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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토론목록(2008/07~) [15]
2008/06/14   사후적 지혜의 함정 [31]
2008/06/12   re: 꼭 그럴까요? [29]
토론목록(2008/07~)
이하는 7월 하순부터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토론 쓰레드를 정리한 것입니다.
갯수가 상당히 많아서 트랙백 중에서 직접 토론과 관계가 적어 보이는 것은 일부 생략했습니다. 누락된 것이나 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이 있으면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 foog, Crete 두 분께서 제가 사실관계 확인의 중요성(foog)이란 포스팅에서 지적한 점 하나를 고의적으로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지적 자체가 요점을 놓치고 있다고 봅니다만, 그 점도 포함해 "포스팅 예정 B"에서 이에 대한 답을 하겠습니다.


by sonnet | 2008/09/01 21:42 | flame!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5)
사후적 지혜의 함정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는 일련의 토론의 일부이다.


이번 글에서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트랙백해온 글에 반박하는 논점 몇 가지를 다룬 후, 이번 논쟁이 더 진행될 수 있기 위해 해결되어야 할 근거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1. 정황유추의 한계

하지만 영국의 단호한 결의의 근거로 처칠의 회고록을 인용한 것은 좀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처칠의 역사가적 양심을 굳이 의심해서라기보다는, 처칠 입장에서는 내각과 영국 국민의 단호한 결의를 믿고 싶었을 것이고 또 그런 영국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라는 점이지요... 굳이 (소수의) 화평론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가장 위대했던 시절"에 대한 기록에서 말이지요. (파파라치)

여기서는 내가 제시한 근거에 대해 직접적인 반증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별 근거가 없으면서도 이미 제시된 자료를 최대한 자신의 기존 주장에 맞추어 유리하게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저런 식의 창작을 시도하면 정반대의 논리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상상해 보자.

"이제 와서 말하자면 누구라고 지목은 않겠으나 당시 우리 대영제국 지도부에는 프랑스에서의 패배에 자신감을 잃고 과도한 비관주의에 빠진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히틀러가 제시한 굴복요구를 받아들이자는 쪽에 이끌리고 있었다. 이에 나는 ……한 이유를 들어가며 이들을 설득한 끝에 종내는 모두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는 데 동의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줄거리를 미사여구로 포장해 내놓을 수 있다면 어려웠던 시기를 이겨내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처칠 수상 자신의 위대함과 식견은 더한층 빛나 보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있었다면 더 자랑스럽게 공개하지 굳이 감출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 물론 이러한 나의 정황유추도 파파라치씨가 내놓은 유추과 마찬가지로 이 자체로는 아무 근거가 없다. 결국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 없이 순수한 유추만 갖고 자료가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게다. 저런 식의 정황설명은 몇 개의 상충되는 근거가 있어 일관성을 위해 그 중 모순되는 일부를 배제하는 설명을 수립하고자 할 때라면 몰라도,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는 전혀 설득력이 없는 접근법이다.

이런 식의 주장은 최소한 당시 처칠의 비서가 후에 저런 유추에 해당하는 증언을 남겼다거나 하는 정도는 되어야 간접적인 증거로라도 채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 히틀러의 의도 때려맞추기

하지만 히틀러의 목적이 "동방 정복"에 있었다는 걸 꿰뚫어 본 사람이라면, 뮌헨 협정이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는 것 못지않게 영국이 히틀러의 주된 공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도 있었겠지요. 그리고 그 사실은 "나의 투쟁"을 비롯한 히틀러의 여러 언급에서 이미 공공연하게 언급된 것이고요.

히틀러의 주 관심사가 동방이라면 영국은 잠정적으로라도 히틀러와 화해하고 제국의 보존을 추구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파파라치)

『나의 투쟁Mein Kampf』과 같은 히틀러의 저술에서 공공연히 혹은 은연중에 드러나는 생각을 토대로 히틀러의 행동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널리 이루어져 왔다. 여기에는 히틀러가 세계정복을 노렸는가 아니면 유럽정복만 노렸는가(Globalists vs. Continentists) 또는 유태인 학살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는가 아닌가(Functionalism vs. Intentionalism) 같은 논쟁들이 있고, 각각의 진영 안에서도 주장의 강도에 따라 더 세밀한 분류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들은 대개 히틀러가 죽고 제3제국이 멸망함으로서, 히틀러가 더이상의 사건을 벌이지 못하게 된 후 확정된 결과를 갖고 그간의 언동을 평가함으로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히틀러가 승승장구하며 그 야망을 한참 펼쳐나가던 1940년 여름 시점, 즉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망상으로만 보이던 히틀러의 야망의 실현이 현실로 다가오고 수많은 선택의 길이 열려있던 시점에도 가능한 평가라고 볼 수는 없다.
즉 이러한 종류의 평가는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얻을 수 있는 사후적 지혜의 성격이 강하다.

