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by sonnet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rss

skin by 이글루스
"경영자 시선"과 관련된 세 가지 관점

야랑자대夜郞自大한 ‘경영자 시선’ (小田嶋隆)

21세기에 들어와 이상할 정도로 자주 사용되는 단어 가운데 ‘경영자 시선’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이 단어를 남발하는 사람은 교제 범위에서 제외한다. 왜냐하면 경영자 시선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인간은 언젠가는 타인을 도구로 취급하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 떄문에 나는 “비즈니스 퍼슨 개개인이 경영자의 자각과 식견을 가지고 일에 임하면 그만큼 넓은 시야에서 본인의 업무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생산자적인 사회의 자율성을 촉구하는 에너지가 됩니다”라는 주장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참고로 20세기 회사원은 회사 내에서 직면하는 이런저런 일들을 경영자 시선에서 다시 파악하는 습관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이전에 자기 자신을 ‘비즈니스 퍼슨’이라며 마치 전략가처럼 구는 인간에 빗대는 오만한 자의식 자체를 공유하지 않았다.

혹시 그런 종류의 의식이 강한 신입사원이 입사해도 “그러니까 네 녀석이 하는 일은 비즈니스고, 그 비즈니스에 대해서 퍼슨으로 임하는 것이 네 녀석의 직업생활이라는 거지?”라고 20세기의 선배들은 분명 번갈아가며 이죽대고 놀려댔을 것이다.

한마디로 20세기 일꾼들은 일개 노동자인 자신들이 경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거나 발언하는 것을 ‘시야가 넓다’고 평가하는 태도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젊은 회사원은 다양한 연수와 자기계발서에 불필요한 ‘세계적인’ 지혜를 추가하는 형태로 ‘경영자 시선’으로 대표되는 거시적 관찰의 습관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 변화를 반영하여 부단한 자기개혁을 강요당하는 젊은 비즈니스 퍼슨 본인도 결국에는 자신의 눈앞에 존재하는 비즈니스와 사회를 통제가능한 조작대상으로 분석하는 태도를 습득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귀찮은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이 ‘경영자 시선’이라는 불손하기 그지없는 야랑자대가 무경험자에 의한 통치기구개혁이나 사회개량사업을 만연시키는 가까운 미래의 도래를 걱정하고 있다.

벽 안의 하나의 벽돌에 불과한 노동자가 성의 설계를 담당하는 창조주의 입장에서 발언하는 경우의 해학에 대해서 확실한 고찰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 21세기 비즈니스 퍼슨 문제는 종결되지 않는다. 이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20세기 노동자는 경영자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치 경영자가 빙의한 것 같은 발언을 반복하는 동료사원에게는 조합원으로서 철퇴를 가하는 것이 당시의 상식이었다. 설명을 덧붙이면, 옛날 살기 좋던 시절의 고상한 일본인은 개인이 경영관리적인 시야를 갖는 것 자체를 ‘주제 넘는’ 태도로 여기며 경계했다.

그렇기 때문에 직급이 평사원인 사람이 경영자 시선과 마음가짐으로 회사의 광고 전략에 대해서 의견을 개진하거나, 자기 담당도 아닌 부서의 인사 배치에 이러쿵저러쿵 견해를 늘어놓는 일은 당장에 “시끄러워, 조용히 해”라고 질책을 받는 비즈니스 매너였다. 이런 상황에서 ‘시건방지다’는 주위의 평가를 받은 평사원은 결국 평생 동안 나아지지 않는 회사원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内田樹 編. 2018. 『人口減少社会の未来学』. 東京: 文藝春秋.
(김영주 역. 2019.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 저출산,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는 미래 세대를 위한 처방전』. 1판 고양: 위즈덤하우스. pp.255-257)



이어서 이와 대립되는 관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14. 잘못된 ‘진영陣營’에 자리 잡으면 적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들 대 우리’라는 이분법적 편가르기는 직장인에게 아주 치명적인 시나리오다. 이런 사고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진영에 영원히 눌러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자신을 관리자나 사측인 ‘그들’과 분리해서 ‘우리’라는 하나의 울타리로 규정하는 함정에 빠지곤 한다. 물론 현재 당신은 그저 직원 중의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머물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관리자급과는 별개인 직원 진영에 속한다고 선을 그으면, 회사의 눈에는 상대편 진영의 사람으로 비친다.

