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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rice : 가치의 생성과 파괴 과정에 관한 연구 (1)
다음은 Baker, George P. 1992. “Beatrice : A Study in the Creation and Destruction of Value”. The Journal of Finance 47(3): 1081–1119.를 초벌번역한 것입니다. 분량이 많아서 3편 정도로 나누어 올릴 계획입니다.


요약
본 고는 Beatrice사가 1891년에 작은 유제품 업체로 설립되어 인수합병을 통해 다각화된 소비재 및 산업재 생산 업체로 성장했다가 그 후 차입매수를 당해 팔려나가는 역사를 연대순으로 기술하고, 이 회사의 인수와 매각 정책, 조직 전략, 경영이 기업 가치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조직 이론, 전략, 기업 재무, 다각화된 기업인수에서의 가치의 원천, 과도한 집권화의 비용과 취약한 기업 운영, 기업 통제와 관련해 시장에서 가치 생성의 메커니즘 등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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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8월 3일(토), 이사회와 다른 경영진으로부터 압력을 받은 James Dutt는, Beatrice사의 CEO 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월요일이 되자, 회사의 주가는 6%이상 상승해, 하루에 2억 달러 가까이 늘어났다. 며칠 안에 인수합병 소문이 돌았고, 10월 17일 KKR(Kohlberg, Kravis and Roberts)은 사상최고 규모의 LBO(Leveraged buyout; 차입매수)를 발표했다. 100년의 역사를 갖고,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가장 잘 경영되는 5대 회사에 들었던 이 회사는 LBO 이후 5년이 지나지 않아 독립기업으로서 존속하지 않게 되었다. 이 회사는 몇 십 조각으로 분할매각되었고, 1990년 6월에 나머지가 ConAgra로 일괄매각되며 끝이 났다.

이 논문은 지방의 유제품 제조업체로 시작해 LBO를 통해 미국 역사상 제일 큰 기업분할매각 사례로 끝난 Beatrice사의 100년의 역사를 다룬다. Beatrice의 역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20세기 미국 기업의 역사라 할 수 있다.

Beatrice는 네브라스카 시골에서 단일업종으로 시작해, 자기 업종에서 관련 업종으로, 그리고 다양한 다른 산업에까지 대상을 넓힌 기업인수를 통해 미국에서 가장 크고 다각화가 많이 된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197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 가장 잘 운영되는 기업 중 하나로 존경 받았던 이 기업은, 1970년대 후반에 전략적 방향성과 내부 관리에 어려움을 겪으며 커다란 가치의 손실을 겪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손상이 중요한 이유가 되어, Beatrice는 1980년대에 재무 구조조정 메커니즘의 대상이 되고, 1986년에는 이후 4년간 회사의 모든 자산을 팔아 치우게 될 LBO의 표적이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Beatrice는 400건의 인수와 90건의 매각에 관여하게 되고, 복합기업(esmark)을 사들였다가, 적대적 인수목적기업(E-II Holdings)을 낳고 사업부 LBO를 통해 40개 이상의 유닛으로 팔려나갔다.

이 논문은 [그림 1]에 나타난 가치 생성의 원천과 가치 손실의 이유를 설명하려 시도할 것이다. 이 회사의 인수와 매각 활동은 크게 보아 가치 생성 과정의 일부이다.


[그림 2]와 [그림 3]은 Beatrice의 인수와 매각에 관한 정보를 보여준다. [그림 2]에는 금세기에 Beatrice가 진행한 기업거래의 수를 표시한 것이고, [그림 3]에는 그 중 주요한 거래의 규모와 시점을 도시하였다.

거래의 숫자 기준으로 보면, 이 회사는 1955-1979년간에 미국에서 가장 활발한 인수자였고 1979-1987년 사이에는 가장 활발한 매각자였다. 1980년대에는 1950-1979년 사이에 매입했던 모든 회사를 개별적으로 또는 다른 회사와 묶어 팔아 치웠다.

또한 [그림 1]은 1950, 1960, 1970년대의 기업인수가 Beatrice의 주주에게 상당한 가치를 만들어주었었고, 또 기업매각과 LBO를 통해서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손실한 가치 이상을 재확보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Beatrice사 이야기의 핵심 수수께끼를 잘 보여준다. 수백 개의 기업을 인수한 행동이 가치를 만들었는데, 30년 후에 같은 자산을 팔아 치웠더니 다시 가치가 창조되었단 말인가?





