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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예언서


오늘 같은 날은, 2004년에 나온 『제국의 오만』(Michael Scheuer)을 복습


미국 관리들은 1989년에서 1992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질렀던 과오를 되풀이했다. 당시 유엔과 미국 등 서방측 외교관들은 이슬람 과격주의자 정권이 아닌 폭넓은 기반을 가진 정권을 수립해 공산 정권을 대체하려 했다. 목적은 새로운 정권에 폭력적이고 신앙심 깊고 턱수염 기른 무자헤딘의 참여를 가급적 제한하기 위해서였다. 그 목적은 지금도 유효하다. 서방 외교관들은 소련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저분한 중세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을 정치의 변방으로 내쫓고, 자신들과 같은 부류에게 새로운 정권과 권력을 주려 했다.

세속화된 아프가니스탄인, 혹은 고국을 위해 싸우기를 거부하고 유럽이나 인도, 미국에서 스스로 택한 안락한 망명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서구화된 아프가니스탄인,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공산 정권을 위해 일한 전문기술자나 관료, 파키스탄이나 인도 난민촌으로 피신해 총살을 모면한 부족 지도자, 로마에 근거를 마련한 축출된 아프가니스탄 왕과 측근들, 총 한 발 쏘아 보지 않은 구찌 양복 차림의 ‘야전지휘관들’, 심지어는 막 패배한 공산 정권의 우두머리 도살자 나지불라 등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늘 그랬듯이 서방 외교관들은 10년 간 초강대국과 싸워 이긴 것 외에는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우스꽝스런 파자마 같은 옷차림에 턱수염을 기르고 있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쑥이 차려입고 영어나 불어를 대충 말하며, 종교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반감을 나타내는 세련된 사람들을 선호했다. 늘 내실보다는 겉모습이 우선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런 시나리오는 한층 희극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도 미국과 서방, 유엔의 외교관들은 패자만을 택하는 우를 범했다. 그 결과 한층 신뢰성이 결여된 사람들 중심으로 과도정부를 구성했다. 미국 관리들은 미국의 도움 없이는 단 한번의 전투에서도 승리할 수 없었던 희미한 그림자 같은 북부동맹 세력에 서구화된 파슈툰 출신 하미드 카르자이를 정권 지도자로 합류시켰다. 카르자이는 용감하고 지적인 사람이지만 소련과 탈레반과의 싸움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가 미국 측에 뛰어든 인물이다. 종교 배경도 종족 배경도 없는 카르자이는 미국과 영국 엘리트들과는 편안하게 어울리지만 이슬람 과격파 게릴라와 부족 지도자, 야전지휘관들과 더불어 염소고기를 손으로 뜯어 먹는 등의 일상적인 아프가니스탄 생활 습관에는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우리는 유엔이 주재하고 미국이 조종한 독일의 본 회의에서 카르자이를 과도정부 수반으로 옹립(국수적인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하면서 교육수준이 높고 부족에 연연하지 않으며 이슬람 신앙은 겉치레뿐인 재외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새 정권에 합류시켰다. 그들 해외 거주 아프가니스탄인들은 1990년대 이래 생명이나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서방에 체재하면서 공짜로 한 자리 차지할 날만 기다리던 인물들이다. 그리고 난가하르 지방의 하즈레트 알리, 호스트 지방의 파차 칸 자드란, 칸다하르 지방의 모하마드 시르자이 같은 군벌을 끌어들여 파쉬툰 족이 정치적으로나 인구 비례로 우세한 지역의 군사력을 카르자이에게 제공하도록 했다.

이것은 승리를 위한 전열이 아니다 카르자이와 해외파 참모들이 모든 것이 파괴되어 춥고 암흑천지인 카불에서 떨고 있는 동안 군벌들은 미국 주도의 연합군에만 의지했다. 그들의 군사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활용 가능한 정보를 무시한 서방측은 이제 이들 군벌들이 망명했었거나 국내에서도 은신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탈레반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탈레반의 세력이 커지기 전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할 기회가 왔을 때도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내에 지지기반이 없었고 탈레반과 알 카에다 세력을 두려워했다. 탈레반이 집권한 후 그들은 산적이나 헤로인 밀매업자가 되었다.

