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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 변화는 왜 우월한 진보전략인가에 달린 논평,
Commented by 야채 at 2008/03/03 17:38에 대한 의견.
이 코멘트는 몇 가지 논점을 다루고 있는데, 좀 생각해본 결과 그러한 생각을 끌어낸 핵심은 (IT산업처럼) 발전이 빠른 분야에서는
"단지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방향도 잘 모르지만" "일단 달려야 하는" 상황이 있다란 문장에 함축되어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즉 쫓겨서라도 변화를 빨리 수용해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내 답은 빠른 기술진보가 곧 빠른 기술도입을 촉진한다는 주장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많은 경우 선입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 점을 몇 가지 예시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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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이성에 대한 낙관적 견해보다는 현재에 대한 문제의식 쪽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현재의 상황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이들을 급진주의자라고 분류하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우리나라가 또다시 외환위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을 참을 수 없을 것이고 대개 "어떻게든 해야지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 심한 불만을 품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불만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더구나 극단적인 대안이나 폭력적인 수단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는 정치보다는 IT 업계 쪽에 잘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방향도 잘 모르지만" "일단 달려야 하는" 상황은 IT 업계에서는 그다지 드문 것이 아니지요.
저는 IT업계가 별로 특별한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IT업계의 기술 수용속도는 가전업계와 비슷한 정도에 불과합니다. 우선 간단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봅시다.
1960년대에 garbage collector가 이미 등장했지만(lisp), 실제로 GC가 업계에 받아들여진 것은 java의 대중화 이후입니다. 거의 30년이 걸린 것이죠. 인터넷도 마찬가지입니다. ARPANET이 시작된 것이 1969년이지만, 오늘날의 인터넷의 토대가 굳혀진 것은 웹과 그래픽 브라우저가 대중화된 1990년대 중반 이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한 30년쯤 걸린 셈입니다.
이런 것을 TV나 VCR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TV는 1928년 GE가 처음 개발했지만, 30년이 지난 196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각광받는 대중매체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VCR도 1956년 미국의 앰펙스라는 회사가 처음 개발했지만 30년이 지난 1980년대가 되어서야 가전 시장에 확산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과연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는 쪽입니다. 그것이 IT든 원자력, 철도, 자동차, 항공이든 한창 때는 다 빠른 발전을 보이는 시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즉 어떤 산업에나 상대적인 차이는 좀 있을지언정 기술 발전이 빠른 성장기와 느린 성숙기가 있는 만큼 IT가 특별한 종류의 산업이라고 볼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각 산업이 빠르게 발전할 때에는 백가쟁명식으로 기술이 튀어나오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이 빠른 기술도입으로 연결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하 발전, 항공, 조선, 철강, IT 등 다양한 산업의 사례를 들어 이 문제를 좀 더 깊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혁신은 대개 초기 단계에서 매우 불완전하며, 또 실제 그러하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수많은 <오류(bug)>들을 해결해야 한다.
중요한 기술개선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하고서도 당장 혁신을 수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특히 많은 자금을 동원해야 하는 경우나 관련된 장비의 수명이 길 경우에는 특히 어리석은 일이다. 슘페터적인 의미에서 혁신가는 <모방자>가 자신을 따라잡을 때까지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윤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성급한 혁신가는 아직 성숙되지 않은 발명품에 투자함으로서 파산할 수 있다. 이러한 분명한 차이는 앞서 논의한 슘페터의 혁신개념, 즉 불연속성에 대한 강조와 새로운 제품이나 공정을 도입하는 데 있어서의 모든 문제는 이미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함의를 갖는 혁신개념상의 난점에서 비롯된다. 나아가 맨스필드(E. Mansfield)가 지적한 바대로 <새로운 종류의 장비가 발명될 경우, 그 장비를 최초로 판매하는 기업과 최초로 사용하는 기업은 모두 혁신가로 간주될 수 있다.
최초의 사용자는 최초의 공급자와 마찬가지로, 대개 상당한 위험을 감수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Rosenberg, Nathan,
Inside the Black Box : Technology and Econom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
(이근 외 역, 『
인사이드 더 블랙박스: 기술혁신과 경제적 분석』, 아카넷, 2001, pp.162-163)
혁신은 만들어내는 것도 큰 리스크를 지는 일이지만, 혁신을 채택하는 소비자가 되는 것도 만만찮은 리스크입니다. 돈내고 엉성한 신제품을 받아 베타테스터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언제나 상존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중요한 문제점이 발견되는데는 대개 시간이 걸립니다.
