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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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분배 : '도척' 대 '사자' 모델
아브람과 롯에게 가축이 너무 많아 그들이 함께 살기에는 그 땅의 목초지가 부족하였다.
그래서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었으며 게다가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살고 있었다.
그때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한 친척이다. 나와 너, 그리고 내 목자와 네 목자끼리 서로 다투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않느냐? 자, 서로 갈라서자. 네가 원하는 땅을 택하라. 네가 동쪽으로 가면 나는 서쪽으로 가고 네가 서쪽으로 가면 나는 동쪽으로 가겠다'
롯이 요단강 유역을 바라보니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였다. 이때는 아직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으므로 그 땅이 마치 에덴 동산 같고 이집트의 비옥한 땅과 같았다.
그래서 롯이 요단강 유역을 택하고 동쪽으로 옮기자 그들은 서로 갈라서게 되었다.

『현대인의성경』 창세기 13:6~11

이처럼 고대로부터 공정한 자원 분배의 방법으로 "한 사람이 나누고, 다른 이가 먼저 선택하는"(I cut, you choose) 기법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 간단한 수법의 매력은 공정한 케이크 자르기(Fair cake-cutting) 비유에서 잘 드러난다. 제안자가 위 그림과 같이 케이크를 불균등하게 잘라 왔다면, (더 큰 몫을 선호하는) 상대방은 먼저 오른쪽을 고르면 된다. 따라서 제안자는 자신이 손해를 볼 위험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공정한 분할을 할 동기가 있다.

  • (능동적으로) 자원 분배와 관련된 규칙을 설계하는 자
  • (수동적으로) 규칙을 받아들이게 되는 상대방

이 마주한 상황에서 제안을 받은 상대방은, 제안자가 사전에 면밀한 검토를 거쳐 "제안자에게 유리한 규칙"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즉 제안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제안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면, 제안을 거부하는 것이 제일 안전한 선택이 된다.

이 때 정보강자인 제안자는 상대방에게 의도적으로 선택의 우선권을 줌으로서 정보우열에 대한 우려를 경감하고 제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높이는, 즉 거래를 촉진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고려를 반영한 관습이나 제도는 현대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무보호예수제도:
기업을 상장시킬 때, 일정기간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주식을 일정기간(1년 정도) 사고팔지 못하게 규제하여, 소액주주와 투자자들이 먼저 사고 팔면서 주식을 정리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 주는 제도

이 경우에 대주주는 해당 기업의 경영권을 갖고 압도적인 정보우위에 있는 자이므로, 거래소는 대주주의 팔을 묶어놓은 상태에서 나머지 주주들에게 매매할 기간을 확보해 준다. 이것이 속칭 '먹튀'를 줄여줌으로서, 장기적으로 시장을 활성화하고, 거래소, 대주주, 투자자 모두의 이익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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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고전 『장자』에는 9천명의 졸개를 거드리고 천하를 마음대로 오가며 제후들 조차도 그가 나타나면 농성하게 만들었다는 전설상의 도적두목 도척(盜跖)이 등장한다.

도척의 부하가 그에게 물었다.
"도둑질에도 도가 있습니까?"
도척이 대답했다.
"어디서나 도 없는 곳이 있겠느냐?
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아맞히면 성(聖)이고,
스며들 때 선두에 서는 게 용(勇)이다.
나올 때 맨 뒤에 있으면 의(義)이고,
될지 안 될지를 아는 게 지(知)이며,
분배를 공평하게 함이 인(仁)이다.
이 다섯 가지가 갖추어지지 않은 채 큰 도둑이 된 자란 이 세상에 아직 없었다.

『장자』 거협(胠篋)편 5

이 이야기에서 두목은 기본적으로 재물의 행방을 탐지하는 정보력(聖), 성공 가능성을 가늠하는 판단력(知), 공평한 분배(仁) 같은 서비스를 공급한다. 그러나 큰 두목에게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즉 두목은 용맹하게(勇) 제일 먼저 들어가는 데 따른 위험을 떠안고, 또 의리있게(義) 철수할 때 후미를 맡아 추격대와 맞서는 위험을 떠안아 준다. 그것이 9천 졸개들을 거느린 큰 두목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주요 덕목이다. 졸개들을 안심시키고 충성하게 만들기 위해 두목은 장기간에 걸쳐 구축된 경력과 실적, 명성, 언행을 유지관리해야 하는데, 그것이 사회계약 '도둑질의 도'로 집약된 셈이다.