게다가 아무리 국가지도자라곤 해도 독재국가도 아닌데 수상 개인이 개인적으로 『나의 투쟁』을 읽고 받은 개인적인 인상 하나만 갖고 국가의 진로를 180도 돌려놓을 수 있었을 거라고 간단히 가정하는 것도 무리한 발상이다.
당시 체임벌린이 물러나고 처칠이 수상에 취임하게 된 데는 체임벌린이 수상 직을 고집하는 한 거국일치내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야당의 입장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점은 당시 노동당 같은 야당이 거국일치내각 수립을 지렛대로 하여 중대사안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비토권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처칠은 체임벌린에게 당의 관리를 여전히 맡기는 등 보수당의 주류를 확고히 장악하는 입장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따라서 처칠이 당시 흔하지 않던 소수의 선각자적 시각에 입각해 급진적 돌출행동을 시도했을 경우, 그러한 시도가 별다른 저항 없이 성사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히틀러는 영국상륙작전인 Seelöwe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후에 이 계획을 무기연기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보면 앞서 언급된 것 같은 영국과 싸우는데 큰 흥미가 없었던 히틀러의 사고방식과 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투쟁』에 드러난 히틀러의 세계관에 입각해 영국의 해안방어에 과도한 투자를 할 필요는 없다고 수상이 독단적인 주장을 펴면 그게 당시의 거국일치내각에서 지지받을 수 있었겠는가?



3. 역사·전통적 배경과 원칙적인 이유?

ps2. 인용하신 힐그루버의 글에서도 "결국 영국은 역사·전통적 배경과 원칙적인 이유로 인해 전자의 해법을 선택할 수 없었다"라고 적혀 있는데, 과연 "역사·전통적 배경"과 "원칙적인 이유"란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셨는지? (파파라치)

이건 본인의 논지였던 "윈스턴 처칠이 히틀러에 대한 결사 항전을 다짐한 것도, 우파의 "가치"와 관련된 것"을 연결시킬 구석이 있는지 스스로 생각을 좀 해보셨는지 반문하고 싶다.

힐그루버가 말하는 바는 어디까지나 영국의 "역사·전통적 배경과 원칙적인 이유"이지, 처칠 개인의 혹은 영국 우파 특유의 "역사·전통적 배경과 원칙적인 이유"라는 이야긴 아니다.



4. 결론

결국 지금까지 살펴본 문제들을 종합하면 문제점은 한 가지로 요약된다.

이 논쟁의 시발점이 된 명제 "윈스턴 처칠이 히틀러에 대한 결사 항전을 다짐한 것도, 우파의 "가치"와 관련된 것"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가 하나도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러셀의 찻잔 등에서 잘 묘사되듯이,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입증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정상적인 논쟁에서는 존재를 주장하는 쪽에서 직접적인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그러한 근거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1. 히틀러의 "관대한" 제안을 수락하는 것과 관련된 유의미한 논의가 영국 전시내각 혹은 의회에서 이루어졌어야 함.
  2. 그러한 논의를 통해 영국의 국가전략이 '계속 항전'으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처칠이라는 개인이 유의미한 개입(예를 들자면 반대파를 논파)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함.
  3. 그러한 개입에 있어서 처칠이 보인 입장은 우파 고유의 가치에서 출발한 것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함. 예를 들어 영국 좌파 정당이라고 해서 별달리 반대할 이유가 없는 입장 같은 것이라면 그것을 굳이 우파의 가치라고 구별해 논할 필요가 없음.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어떤 근거가 제시될 수 있는지 한번 기대해 보도록 하자.
by sonnet | 2008/06/14 21:50 | flame! | 트랙백 | 덧글(31)
re: 꼭 그럴까요?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는 토론의 일부이다.


이번 글에서는 트랙백해온 글에 반박하는 논점 세 가지를 지적하기로 한다.