새로운 장비의 사용과 관련된 수많은 생산의 문제는 오류에 포함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항공기 금속의 피로(metal fatigue)처럼, 이러한 문제는 광범위한 사용이 이루어져야 명확하게 나타난다. 윌리엄 휴즈(William Hughes)는 이러한 점을 발전(發電)에 있어서의 규모 경계(scale frontier)에 대한 연구에서 잘 지적하였다. <(발전소의) 규모 경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들이 주어졌다고 해도, 비용 때문에 경제적인 확장 속도에는 매우 엄격한 상한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억지로 확장속도를 높이려는 것은 개발비용을 크게 증가시키는 것이다. 규모 경계를 더욱 밖으로 확장하는 데 필요한 경험은 시간이 지나야 얻을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유사한 신형 발전소의 수를 늘린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발전소와 관련된 가장 큰 불확실성은 발전소들이 수년 동안 작동되고 나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여러 가지 문제로부터 기인한다. 규모, 설계 또는 증기의 조건(steam condition) 등에 대한 주요한 혁신이 일어난 후 2-3년 동안 산업 전체에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설비의 최적 개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대개의 경우 그 개수는 아마도 두 개에서 여섯 개 정도이다>(William Hughes, "Scale Frontiers in Electric Power" in William Capron [ed.], Technological Change in Regulated Industries[The Brookings Institution, Washington D.C., 1971], 52쪽). 휴즈의 논문이 갖는 또 다른 중요한 점은 기술진보와 규모의 경제 사이에 종종 존재하게 되는 밀접한 관계를 강하게 상기시켰다는 것이다. <잠재적인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 공익산업에서 특히 중요한 기술진보의 유형이다>(같은 책, 45쪽)
Rosenberg, 같은 책, p.175
그렇기 때문에 뒤쳐지는 게 오히려 유리한 경우가 있기 마련입니다.
민간용 제트항공기의 도입과 관련된 문제를 생각해 보자. 미국이 대형 제트항공기를 개발하기 2년 전에 영국은 코메트(Comet) I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결국 미국이 승리하였다. 돌이켜보면 미국이 뒤처진 것은 비용으로서 작용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유익하였고, 보잉(Boeing)과 더글러스(Douglas)가 드 하빌랜드(de Havilland)보다 더 적절한 개발시점을 선택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개발시점이 늦어짐으로서, 코메트 IV가 100명의 승객을 싣고 시속 480마일로 비행할 수 있었을 때, 시속 550마일의 속도로 180명의 승객을 실을 수 있는 항공기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보다 최신의 그리고 보다 강력한 엔진을 설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점으로서 이로 인해 사업상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미국의 기업들은 코메트가 금속의 피로로 인한 사고를 경험한 후 코메트를 안전하게 만드는 4년 동안 생산을 미룬 것으로부터도 이득을 얻었다.>
Rosenberg, 같은 책, p.164
사실 많은 경우 일부러 기다리기도 합니다.
