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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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
누르하치가 이룩한 또 하나의 ‘혁신’으로는 만주문자의 창제가 있다. 만주문자 창제는 아이신 구룬 성립 이후 누르하치가 이룩한 국가의 발전뿐만 아니라 청 제국이 장기간에 걸쳐 이룬 성취와 관련하여 다른 무엇보다도 의미심장한 혁신이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좀 길긴 하지만 『만주실록』의 만주어 원문을 직접 옮겨 보겠다.

태조 수러 버일러께서 몽고의 글을 바꾸어 만주 말을 쓰기를 원하자 어르더니 박시와 가가이 자르구치가 말하기를 “저희는 몽고의 글을 배웠기 떄문에 (글을) 안다고 할 것입니다. 옛날부터 내려온 글을 이제 왜 바꾸도록 하겠습니까?”라고 하며 말리며 말하자, 태조 수러 버일러께서 말씀하시기를, “니칸 구룬의 글을 크게 읽으면 니칸의 글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 모두 (그 뜻을) 이해한다. 몽고 구룬의 글을 크게 읽으면 글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모두 이해한다! 우리의 글을 몽고의 글로 써서 크게 읽으면 우리 구룬의 글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구룬의 말로 쓴다면 왜 어렵겠는가? 한편 몽고 구룬의 말은 왜 쉬운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가가이 자르구치와 어르더니 박시가 대답하기를, “우리 구룬의 말로 쓴다면 정말 좋습니다. 바꾸어 쓰기를 저희가 할 수 없기에 말린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태조 수러 버일러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라는 글자를 써라. ‘아’의 아래애 ‘마’를 쓴다면 ‘아마’가 아니냐? ‘어’라는 글자를 써라. ‘어’의 아래에 ‘머’를 쓴다면 ‘어머’가 아니냐? 내가 다 생각해 두었다. 너희가 써 봐라. 된다!”고 하여 홀로 버티면서 몽고의 글로 써서 크게 읽는 글을 만주 말로 바꾸게 하였다. 그떄로부터 태조 수러 버일러는 만주 글을 창제하시어 만주 구룬에 널리 퍼트렸다.

[참고]
  • 수러 버일러 : 한을 칭하기 전까지의 누르하치를 가리키는 말로, ‘버일러’란 집단의 수령을 뜻하는 만주어
  • 박시: 학자에 대한 존칭
  • 자르구치: 원래 재판관을 뜻하는 몽골어
  • 니칸 구룬: 한인의 나라, 즉 명나라를 가리키는 말
  • 아마: 아버지를 뜻하는 만주어
  • 어머: 어머니를 뜻하는 만주어


구범진. 2012,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1판, 서울:민음사. pp.96-98
by sonnet | 2019/09/17 15:09 |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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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함부르거 at 2019/09/17 16:28
만주문자가 훈민정음에 비해 저평가 되는 건 그 문자를 통해 이루어 낸 문화적 업적이 빈약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문자의 창제도 중요하겠지만 후대의 노력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at 2019/09/17 23:17
문자창제 하니 자연스레 세종대왕이 생각나네요.

이것만 보고 평가하는 것이라 조심스럽긴한데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건 똑같으나 그 안에 내재된 철학? 사상? 원리? 같은 건 훈민정음이 우위이지 않을까하는 뻘생각이 드네요^^;

위의 함부르거님 말씀대로 만주문자가 저평가되는 게 문화적 업적의 빈약뿐 아니라 후대에 사용자가 거의 없는 것도 한몫 하는 거 같아서 후대의 노력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19/09/18 00:06
정음(훈민정음)은 지배층에겐 무시당했으나 서민층에게 널리 퍼질 정도로 용이하여 오늘날 민족정신의 한 상징이 된 반면, 만주문자는 아무래도 정치적인 목적 외에는 그 완성도가 정음에 비할 바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소수의 만주/몽골 지배층이 다수의 한족을 지배하면서 그 한족의 제도를 다수 이용하는 상황에서 한족 문화의 영향을 이겨내기는 어려웠으니만큼 더더욱 차이가 크지 않나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shaind at 2019/11/15 12:14
훈민정음은 피지배층의 문화활동에까지 스며들었지만 만주문자는 지배층의 문자로 남은데다, 피지배층(=한족)은 이미 고유의 문자로 엄청난 문화적 업적을 쌓아놓은 상태였으니 지배층의 교체와 동시에 문자도 뿌리가 뽑힐 수밖에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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