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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生然後殺他


접근 금지 명령이 살인자를 억제하지 못한다고 확실히 말할 수도 있지만, 이 주제에 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모든 유형의 사건이나 한 가지 사건의 모든 단계에서 다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접근 금지 명령이 도처에 권장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하지만, 대부분 경찰청은 언제나 권장한다. 접근 금지 명령은 오랫동안 실제로 스토커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온 여자들에게 경찰이 내준 숙제였다. 그것들은 여자들이 스토킹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숙제는 곤경에 처한 여자들을 경찰서에서 몰아내 법정으로 향하도록 만들었다. 문제가 해결되든지 말든지, 여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남자가 계속 달라붙는 경우에 경찰이 훨씬 쉽사리 체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따라서 접근 금지 명령은 경찰과 검사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에서는 접근 금지 명령이 오직 14일 동안만 유효하기 때문에 그 뒤에는 여자가 그 명령을 연장할지 결정하는 재판을 하기 위해 법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자들이 보호 명령을 받아내려 했거나 청문회 직전이었던 법정에서 많은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왜일까? 살인범들이 거부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살인범들은 거부가 사적으로는 많이 힘든 정도로 끝나지만, 공개적으로는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남자들에게 거부란 자신의 정체성과 남의 눈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포함해 자아 전체에 대한 위협이고, 이런 면에서 그들의 범죄는 ‘자아를 방어하는 살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처음으로 스토킹을 심도 있게 다룬 책 《스토킹, 알고 나면 두렵지 않다To Have or To Harm》에서 저자 린덴 그로스Linden Gross는 법원 명령이 살인 사건을 저지하지 못한 사례들을 차례로 자세히 다뤘다. 그 몇 가지 사건을 예로 들어보겠다.

셜리 로워리는 법정 밖에서 접근 금지 명령을 받아내려는 심리를 기다리다가 남편에게 칼로 19번이나 찔렸다. 태미 마리 데이비스의 남편은 아내와 21개월이 된 자식을 두들겨 패고 협박해서 두 사람을 병원으로 보냈다. 남편은 태미가 받아낸 접근 금지 명령서를 송달받은 직후, 그녀를 총으로 쏴 죽였다. 태미는 19살이었다.

도나 몽고메리의 남편은 그녀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고 그녀를 스토킹했다. 도나는 접근 금지 명령을 받아냈다. 남편은 도나가 일하는 은행으로 찾아가 그녀를 죽이고 자살했다.

테리사 벤더는 접근 금지 명령을 받아냈지만, 남편이 곧 위반했다. 남편이 체포된 후에도, 그녀는 안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직장을 오갈 때 남자 동료 두 명과 동행하도록 손을 써뒀다. 그녀의 남편도 자신의 목표에 전념했다. 그는 세 사람을 모두 쏴 죽이고, 총구를 자신에게로 돌렸다.

마리아 나바로는 911로 전화해 전남편이 지금 자신을 죽이겠다고 협박하여 자기 집으로 오고 있다고 신고했다. 남편이 폭행으로 여러 번 체포된 적이 있었지만, 경찰은 그녀가 받아낸 접근 금지 명령 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경찰관을 파견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15분도 채 되지 않아 마리아와 다른 세 사람은 죽이겠다는 약속을 지킨 남자에게 살해당했다.

힐다 리베라의 남편은 일곱 살 된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내를 죽였을 때 이미 접근 금지 명령을 두 번 위반했고, 체포 영장이 여섯 건 발부된 상태였다. 베치 머리의 남편은 접근 금지 명령을 13차례나 위반했다. 그는 베치가 낸 이혼 청원에 “결혼은 평생 지속되는 것이며, 그것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어떤 방법들도 먹히지 않자 베치는 숨어 지냈다. 남편이 체포되지 않으려고 외국으로 도망쳤다고 경찰이 안심시켰지만, 그녀는 여전히 새로 이사 간 집 주소를 비밀로 유지했다. 이웃이 그동안 보관해줬던 그녀의 우편물을 찾으려고 베치가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 들렀을 때 남편은 그녀를 죽이고 자살했다. 남편이 6개월 넘게 베치를 스토킹했던 것이다.

이런 일을 벌인 수많은 살인자 역시 자살한다는 사실은 거부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살인자들이 이렇게 될 때까지 정말로 법원 명령에 의해 저지됐을까?