앞선 거래에서와 같이, 졸개들은 작전의 전체상을 잘 알지도 못한 채 두목의 위험한 명령을 따라야 하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다. 그것이 그들을 불안하게 한다. 하지만 부잣집 담을 넘을 때 두목이 앞장서고, 관군이 쫓아올 때 두목이 뒤를 맡고 있다면 그들은 일이 잘못되었을 때 먼저 도망갈 수 있는 '권리', 또는 동료를 버리고 각자도생할 수 있는 '옵션'을 갖게 된다. 이것이 케이크 자르기에서 (두목이 자른 케이크를) 먼저 고를 수 있는 권리, 또는 보호예수기간에 소액주주들이 주식을 팔고 뜰 수 있는 권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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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오늘날 시험 성적순으로 각종 자원(대학입학자격에서 일자리까지)을 분배하는 등의 규칙이 '공정'하며, 심지어는 해당 시험의 먼 훗날까지 소득의 서열이 시험 성적순이지 않다면 뭔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세태는 흥미롭다. 물론 시험 성적순으로 자원을 분배할 수는 있다. 또 그 분배의 영향이 금방 사라지지 않고 상당기간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규칙에서 불리함을 예상하는 집단을 meritocracy 시스템으로 끌어들이고, 장기적으로 그 시스템 안에 남아 있도록 설득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시험 또는 시험성적순이라는 규칙은 그 자체로는 '케이크를 자르는 방법'에 해당한다. 그것은 다른 요소와 결합함으로서 공정을 구성할 수도 있고, 불공정을 구성할 수도 있는 하나의 부품에 불과하다.



▣에필로그

사자가 여우와 재칼, 늑대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 그들은 사냥물을 쫒아다니다, 결국 사슴 한 마리를 급습하여 사냥에 성공했다. 그러자 그 전리품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문제가 되었다. "이 사슴을 네 등분해보게"라고 사자가 명령했다. 그래서 다른 동물들은 사슴의 가죽을 벗기고 네 조각으로 나누었다.

그러자 사자는 그 네 조각 앞에 서서 판결을 내렸다.
"첫 조각은 맹수의 제왕으로서의 내 능력에 대한 보상이고,
둘째 조각은 의사결정자로서의 나의 몫이며,
셋째 조각은 이 사냥에 있어서의 내 역할에 대한 보상이다.
마지막 조각에 대해서는.. 흠..
너희들 중 누가 감히 나와 이 조각을 놓고 겨뤄볼 수 있는지 보고 싶다."
by sonnet | 2021/06/13 01:21 | 정치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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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잡지식 at 2021/06/14 01:20
왜 성적순이라는 규칙이 통하는지 생각해봤는데, 이거 어떨까요? 성적은 매번 변동이 있고, 또 인간의 기억은 긍정 편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적의 평균 변동이 2할이라면 자신을 상위 5할 이라 "인지"하는 사람의 숫자는 7할이 되겠지요. 즉 이익을 보는건 반절이지만 그걸 지지하는 사람은 항상 그보다는 많게 되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21/06/14 04:01
개인적으로는 요즘 '공정'이라는 구호를 부르짖는 이면에 모종의 이기주의가 숨어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자꾸 들더군요. 위의 '사자의 몫'처럼 내 몫이 '원하는 만큼' 보장되지 않으면 그 어떤 방법도 불공정이라고 여기는 것 아닌가 하는... 부디 색안경이길 바랄 따름입니다.
Commented by 예외 at 2021/06/14 08:15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시험성적과 능력이 어느정도 비례관계가 있기 때문이겠죠.. 뭐, 업종에 따른 차이는 있겠지만, '머리'를 사용해야 하는 직종이라면 말이죠. 머리와 상관없는 직종, 가령 가수나 체육선수를 뽑을 때에는 교과성적을 위주로 뽑지는 않을 것입니다. 해당하는 시험성적을 볼 지언정..

사람을 뽑아서 써야 하는 입장에서, 확률상, 공부잘하는 사람이 기본적인 판단력, 학습능력이 더 좋죠. 그러면 그런 사람 중에서 인간성이 제대로된 사람을 뽑는게 편리하지, 시험성적은 나쁘지만 판단력과 학습능력이 좋고 인간성까지 갖춘 사람을 뽑는 것은 난이다고 훨씬 올라가죠..
Commented by 예외 at 2021/06/14 08:22
다만 현재의 '시험'은 오히려 과거보다 복잡해지면서 '부모의 업적'을 평가하는 요소가 강력해졌다는 것은 충분히 비난할 만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험'이라는 시스템자체가 잘못된게 아니라, '시험'의 방식이 오염되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처럼 오염시킨 사람들이 대개 meritocracy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기도 하고, 또 그 오염의 결과에 혜택을 본 사람들이기도 하다는 점음 재미있는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Commented by 네모 at 2021/06/14 22:46
그래서 최근에 bts가 집 샀다는 기사에 한탄하는 sdi 회사원 한탄이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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