결국 2002년 서방측이 카불에 세운 정부는 외부의 장기 지원이 없으면 지탱할 가능성이 없었다. 북부동맹은 공식적으로는 여러 소수민족 그룹을 대표하지만 마수드의 판지쉬리 족 파벌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카르자이 정권의 주요 해외파 인사들이 파쉬툰 족이긴 하지만 진정 파쉬툰 족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은 소련과의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파키스탄이나 서방에 거주하던 명목상의 회교도였다. 마찬가지로 과도 정부의 군벌은 미국과 영국의 군사력 지원이 없으면 군사적으로 무용지물이다. 카르자이 정권은 ‘점검 가능한 정보들’을 철저히 검토하지 않으면 언제나 나타날 수 있는 불필요한 집합체에 불과하다. 하지만 점검 가능한 정보들은 공공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 연방정부 문서보관소 수백 명의 전현직 정부 관료 회고록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

2.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외국인을 혐오하며 종족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회교도들이다.

1989년이나 1990년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프가니스탄 관련 브리핑을 위해 상원 정보위원회에 출두하는 고위 정보책임자를 수행한 적이 있다. 내가 맡았던 역할은 그 나라의 현 정치․군사적 상황에 관해 간결하고 상세하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당초 계획은 의원들이 내 상사에게 질문할 시간을 많이 갖도록 내가 보고를 빨리 끝내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그런대 내가 보고를 마치자 한 의원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10년 세월 동안 수십억 달러를 쓰면서 아프가니스탄 저항 세력을 지원한 결과가 고작 카불에 반미 회교 정권이 들어서는 것입니까?" 상사가 난처해진 나를 구해 주었다. 상사는 질문을 한 의원에게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이 현재 우위를 점하고는 있지만 카불의 차기 정권 구성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일화를 소개하는 것은 현재 적지 않은 미국 관리들이 그 상원의원처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회교도이며, 종족 중심적이고, 외국인을 혐오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과의 전쟁 중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저항 세력의 나약한 동맹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적군의 점령과 약탈 외에도 국민들의 그러한 속성이 한몫을 했다. 지금도 20년 전과 마찬가지다. 이슬람은 더욱 강력해졌고, 한층 보수적이다. 현재 친서방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라야 카르자이와 과도정부 내의 해외파 인사들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사람들이 고작이다. 과도정부도 본(Bonn) 협정에 의해 유엔이 창설한 것으로, 미국 공군력과 총칼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카르자이와 해외파 인사들은 이름만 아프가니스탄인들이지 종족중심주의 배격, 세속적 정치와 자유주의적 종교관, 민주주의의 빠른 성장에 대한 믿음 등 모든 성향에서 서구인에 더 가깝다. 그들은 어느 면에서나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 지도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굴부딘 헤크마티아르는 미국 민주당에 보낸 편지에서 카르자이 정권에 대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경멸감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썼다.
정상적인 양심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나라의 지배자라는 사람들을 어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자신들의 신변 안전마저 외국인에게 맡기고, 전국 어디에도 믿을 수 있는 동포가 한 사람도 없으며, 자신들의 궁에서조차 지켜 줄 세력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 동향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고향에 갈 때도 미군 특수부대원의 보호를 받으면서 움직이는 사람들. 그런데도 그들은 공격을 받습니다.

얼마 안 있어 이교도에 의한 정권 수립과 유지에 관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반발과 국토 유린, 뿌리 깊은 종족적 자존심, 지역주의, 외국인 혐오증으로 인해 대부분의 파쉬툰 족과 카르자이를 권좌에 앉힌 일부 소수종족 사이에 거센 반미 태도가 나타날 것이다. 2004년 1월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미군들은 점차적인 태도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결국 모든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미국 주도 세력의 축출을 위해 싸우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동안 그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여러 나라와 일본이 식량과 자금, 전문 기술, 평화유지군, 컴퓨터, 기타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국가 재건’에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1989-92년처럼 아프가니스탄을 버렸다고 불평을 해댈 것이다. 한마디로 난센스다. 잠정적이나마 카르자이의 권좌를 유지시키려면 계속 원조를 늘려야겠지만, 그것으로 정권이 유지될 수는 없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외국 세력과의 유대는 단순한 경멸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전쟁을 낳는다.

3.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매수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신화 중 가장 오류가 심한 말.

[…]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언제고 돈을 받는다. 그러나 돈 없이도 하려고 했던 일만 해 준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그들은 돈을 받았어도 돈 때문에 일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하려고 했던 일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소련에 대항하는 10년간의 지하드 기간 중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외에도 여러 나라가 현금을 포함해 수십억 달러에 해당하는 무기와 봉급, 뇌물, 장비를 지원했다. 많은 미국 관리와 정치인들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우리 명령대로 움직인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지하드에 나선 아프가니스탄 전사들은 우리가 무슨 소리를 떠들어대든 상관하지 않고 그런 원조 없이도 했을 일만 수행했다. 소련군을 죽이는 일은 누가 하라고 할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재정지원 규모와 상관없이 우리가 지시하거나 부탁하는 공격이나 병력 이동을 끈질기게 거부했다. 마수드와 그의 자미아트 이슬람 전사들만큼 우리 지원을 열렬히 원하면서도 정작 우리 요청을 수용하는 데는 인색했던 무장 단체도 없을 것이다.