소개하고 싶은 마지막 사건은 코니 체니Connie Chaney 사건이다. 코니는 남편이 총구를 들이대고 강간한 뒤 죽이려 했을 때 이미 보호 명령을 네 번이나 받아낸 후였다. 경찰이 추천한 해결책은? 접근 금지 명령을 받아내라는 것이었고, 코니는 그대로 했다. 코니를 사살하기 전 남편은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그년이 이겼다는 걸, 그년에게 당했다는 걸 알고서는 살 수가 없다. 안 돼! 이건 전쟁이다.” 마지막 두 마디가 모든 걸 말해준다. 접근 금지 명령은 전쟁의 전략 같은 것이고, 그것에 달린 것은 전쟁에처럼 생과 사이기 때문이다.

샌디에이고 지방 검사실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스토킹 사건 179건에 관한 연구에서, 접근 금지 명령을 받아낸 피해자들의 거의 절반이 그로인해 사태가 더 악화됐다고 느꼈다. 연방 법무부를 위해 이루어진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접근 금지 명령이 “신체적 폭력을 저지하는 데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연구자들은 폭력적인 학대 이력이 없는 사건에 한해 도움이 됐다는 것도 밝혀냈다. 그리고 “주로 자녀가 있는 여자들이 접근 금지 명령을 활용한다고 봤을 때, 금지 명령의 비효율성으로 자녀 상당수가 폭력을 목격하거나 피해자가 되는 위험에 방치될 수 있다”고 현명하게 결론을 내렸다.

연방 법무부를 위해 이루어진 보다 최근의 연구에서, 접근 금지 명령을 받아낸 여자들 3분의 1 이상이 그 뒤로도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3분의 2에 가까운 여자들에게 더 이상 문제가 없어 다행일 수 있지만, 더 읽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접근 금지 명령을 받아낸 직후에는 응답자의 2.6퍼센트만이 신체적 학대를 받은 반면, 6개월 뒤에는 그 비율이 세 배 이상으로 뛰었다. 지속적인 스토킹과 심리적 학대에 관한 신고도 6개월 뒤에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는 접근 금지 명령에 따른 이익이 장기적이라기 보다는 단기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사실상 법정 명령이 도입되는 사건 대부분의 사건이 개선되기 때문에, 접근 금지 명령이 전혀 효력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금지 명령은 체포될까 두려운 남자들을 단념시킨다는 바로 그 이유에서 기대가 된다. 또한 관계를 끝내겠다는 여자의 결심을 보여주고, 남자에게 접근을 포기하도록 납득시킨다. 접근 금지 명령이 어떤 이유로 작동되든, 그것이 어떤 사건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사건이냐다.

접근 금지 명령은 감정 투자가 거의 없는 이성적인 사람에게 가장 효과적이다. 달리 말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폭력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낮은 사람에게 가장 잘 통한다. 달리 말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폭력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낮은 사람에게 가장 잘 통한다. 또한 접근 금지 명령을 학대하는 남편에게 사용하는 것과 두 번 데이트를 한 남자에게 사용하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그 남자가 느끼는 감정 투자와 자격의 양 때문이다. (다음 장에서 논의할) 데이트 스토커는 접근 금지 명령을 받으면, 여자를 버려두고 그녀를 만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그와 동일한 법정 명령이 전남편에게 떨어지면 판사의 서명을 앞세워 그의 삶에서 중심이었던 ‘친밀한 관계, 다른 사람에 대한 지배력과 소유권, 강력한 남자로서의 정체성, 남편으로서의 정체성’ 등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결국 접근 금지 명령은 어떤 사람에게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요구하는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훨씬 어려운 일을 요구한다. 이런 차이가 사법제도에서 광범위하게 무시돼왔다.



