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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앨런은 거대한 창고에서 일하는 ‘피커’(물건을 집는 사람)였다. 당신이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면 앨런은 창고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집어 카트에 넣고 ‘패커’(포장하는 사람)에게 간다. 패커가 물건들을 상자에 담고 라벨을 붙이면 이틀쯤 뒤에 당신에게 배송된다. 아주 깔끔하다. 당신은 클릭하고 피커는 집고 패커는 포장한다. 당신에게는 편리하지만 앨런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앨런은 피커였다. 지금은 아니다. 벌점 3점이 쌓이는 바람에 해고됐다. 나는 BBC TV프로그램 〈파노라마Panorama〉를 촬영하면서 앨런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다 (앨런은 가명이다. 이 프로그램은 2013년에 방영됐다).

밤 근무는 보통 10시간 반이었고 15분짜리 휴식이 두 번, 30분짜리 휴식이 한 번 있어서 9시간 반을 일했다. 근무시간이 되면 앨런은 그의 지배자이자 양심인 작은 전자장치를 지급받았다. 손에 들고 다니는 이 장치는 그에게 X열로 가서 Y물건을 집어 카트에 넣으라고 지시하고 그 다음에는 P열로 가서 Q물건을 잡으라고 지시했다. 카트 무게가 250킬로그램이 되면 패커에게 가라고 지시했다. 그러면 패커에게 가서 물건을 내려놓은 뒤 다시 카트를 채우러 갔다. 앨런의 목표량은 큰 물건 기준 시간당 110개였다(작은 물건은 더 많이 담아야 한다). 1분당 2개 꼴이다.

전자장치는 지시만 하는 게 아니라 피커의 업무 속도를 확인하고 회사 시스템에 보고했다. 목표 대비 얼마나 일을 잘 하고 있는지가 실시간으로 보고돼 그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경고가 나왔다. 많이 뒤쳐지면 0.5점, 더 뒤쳐지면 1점의 벌점이 쌓였다. 내가 물었다.

“거기서 일하는 동안 목표를 달성하고 성취감을 느끼면서 근무시간을 마쳐 본 적이 있습니까?”
그는 1초도 주저 없이 대답했다.
“한 번도 없습니다. 매시간, 매일, 언제나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익숙해지고 난 뒤에는 적어도 고용은 안정적으로 유지되리라고 생각했습니까?”
“아뇨.”
그는 벌점 때문에 언제 잘릴지 몰라 늘 전전긍긍했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들은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모릅니다.”

앨런은 직속 팀장을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는데 팀장이 하는 말이라곤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하는 경고 뿐이었다. 근무시간 중에는 다른 직원들과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었고, 쉬는 시간에는 창고 끝에 있는 매점으로 가려면 너무 오래 걸리는 데다 나가고 들어올 때 보안 검색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무언가를 함께 먹거나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기가 불가능했다.

하루는 보행 측정기를 달고 다녀 보았는데, 일을 마치고 보니 18킬로미터가 찍혀 있었다. 뼈가 부서지고 발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그보다 더 지친 날이 없었다. 한번은 몸살이 나서 결근했더니 벌점이 올라갔다. 앨런이 하는 일은 집으로 일거리를 가지고 갈 수 없고 문에는 보안 장치도 있다. 그런데 앨런이 집으로 가져가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마음속에서 계속 울려대는 전자장치의 사악한 경고음이었다.

앨런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치 그의 고용주가 노동의 해로운 점이라고 알려진 모든 것을 모아 꾹꾹 뭉쳐서 앨런에게 주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앨런의 일은 육체노동이었고, 업무 부담은 많되 통제력은 없는 일이었으며, 일할 때 사회적으로 고립됐고, 일자리의 안정성이 없었고, 조직 내 불의가 있었고, 교대 근무제였다. 이 모든 것이 건강을 해친다. 유일하게 ‘좋은’ 점이 있었다면 앉아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너무 고되고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하는 일이어서 문제였지만 말이다.

1930년대 영화 〈모던 타임즈Morden Times〉에서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은 생산 라인에서 나사 조이는 일을 하다가 보이는 족족 모든 것을 조이려는 강박증에 걸린다. 사악한 생산 라인에서 건강을 잃은 것이다. 지금은 노동 여건이 건강에 끼칠 수 있는 해로움에 대해 그때보다 많은 지식과 정보가 있다. 오늘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일은 앨런이나 채플린의 일과 다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일도 그래야 마땅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렇지 못한 것을 본다. 열악한 노동 여건은 건강 불평등의 주요인이다. 이 책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말하면 ‘권력, 돈 자원의 불평등이 피할 수 있는 건강 격차의 근본 원인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앨런과 채플린의 작업은 이 주제를 잘 보여준다. 그들의 일터에서는 세 가지 불평등 모두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직위가 낮을수록 역량이 박탈되고 소득이 적으며 물리적·정신적·사회적 자원도 적다. 그러면 건강이 나빠진다. 노동은 역량을 박탈시키는 요인들의 온상이다.

앨런의 일은 건강에 안 좋은 것 투성이일 뿐 아니라 우리가 직업에 기대하는 긍정적인 면들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했다. 우리는 직업에서 소득을 기대하지만 앨런은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직업은 우리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사회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규정하는 데 중요하지만 앨런은 자신이 생각 없는 기계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앨런이 정말 기계로 대체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인간 앨런이 조금 더 유연하기 때문이었지 지적인 능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직업에서 자아실현과 자아성장을 기대하지만 앨런의 일은 그렇지 못했다. 또 직장은 사회적 관계를 맺어 나가는 장소가 될 수 있지만, 1시간에 무거운 물건 110개(작은 물건은 최대 240개)를 날라야 하는데 평균 80개밖에 못 나르는 상황에서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리고 일과 삶은 균형 잡혀야 하지만 앨런의 일은 교대 근무제인데다 극도로 피로가 쌓이는 일이어서 일과 삶의 균형은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일은 삶의 안정성과 역량에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일이 없으면 방향 상실, 불안정성, 제약성을 느끼게 되고 가난해진다.

