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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보수주의-마르크스주의
현대의 신자유주의는 상당 부분 고전적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의 메아리에 다름 아니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에게 시장은 계급과 불평등, 그리고 특권을 제거하기 위한 탁월한 수단이었다. 필요 최소한의 개입은 불가피하지만, 그 이상의 국가개입은 경쟁에 기초한 교환의 평등화 과정을 방해하고, 독점과 보호주의, 그리고 비효율성을 창출할 따름이다. 국가는 계급을 고무하는 반면, 시장은 잠재적으로 계급사회를 해체할 수 있다(Smith, 1961, II, 특히 pp.232-6). [1]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이라고 하지만, 그들도 구체적인 정책을 놓고 선택하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한 목소리를 낸 것이 거의 아니었다. 낫소 시니어(Nassau Senior)와 후기 맨체스터 학파의 자유주의자들은 스미스에게서 엿보이는 자유방임적 요소를 강조하는 한편, 어떤 형태로든 화폐관계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보호에 대해서는 반대의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이들과 달리 존 스튜어트 밀(J. S. Mill)과 ‘수정 자유주의자들’은 어느 정도의 정치적 규제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렇지만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은 예외 없이 평등과 번영으로 가는 길은 최대한의 자유시장과 최소한의 국가간섭으로 포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데에 대해 의견을 같이하였다.

시장 자본주의를 열광적으로 찬양하는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의 태도는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정당화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그들이 논박하고자 했던 현실은 국가가 절대주의적 특권과 중상주의적 보호주의, 그리고 만연하는 부패를 옹호하고 있던 현실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자유와 기업가 정신이라는 그들의 이상(理想)을 극력 억압하고 있던 통치체계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이론은 혁명의 이론이 되었던 것이며, 이런 시각에서 보면 우리는 아담 스미스가 때때로 칼 마르크스(Karl Marx)와 같은 맥락에서 읽히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2]

많은 자유주의자들에게 민주주의는 아킬레스 건으로 등장하였다. 자본주의가 소자산 소유자들의 세계로 머물러 있던 한에서는, 사유재산 그 자체도 민주주의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딱히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의 진전과 더불어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출현하였으며, 이들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민주주의는 사유재산의 특권을 제한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이 보통선거권을 두려워한 데에는 그럴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보통선거권은 분배투쟁을 정치화하고, 시장을 왜곡하며, 비효율성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가 시장을 침탈하거나 파괴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보수주의 정치경제학자와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들도 모두 이러한 모순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양자는 말할 필요도 없이 정반대의 해법을 제시하였다. 보수주의의 입장에 서서 자유방임주의에 대해 가장 일관된 비판을 가한 축은 독일의 역사학파들, 특히 프리드리히 리스트(Fredrich List)와 아돌프 바그너(Adolph Wagner), 그리고 구스타프 슈몰러(Gustav Schmoller) 등이었다. 이들은 시장의 적나라한 화폐관계가 경제적 효율성을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 내지 최선의 방안이라는 생각을 거부하였다. 보수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은 가부장제와 절대주의야말로 계급투쟁이 없는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데 있어 있을 수 있는 최선의 법률적·정치적·사회적 외피라고 보고, 이러한 가부장제와 절대주의가 영속하는 것을 자신들의 이상(理想)으로 상정하였다.

어떤 한 유력한 보수주의 학파는 사회복지와 계급화합, 그리고 충성심과 생산성을 동시에 보장해줄 ‘군주제적 복지국가’(monarchical welfare state)를 제창하기도 하였다. 이 모델에서 효율적인 생산체제를 가능케 하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규율이다. 국가와 공동체, 그리고 개인의 미덕들을 조화시키는 면에서 권위주의적 국가가 시장의 혼돈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는 것이다. [3]

