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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단상(1) : 정부의 의사결정과 발표 시점
(다른 곳에서 한 번 이야기했던 내용인데, 사건이 일단락되었기에 정리해서 올려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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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주 적용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조정안 11일 발표 (연합뉴스, 2020-10-08 11:27)

지난 주의 마지막 근무일이던 목요일 오전에 올라온 위 뉴스를 보고 매우 짜증스러움을 느꼈다.

12일(월) 0시부터 전국민이 지켜야 할 새 지침을 정부가 그 전날인 11일(일요일!)에 발표하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그럼 그걸 받아서 필요한 세부계획과 지침을 세우고 실행할 개인들, 회사와 기관, 가게들은 언제 준비를 하라는 건가? 예를 들어 한동안 닫았던 매장를 열어야 하는 소매업자나, 근무스케줄을 수정해야 하는 기업들은 12일 오후에 모든 의사결정과 준비를 해야 하게 된 셈이다.

발표하시는 분이 언령의 힘을 갖고 있어, 그 순간부터 말씀대로 우주가 순조롭게 따르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민간은 서로 다른 상황과 이해관계를 갖는 수천만 개인과 조직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각각은 자기 나름대로 풀어야 할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해당 발표는 11일 오후 4시경에 나왔다. 국민에게 단 8시간의 유예를 준 것이며, 그 시간은 법적으로는 주말근무와 야간근무를 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국 거리두기 1단계로 완화…수도권엔 필요한 2단계 수칙 유지(종합) (연합뉴스, 2020-10-11 15:45)

이것이 사태 초반의 대혼란 상황이라면 어느 정도 양해해줄 수도 있으나, 현 상황이 300일 이상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과도하게 행정편의적인 행태라고 생각된다. 내 의견으로는 적절한 준비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48시간 정도 전에는 결정을 발표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주의 마지막 근무일 오전 정도에는 제공하여 대부분의 주체들이 정상적인 근무시간을 이용해 주요 의사결정을 하고, 나머지 주말 정도에 후속 준비와 조치를 진행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만약 최후의 순간에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정보가 들어온다든가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경우에는 발표 후 적용시점을 그만큼 늦추는 게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 통상적인 기준으로 적용시점을 맞추고 싶으면 일찍 발표를 하면 되고, 비상상황에서 결정을 늦췄으면 시행도 같이 늦추면 되는 것이다.

이 사안을 다음과 같은 네 플레이어가 협동해서 풀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 보자

1. (정부의) 고위 의사결정자
2. 정부실행자(각 정부부처 조직 / 공무원 / 경찰 등)
3. 민간실행자(기업/가게 등)
4. 일반대중(개인적으로 지켜야 하는 일들도 있으나 소비자로서 서비스를 받을 때가 더 많은)

발표가 극단적으로 늦게 이루어진다는 것은 1번 플레이어인 "고위 의사결정자"가 "최후의 최후까지 기다려서" 최신 데이터를 보고 의사결정을 함으로서 자신이 틀릴 확률을 낮추는 대신, 실행을 책임질 2, 3, 4번 플레이어가 써야 하는 시간을 독식해서 써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일이 잘못되었을 때, 책임은 실행을 담당한 플레이어들에게 미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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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토요일 점심 무렵부터 다음과 같은 찌라시가 나돌았다. 일요일에 나온 정식 발표와 비교해 보면, 해당 내용은 위조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즉 정부의 의사결정자[1]는 사전에 결정을 했을 뿐 아니라 자기가 책임을 지는 정부실행자[2]들에게는 결정사항을 사전 공유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중국인들이 좋은 속담을 남겨 두었다.

上有政策 下有對策
(상부에 정책이 있다면, 아래에는 그에 맞설 대책이 있다)


정부가 전체의 이익보다 플레이어로서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면, 민간실행자[3]과 일반대중[4] 또한 각자도생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꽌시든 빨대든 자신이 가진 정보채널을 활용해 미확인 정보에 입각한 선제적 대응조치를 취해 나가게 될 것이다.

사실 아닌게 아니라 그게 늘 "한국적"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by sonnet | 2020/10/11 18:55 | 정치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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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채널 2nd™ at 2020/10/11 19:28
이젠 뭐 화내기도, 짜증내기도, 모든게 다 허무해져 버린 지라.

(덧없다; 의미없다)
Commented by sonnet at 2020/10/17 18:58
적극적으로 정부시책에 호응하려고 마음먹고 있지만, 이렇게 자기들 편한대로만 일을 하면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네요.
Commented by BigTrain at 2020/10/12 11:33
오늘부터 적용된다는데, 말단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전원 통학시킬지 말 지 내일 쯤 내려올 교육부 공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20/10/17 18:59
결국 통문을 언제 받으셨나요?
Commented by BigTrain at 2020/10/18 22:58
월요일 오후에 접수됐는데 내용이 "'니네들 하고 싶으면' 전원 통학시켜도 되긴 하는데, 전원 통학시킬 거면 방역에 신경쓰고 사건 터지면 니네 책임임"이라 2/3 유지중입니다...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20/10/13 14:32
어차피 칼같이 지키지도 않을거니 준비할 시간같은건 줄 필요가 없다는 건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20/10/13 18:28
그건 잘 모르겠지만, 10/12(월) 0시부터 오픈한 강남 클럽이 몇 군데나 있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정식발표가 아니라 사적으로 확보한 내부자정보에 의존해서 오픈 준비를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20/10/14 09:19
역시 下有對策 이로군요! (나루호도!)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20/10/17 09:39
이번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에 보면 중앙부처 급에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더군요.
말단 공무원들이야 뉴스보고 압니다만...
Commented by sonnet at 2020/10/17 19:01
지방자치단체들이 중앙과 완벽히 통일된 정책을 취지 않고, 약간씩 변경된 정책을 취하려면 적어도 정책 초안이 나온 시점에서 중앙당국과 지자체들이 협의/조율을 하는 과정이 있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데 빨대 박을 궁리를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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