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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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격대 결성
어떤 남자가 당나귀 한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당나귀는 오랜 세월 동안 곡식 자루들을 방앗간으로 부지런히 날라 주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당나귀의 힘이 달리게 되어 곡식을 나르면서 허덕이는 일이 점차 잦아졌습니다. 주인은 먹이도 아낄 겸 해서 그 당나귀를 처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나귀는 자기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금방 눈치 채고는 주인집에서 도망쳐 브레멘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브레멘의 전속음악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나귀는 얼마쯤 걸어가다가 길가에 쭈그리고 있는 사냥개 한 마리를 만났는데 그 개는 맹렬하게 달리고 난 뒤처럼 심하게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당나귀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헐떡이고 있는 거니, 늙은 사냥개야?”

“매일 늙어가고 기운도 없어져서 그래. 이제 나는 사냥도 할 수 없는 처지야. 내 주인이 날 죽이고 싶어해서 잽싸게 도망쳐 버리긴 했는데 이제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아득하기만 해.”

그러자 당나귀가 말했습니다.

“내가 방법을 이야기해 주지. 난 지금 브레멘의 전속음악가가 되기 위해 브레멘으로 가는 길이야. 너도 나랑 같이 가서 전속악단을 조직하자. 난 류트를 불 테니 너는 드럼을 쳐.”

개가 좋다고 했으므로 그들은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은 길가에 앉아 있는 고양이를 만났는데, 그 고양이는 맥이 빠진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나귀가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니, 늙은 고양이야?”

“내 목이 달랑달랑한 판인데 즐거울 게 뭐 있겠니? 내 여주인은 내가 점점 늙어 가자 날 물에 빠뜨려 죽이고 싶어해. 게다가 난 이빨이 무뎌 져서 쥐를 잡으러 쫓아다니기보다는 차라리 난로 옆에 앉아 물레질이나 하는 게 더 나을 지경이야. 아무튼 난 집에서 도망쳐 나오긴 했는데 이제 어디로 가서 뭘 해야 할지 아득하기만 해.”

그러자 당나귀가 말했습니다.

“우리랑 같이 브레멘으로 가지 않을래? 넌 밤의 세레나데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 브레멘의 전속음악가가 될 수 있어.”

고양이는 그 말을 그럴 듯하게 여기고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이윽고 그 세 도망자들이 어느 농가 곁을 지나는데 수탉 한 마리가 대문 위에 올라앉아 죽을 힘을 다해 울고 있었습니다. 당나귀가 말했습니다.

“네 울음소리 한 번 소름끼치는구나. 왜 그렇게 악을 쓰는 거지?”

수탉이 말했습니다.

“오늘 날이 좋을 거라고 알려 준 거야. 오늘은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의 속옷을 빨아 말리는 날이거든. 그런데 우리 여주인은 자비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여자야. 내일은 일요일이라 집에 손님들이 오게 되어 있는데 여주인은 요리사에게 오늘 밤 내 목을 치라고 했어. 내일 내 고기로 수프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하려고. 그러니 내가 왜 목이 터져라 하고 악을 쓰는지 알 만하지. 아직 시간이 있으니 그동안 실컷 악이나 써야지.”

그러자 당나귀가 말했습니다.

“이런 멍청이 같으니! 우리랑 함께 가자. 우리는 브레멘으로 가는 중인데 거기에 가만히 앉아 있다 죽기보다는 우리랑 같이 가는 게 더 나을 거야. 너는 좋은 목청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와 함께 연주를 하면 근사한 음악이 나올거야.”

수탉은 그 말을 그럴 듯하게 여기고 그들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브레멘은 꽤 먼 곳이라 그들은 해지기 전까지 브레멘에 당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


by sonnet | 2020/07/08 12:51 | 문화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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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Fedaykin at 2020/07/08 13:42
이렇게보니 이거 동화 자체가 노동력이 곧 인간의 가치로 취급되는 산업문명의 폐해를 그린 작품이었군요.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20/07/08 15:45
인류 역사에서 노동력이 곧 인간의 가치가 아니었던 시절이 과연 있었나 싶네요. 저 동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부터가 아직 산업화가 시작되기 전의 독일 사회입니다. 오히려 산업화는 인간의 노동력이 생산해내는 가치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렸고 아울러 인간의 가치도 수직 상승시켰지요. 인권이니 인간의 존엄성이니 하는 말은 성서 시대에도 있었(겠)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 산업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Commented by Fedaykin at 2020/07/08 16:30
브레멘 음악대가 그림형제가 창작한 1800년대쯤 나온 동화인줄 알았는데 그전부터 있는 민담이었나보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20/07/08 20:57
브레멘의 음악대를 공격대라고 하니, 각자 기존 파티에서 떨려나온 플레이어들이 헤딩팟 만들어서 파밍 대박치는 스토리로 바뀌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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