다음 일화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고집을 나타내는 훌륭한 예가 될 것이다 1980년대 말 한 고위 외교관이 히스비 이슬라미 지도자 유니스 칼리스를 만나, 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으니 저항 세력의 전투를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칼리스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니오. 우리는 소련군이 떠날 때까지 그들을 죽일 것이오.” 깜짝 놀란 외교관이 이번에는 미국과 서방진영이 소련군 철수를 재촉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므로 무자헤딘이 공격을 줄이면 외교적 압력에 한층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칼리스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나직이 말했다. “아닙니다. 소련군이 떠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죽이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들이 철수할 때까지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계속 죽이면 그들은 떠날 것입니다.

[…] 카불에 이슬람 정권이 다시 수립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다만 우리가 옹립한 카르자이와, 서구화되고 세속화되었으며 추종자 하나 없는 해외파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목숨을 부지한 채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Scheuer, Michael. Imperial Hubris: Why the West Is Losing the War on Terror. 1st ed. Potomac Books Inc., 2004. (황정일 역, 『제국의 오만』. 서울: 랜덤하우스중앙, 2004)



외세가 현지세력과 제휴할 때 영원히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1. 말을 잘 들을수록 자생력이 없어 밑빠진 독에 물을 붓게 되고
  2. 자생력이 있을수록 지지리도 말을 안 들어쳐먹고 속을 썩인다

말이 잘 통하는 현지세력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그는 당신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 뭔지 잘 알고 있고, 그런 말만 해주는 간신배나 사기꾼이다.
by sonnet | 2021/08/16 11:18 | 정치 | 트랙백(1) | 핑백(2) | 덧글(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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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적절한 잡동사니 창고 at 2021/08/16 21:32

제목 : 미국은 과거, 혹은 현재의 지휘관들을 발언을 그냥 ..
아프가니스탄 예언서 sonnet님 글 마지막 빨간 색 글의 내용, “아닙니다. 소련군이 떠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죽이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들이 철수할 때까지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계속 죽이면 그들은 떠날 것입니다.” 그런데 미군 장군들도 비슷한 말들을 했었다. “I’ll tell you what war is about,” he once said with characteristic bluntness......more

Linked at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생활1 .. at 2021/08/18 10:19

... 에 대해 세계 6위의 군사력과 10위 무역 대국인 우리나라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을 비교한다는… 아프가니스탄 이슈 키워드 블로그 살펴보기 아프가니스탄 예언서 동안 아프가니스탄 에서 저질렀던 과오를 되풀이했다 당시 유엔과 미국 등 서방측 외교관들은 이슬람 세속화된 아프가니스탄 인 혹은 고국을 위해 ... more

Linked at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생활1 .. at 2021/08/18 12:59

... 미국의 철수 후에도 아프가니스탄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는 견해가 뿌리 깊다 일본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이슈 키워드 블로그 살펴보기 아프가니스탄 예언서 동안 아프가니스탄 에서 저질렀던 과오를 되풀이했다 당시 유엔과 미국 등 서방측 외교관들은 이슬람 세속화된 아프가니스탄 인 혹은 고국을 위해 ... more

Commented by at 2021/08/16 11:39
결국 서방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20년은 서구화된 아프가니스탄인이라는 환상종을 찾다가 날렸군요
그나저나 아프가니스탄은 어떻게 하면 안정화시킬 수 있었을까요?
1. 북부동맹을 인정하고 마수드를 중심으로 한 정권 인정
2. 9.11 이후 전쟁은 어쩔 수 없으니 이라크 전쟁은 일으키지 않고 아프간 올인
3. 트위터에서 본 거지만 아프간 전쟁 개시 후 빈 라덴을 죽인 다음 적당히 협상 후 철군