그렇다면 자신이 살해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여자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끈덕지게 달라붙는 자가 이용할 수 없는 전략들을 찾아보고 적용하라. 당신이 정말로 위험에 처했다고 믿는다면 학대받는 여자들을 위한 대피소가 최상의 안전을 제공할 것이다. 대피소 위치는 비밀이다. 정의가 아니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사법제도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그곳에 있는 전문가들은 잘 이해하고 있다. 안전과 정의의 차이는 자주 모호해지지만, 당신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내를 걷는데 건장한 젊은이가 당신 지갑이나 가방을 낚아챌 때는 분명해진다. 그 젊은이가 눈이 팽팽 돌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차들 사이로 도망칠 때, 정의는 젊은이를 쫓아가 체포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가 차에 곧 치일 듯이 요리조리 피해 도망치는 것을 보고 안전은 그만 쫓아가라고 한다. 그 젊은이가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사라지는 것은 불공정하지만, 당신이 다치지 않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의뢰인들이 더 안전해지도록 돕는 것이 내 일임을 의뢰인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나는 책상에 ‘정의를 바라거든 여기 오지 마시오’라고 적인 작은 표지판을 올려놨다).

대피소는 안전과 안내와 지혜가 있는 곳이다. 분명 대피소로 가는 것은 중대하고도 불편한 일이다. 수많은 피해자가 접근 금지 명령만 받아내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당신 주치의가 목숨을 건지려면 지금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수술 대신 갖고 다닐 수 있는 서류 없나요?”라고 묻는 당신을 상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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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ker, Gavin De. 1997. The Gift of Fear : Survival Signals That Protect Us from Violence. 1st ed New York, NY: Little, Brown and Company. (하현길 역, 2018. 『서늘한 신호 : 무시하는 순간 당한다 느끼는 즉시 피할 것』. 1판 서울: 청림출판. p.274, 275-279, 281-282)
by sonnet | 2022/09/18 14:14 | 정치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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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ㅇㅇ at 2022/09/22 14:16
'정의가 아니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사법제도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그곳에 있는 전문가들은 잘 이해하고 있다.'

정말 가슴을 때리는 말입니다. 강력범죄에 대한 형사사법제도 설계자들이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야 할 어구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22/10/04 14:37
저는 이 글을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누군가가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날 죽이려 한다'고 판단될 경우, 우리의 사법체제는

1)상대의 자유를 영구적으로 박탈해 날 확실하게 보호해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2)내가 상대를 먼저 죽여 후환을 없앨 수도 없으므로,

결국 3)어떻게 "알아서 잘" 공격을 잘 피해다니냐만 남게 되는 것 같음. 내가 죽고 상대를 감옥에 보내 봐야…
Commented by ㅇㅇ at 2022/10/05 19:36
1. 그 말씀도 극히 동의합니다. 인간의 자유권을 전제로 깔면서 국가가 모든 폭력을 독점하고 개인의 방위행위를 지극히 좁게 인정하는 현 체제에서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사법은 사후적 개입이 될 수밖에 없어 한계가 명확하죠. 저는 그래서 치안이 좋아도 개개인이 최소한의 무력을 행사할 역량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하지만 정치가들은 '내가 잘 조치했다!'라는 인상을 남겨야 하기 떄문에, 사법의 본질적 한계를 무시한 제도를 자꾸 만들어내죠. 결국 사법기관 일선 공무원들에게 '실효성은 없는데 책임은 무거운' 제도들만 첩첩 산중으로 쌓이는 게 작금의 세태 아닌가 합니다. 이런 정책들로 인해 사법기관은 거의 마비수준인 것 같은데.... 답이 안 나오네요.
Commented by 잡지식 at 2022/09/26 02:34
결국 경찰이든 법원이든 국회든 피해자를 我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군요. 이렇듯 냉정한 시스템이 대처하기 힘든 영역에서는 결국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배짱과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모두가 그런건 아니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22/10/04 14:35
음. 그런 것도 있지만, 사법체제는 결국 '사후적 대응'이 기본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를 가설적으로 다룬 SF가 "마이너리티 리포트"(Philip K. Dick)인데, 사법체제는 기본적으로 범죄사건에 후행할 수밖에 없기 마련인데, 신뢰성 있는 예보가 존재해서 사전적으로 사건을 차단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게 될 것인가?
Commented by ㄴㅇㄹ at 2023/01/15 21:27
근데 남편을 배신한 여자가 칼빵맞으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요? 북한에서도 남한으로 탈북하려다가 걸리면 총살이고 이슬람에서도 이슬람을 배교하면 사형또는 실형을 받잖아요. 가정이라는것도 어찌보면 국가의 일종인데 그걸 배신하면 비판받거나 폭력을 받는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죠. 빅토르안, 스티브유도 아직까지도 욕 먹고 있잖아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23/01/16 03:15
요즘은 샤리아 경찰도 한국어 배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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