Beatrice의 역사는 또한 자본 시장, 기업 전략과 기업 경영, 조직 운영과 관련된 일련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 194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고도로 분권화된 지주회사로서 운영되었던 이 회사가 어떤 식으로 자신이 인수한 기업에 가치를 더해줄 수 있었는가?
  • 무엇이 1979년부터 1981년 사이의 가치하락을 가져왔는가
  • 어떻게 내부와 외부의 통제 메커니즘이 이 가치의 파괴에 대응했는가
  •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LBO와 Beatrice의 분할매각이 인수 이전과 이후의 투자자들에게 그처럼 큰 가치를 만들어주었는가


20세기를 관통하는 Beatrice의 역사를 살펴보게 되면, 그저 한 기업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 이상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Beatrice가 관련업종 인수에서 비관련업종 인수로 전환해 가는 과정, 그리고 이들 인수를 통해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이 회사의 조직 구조와 전략을 자세히 살펴보면, 복합기업 유형의 합병의 가치에 관한 오랜 논쟁(이에 관해서는 Ravenscraft와 Scherer(1987)를 참조)에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근래 들어 많은 저자들은 1980년대 자본시장 활동의 특징을 복합기업해체(de-conglomeration)로 보고 있다. (Blair, Lane, Schary(1991), Kaplan, Weisback(1991), Bhagat, Shleifer, Vishny(1990)를 참조) 그들은 1980년대의 매각, 분사, LBO의 흐름이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복합기업 합병이 역전되어 해체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거듭 말하자면, Beatrice의 역사를 면밀히 살펴봄으로서, 이 현상을 관찰할 강력한 렌즈를 얻을 수 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Beatrice를 활발한 인수자로 만들었다가 1980년대에는 반대로 활발한 매각자가 되게 하였던 경제적 동력의 디테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직과 시장에서 가치가 생성되는 과정에 대한 가설들이 생겨나고, 조직 형태, 기업 경영, 자본 시장에 관한 추가적인 연구로 이어질 것이다.

본 논문은 이 회사의 역사를 구분 짓는 4개의 주요한 시대에 따라 시대순으로 구성된다.
  • 제1장(1890-1939)에서는 지방 유제품 제조업체로 출발한 Beatrice가 전국구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낙농업 인수과정의 가치의 원천을 다룬다.
  • 제2장(1940-1976)에는 Beatrice가 식품산업으로 그리고 그 이외 산업으로 다각화하는 과정에서 가치의 원천을 살펴본다.
  • 제3장(1977-1985)에서는 회사의 전략적 방향성의 변경과 전략적 혼란과 경영의 실패에 의한 가치의 파괴 과정을 살펴본다
  • 제4장(1986-1990)은 LBO와 매각을 다루고, “가치는 만들어진 것인가 아니면 다시 포착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살펴본다..
  • 제5장에선 결론을 내린다.


1, 1890-1939: 지방의 일개 유제품 제조업체에서 전국구 기업으로

1891년 George Haskell은 네브라스카주 비어트리스에 위치한 도매상인 Haskell & Bosworth를 창업했다. 그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농장에서 버터, 계란, 닭고기 등을 수집해 소매상에 공급하는 중간업자였다. 4년간 평범한 실적을 거둔 후, Haskell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유제품 제조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고, Beatrice Creamery의 설비를 임대한다. 1897년에 이르러, Haskell & Bosworth는 $100,000의 자본을 갖는 Beatrice Creamery 주식회사를 설립한다.

1905년에 George Haskell은 캔사스주 토페카의 Continental Creamery사의 인수를 추진한다. 이는 이 시점에 미국 낙농업계에서 가장 큰 합병이었다. Continental은 현존하는 낙농업계 최고참 중 하나였고, “Meadow Gold” 낙농 제품군으로 불리는 강력한 지역 브랜드를 갖고 있었다. 이 브랜드는 Beatrice의 낙농사업의 기초가 된다. 이 인수를 통해 Beatrice는 6개의 공장에서 연간 3천4백만 파운드의 버터 생산능력을 가진 세계에서 제일 큰 유제품 제조업체가 된다.