어떤 방식이든 파키스탄의 파쉬툰족 지역땜에 어려울 듯 하지만요
Commented by MoGo at 2021/08/16 12:07
마수드 스스로가 외세의 도움을 받은 탈레반을 그렇게 싫어했던 것처럼 어차피 외세 도움을 그리 받고 싶어하지 않았을 뿐더러, 당시 소련이고 파키스탄이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아프간에 대해 아는 거 쥐뿔 없이 ISI에 휘둘리고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어차피 911 전에 알카에다에 의해 죽었으니 선택지에 없어야..
Commented by 에르네스트 at 2021/08/16 12:46
1.마수드가 죽은게 9.11전에 폭탄테러로 간 상태여서...(유령을 중심으로 새울수는 없죠)
2. 이건 진짜 실수
3. 지금 이렇게 탈출하고 있는게 '빈 라덴을 죽인 다음 적당히 협상 후 철군' 하고 있는 상태인...(그런데 철군도 아직 덜됬는데 아프간 공화국이 초고속으로 망해버린것이고)
Commented by at 2021/08/16 14:50
어 설명을 제가 잘못했는데 1번은 아프간 공산 정권 붕괴 이후 그때 마수드와 북부동맹 중심의 이슬람 정권 인정 얘기였고요

3번은 9.11 이후의 아프간 전쟁 때 레짐체인지 시도 말고 걸프전 처럼 하는 걸 얘긴한 거 였습니다
초반에 탈레반 뚝배기 깼을 때 레짐 체인지나 이라크 가지 말고 바로 알카에다와 빈라덴 때려잡고 철수

제가 글을 되게 못 썼네요
두분 답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21/08/16 22:14
와일드한 상상을 해보자면, 2001년의 아프간 침공 이후 기준으로 이야기한다면, 저는 "봉건제의 정착"이 대안이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단 이걸 '지방자치'나 '분권화' '연방제' 등으로 이야기하면 절대 안 되고, "봉건제"라고 노골적으로 말해야 서방놈들이 오해하는 일이 없을 것 같고요.

1. 수도 카불과 인근 지역 정도를 지배하는 중앙정부
2. 나머지 30여개 주를 통치하는 대영주들
3. 중대급 병력을 유지하며 마을과 촌락을 방어하는 소영주들

대략 이런 3개 tier로 구성되고, 영주들이 각기 정예 군대를 키워서 "자기 지방을 전력을 다해 자기 힘으로 방어" 할수밖에 없도록 강한 인센티브를 주고, 방어에 실패한 영주는 (중앙군이나 인근 영주들이 출병해 수복한 후) 영지를 잃고 대체되도록 하는 식으로 퇴출 가능성도 열어두어 영주들의 적자생존을 도모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중앙정부는 지방의 대영주들이 탈리반에 대항해 영지를 잘 지키는 동안은 주의 내정에 그다지 간섭하지 않는 대신, 미국 등이 주는 대외원조를 지방에 분배하는 통로이자 , 탈리반 등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한 중앙군 예비대과 병참, 공군 등을 제공하는 대가로 기본적인 충성을 보장받는 그런 메커니즘이고, 장기적으로는 영주들의 자제나 일족이 고등교육을 받고 중앙 엘리트 관료로 변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등의 역할도 하면 좋겠죠.

한편 소영주들에게도 군대(심복)를 키우고 전공을 세워 대영주를 향해 성장할 수 있는 여지를 계속 열어두어야 할 것이구요.

이런 체제는 이번 패전의 제일 큰 원인이었던,
a) 지방이 제대로 방어가 안되고,
b) 시간이 흘러도 지방의 방어역량이 전혀 성장하지 않는데,
c) 어렵게 키운 중앙군이 지방방어에 동원되어 여기저기 불려다니다 녹아버리는
사태를 막아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방사람들이 아프간에 public servant를 이식하려고 했으나 그게 그 나라 실정에는 전혀 맞지 않아 그냥 공금을 빼먹는 강도들만 양산한 결과가 되었는데, 차라리 군대도 영주의 군대, 영지도 영주의 땅처럼 훨씬 더 현재의 지방통치자 개인의 재산처럼 아끼고 지키고 육성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었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왜냐면 예나 지금이나 현지에 대영주급의 warlord와 소영주급의 commander들은 존재하는데, 정작 이들을 체제의 공고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도록 하는 동기와 메커니즘만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요.

