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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4월 전체 글 목록
2008/04/28   어전회의, 1962년 10월 18일 오전 11시 [28]
2008/04/24   일본을 무릎꿇린 자원 외교 [26]
2008/04/23   깨진 유리창 [22]
어전회의, 1962년 10월 18일 오전 11시
쿠바 미사일 위기를 맞아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 행정위원회(ExCom) 회의,
백악관 캐비닛 룸 1962년 10월 29일, (출처: JFK도서관)

사진설명

케네디 대통령은 국기 앞에 앉아 있고 그의 오른 쪽에는 국무장관 딘 러스크와 국무부 부장관 조지 볼이 차례로 앉아 있다. 벽난로 앞에 얼굴이 가려진 사람은 CIA국장 존 맥콘이고 그의 오른쪽에는 국무부 정치문제담당 차관 알렉시스 존슨(턱을 괴고 앉아 있음), 순회대사 르웰린 톰슨(앞으로 기대어 있음),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 그리고 거의 가려진채로 부통령 린든 존슨이 앉아있다. 대통령의 맞은 편에는 재무장관 더글라스 딜론이 앉아 있고 그의 오른 쪽으로 맥조지 번디시어도 소렌슨이 있다.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인 채 뒤통수만 보이고 있는 사람은 공보장관 도널드 윌슨이고 그의 오른쪽, 탁자의 끝에 있는 이는 국방부차관보 폴 니체이다. 그의 오른 쪽에 왼손으로 이마를 괴고 있는 이는 합참의장 맥스웰 테일러, 그의 오른쪽으로는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와 부장관 로스웰 길패트릭이다.



(쿠바를 공격하거나 봉쇄하면 소련이 동독 한 가운데 고립되어 있는 베를린을 공격하여 반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논의를 진행하며)

케네디 대통령: 그(흐루시초프)가 베를린을 탈취하면, 물론. 그럼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베를린을 잃게 만들었다고 느낄거야, [쿠바의] 그 미사일들 때문에, 내가 말한 것처럼 그들[유럽 동맹국들]에게는 아무 위협도 가하지 않는.
……
케네디 대통령: 당신 말은, 바꿔 말하자면, 11월 하순에 그가 베를린을 탈취할 것이란 말인가?
로버트 케네디: 그가 베를린으로 진격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가안전보좌관) 번디: 우리가 베를린을 갖고 거래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거야 우리 잘못이 아니지요. [킥킥]
(재무장관) 딜론: 아니, 그게 정말 위험한 거요. 우리가 쿠바에서 먼저 행동해 놓고 그리고는?
(국방장관) 맥나마라: 자, 우리가 베를린 점령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정확히 무슨 이야길 하는 건가요? 그는 소련군을 갖고 점령에 나설까요?
케네디 대통령: 내 생각엔 그럴 것 같군.
맥나마라: 그럼 우리는 ... 제 생각엔 거기 진짜 가능성이 있지 말입니다. 우리는 거기 미군을 배치해 놓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합참의장) 테일러: 그들은 싸울겁니다.
맥나마라: 그들은 싸우겠지요. 제 생각에도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케네디 대통령: 그러고는 전멸되겠지.
맥나마라: 예, 전멸되겠지요. 말 그대로.
[불명]: 음, 이제 우리는 전면대결에 뛰어드는 거군.
로버트 케네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요?
테일러: 전면전으로 가야죠. 그게 우리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불명]: 그럼 전면전이야. … 의 사용을 고려하는.
케네디 대통령: 그러니까 핵폭탄을 주고받는다는 말이지? [일시 침묵.]
[불명]: 흐으음…
테일러: 그러셔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번디: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각하가 이렇게[쿠바를 공격] 하면서, 동시에 "베를린을 공격하는 건 곧 전면전이오"라고 그에게 경고한다면, 그가 그렇게 할 것 같지 않습니다.
[불명]: 나는 그게 전면전을 의미하는 건지 의심스러워요. 나는 그가 그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국무장관) 러스크: 그가 베를린을 공격하려고 시도한다면, 각하는 적어도 전술핵무기로 테이프를 끊어야 합니다.
테일러: 저는 그들이 동독군을 앞세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군대를 쓰는 대신에.
케네디 대통령: 내가 좀 물어보겠소. 내 생각에 우리는 동맹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엔 두 가지 문제가 있어.하나는 [쿠바의] 이 미사일들에 대해 우리가 군사행동에 나서야겠다고 그들[동맹국들]에게 말했을 때 발생하는 동맹의 문제야.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은 여기에 대해 반대할거야, 그들은 자신들이 더 위험해진다고 느낄 테니까. 그리고 우리에게도 위험이지. 그들은 맥나마라 장관이 지적한 것처럼 주장하겠지. 만약 우리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으면, 물론 [소련의 도발에 속수무책인 미국의 무기력함 때문에] 점진적으로 동맹이 붕괴될 거야. 내 생각엔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맞나?
러스크: 저는 그게 아주 빨리 벌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딜론: 아주 빠르겠죠.
번디: 아주 빠를 겁니다.
딜론: 아주 빠르고말고요.
(후략)


