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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실험
제인 엘리엇의 실험, ‘차별을 몸으로 겪으면’

1968년 4월 4일,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Margin Luther King 목사가 살해되었습니다. 미국사회는 충격에 휩싸였지만, 백인만 거주하는 아이오와의 작은 시골 마을 리치빌은 너무도 조용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제인 엘리엇Jane Elliott은 자신이 담임을 맡은 3학년 학생들에게 이 비극적인 죽음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백인 아이들 28명이 모인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얘들아. 흑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건 아마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거야. 한번 경험해보지 않을래?”

선생님의 다정한 권유에 아이들은 당연히 “예”라고 답했지요. 엘리엇 선생님은 칠판에 피부색을 구성하는 색소인 ‘멜라닌Melanin’을 적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했어요.

“멜라닌이라는 색소가 몸에 있는데, 이 멜라닌이 눈, 머리카락, 피부의 색을 결정하는 거예요. 그런데 실은 이 색소가 더 많은 사람이 더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예요. 여러분의 눈을 보면 갈색과 파란색, 두 가지 색의 눈동자가 있지요. 갈색 눈을 가진 사람이 멜라닌 색소가 더 많은 거예요. 더 똑똑하고 더 우월한 사람인 거지요.”

엘리엇은 눈에 띄도록 파란 눈을 가진 아이들의 목에 작은 목도리를 감아줍니다. 그리고 ‘우월한’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에게만 몇몇 특권을 부여합니다. 그들만 운동장에 새로 만들어진 정글짐을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쉬는 시간을 5분 더 사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은 교실의 앞자리에, 파란 눈을 가진 아이들은 교실의 맨 뒷자리로 밀려났습니다. 그리고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은 파란 눈을 가진 아이들과 놀면 안 된다는 규칙도 생겼습니다.

이와 같은 규칙 몇 가지가 시행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빠르게 변화했습니다. 한 번도 산수 문제를 어려워하지 않던 파란 눈의 여자아이가 간단한 더하기 빼기 문제를 틀리기 시작했고,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얼마 전까지 친구였던 파란 눈을 가진 아이를 둘러싸고 말합니다.

“너는 열등한 아이니까 우리에게 사과해야 해.”

발랄하고 당당했던, 실험 이전이라면 다른 아이들에게 주눅들 리 없었던 그 아이는 놀랍게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사과합니다.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파란 눈의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자기 의견을 말하길 주저하며 매사에 소극적인 아이로 변했고, 갈색 눈의 아이들은 그렇게 변한 파란 눈의 아이들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종차별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무서울 만큼 명확히 보여준 이 실험은 미국 전역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실험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나누어진 교실A Class Divided〉이라는 이름으로 제작되었고, 관련 내용이 여러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다뤄졌습니다. 1992년, 제인 엘리엇은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서 청중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와 둥시에 제인 엘리엇은 윤리적 비난에 시달립니다. 열살밖에 안 된 순진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그토록 가혹한 실험을 했느냐는 것이지요. 제인 엘리엇은 단호하게 답했습니다.

“당신이 백인 아이의 그 연약한 자아가 몇 시간 동안 경험하는 차별에 대해 걱정한다면, 평생 그런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흑인 아이들에 대해서는 왜 그리 침묵하느냐?”

그 실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실험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나서, 엘리엇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얘들아, 선생님이 확인해보니까 우월한 사람들은 갈색 눈이 아니라 파란 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규칙을 바꾸도록 하자.”

두 집단의 위치는 역전되고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에게 부여됐던 특권이 고스란히 파란 눈의 아이들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한 번 피해자의 경험을 가진 파란 눈의 아이들은 ‘우월한’ 집단이 되어서도 ‘열등한’ 갈색 눈의 아이들에게 훨씬 더 너그러웠습니다. 제인 엘리엇은 그 경험 속에서 이 실험이 중요한 교육이 될 수 있음을 꺠닫습니다. 차별받는 소수자가 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에 대해 더욱 조심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는 차별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 주는 교훈에 주목하고 이 실험을 노동자, 교사 등 다양한 집단에서 교육 프로그램으로 시행합니다.

김승섭. 2017.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1판 서울: 동아시아. pp.231-234


옛날이니까 가능했겠지만, 저런 실험을 보호자의 동의와 조직의 승인 없이 한다는 건 상상이 잘 안되는.
당사자는 좋은 방향으로 표사했지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쪽에 가까웠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by sonnet | 2019/07/07 21:31 | 정치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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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Fedaykin at 2019/07/08 11:34
예전에 EBS에서 이거랑 아주 비슷한 실험을 했길래 작가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 했는데 이게 원전이 있었던거군요 ㄷㄷ
Commented by 6호선더비 at 2019/07/08 14:20
아주 예전에 Die Welle라는 영화를 봤는데

비슷한 내용이라 약간 섬뜩하게 다가오는 실험이군요.

취지야 공감합니다만 저걸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배짱은 대단합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19/07/10 02:30
요즘은 반대로 PC가 지나치게 남발되어서 사소한 의사표현조차 제한받는 '역차별'의 시대라, 생경하기까지 하네요.
Commented by ㅇㅇ at 2019/07/13 04:56
이번 한일무역 분쟁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지 글을 써 주실수 있을까 해서 덧글 남깁니다. 참 혼란스런 상황이다보니 제 식견이 얕아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더군요. 소넷님의 고견이 제 판단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9/07/15 21:44
저도 딱히 좋은 생각은 없지만, 간단히 주말에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19/07/14 17:19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에 '중간계급'을 상당히 좋지 않게 보던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저 실험의 논리대로라면, 중간계급과 차별의 피해계급이야 말로 타인의 피해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데, 그렇진 않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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