그런 노동을 하다니 앨런이 안 됐기는 했지만 그 일이나마 하지 않으면 상황이 더 나쁘지 않았을까? 실업은 건강에 해롭지 않나? 맞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하게 취업과 실업만 비교해서는 안 된다. 노동의 질은 정말로 중요하다. 그리고 작업의 질을 논할 때는 노동 여건뿐 고용 여건도 생각해야 한다. 고용 여건은 고용 계약이 존재하는지, 고용 계약의 속성이 어떠한지 등을 의미한다. 노동 여건과 고용 여건 모두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앨런이 했던 것과 같은 일은 우연히 생겨난 게 아니다. 이런 일은 ‘만들어지는’ 것이며 특정한 사회 여건들을 필요로 한다. 그런 여건에는 낮은 노조 조직율(노조가 있으면 노동 여건이 나아질 것이다), 이직 기회의 부재(갈 데가 있다면 다른 일자리로 옮겨갈 것이다), 수익률에 대한 가차 없는 강조, 그리고 이런 종류의 노동과 고용을 용인하고 육성하는 사회 등이 포함된다. 노동과 고용이 질병의 원인이라면, 여기에서도 우리는 ‘원인의 원인’을 보아야 한다. 왜 노동과 고용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조직돼 있는가? 앨런의 일은 직업 세계가 상층의 고숙련 일자리와 바닥의 기계적인 일자리로 양극화되고 중간은 점점 줄어드는 미래의 우울한 징후일까?

[...] 앨런의 일은 역량 박탈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고, 구체적으로는 다음 여섯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①업무에 대한 높은 부담감과 낮은 통제력,
②노력과 보상의 불균형,
③사회적 고립,
④조직 내 불의,
⑤직업 불안정성
⑥교대 근무제.
각각은 질병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며, 다 합하면 치명적 요인이 된다. 각각이 질병의 요인이라는 데 대해서는 수많은 실증근거들이 있다.

Marmot, Michael. The Health Gap: The Challenge of an Unequal World. Bloomsbury Press. 2015 (김승진 역, 『건강 격차: 평등한 사회에서는 가난해도 병들지 않는다』, 파주:동녁, 2017. pp.227-231, 238)


이런 노동을 없애는 데에는 분명히 로봇이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아마존 같은 거대 물류기업들이 이 방향이 미래라고 생각하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노조 등을 결성하거나 인간에 대한 근무조건을 더 빡빡하게 규제하면 (그것이 인센티브가 되어) 로봇으로의 전환이 더욱 가속화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적어도 비인간적 노동을 사회에서 빨리 추방하는데는 로봇이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없어진 일자리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재배치할 더 훌륭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이는 것이 문제일 뿐.

예전에 『타임머신』(1895) 읽기란 글에서 "유토피아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과학기술에 대한 신념이 퇴색하고 있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도 그런 현상 중 하나라고 본다.
by sonnet | 2019/03/11 14:15 | 정치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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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대나무 at 2019/03/11 14:57
제가 가진 직업이 제가 은퇴하기전에 자동화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미래는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에 가까워 보여요.
Commented by 함부르거 at 2019/03/11 16:03
단순작업에서 인간을 해방시키자는 목표 자체는 좋은데 그게 실업을 유발한다는 게 참... 21세기는 생산과 분배 체계를 세계적인 규모에서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 하는 전환기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일화 at 2019/03/11 16:03
저는 (누군가는 변형된 신분제라고 묘사할) PT강사라던가, 전문지식이 많이 필요없는 상담사라던가, 마사지사 같은 대면접촉이 필수적인 직업들이 번창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無碍子 at 2019/03/11 17:21
로봇에게서 세금 걷는 날이 올겝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9/03/11 17:26
https://www.ft.com/content/42ab292a-000d-11e7-8d8e-a5e3738f9ae4
Commented by ㅇㅇ at 2019/03/11 23:58
인구감소보다 일자리 감소가 더 빠르다는게...
Commented by sonnet at 2019/03/12 12:34
이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어서요.

Varian finds that the demographic effect on the labor market is 53% larger than the automation effect. Thus, real wages are more likely to increase than to decrease when both factors are considered.

Jobs are made up of a myriad of tasks, many of which are not easily automated. “Automation doesn’t generally eliminate jobs. Automation generally eliminates dull, tedious, and repetitive tasks. If you remove all the tasks, you remove the job. But that’s rare,” Varian says.

https://www.gsb.stanford.edu/insights/misplaced-fear-job-stealing-robots?fbclid=IwAR1leEzbY2uucrN-dDaXSJIglVHNOzvk3gMbQJujPeV-wa2nnxY6iKZ3Iio

다만 위에서 묘사된 앨런의 직업 같은 것은 빨리 대체되는 쪽에 속할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이긴 합니다.
Commented by 漁夫 at 2019/03/12 00:15
"나는 ... 가치가 없는 수많은 일들을 아직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이 수치스럽다. 이런 일들은 모두 기계가 해야 한다."(T. Edison)

효율임금이 축복인지 재앙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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