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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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게 어물전을 맡기면…
미국과 일본의 국력 차이는 너무나 컸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이런 식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아주 비합리적입니다. 왜 당시의 정책 결정자는 그런 무모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을까요?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군부가 1937년 7월부터 시작된 중일전쟁을 이용해 몰래 미국 및 소련과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자금과 군수품을 모았던 실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1937년 9월에 고노에 내각은 중일전쟁을 치르기 위해 제국의회에 특별회계로서 임시군사비의 법률안과 그 예산안을 제출했습니다. 일명 ‘임시군사비특별회계’를 설치한 것입니다. 임시군사비틀별회계는 정부가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전쟁의 시작부터(개전일 기준) 끝까지(강화조약 체결일 기준)를 하나의 회계연도로 처리하는 특별회계입니다. (*)

중일전쟁으로 인해 1937년에 시작된 임시군사비특별회계는 1947년 3월에야 제국의회에서 결산 보고가 이루어졌습니다. 즉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간신히 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까지의 임시군사비특별회계의 결산이 보고됐던 것입니다. 그동안 육군과 해군은 임시군사비특별회계를 통해 마음껏 임시군사비를 지출했는데, 군부로서는 너무나 편리한 제도였습니다. 그래서 군부는 중일전쟁을 수행하면서도 임시군사비를 전용해서 미국·소련과의 전쟁에 대비했습니다. 그런 식의 전용은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계속됐습니다.

히토쓰바시一橋대학의 요시다 유타카吉田裕 교수의 연구를 봅시다. 1940년도를 예로 들면 중일전쟁을 위해 편성된 임시군사비 예산 중 중일전쟁에 사용된 금액은 약 30퍼센트에 불과헀습니다. 나머지 70퍼센트는 미국·영국을 겨냥한 해군력 증강과 소련을 겨냥한 육군력 증강에 쓰였습니다. 당시 군 내부의 인사도 이것을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해군성 조사과의 다카키 소키치는 1937년 8월 3일 일기에 “우리 부서 사람도 무엇 때문에 그 정도의 경비가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라고 적었습니다. 즉 일본은 겉으로는 중일전쟁이라고 말하면서 태평양전쟁(그리고 소련과의 전쟁)에 대비해 필사적으로 군수품을 모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군사력 증강에 힘입어 군부는 아직 준비가 안 된 미국을 기습공격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품었습니다

(*) 그러나 강화조약이 체결됐다고 해서 곧바로 임시군사비특별회계 기간이 끝나고 임시군사비 지출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전후 처리 비용에도 임시군사비가 투입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시군사비특별회계 기간은 실제로 더 길었다.

加藤陽子. 2016. 『それでも、日本人は「戦争」を選んだ』. 新潮社.
(윤현명, 이승혁 역. 2018.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1판 파주: 서해문집. pp.395-397)


(1940년은 전쟁 직전이었으니 그렇다 치고, 1937~39년도에는 얼마나 땡겨 썼을지가 궁금한 부분)
by sonnet | 2021/03/14 22:44 | 정치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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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잡지식 at 2021/03/15 02:58
백수일때 친구가 하는 일을 시급받고 도운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친구가 기타 경비를 처리하라고 지역화폐 카드를 주었는데 남의 돈으로 재량건 밥먹어보는건 처음이라 엄청 들떳던것이 기억남니다. 다만 저는 소심해서 돈가스로 끝냈는데, 거기서 다음주에 스테이크 썰겠다고 나이프를 사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다니...
Commented by 함부르거 at 2021/03/15 11:01
이래서 예산은 매년 결산하고 성과를 철저히 따져야 한다니깐요. 예산 따 갈 때는 뭐든지 다 될 거처럼 큰소리 치지만, 결산하고 성과 검증할 때는 나몰라라 하는 인간들을 수도 없이 봤습니다. -_-;;;;
Commented by sonnet at 2021/03/15 13:42
제 생각에, 저 제도는 처음에 단기결전에 맞춰 만들어졌던 것 같습니다. 10년을 퉁쳐서 1회계년도로 잡는다는 건 무슨 미친.... 이라는 생각밖에.
Commented by shaind at 2021/03/15 18:01
예산을 심의하는 권한은 의회의 핵심 권한 중 하나인데, 그걸 저렇게 군부에게 터억 넘겨준다는 건 의회조차도 군부에 상당부분 휘둘리고 있었다고밖에 생각이 안되는군요.
Commented by deokbusin at 2021/03/17 16:47
문제는 저 시기 일본 의회가 일본국민들에게 신뢰도, 신용도, 신망도 얻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어차피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들 여론이 최악인 것은 의회가 제일 잘 굴러가는 미국조차 예외는 아니지만, 1930년대 일본의 여론은 만주의 일본 국익을 지키다 못해 아예 차지해 버린 군부를 향한 국민 지지가 열광적이었는지라 투표권자 눈치 때문에라도 의회가 군부를 밀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Commented by BigTrain at 2021/03/17 13:48
10년이 1년인 회계년도이자, 그 사업이 끝나야 결산하는 예산이라니 할 말이..
Commented by deokbusin at 2021/03/17 17:05
그렇게나 예산법과 회계규칙을 무시하는 군사예산을 지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일본육군 사단의 포병화력 향상은 별로 였지요.

계획으로는 75mm 야포는 사단 포병연대에서 퇴출하고 미국과 독일처럼 105mm 야포와 150mm 중포로 사단 포병연대를 구성할 방침이었다는데, 저 계획대로 사단 포병연대가 구성되는데는 실패했지요.

심지어 독립여단의 포병세력이 75mm 산포 네 문으로 구성된 포대 하나가 전부였으니 말 다한 거죠. 독립여단에게는 최소한 105mm 산포/야포 포대를 주던가 했는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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