전쟁과 전쟁 사이에 조선기술이 급속하지만 불확실한 방식으로 변화하여서, 매우 경쟁이 치열했던 조선업체들은 낡은 고비용 엔진을 새로운 저비용 엔진으로 교체하는 것을 뒤로 미루었다. 1920년대 중반에 왕복증기기관(reciprocating steam-engine), 변속증기터빈(geared steam turbine) 및 디젤 모터의 세 가지 추진 방식 모두에서 급속한 기술진보가 이루어졌다. 세부적인 변종까지 고려하면, 거의 백 가지에 이르는 조합이 가능하였다. 몇몇 종류의 선박의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몇 가지 조합 중에서 선택의 여지가 매우 적어서, 선주들은 좀 더 많은 경험과 이후의 발명을 통해 어떤 종류의 기술이 향후 10년 동안 유지될 것인가가 분명해질 때까지 주문을 미루게 되었다. 경제학적인 용어로 선주의 입장을 말하자면, 비록 새로운 엔진의 총비용이 이미 낡은 엔진의 운영비용 이하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1923년형 엔진으로부터 나오는 이윤은 1924년형 엔진의 등장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그 이유는 1924년형 엔진의 운영비용이 1923년형 엔진의 그것보다 적어서 구매를 늦추어 1924년형 엔진을 구입한 경쟁자가 운임을 더 인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두 가지 종류의 1923년형 엔진 중 어떤 것이 더 낮은 비용을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도 있다. 선주 A는 엔진 X를 장착하고 선주 B는 엔진 Y를 장착하였는데, 1923년에는 두 엔진이 동일한 비용이 들었으나, 일년이 지나고 보니 엔진 Y가 엔진 X에 비해 훨씬 더 적은 비용이 들었다고 해보자. 이 경우 선주 A는 새로운 엔진을 장착하지 않고 1924년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23)
Rosenberg, 같은 책, p.167
그러나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으면 기다린다고 해서 꼭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훨씬 최근의 사례로는 월터 에덤스(Walter Adams)와 조엘 딜람(Joel Dirlam)의 미국철강주식회사(US Steel Corporation; USSC)에 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USSC가 산화처리 강철제조공정(Oxygen steel-making process)의 도입을 늦춘 이유로 당시에 기술개선이 임박했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USSC는 <몇몇 종류의 산화처리 강철제조공정은 틀림없이 미국 철강업의 중요한 특징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USSC는 새로운 혁신을 언제 도입할 것인지, 또는 스스로 이 새로운 혁신의 도입에 나설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 후에 『포춘(fortune)』지는 여전히 USSC가 <경쟁하는 대안들 중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난제, 예를 들면 비용절감을 위해 거액의 자금을 ‘지금’(1960년) 퍼부어 회사가 ‘현재의’ 기술에 전념하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몇 년 후 이용 가능하게 될 수 있는 새롭고 아마도 보다 우월한 기술을 이용하기 위하여 시간을 벌 것인지 하는 난제>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하였다.(24)
Rosenberg, 같은 책, p.168
이런 경우, 이번 한번 지나쳐볼 것인지, 가볍게 소규모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경험을 쌓으면서 가능성을 타진할 것인지, 이번 변화에 배팅하고 따라갈 것인지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선택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이 사업상 위험으로 나타나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 이제 우리가 처음에 문제의 발단으로 삼았던 IT 산업으로 돌아가 봅시다.
속도가 빠른 모뎀이 천천히 도입되는 것은 전에도 있던 현상이다. 모뎀 속도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런 현상은 계속 되풀이되어 왔다.
초당 56킬로비트의 속도로 정보를 내려 받을 수 있는 56K모뎀은 1996년 가을 출시되어, 당시 상황에서 인터넷 접속 속도를 두 배로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이 신형 모뎀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에서 금방 시장에 도입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첫째, 더 빠른 모뎀에 대한 수요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하고 있었다. 둘째, 56K모뎀의 가격은 이전의 느려터진 모뎀에 비해 그리 높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더 빠른 모뎀이 PC 사용자에게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는 이미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하지만 예측과 달리 출시 1년이 지났을 때까지도 56K모뎀의 시장 침투율은 20퍼센트에 불과했다. 1998년 1월에 실시된 조사를 보아도 고속으로 분류 가능한 모뎀이 차지하는 비중은 채 50퍼센트가 되지 않았다.
이러한 확산 속도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신제품 도입에 늘 나타나는 지체 현상을 감안한다 해도 말이다. 이러한 지체 현상은 오래 지속되었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도 가정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컴퓨터는 여전히 56K모뎀의 절반에 불과한 속도로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빚어진 것일까?
그 해답은 모뎀 시장의 상호 연결 상태에서 찾아야 한다. 56K모뎀 도입에 관련된 세 요소, 즉 소비자, 상호적합성, 그리고 경쟁에 대해 살펴보자.
