanovshchina)을 전개하였다. 이 때, 조쉔코 외에도, 서정시인 안나 아흐마토바,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취와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아람 하차투리안 등이 비판의 표적이 되었고 많은 문화계 인사가 큰 고초를 겪었다.

몇 년 후 쥬다노프가 죽자 역풍이 불어닥쳤다. 쥬다노프의 경쟁자 말렌코프와 베리야가 칼을 뽑은 것이다. 이번에는 전국적으로 쥬다노프 관련 인사 수천 명이 처형당하거나 꿀라끄로 보내졌다…….


실은 익숙한 편지에서 셀프 트랙백
by sonnet | 2008/05/19 17:28 | 정치 | 트랙백 | 덧글(15)
영혼의 책

아시는 분은 아는 『영혼의 책』(rukhnama)이란 것이 있다. 이런 멋진 책을 접할 귀한 기회는 평생 없지 않을까 했는데, 왠걸. 우연히 그러한 행운을 가질 수 있어 이에 간단한 기록을 남긴다. 이 책의 정체와 저자에 관해서 사전지식이 필요하신 분께서는 예전 글 Niyazov 行狀을 참조하시면 될 것 같다.

내용 둘러보기





정체불명의 출판사 중앙아시아 연구소, 그리고 으시시한 가격(참고로 이 책은 377p)


투르크메니스탄 전문(?)


선 서! (클릭하면 확대)


목차


내용1 (클릭하면 확대)

내용2 (클릭하면 확대)

내용3 (클릭하면 확대)



감상

여러분의 영혼이 가출하는 경험을 방지하기 위해 내용을 좀 요약해 보자면, 이 책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종신대통령 고 사파무라트 니야조프가 실용과 취미를 겸해 쓴 환단고기 같은 책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여기에는 위대한 투르크멘 민족의 서사시적 역사, 그들이 겪은 역사적 곤경, 그리고 투르크멘을 인도해 천연가스젖과 꿀이 흐르는 조국건설로 이끈 위대한 영도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사실 놀라울 것이 없지만, 내가 이 책을 번역으로 읽게 될줄은 차마 몰랐다. "왕 중의 왕"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 전하가 친히 저술하셨다는 『백색혁명』 한국어판(1976)을 읽어본 이래 개안하는 경험이었다. 사실 『백색혁명』 한국어판은 주한이란대사관의 작품이었는데, 『루흐나마』 한국어판(2007) 또한 투르크메니스탄 정부가 다국어 번역 프로젝트라도 발동한 것일까? 기왕 그런 프로젝트를 벌일 거면 한 권 소장할 수 있도록 책값이라도 싸게 해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by sonnet | 2008/05/18 20:02 | | 트랙백(2) | 덧글(82)
오늘의 한마디(Asimov)

The unwritten motto of United States Robot and Mechanical Men Corp. was well known:

No employee makes the same mistake twice.
He is fired the first time.


- Isaac Asimov의 단편집 I, Robot 중에서 -


하인라인의 국가관(혹은 시민관)에 대해서는 종종 이야기되는데 아시모프 대선생(의 기업관)도 은근히 만만치 않다는 느낌.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로봇 전문가들(로봇 심리학자 수잔 켈빈 박사, 필드테스트 팀의 파월과 도노반)은 로봇공학의 3원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상행동을 하는 로봇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로봇공학 제1원칙인 "로봇은 인간에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를 이용하기 위해 종종 목숨을 걸곤 한다. 요즘 생각으론 그게 우연일 것 같지가 않게 느껴진다.

주. United States Robot and Mechanical Men Corp는 작중에서 로봇3원칙을 준수하는 로봇을 생산하는 대기업이다. 20세기 말의 모뎀회사 U.S. Robotics(후에 3Com에 합병)은 이 회사의 이름에서 착안했다고 전한다.
by sonnet | 2008/05/12 08:04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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