보수주의 정치경제학은 프랑스 혁명과 파리코뮌에 대한 반동으로서 출현하였다. 그것은 노골적으로 민족주의적이고 반혁명적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충동을 억압하려는 성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수주의 정치경제학은 사회적 평준화를 두려워하였고, 위계질서와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를 선호하였다. 지위와 신분, 그리고 계급은 자연적이고 주어진 것이지만, 계급 갈등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민일 우리가 민주주의적인 대중 참여를 용인하고, 귄위와 지위에 따른 경계선들이 해체되도록 허용할 경우, 그 결과는 사회질서의 붕괴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은 사람들을 원자화하는 시장의 효과를 혐오했을 뿐만 아니라, 시장이 평등을 보장해준다는 자유주의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하였다. 돕이 지적하고 있듯이(Dobb, 1946), 자본축적은 사람들로부터 사유재산을 박탈해가며,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계급분화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는 사태를 조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계급분화로 인해 갈등이 첨예화함에 따라 자유주의 국가는 자유와 중립성의 이상을 벗어던지고, 유산계급을 옹호하고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는 바로 이것이 계급지배의 토대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뿐만 아니라 복지국가에 대한 현대의 논의 전반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자본주의가 창출하는 계급분화와 불평등이 과연 의회 민주주의에 의해 해소될 수 있는 것인지, 있다면 또 어떤 조건 하에서 해소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사회주의를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데 이렇다 할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은 의회주의가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에 다름 아니거나, 레닌이 시사한 것처럼, 단순한 ‘입씨름 장’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었다(Jessop, 1982). 이러한 분석 시각은 현대의 마르크수주의에도 대부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또한 사회개혁이라는 것은 서서히 붕괴해 가는 자본주의 질서를 떠받치는 버팀목에 다름 아니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사회개혁은 정의상 해방을 추구하는 노동계급의 열망에 화답하는 대응 전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4]

정치적 권리들이 대폭 확장되고 나서야 비로소 사회주의자들은 의회주의에 대한 좀더 낙관적인 분석을 마음으로부터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이론적으로 가장 정교한 업적을 낸 연구자들은 아들러(Adler)와 바우어(Bauer), 그리고 에두아르트 하이만(Eduard Heimann) 같은 오스트리아-독일 계열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 하이만(1929)에 따르면, 보수주의적 개혁을 추진하게 된 동기는 노동동원을 억압하기 위한 열망 외에는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이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들은 일단 도입되고 나면, 모순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즉 노동자들이 일단 사회권을 향유하게 되면, 계급권력의 균형은 근본적으로 변해버린다. 왜냐하면 사회임금은 시장과 고용주에 대한 노동자들의 의존을 약화시키고, 따라서 그것은 잠재적인 권력자원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하이만에게 사회정책은 자본주의 정치경제학에 자본주의와 대립되는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사회정책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대치하고 있는 전선에 침투해 들어갈 수 있는 트로이의 목마라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 관점은 최근의 마르크스주의에 이르러 다시 활발하게 되살아나고 있다(Offe, 1985; Bowles and Gintis, 1986).

위에서 개관한 것처럼, 사회 민주주의 모델은 근본적인 평등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경제의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정통파의 논리를 반드시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후에 전개된 역사적 경험은 의회주의를 통해서 사회화를 추구한다는 목표는 현실적으로 달성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해 주었다. [5]

사회 민주주의가 평등과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지배적인 전략으로서의 의회주의적 개혁을 수용하게 된 것은 두 가지 근거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첫째는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적 시민으로서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원과 건강, 그리고 교육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근거는 사회정책은 해방을 위한 도구일 뿐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을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Myrdal and Myrdal, 1936). 마르크스의 논리에 따를 때, 이러한 논거에서 복지정책의 전략적 가치는 그것이 자본주의에서 생산력의 지속적인 발전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데 있다. 그러나 사회 민주주의 전략의 강점은 또한 사회정책이 권력동원을 촉진하기도 한다는 데 있다. 복지국가는 빈곤과 실업, 그리고 완전한 임금 의존성을 제거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정치적 역량을 강화시켜주고, 노동자들의 정치적 단결을 저해하는 사회적 분열을 완화해 준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 민주주의 모델은 현대 복지국가 논의를 이끌어가는 지배적인 가설들 가운데 하나를 낳은 아버지인 셈이다. 그 가설이란 의회주의적 계급동원이야말로 평등과 정의, 자유, 그리고 연대라는 사회주의적 이상들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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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담 스미스는 자주 인용되기는 하지만 읽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의 저작들을 좀더 자세히 검토해보면 자본주의의 혜택을 거의 광적으로 찬양하는 태도를 애써 억누르려는 뉘앙스와 일련의 유보를 읽어낼 수 있다.