모뎀의 주된 고객은 휴렛팩커드, 델(Dell), IBM 같은 PC 생산업체이다. 대부분의 모뎀은 PC 생산 과정에서 부착된다. 결국 개별 소비자는 PC 생산업체가 이미 달아둔 모뎀을 컴퓨터와 함께 구입하는 셈이 된다. 물론 직접 개별 부품을 구입해 조립하는 사용자도 있지만, 이는 전체 소비자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PC의 56K모뎀은 네트워크의 사령부에 56K모뎀이 함께 설치된 경우에만 초당 56킬로비트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터넷 접속 서비스 업체(ISP)의 서버가 56K모뎀과 같은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연결된 두 모뎀의 처리 수준이 서로 다르다면 접속 속도는 낡고 느린 모뎀 수준으로 떨어져버린다.
56K모뎀 시장에는 처음부터 치열하게 경쟁하는 두 제품이 존재했다. 하나는 US로보틱스(US Robotics)의 X2였고 다른 하나는 록웰반도체(Rockwell Semiconductor)의 K56Flex였다. 두 제품 모두 시장 장악을 꿈꾸었다.
56K모뎀 시장은 고도로 상호 연결된 시장의 좋은 예였다. 상호 연결된 시장에서 혁신의 광범위한 도입과 관련된 참여자들의 결정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상호 의존한다. 더 나아가 새로운 모뎀으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선택은 다양한 집단에 흩어져 있다. 각각의 집단마다 나름의 이해관계와 제약이 존재한다.
56K모뎀의 경우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집단은 PC 제조업체, 사용자, 인터넷 접속 서비스 업체, 서로 경쟁하는 두 모뎀 진영, 그리고 PC 판매업자들이었다. 두 종류의 56K모뎀이 경쟁을 벌인 덕분에 각 참여자에게는 두 가지 선택 가능성이 있었다. PC 제조업체는 PC 사용자들이 빠른 모뎀을 원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어느 한 회사의 56K모뎀을 선택할 것이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모뎀이 고속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경우에만 신형 모뎀을 원할 터였다. 사용자가 56K모뎀의 속도를 제대로 누릴 것인지의 여부는 인터넷 접속 서비스 업체가 어떤 표준을 선호하는지에 달려 있었다. 인터넷 접속 서비스 업체가 입장에서는 반대로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표준을 선택해야 했다. 다시 말해 더 많은 PC 제조 기업과 더 많은 PC 판매자들이 장착하는 모뎀을 따라가는 것이다. 결국 시장은 상호 연결된 결정이 뒤엉켜 돌아가는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모뎀 생산자들은 자기 표준을 우세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1997년 내내 모뎀 시장은 자기 쪽으로 판세를 굳히려는 US 로보틱스와 록웰의 치열한 경쟁을 지켜보았다. 양측 모두 굴지의 PC 제조업체 및 인터넷 접속 서비스 업체와 제휴했다고 발표했다. 관련 참여자들에게 누가 승자인가를 알려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고 결국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기 위해 내놓은 공개 발표였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그 어느 쪽도 확실한 승자가 되지 못했다. 따라서
의사결정권자들은 결정을 미루고 결과를 기다림으로써 균형 상태가 유지되었고, 진작 대체되었어야 할 낡은 기술이 계속 사용되었다. 소비자들의 경험도 현상유지 상태에 머물렀다. 한 차원 높은 가능성이 이미 존재했지만 접속 속도는 초당 56킬로비트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남았다(오늘날까지도 이런 상태인 소비자가 많다). 기술은 진보에 대한 기대를 낳았지만 이는 결국 현실화되지 못했다.(*)
결국 56K모뎀은 제대로 팔려보지도 못한 채 폐품이 되어버렸다. 50배나 더 빠른 속도를 약속하는 새로운 디지털 모뎀 기술인 디지털 가입자 회선(DSL: digital subscriber loop)과 케이블 모뎀 때문이었다. 모뎀 시장이 정지 상태에 놓인 것은 이 신기술 때문이기도 했다.
참여자들은 또 다른 혁신이 곧 다가온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빠른 모뎀의 느린 도입은 상호연결성이 낳는 비효율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 1998년 2월, 마침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56K모뎀의 공동 표준을 발표하여 경쟁을 공식적으로 종결시켰다. 다소 뒤늦은 감은 있지만 ITU가 권위 있는 조정자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드디어 선택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ITU 발표 이후, US로보틱스(Robotics)를 합병한 3Com과 록웰 반도체의 주가는 상승했다.
(인용자 주: 편의상 번역자의 오류를 일부 교정하였다.)
