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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R의 보상체계
성과보수체계는 기본적으로 단순했다. KKR은 소속 전문인력에게 급여 외의 보상을 2가지 경로로 제공했다. 하나는 KKR이 보유하는 포트폴리오 대상 회사의 지분을 보유하는 것으로, 대리급으로 입사하면 당해년도 중에 인수가 종결되는 LBO 대상 회사의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옵션을 받았다. 스톡옵션의 규모는 대리급의 경력이 쌓일수록 커졌다. 이에 추가해 12~18개월을 재직하면 KKR의 보너스기금에 대해 일정 비율을 배분받을 권리를 얻는다. 보너스기금은 KKR의 당해년도의 이익금에 상당했다. 당해년도의 수수료 수입(거래수수료, 경영자문수수료, 착수금)에 각 투자에서 자본이익의 20%(override라고 부른다)를 더하고 당해년도의 운영경비를 공제한 것이다. 각 담당자별 배분율은 연말에 경쟁적으로 각자의 성과를 인정해달라는 요구 관에 대조·확인을 피하기 위해 연초에 확정한다. […]

“우리는 연말이 되면 실적 명세를 들고 가서 ‘나는 이러한 것과 저러한 거래를 해서 이러저러한 수수료를 창출했으므로 내가 받아야 할 금액에 보너스가 미달한다면 사직할 것이다’라고 협상하는 일반적인 투자은행의 절차를 채택하지 않았다.” [36]

매년 초 선임파트너들(초기에는 콜버그와 크라비스, 로버츠였고, 이후에는 크라비스, 로버츠, 마이컬슨과 폴 래더)은 각 담당자의 보너스 기금에 대한 배분율을 결정했다. 이러한 정책으로 장기적인 성공을 위한 행동에 대해 보상할 수가 있었다. KKR의 시스템에서는 새로운 인수에 참여해서 일하지 않더라도 배분율을 늘려 받을 수 있으며, 동일한 맥락에서 새로운 거래를 찾아내지 않고서도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기존에 잘 되지 못한 거래에 대해서 펀드를 모으고 관리업무에 시간을 쏟는 것도 파트너들이 KKR의 장기 가치를 위한 노력을 지원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한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37] 배분율의 조정은 신입직원이 경력이 쌓이고 각자의 기여도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완만하게 이루어졌다. [38]

KKR의 이익배분은 투자전문인력에서 끝나지 않았다. 비서, 우편수발실을 포함해서 모든 지원인력도 KKR의 투자에 대한 ‘그림자 주식’(phantom stock)을 받았다 (파트너와 대리급들은 ‘그림자 주식’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자식의 주식을 출연했다). 이러한 폭넓은 참여도 덕분에 조직 전체에 강력한 직업 전문가적 분위기가 생겨 예절 바르고, 신속히 응대하며, 비밀을 철저히 보호하고, 퇴근시간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KKR의 성과보수 개념은 투자의 성공에서 중요한 장기적 시각과 충성심을 강화시켰다. 충성도는 능력주의의 인식과 실현을 통해 얻었으며, 계급이 없는 작은 조직에서 보상의 주요 수단은 금전적인 것이 유효했다. 따라서 콜버그가 떠남으로서 그의 지분율 하락을 통해 젊은 인력에 배분할 주식의 원천이 마련되었다. 크라비스와 로버츠도 자신의 지분율을 지속적으로 낮추어 가면서 젊은 파트너들이 장래에 대한 우려로 퇴사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했다.

혹자는 이러한 종류의 이익배분체계가 경쟁이 심화되는 시기에는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스타급 전문가는 결국 그가 창출하는 거래 또는 완결하는 거래규모에 비례해 개인에 대한 기여도에 대한 배분을 계속 높여준다는 약속에 끌려 스카우트될 수 있다. 평등적인 보상쳬계를 운영하던 많은 전통적인 미국 법무법인이 1980년대에 와해되었는데, 이는 재능 있는 변호사에 대한 수요가 뜨거워졌기 때문이었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도 유사한 압박을 받았다. [39] 1980년대에 투자은행의 LBO 부문에 가세해 수십개의 부티크 LBO 전문회사가 나타나 LBO 투자환경이 더욱 경쟁적이 되었다. 인재에 대해서는 프리미엄이 붙었다. 그러나 1976년부터 사울 폭스가 독립했던 1996년 사이에 KKR에서 자발적으로 떠나 경쟁사로 간 인력은 없었다. 그 이유는 3가지로 설명된다.

먼저 KKR은 스타 시스템으로 채용을 하지 않았다. 크라비스는 “어느 누구도 젊은 전문직원 위로 끼어들어온 사람은 없었으며, KKR은 스스로의 역량에 의해 발전하려 했다”라고 술회했다. 실제로 KKR은 팀워크에 적합하고 잠재성이 사내에서 성장하는 데 맞다고 보이는 인력만을 채용하려고 노력했다. 둘째, KKR 내부의 스타인 크라비스와 로버츠는 KKR의 연간 이익에 대한 구성원들의 기여도에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은 강조하지 않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믿었다. 콜버그와의 결별도 젊은 인력을 배려할 수 있는 여지를 늘려주었다. 셋쨰, KKR이 채용했던 인력이 다른 직장에서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더라도 KKR의 평등한 근무환경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Baker, George P., and George David Smith. The New Financial Capitalists: Kohlberg Kravis Roberts and the Creation of Corporate Value. 1st ed., Cambridge, UK ;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손원길, 김규진, 김지욱 역, 『KKR 스토리 : LBO, M&A, 사모펀드의 선구자.』, . 서울: 새로운제안, 2009, pp.296-298)
by sonnet | 2019/03/25 13:28 | 경제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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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onnet at 2019/03/25 13:29
https://www.nber.org/papers/w7546 에서 말하는 horizontal hierarchy의 사례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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