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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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후 복습
2017년부터 승승장구하던 여당이 보궐선거에서 뼈아픈 일격을 맞은 다음, 시중에는 딱 하루 충격과 고민의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다음부터는 오만가지 '분석' 그리고 '처방'이 나돌기 시작했다. 사실 평소 자기가 하고 싶었던 주장을 '처방'이라는 이름으로 내걸고, 이를 합리화하는 단편적인 근거들을 긁어모아 분석'이라고 구색을 맞춘 듯한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패배한 여당 지지자이든, 지난 몇 년간 광야로 쫓겨나서 울분을 삭히던 야당 지지자이든, 그때 그때 상황 봐서 투표하는 부동층 출신이든, 이도저도 아니면 모두까기 지식인이건 별 차이는 없었던 듯하다. 왜 이렇게 영양가 있는 글이 적은 것일까?



1. 편안한 이론을 찾아서

S. 샌드멜(S. Sandmel, 1979)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살아가는 경향인 바로 “편한 이론”(comfortable theory)에 의존하는 것에 주목한다. 그가 지적한 것은 학자가 비평적 사고에 대한 암묵적인 집착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맞는 이론이나 견해에 강하게 끌리는 경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편한 이론은 신학적이건 단지 개인적이건 간에 증거가 두 개의 상반된 방향 가운데 하나로 치우칠 때, 해석자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이다.”(Sandmel 1979: 139). 샌드멜의 논제에 관한 필자의 해석을 내리자면, “편한 이론”은 “사실, “진실” 등을 찾는 공평한 탐구가 아니라 최소한의 노력으로 우리의 입장을 지키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Grabbe, Lester L. 2007. Ancient Israel: What Do We Know and How Do We Know It?: 1st Ed.. London ; Oxford ; New York: T&T Clark. (Grabbe, Lester L.. 2012. 『고대 이스라엘 역사 : BC 2000년경 ~ BC 539년』. 1판 서울: CLC. pp.58-59)




2. 과도한 자기 확신

인지심리학자는 사람들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체계적인 방식으로 비합리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말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자신의 관점과 능력을 과신하여 미래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이러한 편향을 잘 보여주는 전통적인 실험 하나가 있다. 여기서 연구원들은 대규모 그룹 내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개인의 운전 실력이 그룹 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인지 물었다. 자동차 운전은 분명히 위험한 일이며 그래서 기술이 중요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대적인 운전 실력에 대해 어느 정도 현실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말해 준다. 대학생 그룹의 경우, 전체 응답자 중 80~90퍼센트가 자신이 다른 학생에 비해 더 노련하고 안전하게 운전한다고 답했다. 위비곤 호수Lake Wobegon 효과를 입증하듯 대부분의 학생이 자신을 평균 이상으로 평가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실험에서 연구원들은 자기 자신과 룸페이트의 미래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그들은 성공적인 경력과 행복한 결혼생활, 건강한 삶을 누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룸메이트의 미래에 대해 예상해 보라고 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다분히 현실적이었다. 학생들은 룸메이트가 알코올 중독에 걸리고 질병으로 괴로워하며, 이혼 등 여러 다양한 부정적인 경험을 훨씬 더 많이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실험은 다양한 환경에서 수차례 반복되었다. 예를 들어 경영 분야의 베스트셀러인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에서 피터스와 워터맨은 성인 남성을 무작위로 선출해서 개인의 사교 능력에 대해 평가해보도록 했다. 그 결과, 응답자 모두 자신이 상위 50퍼센트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게다가 25퍼센트는 자신이 1퍼센트 안에 든다고 대답했다. 다음으로, 어느 정도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한 운동능력 평가에서도 남성 응답자 중 60퍼센트 이상이 스스로를 상위 25퍼센트로 평가했다. 운동 신경이 떨어지는 사람도 스스로를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남성 응답자 중 자신의 운동신경이 평균 이하라고 답한 비중은 6퍼센트에 불과했다.

Malkiel, Burton G. 2019. 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 The Time-Tested Strategy for Successful Investing. 12th ed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박세연 역. 2020. 『랜덤워크 투자수업』. 1판 진주: 골든어페어. pp.289-290)




3. 불리한 증거의 재해석

경험은 전부터 갖고 있던 관점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그러한 관점을 부정하거나 보강하는 증거가 드러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잘못된 아이디어가 수정되거나 옳은 아이디어가 강화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케네스 보울딩의 비유를 빌리자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쳤던 아즈텍인들은 어떤 한 해의 수확이 나빴다고 해서 인신공양을 중단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흉년이이야말로 신들이 기존에 바친 제물에 만족하지 못했음을 “입증”했다는 믿음에 입각해, 제물로 바칠 사람의 수를 더욱 늘릴 수도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데올로기적 교리가 어떤 사건이나 상황들을 적절히 설명하고 다루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이데올로그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현실에 더 잘 맞도록 수정할 수도 있고, 교리에 들어맞는 방식으로 현실을 묘사함으로서 명백해 보이는 상충관계를 조화롭게 바꿀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맑스-레닌주의자들은 이데올로기를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변화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론이 갖고 있는 신성불가침에 가까운 지위는 중대한 변경을 가하려 할 때마다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이는 “수정”은 드문 반면, “재해석”, 즉 사실을 이데올로기에 맞추는 방법이 실제로는 훨씬 안전한 방법이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재해석이]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Armstrong, J. D., Revolutionary Diplomacy: Chinese Foreign Policy and the United Front Doctrin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7, pp.11-12 (번역은 필자)


결국 뭔가 발전이 있으려면, (어렵더라도) 자기합리화의 구덩이에서 탈출하기 위한 기법과 수행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1. 주장이 될 만한 부분을 최대한 제거하고, 건조하게 현상황의 분석 내지는 단기전망만 해본 다음, 남들이 내놓은 처방의 '분석' 부분과 대조해서 자신의 분석 품질을 끌어올리는 데 힘쓴다.
  2. 서너 개의 경합하는 가설이나 이론적 틀을 이용해 복수의 중기전망을 만든 후, (반년 정도 후에) 자신이 만든 중기전망에서 무엇이 얼마나 맞았고 무엇이 틀렸는지 점검하는 사이클을 계속 돌린다.
  3. (이번 일과 관계 없는) 남들이 과거에 쓴 쓴 분석이나 처방을 가져다가 그후 전개와 비교해 본다
by sonnet | 2021/04/11 20:48 | 정치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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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Fedaykin at 2021/04/12 10:35
약간 다르지만 필립 E.T.의 '슈퍼 예측' 이나 게리클라인의 '이기는 결정의 제1원칙' 같은 책들이 말씀하신 자기합리화의 탈출 기법 부분을 어느정도 제시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Commented by 설봉 at 2021/04/16 00:43
1~3번을 다 충족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우니까, 정당이나 시장조사기관 같은 전문적인 곳에서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 다른 생업이 있는 분들한테까지 요구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조건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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