Chakravorti, Bhaskar.,
The Slow Pace of Fast Change: Bringing Innovations to Market in a Connected World,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2003
(이상원 역, 『
혁신의 느린 걸음』, 푸른숲, 2005, pp.62-66)
기술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는데 공급자들은 표준을 거머쥐기 위해 물러서지 않고 싸우고, 소비자는 대세가 정해질 때까지 버티며 기다리면서 교착상태가 발생하는 이런 현상은 VCR, CD, DVD, 차세대DVD 등 오만가지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일화적인 예가 아니고, 복잡한 수요공급의 상호연계를 가진 산업에서는 끊임없이 벌어지는
전형적인 상황입니다. 게다가 앞서 거론했던 것처럼 소비자들이 차차세대 기술이 곧 실용화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차세대의 기술은 그대로 사장될 위험조차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일견 의외로 보이는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이상의 논의로부터 몇몇 종요한 (그리고 피상적으로는 모순적인) 함의가 도출될 수 있다. 특히 기술변화율과 기술혁신(채택)율 사이의 관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직관적인 예상과 정반대일 수 있다. 급속한 기술 변화가 잠재적 구매자들로 하여금 추론에 의해 미래의 기술진보가 지속적이고 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게 한다면, 이 급속한 기술변화는 표면적으로는 채택과 확산의 속도를 늦추거나 혹은 <가장 발달된> 기술을 채택하고 있지 않은 기계의 도입으로 귀결될 수 있다. 지금 구매한다고 하는 결정이 결과적으로 곧 구식이 될 기술을 선택하는 결정이 될 수도 있다. 역으로 기술변화율이 낮고 제품이 안정화되면 잠재적 구매자는 생산물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안에 보다 나은 생산물로 대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생기기 때문에, 채택의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따라서 기술변화가 급속할 때보다는 기술변화율이 낮고, 그 속도가 줄어갈 때, <현재 이용 가능한 최상의(best available)> 방식의 채택을 미루는 시차는 짧아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주장을 이용하여 <최상의 실행방식(best practice)> 기술의 영역에서 운영되는 기업의 실패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한 실패는 미래의 기술개선의 진행속도에 대한 기업가의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Rosenberg, 같은 책, pp.171-172
현재 가용한 최고의(best available) 기술을 이용할 때 직면하는 이러한 위험에 대해서는 마르크스 영감이 진작에 경고한 바 있는데 이번 글의 결론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새로운 발명을 도입한 기업의 운영비는 이 기업의 폐허 위에서 뒤이어 나타나는 기업의 운영비에 비하면 훨씬 많다. 이리하여 최초의 혁신적인 기업가들은 대체로 파산하고, 건물, 기계 등을 값싸게 매수하는 나중의 기업가들이 비로소 번창하게 된다.
- Marx, Karl (김수행 역), 『자본론III(상)』, 비봉출판사, 서울, 1990, 119-120쪽 -
부록. 나머지 부차적인 논점들에 대한 간단한 답변들 1.기본적으로 sonnet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만,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가정이 항상 성립하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거대한 돌연변이를 '강요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겠습니까. 인류 사회 전체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특정 부분(분야건 지역이건 간에)이 항상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야기한 것은 작은 변화를 이용하는 것이 유리한 경향이 있다는 거지, 그게
늘 성립하는 법칙이라는 정도로
강한 주장은 아닙니다.
특수한 상황, 즉 제2차세계대전 같은 총력전 상황에서 사실상 무제한의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아주 거대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단시간 내에 원자폭탄 같은 일상적인 상황에서 개발되기 힘든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례는 좋은 예외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군사적 필요성과 그에 수반되는 엄청난 자본투자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원자력 산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끔찍한 에너지 부족사태와 같은 환경적 요소가 1941년에 미국 정부로 하여금 막대한 자원과 노동력 그리고 자본을 투자하여 물리학자들의 연쇄반응 실험을 원자폭탄과 원자로 제작으로 바꾸도록 강제했다고 상상하기는 힘들다. 원자력 혁명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전쟁 후 원자력이 강력한 힘을 얻기 전까지는 원자물리학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다. 원자력 에너지 연구에 대한 지지자들과 후원자들이 있었지만,
불과 4년 동안 원자력 에너지 연구에 민간 산업체나 연방 정부가 20억 달러를 투자하도록 강요하지는 않았다.