Beatrice는 George Haskell의 조카인 Clinton Haskell이 사장이 된 1928년까지 서서히 성장했다. 사장이 된 Clinton Haskell은 3가지 주요 목표를 세웠다. 첫째, 낙농업을 확장한다. 둘째, 추가적인 제품군으로 다각화한다 (1928년까지 Beatrice의 사업은 버터, 크림, 계란에 한정되어 있었다) 셋째, 회사의 제조시설을 동부로 확장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Haskell은 1928년에 적극적인 인수 정책을 펼쳐, 사장이 된 첫 해에 앞의 두 목표를 거의 달성했다. 1929년 4월 25일, 뉴욕 증권거래소는 Beatrice의 상장을 승인했고, 회사는 7개의 유제품 업체 추가 인수계획을 발표한다.

1930년대 초반에 Beatrice는 인수를 통해 지리적 확장을 계속했다. 그러나 진출하려는 지역에서 한 방에 큰 시장점유율을 가진 업체를 인수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신 이 회사는 작은 유제품 업체를 인수한 다음, 작은 회사들의 선별적인 인수를 통해 한 지역의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방식을 썼다. 이 확장 프로그램을 통해 Beatrice는 Borden, National Dairy(후의 Kraft)와 더불어, 전국 3대 유제품업체로 자리잡게 된다.

Beatrice는 경쟁업체인 National Dairy나 Borden과는 달리 인수한 업체의 브랜드 네임을 버리고, 제품을 Meadow Gold 브랜드로 포장했고, 이를 통해 Beatrice는 전국적으로 광고를 할 수 있었다. 1931년부터 Beatrice는 전국적인 Meadow Gold 광고를 집행했다. 회사는 자사의 유제품을 Saturday Evening Post, Ladies Home Journal, Good Housekeeping 같이 전국 유통되는 잡지들을 통해 정기적으로 홍보했다.

대공황 후반에 Beatrice는 인수를 별로 하지 않았다. 예외는 1931년에 Beatrice의 자회사로 냉장창고업체인 Chicago Cold Storage 의 소수지분을 사들인 정도였고, 대공황이 끝날 때까지 다른 주요한 인수는 없었다. 1938년부터 Beatrice는 “Bird’s Eye” 상표로 냉동식품을 팔기 시작했다.

지리적으로 흩어져있는 회사를 관리하기 위해, Beatrice는 본사를 가진 분권화된 복수 사업부 조직으로 변화했다. Beatrice가 인수한 각 제조 공장은 제조와 제품의 유통을 모두 담당하는 완전한 사업조직으로 운영되었고, 회사의 본사에는 사장, 부사장, 재무임원, 비서 정도만 있었고, 본사에서는 재무와 법무, 연구활동, 광고, 품질관리의 감독, 전반적인 정책 수립 정도만 했다.

각 현지 부서들은 공장 운영을 관리감독하는 일곱 지역 책임자를 통해 본사와 연결되었다. 공장 관리자들은 그 지역을 맡고 있는 지역 책임자에게 직접 보고했고, 균일한 제품 품질은 주요 제조공장에 설치된 통제연구실들이 보장했다. 1942년 초에, Beatrice에는 조직 응집력을 보완하고 조직 계층을 통해 특정 정보를 올려 보내기 위한 18개의 위원회가 있었다.

유제품 산업 인수에서 가치의 원천

Beatrice는 유제품 산업 인수가 진행되던 이 시기에 성장하고 번성했다. 이 회사는 유제품 산업 인수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치를 창출했다.

우선 전국 잡지들을 통해 자사의 Meadow Gold 브랜드를 마케팅함으로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경제적 가치는 회사가 지리적으로 널리 분산되어 있을 때만 효과적으로 포착할 수 있었다.

또한 생산 측면에서 규모의 경제가 증대되고 있었다. 원래 유제품 제조 공장의 효율적인 규모는 원료를 수집하는 비용과, 최종제품을 유통하는데 드는 비용에 의해 제한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수송수단의 발전과 전기 냉장고의 발명이 이루어짐에 따라, 유제품 공장의 “배후낙농지대”가 넓어질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대도시의 성장과 포장기술의 기계화가 진전되면서, 유제품 산업의 조직이 변화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다수의 소규모 낙농 업체들이 직접 제품을 만들고 가정에 우유를 배달까지 하던, 근본적으로 파편화된 산업이었던 것이, 큰 공장에서 대량으로 유제품을 제조해서 가정배달 트럭이 출발하는 물류센터로 매일 공급하는 식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3대 유제품 업체(Borden, National Dairy, Beatrice)는 다들 기업인수를 통해 이러한 사업의 경제성을 확보해 나갔다.