하지만 sonnet님의 미국 아니면 독일이라는 단순화는,
미국과 손을 잡는 것은 독일과의 전면전을 뜻하지만, 독일과 손을 잡는 것이 미국과의 전쟁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근본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있지요. (파파라치)

이 주장은 사실관계에 문제가 있다.
미국과 손을 잡는 것은 독일과의 전면전을 뜻하는 게 아니다. 영국은 독일과 이미 총력전에 휘말려 있는 상태에서 진행 중인 전쟁에 이기기 위해 미국의 도움에 의존하려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누구랑 손을 잡는게 더 유리한가를 따지는 것처럼 묘사하면 곤란하다. 전쟁은 시작보다 끝내기가 훨씬 어려운 법이다.



반면, 히틀러와 전쟁을 계속할 경우 영국의 허약한 경제력으로는 파산을 맞으리라는 것은
조금만 재정에 대한 이해가 있는 이들에게는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실제로 파산했고요).
재정적으로 파산한 제국이 유지될 수 있을리 없죠.
즉, 처칠의 전쟁 지속 결정은 대영제국의 해체를 의미했던 겁니다. (파파라치)

내가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독일과 전쟁을 한다는 결정은 체임벌린 내각에서 내려진 것이다. 이 점을 억지로 외면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자꾸 이런 이상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가한 시점에서 연합군의 지도부와 대중은 모두 이번 전쟁도 길고 피비린내나는 소모전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 시점에서 기계화 부대나 공군 때문에 소위 '전격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즉 체임벌린은 노쇠한 대영제국에 가해질 부담을 통감하면서도 전쟁에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 내키는 결정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설마 동맹국으로서 프랑스가 경제적 측면에서 대영제국의 붕괴를 저지해줄 만한 든든한 실력자라고 믿고 전쟁에 나섰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또한 처칠이라는 사람의 이념적 지향성이 그 시점에서 계속 싸운다라는 결정을 내리는데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결론을 내려면 최소한 영국 내부에서 히틀러가 내건 조건에 따르는 종전협상을 강하게 주장한 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미 결성되어 있던 거국일치내각 하에서 참여 정당 지도자들은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고, 주요 언론들도 항전을 지지하였다.

나의 마음속에 떠오른 최초의 생각은 상하양원에 있어서 이 일이 엄숙하게 정식으로 토론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보수당수] 체임벌린과 [노동당수] 애틀리에게 동시에 다음의 서한을 보냈다.

히틀러의 연설에 대하여 양원에서 결의를 갖고 토론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동의는 관직에 있지 않은 귀족과 의원들에 의하여 제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을 하면 우리의 일은 불어날 것이다.
귀견 여하.


두 사람은, 우리는 이에 관해서는 모두 동일 의견이므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사실을 너무 중시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외상의 방송 연설로써 히틀러의 의사 표시를 거부하게 할 것으로 결정했고, 22일 밤에 외상은 히틀러의 「자기 의사에 머리 숙이라는 초청」을 깨끗이 일축했다.
……
그러나 사실 히틀러의 연설이 방송됨과 동시에 도이치와 타협하고자 하는 것 같은 생각은 영국의 신문과 방송국에 의해 하등 정부로부터의 시사없이 이미 거부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외상] 치아노는 … 히틀러를 만났을 때의 일을 이렇게 쓰고 있다.
「어제의 연설에 대한 영국 여러 신문의 반발은 양해할 여지를 없게 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히틀러는 영국에 무력적 타격을 가할 준비를 하고 있다. …」

Churchill, Winston S, The Second World War, 1948-54
(윈스턴 처칠, 『제2차 세계대전』 , 현문사, 1974, 제3권 pp.315-316)

영국 사회에서 이런 결론이 날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영국은 1938년 뮌헨 협정을 맺었다가 히틀러에게 고스란히 사기당한 기억이 생생했다. 당시 영국에게 가용했던 정보에 비추어 볼 때, 히틀러의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을 줄 근거는 아무 데도 없었다. 그때까지 히틀러의 요구사항은 끊임없이 늘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히틀러의 피해자 명단에 스탈린이 추가됨으로서 이러한 견해는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이 역시 미국이 참전하기 전의 이야기이다.)

앞선 글에서 히틀러가 거래가 불가능한 상대라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지적했는데 이러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히틀러의 제안을 꿀꺽 삼키자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골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by sonnet | 2008/06/12 20:45 | flame! | 트랙백(2) | 핑백(1)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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