그리고 이것이 90년대의 내전기와 다른 점은 미국이라는 큰 물주가 카불 중앙정부를 확고하게 받치고 있기 때문에, 힘으로 중앙을 정복하겠다는 영주는 안 나올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고요.
Commented by 존다리안 at 2021/08/16 12:17
다소 외세에 저항감은 있어도 지들 권리를 잃지 않는다는 선에서는 타협까지는 할 줄 아는 한국인
이들을 이끌던 그나마 융통성이 있던 이승만(고집부릴 때는 고집 부리지만…)
그래도 한국은 나은 나라였네요.
Commented by 나인테일 at 2021/08/16 13:40
한국, 일본은 유교 사상이 중화의 개념만 중국에서 미국, 유럽으로만 바꾸면 되는 편리한 사상적 기반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고 봅니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대박을 쳤다고는 합니다만 한국 기독교의 근저에 있는건 유교 윤리라고 봅니다. 미국 기독교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가치관의 결이 미묘하게 달라서 재미있을 때가 있더군요. 하지만 그만큼 기독교 문명과의 호환성도 이미 상당히 높아서 서구화의 열차에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올라탈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이 분명히 존재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여기엔 유럽 계몽주의 시대에 알게 모르게 유럽으로 수입된 중국 철학 서적의 영향도 아마 없다고는 못 하겠지요.
Commented by 엑셀리온 at 2021/08/16 21:58
한국이 유교 문화권이라서 대단한 게 아니라 그냥 이승만이 정말 대단했던 겁니다.

당시 50년대의 소설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보면 이미 기존 토착 유교 세력의 고집불통과 새로운 미국 문명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교수 부인의 춤바람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던 거죠.

이승만이 대단한 이유는 <말을 잘 들을수록 자생력이 없어 밑빠진 독에 물을 붓게 되는> 기회주의 세력이 아니라 말을 잘 들으면서도 자생력을 갖추었고 그걸 바탕으로 6.25를 훌륭히 완수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이라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말 잘 듣는 자생력 가진 세력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심지어 경계까지 하면서 이승만을 축출한 거라고 봐야 합니다.

이승만이 이러한 씨를 뿌려 놓은 덕분에 70년을 버틸 수 있었고, 중간에 박정희가 전통철학으로 빠꾸하는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어쨌든 버티긴 버텼습니다.

문제는 21세기 들어와서 이것이 통제 불능이 되면서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탄핵당하고 감옥으로 보내졌으며 보수 세력이 지리멸렬하게 되면서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죠.

한국이 베트남이나 아프간 등등과 다르게 70년을 버틴 건 순전히 이승만이 뿌려놓은 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21/08/16 22:29
엑셀리온 / 너무 한 인물 환원론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한국에 독재자가 세 명 있었지만, 그 셋이 서로 연속성이 없었고 적당한 기간마다 교체됨으로써, 김일성처럼 일가가 사회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한 점이 우리의 운이 좋았던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엑셀리온 at 2021/08/16 23:41
sonnet/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고 90% 이상이 빈농이며, 전근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독재왕정에 더 익숙하며 불과 반세기 전에 유교적 가부장제의 권력을 내려놓기 싫다고 서구화에 반대하여 폭동을 반복함으로써 근대화에 실패한 국민이 민주주의 군대로서 그 힘을 발휘하여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훌륭히 싸워 독립을 지키고,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린 것은 어쨌든 이승만이 가르쳐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전세계가 다 실패하는 것을 유일하게 성공했는데 이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나친 인물환원론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Commented by 잡지식 at 2021/08/17 21:04
엑셀리온/ 만일 오늘의 성공에 이승만 박사의 역할이 90%라 해도, 우리는 나머지 10%에 초점을 맞추어야지 않을까요? 앞으로의 성공을 위해 이승만 박사를 예토전생 시킬게 아니리면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21/08/18 20:21
엑셀리온 // '국부론'에 함몰되신 것 같네요. '결론에 과정을 꿰어맞추는' 해석은 간편해 보이니만큼 유혹을 떨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런 분석이 옳다고 할 순 없죠.
Commented by lesis at 2021/10/01 21:31
전 우리나라의 발전은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전통의 유무가 판가름했다고 생각합니다.
서구화된 엘리트?
어차피 서구 밖 식민지 독립국가 어느나라나 한줌에 불과합니다.
그 한줌의 엘리트들이 이끄는 방향으로 순순히 따라가는, 관료들의 지시에 국민들이 순응하는 국가와 달리 부족사회, 봉건사회로 중앙과 관료들의 지시 따윈 안중에도 없는 국가는 경제개발과 발전이 사실상 불가능하죠.
이거야 말로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과 우리나라와 대만, 저 중공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생각해요.
중앙집권적 관료제에 의한(일본까지 친다면 약간 궤가 다르지만 어쨌든) '강력한 제민지배'의 전통, 이거야말로 진짜 차이죠.
제3세계에선 부족 내지 봉건 질서를 타파하고 중앙집권과 강고한 관료제를 구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것조차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보니 경제개발은 아예 손도 못 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결국 이것도 출발점의 차이인 거라고 봐요.
Commented by ㅇㅇㅇ at 2022/01/15 02:10
엑셀리온//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기존의 유교적 가치관과 미국을 통해 유입된 서구적 가치관의 충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면 맞는 이야기이긴 한데, 그 충돌은 성(性) 윤리의 영역에서 발생한 충돌이죠. 다른 분들이 이야기하시는 건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제적인 정부에 대한 관점이나 공공 개념에 대한 관점에서 근대 서구적 가치관과 유교적 가치관이 그리 크게 충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고요. 거기에 자유부인 이야기를 가져다 붙이시는 건 솔직히 말해 견강부회로 보입니다.
Commented by 3인칭관찰자 at 2021/08/16 12:23
서구화 테라포밍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가 있고, 애당초 그게 힘든 나라가 있으며, 그나마 대한민국이 전자에 속한다는 걸 지금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21/08/16 21:03
테라포밍이란 표현은 적절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채널 2nd™ at 2021/08/16 12:42
미합중국 정치인들은 .... 정말 naive한게 "돈"으로 다 되는 줄............................