회사에는 상하 간의 불신과 투쟁의 오랜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직원들은 자신을 관리자와 분리해서 규정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사내에서 언제부터 그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는지, 실제 상황은 어떤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할 뿐이다. 자신과 비슷한 직급의 사람들, 즉 ‘우리 진영’에서 하자는 대로 따르는 게 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동료들과 뜻을 같이 하면서 ‘믿을 수 없는’ 관리자 계급에 대항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믿음이다.

당신이 관리자를 적으로 여기면, 그들은 자신들의 진영으로 당신을 초대하지 않는다. 회사 전체를 적으로 간주하면, 회사는 당신과 계속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당신이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현재 속한 곳보다는 당신이 동경하는 진영을 선택하라고 강력하게 권한다.

‘그들 대 우리’라는 이분법적 시각은 어느 직급에서나 존재한다. 어떤 회사에는 각 직급마다 한 단계 위 직급과도 분리된 자신들만의 공감대와 문화가 존재한다. 중간관리자들은 임원과 자신들을 분리해 생각하며, 임원들은 CEO나 이사회와 자신들을 분리시킨다. 지금 어느 직급에 있든 자신을 다음 단계의 사람들과 대치되는 진영에 배치하면 당신은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없다. 그리고 당신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당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문화가 어떠하건, 각 직금 간의 골이 얼마나 깊건, 자신이 동경하는 진영에 존경심을 보이고 그들에게 협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왜 사사건건 되는 일이 없는지 혼란스러워 하며 좌절감을 느낀 채 직장생활을 끝내게 될 것이다.

Shapiro, Cynthia. 2005. Corporate Confidential: 50 Secrets Your Company Doesn't Want You to Know---and What to Do About Them. 1st Ed. St. Martin's Griffin
(공혜진역, 2007.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1판, 서울:서돌. p.91-92)


편의상 첫 번째 글을 「노조원」 관점, 두 번째 글을 「출세지향」관점이라 부르기로 하자.

두 글의 현실인식은 좀 다르다. 「노조원」은 좋았던 20세기와 달리 요즘은 세상이 나쁘게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출세지향」은 암묵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그런 갈등은 계속 있어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왜 과거와 지금이 달라졌는가에 대한 설명은 양쪽 모두에서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제 상황의 변화를 설명하며 두 관점을 연결시킬 고리가 필요한데, 다음 동영상이 그런 고리를 제공해준다고 생각한다.


“이건 내 경력(career)이야. 사실 일(job)은 아니지. 어떤 사람들은 일을 가지고, 어떤 사람들은 경력을 가져. 사실, 너희중에 경력을 가진 사람들은 진짜로 닥치는 법을 배워야 해, 특히 일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있을때는. 그들은 너의 X같은 경력에 대해 듣고싶지 않아. 그 X는 그냥 넣어둬, 오케이? 네 행복으로 누군가를 슬프게 만들지 마. 보통 그렇게 되니까. 노노 맨.
(중략)

지금 나는 경력을 가지고 있어. 졸라 큰 경력을 가지고 있지. 경력을 가졌어? 신에게 감사해. 직업을 가졌어? 난 네가 언젠가 경력을 가지기 바래. 그게 맞아. 네가 경력을 가지잖아? 하루에 시간이 졸라 부족해. 부족하다고. 경력을 가지잖아? 네가 시간을 보면, 시간이 그냥 사라져있어. 제길, 와우, 벌써 다섯시 35분이네. XX 나 진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내 프로젝트를 해야겠어. 왜냐면 커리어를 가지면 정말 시간이 부족하단 말이야. 네가 직업을 가지잖아? 그럼 시간이 정말 넘쳐. 그냥 시계를 보곤 ‘XX 아직 9시 8분이잖아’ 이런다고. 사실 넌 시계도 믿지 않아 니가 일을 가지면. 항상 이렇게 말한다고 “몇시야? 몇시야? 몇시야?” 9시 15분? 누구든 가장 빨리가는 시계를 가진 애 시간이 맞는거야. 걔가 제대로 된 시간을 알고 있다고! ”