비고
이 테이프 녹취록은 여러 가지 판본이 있는데 미묘하게 다르다. 처음엔 나도 교감이 별거냐 싶어 이 녹음 테이프의 디지털 카피를 입수해 도전해 본 적이 있는데… 생각하는 것과 무척 달랐다는 것만 밝혀둔다. 번역은 다음 두 가지 판본을 참고하였다.

May, Ernest R., Zelikow, Philip D.(Eds), The Kennedy Tapes: Inside the White House during the Cuban Missile Crisis, Belknap Press, 1997, pp.144-145
Naftali, Timothy., Zelikow, Philip D.(Eds.), The Presidential Recordings: John F. Kennedy, the Great Crises, Vol.2, W. W. Norton, 2001, pp.540-541
by sonnet | 2008/04/28 00:32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28)
일본을 무릎꿇린 자원 외교
(제4차 중동전 당시 석유수급을 논의하던) 각료회의 석상, 다나카 총리가 (자원에너지청 장관에게),

「야마가타 군. 석유의 비축은 어느 정도 있나?」
「49일분 정도입니다.」
「2개월분도 없나?」
「그렇습니다. 그 중 45일분은 산업계를 이미 돌고 있는 상태입니다. 소위 유통 스톡이기 때문에, 그것을 빼면, 완전한 비축은 4일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중략)
4일분이라고 들은, 다나카 씨는 「」이라고 말하면서 팔짱을 끼고, 천정을 노려봤다. 같이 자리한 각료들도 한결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아무리 세계 유수의 경제대국이라도 4일치 재고로는...

1973년 10월 6일, …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에서 보면, 아득한 저편의 전쟁이 일본인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전쟁과 동시에 개시된 아랍 여러 나라의 「석유전략」의 결과, 일본 열도는 흔들리게 되었다. 10월 16일,OPEC(석유수출국기구)은, 석유 공시가격을 21.22% 인상하고, 평균 1배럴당 3달러 65센트로 할 것을 발표하여, 일본의 석유 관계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더욱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다음날 10월 17일에 OAPEC(아랍석유수출국기구)이 행한 다음과 같은 결의였다.

이스라엘이 1967년에 점령한 모든 지역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인민의 권리가 회복될 때까지, 원유의 생산을 9월 수준기준으로 매월 5%씩 삭감한다. 우호국에게는, 생산 삭감 이전과 동량의 석유 공급을 보증한다. 적대국인 미국과 네덜란드로의 석유수출을 전면 중지한다. (柳田邦男, 『일본은 불타고 있는가(日本は燃えているか)』上)

결국 적대국인 미국과 네덜란드에 대해서는 석유를 수출하지 않고 비우호국에 대해서는 석유 수출을 매월 5%씩 삭감한다는 것이었다. 우호국이란, 아랍 여러 나라에 군사원조를 하고 있는 나라와, 이스라엘과 단교하거나, 처음부터 국교가 없는 나라였다. 일본은 비우호국의 범주에 속하게 되었다.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태는 악화되었다. 10월 25일, 엑슨 등 국제적 석유기업은 일본에 약 10%의 원유 삭감을 통고해 왔다. 당초 전쟁에서 우세였던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의 반격에 의해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아랍 여러 나라는 더욱더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11월 5일에는 OAPEC 가맹 10개국이, 11월의 원유 생산을 9월에 비해 25% 삭감한다고 결정했다.

당시 자원에너지청 장관 야마가타 에이지(山形榮治)의 회상이다.