[2]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1961, II, p.236)에서 스미스는 재산 소유자들의 특권과 안정을 옹호하는 국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시민 정부는 사유재산의 안전을 위해 설치되어 있는 한에서, 실제로는 부자들을 빈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혹은 얼마간의 사유재산을 소유한 자들을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3] 이러한 정통은 앵글로-색슨의 독자들에게는 사실상 알려져 있지 않다. 왜냐하면 영어로 번역된 문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공개적인 논의에는 물론 훗날의 사회입법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 핵심 문헌은 Adolph Wagner의 『사회문제론』(Rede Über die Soziale Frage)(1872)이었다. 이러한 보수주의 정치경제학의 전통을 영어로 개관한 책으로는 Schumpeter(1954), 그리고 특히 Bower(1947)를 보라.

가톨릭 전통에 속하는 기본적인 문헌 두 가지는 두 명의 교황이 발표한 두 가지 회칙, 즉 Rerun Novarum(1891)과 Quadragesimo Anno(1931)이다. 가톨릭 사회주의적 정치경제학이라 할 이 회칙들이 내세운 주요 강령은 건강한 가족이 계급 초월적인 조합들(cross-class corporations)로 통합되고, 보충성의 원리에 의해 국가의 지원을 받는 방식으로 사회를 조직화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최근의 논의를 위해서는 Richter(1987)를 참조하라.

[4] 이 같은 분석 시각을 옹호한 주요 학파는 독일의 ‘국가도출’(state derivation) 학파였다. Muller and Neususs(1973), Offe(1972); O’connor(1973); Gough(1979); 그리고 Poulantzas(1973) 등의 저작들이 이 학파에 포함된다. Skocpol과 Amenta(1986)가 자신들의 탁월한 개관에서 주목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학파의 접근은 결코 단일 차원적이지는 않다. 예를 들어 Offe와 O’connor, 그리고 Gough 등은 사회개혁의 기능을 대중의 요구에 대한 양보임과 동시에 잠재적으로 모순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의회주의적 개혁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 동기는 이론적 차원에 있다기보다는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독일 사회 민주주의의 위대한 지도자 August Bebel이 비스마르크의 개척적인 사회입법을 거부하였던 까닭도 그가 사회적 보호를 지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비스마르크의 개혁 이면에 숨어 있는 노골적으로 반사회주의적이고 분열주의적인 동기 때문이었다.

[5] 이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된 계기는 두 가지 유형의 경험이었다. 한 가지 경험은 1920년대 스웨덴의 사회주의에서 그 전형을 찾아볼 수 있는 바, 그것은 노동계급 진영에서조차 사회주의를 향한 열망을 그렇게 절실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발견이었다. 사실 스웨덴의 사회주의자들이 사회화 추진 계획을 준비하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설치했지만, 동 위원회는 10년 간의 조사연구 끝에 사회화를 실제로 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두 번째 유형의 경험은 노르웨이의 사회주의자들과 1936년 Blum의 인민전선 정부가 그 전형이라 할 수 있는데, 급진적인 제안들을 내놓는다고 해도 투자를 철회할 수 있고 자본을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자본가들의 능력에 의해 그러한 제안들은 쉽게 사보타주될 수 있다는 발견이었다.

Esping-Andersen, Gøsta. 1990. The Three Worlds of Welfare Capitalism. 1st ed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박시종 역. 2007. 『복지 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 1판 서울: 성균관대학교출판부. pp.30-36)



예전에 자유민주주의 논쟁 이란 글에서 설명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
by sonnet | 2020/12/01 20:32 | 정치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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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곰돌e at 2020/12/01 23:13
예전에 무척 재밌게 읽었던 건데 여기서 보니 또 새롭네요:)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20/12/03 12:50
저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을 밀도 있게 잘 썼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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