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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행정부의 국방장관이던 캐스퍼 와인버거 밑에서 선임군사보좌관으로 일하던 콜린 파월이 전하는 이야기이다.

이 직책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상관의 방식에서 배운 바가 또 하나 있다. 1983년 7월 26일, 오전 6시 30분에 도착해서 간밤의 국방부 소식을 요약한 『얼리 버드』를 훑어보고 있는데, 『워싱턴 포스트』에서 뽑은 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해군이 의학도들에게 전장의 부상자를 치료하는 훈련을 시킬 목적으로 메릴랜드 베데스다 해군 병원에 ‘부상 연구소’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개를 마취시켜 실습한 뒤 쏴 죽였다. 머릿속에서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래쉬나 스누피가 군의 의학 실험에 희생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이 보였다. 나는 해군 장관 사무실에서 나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폴 데이비드 밀러(Paul David Miller) 대령에게 전화했다. 와인버거 장관이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알고 싶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폴은 이렇게 이른 시간에는 베데스다에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조금 있다 알려드리죠.” 그러나 나는 지금 알려 주는 편이 나을 거라고 말했다. 장관이 수 분 내에 도착할 터였다. 그날 아침에는 MX 미사일 배치에 관한 투표가 중요한 안건이었고, 장관은 또 일찌감치 세 방송사와 인터뷰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밀러는 그가 알고 있는 정보는 죄다 전해 주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와인버거가 들어왔다. 그의 첫 마디는 “강아지들을 죽였다는데 무슨 소리요?”였다(와인버거 가족에겐 킬티라는 이름의 개가 있었다).
내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장관님, 해병대가 전투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 중요한…….”
“중단시키게.”
“장관님, 이런 의학 연구는 도움이…….”
“이제 끝이라고 해군에 전하게. 이 계획은 무효라고. 생각할 것도 없소, 알겠소?
밀러에게 다시 전화해서 그 명령을 전했고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하지만……”을 반복했다. 나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노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장관을 2층에 있는 국방부 방송 스튜디오로 모시고 내려가 ‘투데이’쇼 첫 출연을 위해 전화를 연결해야 했다.
세상이 핵으로 멸망 직전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브라이언트 검벨(Bryant Gumbel)의 첫 질문은 『워싱턴 포스트』의 개 이야기였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와인버거는 냉정히 말했다. 그런 따위의 계획이 정말 있기라도 하다면 이미 취소 명령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다른 인터뷰들도 같은 질문으로 시작됐고, 매번 장관은 군이 어떤 훌륭한 목적이 있다 해도 강아지들을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와인버거의 반응은 직관적이었다. 그는 외과 의사, 정신과 의사, 수의사, 그리고 동물 애호 단체 사람들로 이루어진 최고 수준의 심사단으로 하여금 이 문제를 주무르도록 요청하지 않았다. 그는 애완동물 애호가들의 나라에서 이런 생각은 그 과학적 전제가 무엇이든 간에 뜰 수 없음을 즉시 인식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묵살한 것이다. 우편물이 쏟아졌다. 펜타곤의 전화 교환대도 혼잡을 이루었다. 신문 논설위원들도 와인버거 찬가를 불러 댔다. 와인버거는 영웅이었다. 나는 홍보의 대가(大家)로부터 교훈을 배웠다. 신성불가침적인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 또 아주 골치 아픈 공개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정면으로 빨리 대처한다면 채무를 오히려 자산 항목으로 옮겨 올 수 있다.

Powell, Colin L., My American Journey, 1995
(류진 역, 『콜린 파월 자서전』, 샘터, 2001, p.407-409)

"외과 의사, 정신과 의사, 수의사, 그리고 동물 애호 단체 사람들로 이루어진 최고 수준의 심사단으로 하여금 이 문제를 주무르도록 요청"하는 유형의 사람이 바로 바로 나 같은 사람이다. 내가 그런 방법을 선호하는 것은 대중들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정치적 역풍을 물타기해가며 행정의 합리성을 지킬 좋은 전술이자 제도적 장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지만 이런 경우라면 와인버거 같은 결단을 내려주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리고 기자들 앞에서 말꼬리 잡히지 않게 능청을 떠는 솜씨도 최고라고 칭찬해 주고 싶다.

이 경우 군의관들이 동물애호가네 집의 개를 납치해서 배를 갈라 실험한 후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은 아니다. 냉정하게 본다면 동물애호가는 자기 집 개를 가족처럼 키울 권리가 있고, 군대는 돈주고 산 개를 실습용으로 쓸 권리가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문제다. 너희집 개는 너희집 개고, 국가 자산은 국가 자산 아닌가? (물론 현행법상 하자가 없다는 전제 하에)

반면 군의관들이 좋은 의료기술을 연마해 두면 죽을지도 모르는 병사들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실질적인 이익이다. 냉정하고 사려깊게 충분한 시간을 들여 문제의 모든 측면을 살펴본다면 현명한 시민들이라면 이쪽 편의 손을 들어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동물이 개가 아니라 악어나 말미잘, 개미였다면 문제가 이렇게 시끄러웠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즉 이는 일반윤리라기 보다는 사람들이 갖는 특정 동물에 대한 정서적 유대감과 깊은 관련이 있는 문제인 게다.

그러나 그렇든 그렇지 않든 대중은 결코 그렇게 자세하게 생각해 볼 틈도 없고, 이런 문제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굽힐 생각도 없기 마련이다. 대중의 이런 특성은 다음 세기가 오고 그 다음 세기가 오더라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대의민주정 하의 국가, 즉 대중이 권력을 쥐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막강한 권력의 원천인 나라에서 사소한 일로 대중을 열받게 만드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정치인들은 믿음직스럽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이런 일이 닥칠 때마다 관료의 합리성을 뛰어넘은 합리적 정치적 계산을 하도록 요청받는 존재다.

우리가 잘 훈련된 직업관료의 대군 위에 상대적으로 비전문가인 정치인들을 장관이나 대통령 등으로 임명해 이들을 통제할 권한을 맡긴 까닭은 바로 그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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