전쟁과 정부자금이 원자력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는 했지만 맨해튼 프로젝트 종사자들도 그들의 목표가 달성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에 차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만약
평화시였다면 한정된 자본과 인원, 그리고 종종 연구자들을 낙담시킨 기술적 어려움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Basalla, George.,
The Evolution of Technolog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김동광 역, 『
기술의 진화』, 까치, 1996, pp.250-251)
2. 이 부분이 산업혁명의 '혁명적 변화'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차이가 생기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업혁명의 주요한 원동력 중 하나인 증기기관의 발전과정은 점진적 발전의 총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점진적 발전의 총합'이 한 분야에서 쌓아올려지고 나면, 다른 산업들은 높은 효율의 증기기관이라는, '거대한 변화'에 갑작스럽게 직면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변화가 올바른 방향인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어쨌든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경쟁자들이 이 엄청난 가능성을 낚아채는 사이에 어물어물하다가는 순식간에 폐기처분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산업혁명이 '혁명'으로 불리는 것 역시 증기기관이 나타난 과정 자체가 '혁명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점진적인 변화 끝에 완성되어 나온 증기기관 등이 산업 전체에 준 충격과 그에 따른 급격한 변화 때문일 것이며, 그러한 급격한 변화들은 그 변화를 선도한 몇몇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강요된'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물론 '강요'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꼭 그 변화를 싫어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좋건 싫건 저항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앞선 글의 본문에서 이미 다룬 내용이지만, 초기의 조잡한 증기기관이 다른 산업과 단절된 상태에서 점진적인 개량을 거친 후 높은 수준에 이르러서야 다른 산업에 충격을 준 것이 아닙니다. 조잡한 증기기관일 때부터 다른 산업들과 관련을 맺고 작은 변화를 서로 피드백 하면서 발전해 온 것이지요.
산업혁명의 한 가지 중요한 본질은 성공적인 기술이전의 가능성과도 상당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즉 야금술이나 동력생산 그리고 수송기관 등 독립적인 개별 혁신들이 아주 의미 있는 방법으로 상호관련을 맺으면서 서로를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종종 하나의 혁신은 다른 종류의 혁신이 없으면 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거나 아니면 새로운 혁신을 도입하면 다른 종류의 혁신이 보다 효율적으로 기능을 하게 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서 효율이 높은 증기엔진을 만들기 위해 보다 개량된 야금술이 반드시 필요했다. 역으로, 풍로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는 데 증기엔진이 활용됐다.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으면 보다 효율적인 연소가 가능하므로 연료소모량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서 철의 가격도 하락했다. 그러므로 저렴한 금속가격은 저렴한 동력을 낳고 저렴한 동력은 더욱 저렴한 금속을 낳았다. 마찬가지로, 저렴한 철이야말로 철도건설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런데, 철도가 일단 건설되자 석탄과 철광석의 수송비용이 상당히 절감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철도는 철의 생산비용을 인하시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렴한 철이 저렴한 철도를 가능하게 하고, 이는 수송비용을 더욱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것이 다시 철의 생산비용을 낮추게 되었다. 따라서 당시의 새로운 산업기술과 관련된 엄청난 생산성 증대는 바로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혁신들이 종종 상호관련을 맺으면서 서로를 강화해 주었다는 데 그 비밀의 일단(一端)이 있다.
Rosenberg, 같은 책, pp.366-367)
3. 비슷한 성격의 구체적인 사회적 상황이라면, 아편전쟁 이후의 동아시아가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체제가 오랜 세월 동안 잘 작동해 왔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면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잘 작동할 것이라고 가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요. 서양을 얼마나, 어떻게 모방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게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충분히 경험을 쌓은 선도자를 추격하는 입장에서 모방이 가능한 경우의 변화는 선도자 입장에서 신기술을 도입하는 것과는 불확실성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위험의 정도가 다른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한 논의는
제한된 시공간에서의 진보주의 : 추격자의 입장에서 (sprinter) 가 재미있는 읽을거리일 듯 합니다. 이 경우에도 처음에 현미경 초점의 비유를 사용하면서 다루었던 스케일 문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