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리들은 1989년에서 1992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질렀던 과오를 되풀이했다. 당시 유엔과 미국 등 서방측 외교관들은 이슬람 과격주의자 정권이 아닌 폭넓은 기반을 가진 정권을 수립해 공산 정권을 대체하려 했다. 목적은 새로운 정권에 폭력적이고 신앙심 깊고 턱수염 기른 무자헤딘의 참여를 가급적 제한하기 위해서였다. 그 목적은 지금도 유효하다. 서방 외교관들은 소련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저분한 중세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을 정치의 변방으로 내쫓고, 자신들과 같은 부류에게 새로운 정권과 권력을 주려 했다.
세속화된 아프가니스탄인, 혹은 고국을 위해 싸우기를 거부하고 유럽이나 인도, 미국에서 스스로 택한 안락한 망명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서구화된 아프가니스탄인,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공산 정권을 위해 일한 전문기술자나 관료, 파키스탄이나 인도 난민촌으로 피신해 총살을 모면한 부족 지도자, 로마에 근거를 마련한 축출된 아프가니스탄 왕과 측근들, 총 한 발 쏘아 보지 않은 구찌 양복 차림의 ‘야전지휘관들’, 심지어는 막 패배한 공산 정권의 우두머리 도살자 나지불라 등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늘 그랬듯이 서방 외교관들은 10년 간 초강대국과 싸워 이긴 것 외에는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우스꽝스런 파자마 같은 옷차림에 턱수염을 기르고 있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쑥이 차려입고 영어나 불어를 대충 말하며, 종교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반감을 나타내는 세련된 사람들을 선호했다. 늘 내실보다는 겉모습이 우선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런 시나리오는 한층 희극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도 미국과 서방, 유엔의 외교관들은 패자만을 택하는 우를 범했다. 그 결과 한층 신뢰성이 결여된 사람들 중심으로 과도정부를 구성했다. 미국 관리들은 미국의 도움 없이는 단 한번의 전투에서도 승리할 수 없었던 희미한 그림자 같은 북부동맹 세력에 서구화된 파슈툰 출신 하미드 카르자이를 정권 지도자로 합류시켰다. 카르자이는 용감하고 지적인 사람이지만 소련과 탈레반과의 싸움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가 미국 측에 뛰어든 인물이다. 종교 배경도 종족 배경도 없는 카르자이는 미국과 영국 엘리트들과는 편안하게 어울리지만 이슬람 과격파 게릴라와 부족 지도자, 야전지휘관들과 더불어 염소고기를 손으로 뜯어 먹는 등의 일상적인 아프가니스탄 생활 습관에는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우리는 유엔이 주재하고 미국이 조종한 독일의 본 회의에서 카르자이를 과도정부 수반으로 옹립(국수적인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하면서 교육수준이 높고 부족에 연연하지 않으며 이슬람 신앙은 겉치레뿐인 재외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새 정권에 합류시켰다. 그들 해외 거주 아프가니스탄인들은 1990년대 이래 생명이나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서방에 체재하면서 공짜로 한 자리 차지할 날만 기다리던 인물들이다. 그리고 난가하르 지방의 하즈레트 알리, 호스트 지방의 파차 칸 자드란, 칸다하르 지방의 모하마드 시르자이 같은 군벌을 끌어들여 파쉬툰 족이 정치적으로나 인구 비례로 우세한 지역의 군사력을 카르자이에게 제공하도록 했다.
이것은 승리를 위한 전열이 아니다 카르자이와 해외파 참모들이 모든 것이 파괴되어 춥고 암흑천지인 카불에서 떨고 있는 동안 군벌들은 미국 주도의 연합군에만 의지했다. 그들의 군사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활용 가능한 정보를 무시한 서방측은 이제 이들 군벌들이 망명했었거나 국내에서도 은신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탈레반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탈레반의 세력이 커지기 전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할 기회가 왔을 때도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내에 지지기반이 없었고 탈레반과 알 카에다 세력을 두려워했다. 탈레반이 집권한 후 그들은 산적이나 헤로인 밀매업자가 되었다.