각료회의 석상에서, 다나카 총리가,
「야마가타 군. 석유의 비축은 어느 정도 있나?」
「49일분 정도입니다.」
「2개월분도 없나?」
「그렇습니다. 그 중 45일분은 산업계를 이미 돌고 있는 상태입니다. 소위 유통 스톡이기 때문에, 그것을 빼면, 완전한 비축은 4일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중략)
4일분이라고 들은, 다나카 씨는 「음」이라고 말하면서 팔짱을 끼고, 천정을 노려봤다. 같이 자리한 각료들도 한결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의 심각성을, 새삼스럽지만 재인식한 것이다.
(山形,「격동의 나날(激動の日日)」)

당시 일본은 석유의 9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고, 그 중 88%가 중동에서의 수입이었다. 더욱이 이 시기는 석유위기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다나카 내각의 적극적 재정정책과 열도 개조붐 등의 영향으로, 물가가 급속하게 상승하고 있었다. 거기에 석유위기가 엄습한 것이었다.
……
11월 14일,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중동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일본을 들르게 되었다. 키신저는 「중근동 여러 나라에 대한 대응은 미국 정부에 맡기길 바란다.」고 말하며, 일본의 방향 전환에 반대했다. 그러나 국내의 압력을 실감하고 있던 다나카 수상은, 키신저에게

「만약 일본이 미국이 말한 대로 자세를 취해, 아랍 여러 나라로부터 적대시되어 석유가 수출금지(禁輸)될 경우, 미국은 일본이 필요로 하는 석유를 대신 제공해 줄 것인가?

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한 키신저의 대답이, 「아니다. 그것은 할 수 없다.」라고 했기 때문에, 다나카는 「그렇다면 일본은 독자적인 외교방침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柳田,『일본은 불타고 있는가(日本は燃えているか)』下)


최종적으로는, 오히라나 외무성도, 아랍정책의 방향 전환을 꾀할 것을 결단한다. 다만 오히라는, 이 일본의 방향 전환에 대해서 미국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3번에 걸쳐 미국의 양해를 구했다. 결국, 「일본 정부의중근동정책 수정에는 찬성할 수 없지만, 이러한 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 정부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다.」라는 성명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방침 전환을 선언한 정부 성명안은, 11월 22일, 각의에서 결정되어, 니카이도 스스무(二階堂進) 관방장관 담화 형태로 발표되었다.
……
무력을 최초로 행사한 것이 아랍 여러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성명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만 요구를 들이대는 일방적인 것이 되었다. 이전 정책과의 정합성이라는 관점에서 말하자면 매우 큰 정책 전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친 아랍의 자세를 천명하였다. 얼마나 석유위기의 충격이 컸는가, 얼마나 이러한 사태에 대한 준비가 미흡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였다.

또한 정부는 12월 10일부터 부총리인 미키 타케오(三木武夫)를 특사로 아랍 8개국에 파견해 굽신굽신정책 전환을 설명하는 동시에 각국에 여러 가지 경제협력을 할 용의가 있음을 전했다. 아랍 여러 나라가 일본을 「우호국」이라고 인정한 것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였다. 일본에 대한 석유 공급의 단절은 일어나지 않았다.

田中明彦, 『安全保障: 戦後50年の模索 』, 読売新聞社, 1997
(이원덕 역, 『戰後 일본의 안보정책』, 중심, pp.260-265)


by sonnet | 2008/04/24 20:23 | 한마디 | 트랙백(1) | 덧글(26)
깨진 유리창
국개론을 진지하게 생각하시는 여러분에게 올리는 포스트(카카루)에서 필자는 소위 '국개론'이 진지한 주장이 아니니까 진지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그것이 어떤 함의를 가질 수 있는지는 다음과 같은 현상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Philip Zimbardo는 1969년 깨진 창문 이론을 시험한 몇 가지 실험결과를 공표했다. 번호판을 떼어내고 본네트를 열어둔 채로 둔 승용차를 브롱크스와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각각 세워두었다. 브롱크스에 놓아둔 차는 10분도 지나지 않아 "파괴자들"에 의해 습격당했다. 처음 손을 댄 것은 아빠, 엄마, 어린 아들로 이루어진 일가족으로 라디에이터와 배터리를 가지고 가버렸다. 24시간 후에는 가치있는 물건은 몽땅 사라져 버렸다. 그 후 무작위적인 파괴가 시작되었다. 창문은 깨지고 의자 커버는 찢어지고 온갖 부속이 떼어지고 그리고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어른 "파괴자"들은 번듯해 보이는 백인이었다. 한편 팔로알토에 놓아둔 차 쪽은 일주일 이상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이 때 짐바르도가 망치를 휘둘러 몇 군데를 부수어 놓았더니 곧 지나가던 사람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몇 시간 후 차는 뒤집히고 완전히 파괴되었다. 여기서도 "파괴자"는 멀쩡해 보이는 백인이었다.