(월남전에서도 -- 의지라고는 "1"도 없었는데 -- 그렇게 돈을 쳐 발랐다가 망한.... 역사에서 안 배우는 모양입니다. 그 월남에서도 '백업'이랄까 '보험'으로 큰 놈은 북월남에, 작은 놈은 남월남에 각각 끈을 대도록 했다는데.)
Commented by sonnet at 2021/08/16 21:08
사실 비료를 너무 많이 줘서 뿌리가 썩어버린 느낌도 있죠.
Commented by 나인테일 at 2021/08/16 13:34
대한민국의 건국과 안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부분 일제강점기 중 활동기반이 미국, 중화민국, 일본, 혹은 식민지 조선의 일본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 등등의 출신으로 서구화가 문명화고 문명화가 유일한 선택지라는데 토를 달지 않는데다 그 방향으로 가는 노하우도 어지간히 잘 아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로군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21/08/16 13:59
사실 메이지유신도 마찬가지라는 아이러니.
Commented by 엑셀리온 at 2021/08/16 22:01
이 부분에서 가장 큰 공로자는 이승만이지만 문제는 박정희가 전통철학을 부활시키면서 빠꾸를 해버렸고.

그것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들에게로 확산되면서 결국엔 딸이 탄핵당하고 감옥가는 사태로 이어진 것.

박정희가 정말 중요한 역할이었는데 자신의 통치에 편리하다는 이유로 토착세력인 고집불통 유교를 부활시키는 바람에 한국 민주주의 역사가 완전히 꼬여버렸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시기부터 갑자기 중화주의가 나타난 것은 사실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고 우연도 아닙니다.
Commented by 오리올 at 2021/08/18 00:12
엑셀리온님의 한국현대사에 대한 저 이론은 도대체 어디서 배우신겁니까? 유교 동양철학 전공인 제가 볼때 박정희가 전통철학이니 유교를 본인 통치이념으로 사용했다는 말은 얼토당토않은 것 같은데 참고하신 이론이나 서적이 있습니까?
Commented by paro1923 at 2021/08/18 20:29
엑셀리온 // 그렇게 치면 이승만 국부론이야말로 유교적 가부장제의 이상형 중 하나입니다만... (당장 '國父'라는 말부터가 가부장제 그 자체죠.) 혹시 카리스마적 통치를 전부 유교적, 중화주의적이라고 이해하고 계신 겁니까?
Commented by 나인테일 at 2021/08/19 00:07
전통철학이라는건 누구 한 사람이 만들고 없애고 할 수 있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 일본조차 유교를 버렸네 마네 하는 소리를 지들끼리 하고 있습니다만 2차대전 때 무슨 수사적 표현이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지금의 일본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보면 그게 다 희망사항일 뿐이라는걸 볼 수 있죠. 옛 것에서 나쁜건 버릴 수 있고 변화도 있을 수 있지만 완전히 거기서 빠져나와 백지에서 새로 시작해 서구인과 똑같은 무언가를 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문화라는건 그렇게 만만한게 아니죠. 비슷한 껍데기와 비슷한 가치를 추구한다고 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 근저의, 깊은 곳의 행동원리는 소름끼칠 정도로 판이하게 다른걸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되지요.
Commented by 000 at 2022/01/15 02:18
오리올//
저 분의 관점은 이론적 틀을 갖추었다기 보다는 그냥 본인이 좋아하시는 걸 한데 모아 뭉뚱그려놓고, 반대로 본인이 싫어하시는 것도 한데 뭉뚱그려서 몰아놓는 식으로 접근하시는게 아닐까 싶은데요...
Commented by ChristopherK at 2021/08/16 16:11
마지막 빨간 줄은 미 공군대장 커티스 르메이가 했던말 그대로네요.