(번역은 유병수님이 해주신 것을 수정 없이 가져옴)

이 영상에서 career는 들인 시간과 노력이 소득과 신분의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일자리를, job은 그렇지 못하고 일정액의 돈만 주며, 장기적으로는 소득이 떨어질 수도 있는 종류의 일자리를 대비시키고 있다.

내 생각은 20세기와 달리 지금은 「노조원」진영에 잔류했을 때 career를 만들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는 것이 「출세지향」 진영으로 입장을 바꾸고 그것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직원들이 늘어난 동인이 아닐까 하는 것. 그렇다고 해서 「노조원」 진영이 소멸할거라는 의견은 아니고, 그것이 갖는 본질적 편안함이 포지션의 존속은 감당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계산적인 성향의 개인들이 계속 유출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의견.
by sonnet | 2020/10/17 20:00 | 정치 | 트랙백 | 덧글(8)
트랙백 주소 : http://sonnet.egloos.com/tb/750240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paro1923 at 2020/10/17 20:45
"살기 좋던 시절의 고상한 일본인"이란 말이 비꼬는 것인지 순전히 좋았던 시절에 대한 회고를 하는 건지 갸웃했는데, 비교를 하니 그렇게도 읽혀지는군요. 20세기와 달리 지금은 "지금 자리에 안주했다간 추락한다"는 공포가 훨씬 커진 게 한 요인이 아닐까 싶군요.
Commented by 함부르거 at 2020/10/17 23:20
세계화가 심화되고 아웃소싱이 일반화되면서 노조원 진영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인원이 되어 버린 게 크다고 봅니다. 출세지향 진영에 속하지 않는 사람의 일은 바다 저 멀리에 있는 누군가가 빼앗아 갈 수 있는 거죠.
Commented by sonnet at 2020/10/21 12:04
고졸 생산직 평사원으로 들어가 정년퇴직까지 일하다 나오는 것은 역시 2차대전 후 좋았던 한시절의 예외적 현상이라는 생각입니다.
Commented by 레이븐가드 at 2020/10/17 23:58
첫 글은 2018년에 쓴 책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20/10/21 12:05
책에 소개된 필자의 경력을 볼 때, 필자가 20세기의 회사에 대해 자신있게 말할 만큼 회사경력이 있는지 좀 의문인 부분도 있습니다. 직장생활 한 경력이 짧아서요.
Commented by 흠흠 at 2020/10/24 14:36
밀레니엄 세대로선 첫번째 글을 쓴 저자의 생각은 너무 "꼰대"를 넘어서 기성세대 비하적으로 사용되는 "틀X"을 떠올리게 하는 수준이긴 해요. 꼰대가 상대하기 싫은 사람의 느낌이라면 저건 그냥 저런 마인드로 어떻게 살아남냐 수준이네요 ㅋㅋㅋ
Commented by 다채로운 얼음요새 at 2020/10/24 14:43
공무원 / 준 공무원 조직빼면 저런 마인드로 출세할 수 있는 필드는 없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루시앨 at 2020/11/04 05:09
그러고보니 역사적으로 보면 30-40년전 종신 고용 시절에는 오히려 첫번째 글의 노조적 관점이 지배적이었겠네요. 어느 시점에서 경영자적 마인드가 강조되었는지 그 전환기를 살펴봐야겠습니다. 좋은 인사이트 감사드립니다 ㅎㅎ

:         :

:

비공개 덧글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