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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이후의 신문 검열


1789년 여름부터 갑자기 신문이라는 매체는 혁명 시대의 새로운 정치문화 속에서 가장 돋보이는 출판 미디어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정부의 검열과 공동의 이익,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 있던 출판계는 규제를 받지 않는 기업들의 노력에 의해 점차 번성하기 시작했다.

신문의 경우, 기존의 세력들과 많은 신진 기업들이 파리를 비롯한 여러 지방에서 주간이나 일간신문사를 세웠는데, 금새 문을 닫는 신문사들도 많이 있었지만 어떤 신문사들은 상업적인 성공과 정치적인 영향력을 동시에 가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곧 이에 대한 반발과 불만이 정부 내에서부터 생겨났다. 실질적인 언론의 자유는 모든 정치 사건들을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어야 했지만, 그러한 자유는 3년 정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군주제의 전복 이후 어떠한 체제도 언론의 공공연한 반발을 묵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왕당주의를 표방하는 신문사가 1792년 8월 폭동에 의해 즉시 문을 닫았고, 그 뒤를 이어 다음 해 지롱드당과 연합한 신문사가, 그리고 다시 산악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기미를 보이는 신문사들이 문을 닫았다.

1794년에 로베스피에르 정부가 몰락한 이후, 새로운 정부는 모든 종류의 언론에 대한 실질적이며 무제한적인 자유를 다시 보장했지만 억압적인 산악당 시절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자유는 얼마 가지 못했다.

총재정부 시대까지 관료들은 언론의 자유에 관한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그러다가 언론의 자유가 방종으로 치달아 위험한 폭동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인해 그들은 1795년 헌법에서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비록 새로운 헌법이 언론의 자유를 다시 보장하긴 했지만 ‘필요시’에는 언론을 억압할 정부의 비상 통제권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 총재정부는 이러한 권한을 더욱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좌익과 우익을 억압했는데, 1797년의 프뤽티도르 쿠데타 도중 왕당파의 언론사를 모두 쓸어버렸으며, 1798년에서 1799년까지 신자코뱅당의 언론사를 지속적으로 괴롭혀 문을 닫게 만들었다.

때때로 입법부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기본조항을 보다 철저히 만들어서 그러한 독단적인 억압을 종식시킬 수 있는 언론법을 제정하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언론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풀려는 의지가 정부 엘리트들의 공감을 별로 얻지 못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그래서 자유주의자 피에르 도누는 1796년, 그대로 두면 언론이 방종으로 치달아 질서와 안정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금 집정정부 내의 공화주의자 대부분은 프랑스 신문들을 너무 단순하고 과장되었으며 쓸데없이 대중을 선동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역사학자는 ‘온건한 공화주의자들이 신문을 쓸데없이 심각한 문제를 담고 있는 논문처럼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겼다’고 말한다.

보나파르트는 오랫동안 언론의 자유를 위험한 것으로 생각했으며, 집정정부 시대로 접어들자 정치적인 신문 기사를 단호하게 처단했다. 헌법에 규정하지 않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신문 대부분의 폐간을 명령했으며, 일부는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억지로 넘겼다. 그리고 남아 있는 신문들에 대한 공식적인 검열 기관을 설립했다.

이후, 언론에 대한 제국의 탄압은 더욱 무자비하게 발전해 가혹한 세금을 부과했으며 정치적인 신문을 지사의 관할 하에 있는 현에 하나씩만 만들도록 제한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몰수와 강제 합병으로 파리에 있는 여러 신문사의 수를 줄였다. 이미 본질상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던 남은 잡지사들도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돌출 행동을 막기 위해 사전 검열을 받아야 했다. 치안장관 사바리는 이렇게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신문사들이 정부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지만, 정부가 무분별한 편집자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미리 예방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한 유일한 길은 신문의 발간 이전에 내용을 철저히 검열하는 것이다.”

1811년에는 파리에 4개의 일간 신문사만이 남았는데, 사실상 정부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우연일지 몰라도 1789년 이전까지는 법적인 특권을 가진 일반 신문들 중 이와 똑같은 4개의 신문만이 파리에서 발행되었다.

Woloch, Isser. 2001. Napoleon and His Collaborators: The Making of a Dictatorship. 1st ed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차재호 역. 2001. 『나폴레옹의 싱크탱크들』. 1판 서울: 홍익출판사. pp.297-300)
by sonnet | 2020/11/17 23:09 | 정치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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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20/11/18 09:43
사실 권력자의 입장에서 언론의 자유라는 건 거추장스러울 수 밖에 없지요. 그걸 제어하는 유일한 수단은 독립적인 사법부로 대표되는 견제 권력의 존재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20/12/01 20:16
동의합니다.
Commented by 잡지식 at 2020/11/20 02:56
신문이 하필 4개만 남았다는 우연이 재미있네요. 그 동기가 이슬람의 "일부다처는 4명까지"의 화목함의 논리였는지 아니면 사복음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화적 관성이었는지 궁금해지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20/12/01 20:17
그냥 우연 아닐까요. 저도 저 시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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