결국 2002년 서방측이 카불에 세운 정부는 외부의 장기 지원이 없으면 지탱할 가능성이 없었다. 북부동맹은 공식적으로는 여러 소수민족 그룹을 대표하지만 마수드의 판지쉬리 족 파벌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카르자이 정권의 주요 해외파 인사들이 파쉬툰 족이긴 하지만 진정 파쉬툰 족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은 소련과의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파키스탄이나 서방에 거주하던 명목상의 회교도였다. 마찬가지로 과도 정부의 군벌은 미국과 영국의 군사력 지원이 없으면 군사적으로 무용지물이다. 카르자이 정권은 ‘점검 가능한 정보들’을 철저히 검토하지 않으면 언제나 나타날 수 있는 불필요한 집합체에 불과하다. 하지만 점검 가능한 정보들은 공공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 연방정부 문서보관소 수백 명의 전현직 정부 관료 회고록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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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외국인을 혐오하며 종족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회교도들이다.1989년이나 1990년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프가니스탄 관련 브리핑을 위해 상원 정보위원회에 출두하는 고위 정보책임자를 수행한 적이 있다. 내가 맡았던 역할은 그 나라의 현 정치․군사적 상황에 관해 간결하고 상세하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당초 계획은 의원들이 내 상사에게 질문할 시간을 많이 갖도록 내가 보고를 빨리 끝내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그런대 내가 보고를 마치자 한 의원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10년 세월 동안 수십억 달러를 쓰면서 아프가니스탄 저항 세력을 지원한 결과가 고작 카불에 반미 회교 정권이 들어서는 것입니까?" 상사가 난처해진 나를 구해 주었다. 상사는 질문을 한 의원에게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이 현재 우위를 점하고는 있지만 카불의 차기 정권 구성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일화를 소개하는 것은 현재 적지 않은 미국 관리들이 그 상원의원처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회교도이며, 종족 중심적이고, 외국인을 혐오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과의 전쟁 중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저항 세력의 나약한 동맹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적군의 점령과 약탈 외에도 국민들의 그러한 속성이 한몫을 했다. 지금도 20년 전과 마찬가지다. 이슬람은 더욱 강력해졌고, 한층 보수적이다. 현재 친서방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라야 카르자이와 과도정부 내의 해외파 인사들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사람들이 고작이다. 과도정부도 본(Bonn) 협정에 의해 유엔이 창설한 것으로, 미국 공군력과 총칼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카르자이와 해외파 인사들은 이름만 아프가니스탄인들이지 종족중심주의 배격, 세속적 정치와 자유주의적 종교관, 민주주의의 빠른 성장에 대한 믿음 등 모든 성향에서 서구인에 더 가깝다. 그들은 어느 면에서나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 지도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굴부딘 헤크마티아르는 미국 민주당에 보낸 편지에서 카르자이 정권에 대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경멸감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썼다.
정상적인 양심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나라의 지배자라는 사람들을 어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자신들의 신변 안전마저 외국인에게 맡기고, 전국 어디에도 믿을 수 있는 동포가 한 사람도 없으며, 자신들의 궁에서조차 지켜 줄 세력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 동향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고향에 갈 때도 미군 특수부대원의 보호를 받으면서 움직이는 사람들. 그런데도 그들은 공격을 받습니다.
얼마 안 있어 이교도에 의한 정권 수립과 유지에 관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반발과 국토 유린, 뿌리 깊은 종족적 자존심, 지역주의, 외국인 혐오증으로 인해 대부분의 파쉬툰 족과 카르자이를 권좌에 앉힌 일부 소수종족 사이에 거센 반미 태도가 나타날 것이다. 2004년 1월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미군들은 점차적인 태도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결국 모든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미국 주도 세력의 축출을 위해 싸우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동안 그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여러 나라와 일본이 식량과 자금, 전문 기술, 평화유지군, 컴퓨터, 기타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국가 재건’에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1989-92년처럼 아프가니스탄을 버렸다고 불평을 해댈 것이다. 한마디로 난센스다. 잠정적이나마 카르자이의 권좌를 유지시키려면 계속 원조를 늘려야겠지만, 그것으로 정권이 유지될 수는 없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외국 세력과의 유대는 단순한 경멸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전쟁을 낳는다.
3.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매수되지 않는다.아프가니스탄에 관한 신화 중 가장 오류가 심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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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언제고 돈을 받는다. 그러나 돈 없이도 하려고 했던 일만 해 준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그들은 돈을 받았어도 돈 때문에 일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하려고 했던 일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소련에 대항하는 10년간의 지하드 기간 중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외에도 여러 나라가 현금을 포함해 수십억 달러에 해당하는 무기와 봉급, 뇌물, 장비를 지원했다. 많은 미국 관리와 정치인들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우리 명령대로 움직인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지하드에 나선 아프가니스탄 전사들은 우리가 무슨 소리를 떠들어대든 상관하지 않고 그런 원조 없이도 했을 일만 수행했다. 소련군을 죽이는 일은 누가 하라고 할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재정지원 규모와 상관없이 우리가 지시하거나 부탁하는 공격이나 병력 이동을 끈질기게 거부했다. 마수드와 그의 자미아트 이슬람 전사들만큼 우리 지원을 열렬히 원하면서도 정작 우리 요청을 수용하는 데는 인색했던 무장 단체도 없을 것이다.
다음 일화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고집을 나타내는 훌륭한 예가 될 것이다 1980년대 말 한 고위 외교관이 히스비 이슬라미 지도자 유니스 칼리스를 만나, 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으니 저항 세력의 전투를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칼리스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니오. 우리는 소련군이 떠날 때까지 그들을 죽일 것이오.” 깜짝 놀란 외교관이 이번에는 미국과 서방진영이 소련군 철수를 재촉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므로 무자헤딘이 공격을 줄이면 외교적 압력에 한층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칼리스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나직이 말했다. “
아닙니다. 소련군이 떠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죽이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들이 철수할 때까지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계속 죽이면 그들은 떠날 것입니다.”
[…] 카불에 이슬람 정권이 다시 수립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다만 우리가 옹립한 카르자이와, 서구화되고 세속화되었으며 추종자 하나 없는 해외파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목숨을 부지한 채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Scheuer, Michael. Imperial Hubris: Why the West Is Losing the War on Terror. 1st ed. Potomac Books Inc., 2004. (황정일 역, 『제국의 오만』. 서울: 랜덤하우스중앙, 2004)
외세가 현지세력과 제휴할 때 영원히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말이 잘 통하는 현지세력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그는 당신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 뭔지 잘 알고 있고, 그런 말만 해주는 간신배나 사기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