2. 1940-1976 식품업계로, 그리고 그 외 산업으로의 다각화

Beatrice의 다음 중요한 변화는 1943년 11월 1일에 오하이오 아크볼드의 La Choy Food를 인수하면서 찾아왔다. La Choy는 중국요리 전문 업체였고, 이 회사는 Beatrice의 첫번째 비 유제품 산업 인수 사례였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1945년에 “(우리 회사는) 오래 전에 단순 유제품 업체가 아니게 된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라면서 이사회가 회사명을 Beatrice Creamery에서 Beatrice Food로 바꾸도록 한 사건이었다.

1940년대 후반, Beatrice는 Clinton Haskell의 경영 하에 지리적 확장을 계속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1952년에 Haskell이 죽자, 노스웨스턴 법대 출신으로 Haskell 밑에서 부사장을 지내던 William Karnes가 사장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전임자 이상으로 기업인수를 통한 확장의 적극 지지자임이 드러났다. Karnes가 취임하고 3년 동안 Beatrice는 미국에서 7번째로 큰 유제품 업체였던 Creameries of America를 포함해 26개의 새 유제품 공장을 사들였다. 이 인수는 그때까지 Beatrice가 한 것 중 가장 큰 합병 건이었고, 그 결과 Beatrice는 장부가 6,670만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태평양에서 대서양까지 전 지역에 유제품을 판매하는 업체가 될 수 있었다. [그림 4]는 1911-1988 기간 동안 Beatrice의 자산을 표시한 것이다.

1955년 1월 3일, Beatrice는 캔디바를 제조하는 전국구 업체인 D. L. Clark를 인수하며 과자 산업에 뛰어들었고, 2년 후에는 Bond Pickle을 인수하며 비 유제품 사업을 담당하는 식료품 사업부를 설립했다. Beatrice는 유제품 사업도 계속해서 확장해 나갔다. 1961년에 말레이시아에 연유 공장을 세우며 해외 시장으로 진출했고, 1962년 9월에는 연간 1800만 달러의 매출을 가진 벨기에의 유제품 업체 Cie Lacsoons를 사들였다.

Beatrice는 1964년 레스토랑과 호텔 용품 제조업체인 Bloomfield Industries를 인수하며, (기존 사업과) 비연관 다각화의 첫 발을 내디뎠고, 1965년 6월엔 광택제와 목재 금속 코팅의 원재료인 폴리머를 제조하는 Stahl Finish and Polyvinyl Chemicals를 사들였다. 이들 인수는 복합기업(conglomeration)을 향한 Beatrice의 첫 행보였다. 이후 Beatrice의 인수는 다양한 이질적인 산업들에 걸쳐 진행된다.

Beatrice의 비식품 제품군으로의 진입은 부분적으로 (독과점과 불공정거래를 규제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가 행동에 나선 데 따른 것이었다. 1950년 Celler-Kefauver법의 제정에 따라 미국 정부는 전국적인 인수합병에 대응을 시작했다. 이 법은 합병에 관한 기존의 법률인 Clayton법의 제7조를 크게 강화했다.

1956년에 FTC는 1950-1956년 기간에 진행된 대기업의 낙농업 합병에 대한 일련의 공식적인 고소를 진행했다. 이중 하나가 Beatrice를 겨냥했고, Creameries of America 합병을 포함해 1950-1955년 사이에 진행된 다섯 건의 합병을 문제 삼았다. 1965년 4월에 이르러 FTC는 3,500만 달러(매출 합산으로는 5,630만 달러) 규모의 매각을 해야 하고, 향후 10년간 FTC의 사전 승인 없는 낙농 관련 합병은 금지한다는 평결을 내렸다. 이후 계속된 항소를 통해 FTC와 Beatrice는 매출 2,700만 달러 상당의 공장을 매각하고 액체 우유와 낙농 산업 분야에서 추가적인 인수합병은 자제한다는 합의에 도달한다. 어쨌든 Beatrice는 1961년 이후 그런 인수를 하지 않았고, 양도 대상이 된 자산들은 1969년 1월에 단일 구매자에게 판매되었다.