방치된 물건은 평소에는 법을 어기는 일 따위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스스로 준법정신이 투철하다고 믿던 사람들에게도 재미나 약탈을 위해 날뛸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차의 유기, 절도, 파괴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며,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 뻔한" 브롱크스의 혼란스러운 지역사회 분위기가 차분한 분위기인 팔로알토보다 파괴를 훨씬 빠르게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는 행동에 의해 상호존중의 분위기와 질서를 지키려는 풍조가 흔들렸을 때 파괴는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Wilson, James Q. and Kelling. George L., BROKEN WINDOWS: The police and neighborhood safety, Atlantic, March, 1982


이런 행동양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방정리를 조금 미루기 시작했을 때 겪게되는 경험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여러 다른 업계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견됨이 잘 알려져 있다.

깨진 창문

오랜 기간 수리하지 않고 방치된 창문 하나가 거주자들에게 버려진 느낌을 스며들게 한다. 당국자들이 그 건물에 별 관심이 없다는 느낌 말이다. 그래서 다른 창문이 하나 더 깨진다. 사람들은 이제 어지르기 시작한다. 낙서가 등장한다. 심각한 구조적 손상이 시작된다. 꽤 짧은 시간 안에 소유주가 그걸 고치려는 의지를 넘어설 정도로 건물이 손상되고, 결국 버려진 느낌은 현실이 되어 버린다.
……
깨끗하고 잘 기능하는 시스템들이 일단 창문이 깨어지기 시작하면 급속도로 악화되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소프트웨어의 부패에는 다른 요인들도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다루겠지만 방치는 다른 어떤 요인보다도 부패를 더 가속시킨다.
……
깨진 창문 하나는 - 조악한 설계의 코드, 형편없는 경영상의 결정 등 프로젝트 기간 동안 팀이 동고동락해야 하는 것들 - 내리막길로 가는 첫걸음이다. 깨진 창문이 꽤 있는 프로젝트를 한다면, "나머지 코드가 전부 쓰레기니까 나도 그렇게 하지 뭐."라는 사고로 빠져들기 너무도 쉽다. … 같은 맥락에서, 코드가 청순할 정도로 아름다운(깨끗하고, 잘 설계되었으며 우아한) 프로젝트와 팀에 여러분이 속해 있다면, … 별도의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서 엉망으로 만들지 않도록 노력할 확률이 높다. 비록 불길이 일어날지라도 (데드라인, 출하 날짜, 시사회 데모 등)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첫째 사람이 자신이 되는 것만은 피하려 한다.

Hunt Andrew, Thomas David, The Pragmatic Programmer, Addison-Wesley, 1999
김창준, 정지호 역, 『실용주의 프로그래머』, 인사이트, pp.35-37


국개론은 기본적으로 대의민주정에 대한 정면 공격이나 다름없다. 다수결의 가치를 폄하하는 한편, 개XX들이 결론을 좌우하는 통치체제의 대안, 예를 들면 민주정을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생각 중 하나인 수호자통치(관대하고 우수한 엘리트들이 멍청한 대중을 대신해 통치해주면 좋다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토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이 때, 이를 우려한 합당한 반론에 대해 내가 찌질거릴 건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쏘아붙여 견제를 효과적으로 무력화한 다음 이런 생각을 계속 퍼트려나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깨진 유리창이 급속히 늘어나지 않겠는가?

정치나 사회현상에서는 숫자가 큰 힘을 갖는다. 설령 내용이 전혀 진지하지 않아도, 일정 수 이상의 사람이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현상은 누가 뭐래도 의미있는 사회현상이다. 이를 우습게 보고 마땅히 진지하게 대응해야만 할 일을 게을리하면 후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깨진 유리창을 일소하듯이 경범죄 단속에 힘쓰는 것이 중범죄 예방에 효율적인 전략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좀 있다. 하지만 이것은 확산현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잘못 관찰된 것이라는 유형의 논박은 아니다.
by sonnet | 2008/04/23 18:15 | 정치 | 트랙백(2) | 핑백(1)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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