제임스 매티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Commented by sonnet at 2021/08/16 21:02
그렇네요. 앞으로는 "전통적 시각" 정도로 불러줘야겠습니다.
Commented by 잡지식 at 2021/08/16 20:28
국내외 반응들을 보니 이게 9.11 테러 때문에 시작된 일임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느꼈습니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지만 그날 죽은 사람들이 이 결말을 보면 무어라 할지.. 그저 슬플 따름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21/08/16 21:02
20년의 세월은 만만한 게 아닌 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야채 at 2021/08/16 22:09
미국이 허겁지겁 도망치는 모양새가 되어 체면이 형편없이 구겨지기는 했지만, 사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별다른 이해관계가 없지 않습니까? 탈레반이 알카에다처럼 미국을 공격하려는 테러세력을 다시 지원하지 않는 다음에야 아프가니스탄이 어떻게 되건 별로 신경쓸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요. 원래 목표는 "아프가니스탄을 석권하고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적당히' 빠져나오는 것"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 과도정부 상황이 개판이라서 실패한 부분은 "아프가니스탄에 새 정부를 세우지 못한 것" 이라기보다 "적당히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던 것"에 있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21/08/16 22:20
그 말씀도 맞습니다. 일단 오사마를 잡는데 오래 걸려서 금방 나올 수가 없었고, 오사마를 잡았을 때는 이미 너무 오래있었다는 게 문제이긴 하죠. 말려들지 않고 빨리 발을 뺀 성공사례는 걸프전이 있을 것 같네요.
Commented by 일화 at 2021/08/16 23:27
현(?) 정권이 존재해야하는 이유가 아프간을 근거지로 하는 테러집단의 부활을 막는다는 것 뿐이라, 그게 아프간인들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다는 것이 너무 명백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떻게든굴러가게 하려면 말씀대로 봉건제가 답이지 싶은데 말이죠.
Commented by ㅋㅁㅌㅊ at 2021/08/18 08:25
결론이 특히 마음에 와 닿는군요.
Commented by 설봉 at 2021/08/18 15:03
아프간 민주정부 세우기 대실패의 교훈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궁금합니다. 한 2040년까지는 미국 차기정부든 다른 강대국이든 비슷한 짓은 해볼 엄두도 못 낼 듯..
Commented by 야채 at 2021/08/23 15:04
탈레반이 카불에서 여성의 인권을 포함한 인권을 존중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한국에도 아프가니스탄 정부로 인정해달라고 했다는데 전 이 부분을 꽤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렇다고 인권에 대한 약속을 정말 지킬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장기적으로는 고사하고 당장 지키는 시늉을 할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닙니다.

탈레반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고 봅니다.
(1) 미국을 이겼으니 이제 전 세계를 상대로 성전이다! 테러의 공포에 떨어라 이 불신자 놈들아! 하고 차세대 알카에다 같은 테러 세력과 제휴해서 적극적으로 테러를 벌이는 가능성,
(2) 결국 미국을 물러나게 만들기는 했지만 쓴 맛을 톡톡히 본 만큼 이제 앞으로는 서방 강대국들을 가능한 자극하지 않고 아프가니스탄 내부의 일에만 집중하려는 가능성.