낙농산업 합병에 대한 FTC의 규제는 복합기업 유형의 합병에 뛰어든다는 Beatrice의 결정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FTC가 이에 대해서는 제약을 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5년에 시작된 확장 캠페인은 다양한 산업의 업체들을 겨냥했다. 1975년이 되자 Beatrice의 18.3억 달러의 매출 중 29%, 순익의 21%만이 유제품 산업에 속했다. 매출의 28%, 순익의 44%는 식품산업 밖에서 발생했다.

Karnes의 지도 하에, Beatrice의 분석가들은 수익성이 있는 인수가 가능한 미발굴 분야를 찾아내기 위해 많은 산업의 미래전망을 연구하여 보고했다. 예컨대 1967년 Beatrice에서는 “가정 고객을 위한 DIY시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매우 빠른 성장과 잠재적 수익이 기대된다”고 판단했다. 그에 따라 1967년에는 DIY 원예 장비를 생산하는 Melnor Industries를 인수했고, 1967-69년 중에 Beatrice는 7개의 추가적인 홈 프로덕트 회사를 합병했다. Karnes의 임기 내내 Beatrice는 이와 유사한 인수 패턴을 반복했다. 즉 어떤 산업을 조사한 다음, 첫 번째 인수를 준비한다. 그리고 이를 교두보로 삼아 같은 사업분야에서 복수의 후속 인수가 진행된다는 식이다.

[그림 5]는 이러한 인수 패턴을 보여준다. 이 패턴에서 놀라운 점은 Beatrice가 제한된 기간 동안 특정 산업에 속한 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다음 그리고는 다른 산업으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회사는 1963-1975년 사이에 9개의 제빵업체를 인수했고, 1967-1973년 사이에는 레크리에이션 기구 업체를 9개 사들인 반면, 그 외 기간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Karnes는 잠재적 인수대상이 충족해야 할 4개의 평가기준을 갖고 있었다.

첫째, 인수대상 회사는 식품 산업보다 빨리 성장하는 산업에 속해야 하고, 독자생존 가능하며 수익이 나야 한다.
둘째, 인수대상 회사는 (누구나 만드는) 일반 물품(commodity)을 만들면 안 되고, 특징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Beatrice가 인수한 뒤에도 남아서 일할 유능한 경영자를 가진 회사여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Karnes는 Beatrice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를 사들이기를 원했다.
[그림 4]는 이 기준이 사실임을 보여준다. Creameries of America를 유일한 예외로 보면, Tropicana 인수 전까지는 어떤 인수도 자산의 장부가를 9% 이상 늘린 적이 없었다.

Beatrice는 어떤 산업에서 자기가 원하는 회사를 정확히 찍은 다음, 그 회사를 주의 깊게 연구했다. Beatrice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회사의 현직 경영자의 자질이었다. Beatrice가 매수한 회사들의 대부분은 가족이 운영하는 기업이었고, Beatrice가 이런 인수를 통해 회사들을 성장시키겠다는 약속과 정말 그렇게 한다는 평판이 이러한 인수를 수월하게 했다. Beatrice가 인수대상 기업을 결정하면 Karnes는 보통 자신이 직접 나서서 경영자들을 만났고, 협상도 직접 했다.

이 전략은 Beatrice로 하여금 낙농 사업을 경영할 때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조직 구조를 갖고 회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즉 각각의 기업인수에는 그 회사의 성공적인 경영진이 함께 따라오므로, 지주회사의 최고경영진은 자회사 경영보다는 기업인수에 집중하는 것이다.

Beatrice의 각 사업부는 자체의 CEO가 있었다. 본사는 채용, 해고, 승진에 관한 결정, 급여수준의 결정, 원자재 구매, 광고와 제품 홍보를 사업부 경영진에게 위임했고, 자회사의 자본지출, 차입, 재고수준 정도만 통제했다. 사업부에서 본사로 보내는 정보의 기본형식은 판매와 수익 데이터가 담긴 공장의 월간 재무보고였다. 이 보고가 만족스러우면 본사는 사업부의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이러한 분권화된 구조의 일환으로 Beatrice는 사업부 경영진을 위한 인센티브 보상 시스템을 확립했다. 각 경영진은 기본급에 더해 세전 이익의 2%에 해당하는 보너스를 받았고, 사업부 경영진 중 많은 이는 스톡옵션도 받았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1957년에 처음 도입되었고, 빈번히 확장되었다. 스톡옵션 계획은 모든 공장 경영진이 포함되도록 확장되었고, 일부 경우에는 하급 직원에게까지 주어지기도 했다. 이에 더하여, 경영관리자들은 강력한 내부 승진 시스템에 의해 동기부여되었다. 1980년까지, 회사의 모든 독립 또는 사업부 경영관리자는 내부승진자였다.