저는 탈레반이 보여주는 태도가 (2)번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음... 카불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 다음은 우리나 미국이나 신경쓸 필요가 없는 부분입니다. 지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인권을 내팽개쳤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애당초 아들 부시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이유로 전쟁을 벌이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이제와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이유로 전쟁을 계속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21/08/24 01:50
제 버릇 못 버리고 다시 (1)을 선택할 가능성에 대비해 실팍한 몽둥이를 몰래 준비해 두어야 될 것 같습니다만, 지금같은 상황에선 어렵겠네요. 또 일이 터지고 난 뒤에야 회초리가 날아갈려나요...
Commented by shaind at 2021/09/02 19:07
paro1923
애당초 아프간 탈레반은 (1)을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아프간 탈레반 테러리스트라는 건 대체로 존재하지 않죠. (파키스탄 탈레반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알 카에다의 9.11에 탈레반은 '연루'된 것이고 자국 내에 있는 자기 손님이자 전우를 미국 손에 넘겨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던 것 뿐이지 알 카에다처럼 국제 테러가 목적인 조직은 아닙니다.
Commented by 000 at 2022/01/15 03:36
shaind님 말씀처럼 아프간 탈레반은 애초에 전 세계를 상대로 성전을 벌인적도 없고 벌이겠다고 한 적도 없죠... 걔들의 관심사와 목표는 딱 아프가니스탄을 자기네 영역으로 삼아 마음대로 지배하겠다는 거고, 그 이상으로 뭔가 외부를 향해 공세적인 태도를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성전을 벌이겠다고 덤벼드는건 알 카에다나 다에시같은 애들이고, 얘들의 활동영역은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인 중근동이죠. 그런데 문제는, 야채님이나 paro1923님과 같은 오해가 상당히 대중적이라는 거고요. 제 짐작엔 둘 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니 행동양상도 비슷할거라 넘겨짚은게 아닌가 싶은데요. 심지어 그런 오해가 미국이 아프간에서 골치만 썩이다 망신당하고 나온 원인의 일부가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Commented by 000 at 2022/01/15 03:40
근데 미국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워 전쟁을 벌이는 걸 비난하던 사람들이 이제와서 아프가니스탄 인권을 버리느냐고 또 비난한다고 해서 이치에 어긋난다고 할 수는 없을것같아요. 차라리 처음부터 손을 대지 말던지, 한번 건드렸으면 제대로 책임을 지든지 해야죠. 어설프게 친미정권 만들어서 한동안 굴리다가 버리고 빠져나오면, 그동안 미국을 도와줬던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되나요. 차라리 처음부터 미국이 손을 대지 않았으면 별 일 안 당했을텐데, 이제 미국 앞잡이라고 보복당할 각이잖아요.
Commented by 야채 at 2022/01/15 09:37
해당 문제에 대해 제 입장을 대충 넘겨짚는 사람들이 있으니 좀 분명하게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제 입장은 원래 탈레반은 외부 세계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는 쪽입니다. 굳이 테러를 벌이가 위해서 알 카에다와 제휴한 것도 아니고, 반대로 미국이나 유럽에 테러를 벌이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알 카에다와 스스럼없이 제휴하고 보호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미국과 긴 전쟁을 치른 이상 "전쟁이 끝났으니 이제 관심 끝!" 하고 외부 세계에 대해 그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 리는 없습니다. 고로 이제 외부의 '불신자 무리들'에게 적극적으로 맞서거나, 반대로 적극적인 개입을 부를 만한 행동은 피하거나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탈레반은 미국과 싸웠기 때문에 카불에서 앙갚음으로 폭정을 하는 게 아니고, 그 전에도 원래 그렇게 통치를 했던 집단입니다. 탈레반과 싸운 북부동맹 역시 미국 때문에 탈레반과 척을 진 게 아니라 원래부터 탈레반과 싸워온 집단이고요. 탈레반의 지금 통치가 마음에 안 들어서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면 애당초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시작한다고 비난한 것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21/08/29 14:53
오늘도 잘 배우고 갑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자주 가는 곳에 이 글을 소개해도 되겠습니까?
홍차넷이라는 곳이고, 아프간사태와 관련해 읽어볼만한 글이라는 소개와 함께 이 글을 주소만 붙여놓겠습니다.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21/08/29 15:31
https://redtea.kr/?b=38&n=102351 입니다. 만약 소개되는 것이 싫으시다면 바로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21/08/29 20:54
네. 그런건 자유롭게 하시면 됩니다.
Commented by at 2022/01/03 12:14
'히스비 이슬라미 지도자 유니스 칼리스' = 모하마드 유누스 칼리스 Mohammad Yunus Khalis 맞을까? 유니스라고 한 건 저 책 원문의 오타인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22/02/26 15:47
번역서 원문대로입니다.
Commented by 쿠사누스 at 2022/01/23 03:26
19세기 유럽처럼 아프간이 여러 개의 민족국가들로 헤쳐모여하는 방법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헤쳐모여 하는 과정에서 민족간의 대립과 증오가 극한에 이르러서 민족분쟁과 인종청소가 일어날 가능성은 백퍼센트 확실하겠지만, 어차피 세속주의 국가끼리의 싸움이라서 테러리즘과 이슬람 원리주의가 개입할 가능성은 크게 약화될 것같습니다.

'중동은 왜 싸우는가'의 저자 박정욱 MBC PD도 카불 함락 당시에 민족국가의 경로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늬앙스의 글을 쓴 적이 있었죠.
박정욱 PD에 의하면 중동에서는 민족보다는 부족이 단위가 되는 바람에 역설적으로 제국의 개입과 지배를 끊임없이 가능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고 분석하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22/02/26 15:48
오랜 대외전쟁을 통해 공통의 민족성이 자라나고 있다는 의견도 좀 있습니다. 한반도도 삼국이 수백년간 전쟁을 한 끝에 하나의 나라가 되었으니, 탈리반 정복군주가 그런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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