다각화에서 가치의 원천

사장 겸 CEO로서 Karnes가 재직하는 동안 Beatrice의 매출은 1952년의 2.35억 달러에서 1976년의 56억 달러로 늘어났고, 이 기간 중 주주들의 수익은 연 평균 14% 이상이었다. Karnes가 퇴임할 때, Beatrice는 27개 국에서 여러 산업분야에 걸쳐 활동하는 다국적 복합기업이 되어 있었다.

수십 년 동안, Karnes의 인수 전략에 대해 시장은 우호적으로 반응했다. ([그림 1] 참조) 이 가치 증가의 원천은 전임자인 Clinton Haskell이 유제품 사업에서 추진했던 지리적 다각화에서 발생했던 것과는 달랐다.

Neil Gazel(1990)은 자신의 책 Beatrice from Buildup to Breakup에서 Beatrice의 분권화된 조직 구조와 자금 할당에 관한 Karnes의 통제가 이 회사의 탁월한 성과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한다. 사업부의 경영에 관여하는 것을 자제한 Karnes의 수준은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다. Beatrice는 인수한 회사의 운영을 모회사와 통합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Karnes가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는 “synergy”란 단어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개별 회사로 인수했던 사업부들은 나중에 1980년대 들어 개별적인 인수자들에게 “그 모양 그대로” 되팔려 나갔다. 심지어는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통합의 명백한 기회가 있었던 회사인 Sexton food distribution business 같은 회사 조차도 인수 14년 후에 독립 기업으로서 되팔려 나갔다.

여러 산업에 걸친 Karnes의 다각화의 패턴과 논리가 전임자인 Haskell의 지리적 다각화 전략과 얼마나 비슷한가 하는 점은 언급할만한 가치가 있다.

첫째, 한 건의 기업인수를 통해 어떤 산업에 진입한 후, 같은 산업에 대해 더 많은 인수를 진행하는 패턴은 한 지역에 작은 낙농장을 산 다음에 같은 지역에 더 많은 낙농장을 사들이는 전략과 매우 유사하다. Beatrice가 지리적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게 해주었던 조직의 역량 – 한 지역 또는 산업의 인수 후보를 평가하는 능력, 경영진을 평가하는 능력, 분권화된 통제 시스템 – 은 지리적 확장에서 잘 동작했던 것처럼 여러 산업에 걸친 다각화에도 잘 들어맞았다.

덧붙여서 이 확장 전략은 이 회사가 잠재적 인수 표적에 대한 정보를 얻는 매우 유용한 원천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은 앞서 인수한 회사의 경영진의 지식과 의견이다.

많은 경우에 Karnes는 자신의 경영진들이 보유하고 있는 다른 회사에 대한 인맥과 정보를 유용하게 써먹었다. 해당 경영진의 수준에 대한 주관적인 정보라든가 어떤 회사의 창업주는 은퇴하고 싶어하는데 자식들은 물려받고 싶어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구체적 사안에 대한 지식들은 기업을 인수하려 시도할 때, Karnes에게 엄청난 이점을 주었다.

한 산업에서 다음 산업으로 넘어가면서, Beatrice는 이러한 정보의 원천을 기업인수의 지침으로 활용했다.

Karnes는 Beatrice가 특수 화학 산업에서 처음 인수했던 Stahl Finish사의 Harry Stahl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다. “그가 우리를 한 화학 회사에서 다음 회사로 이끌었다” 또 Gazel(1990)에 따르면 Dannon Yogert(초기에 인수했던 회사들 중 하나)의 공동창업주였던 Joe Metzger는 Beatrice의 국제적 식품업체 인수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Beatrice가 활용했던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의 원천은 작은 비상장 기업에게 자본과 전문적인 경영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William Karnes의 임기 동안 이루어진 대부분의 기업인수는 비상장의, 가족경영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이러한 회사들은 자본 접근능력이 떨어졌을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정교하지 못한 방법으로 운영되었고, 체계적인 경영 시스템을 거의 갖추고 있지 못했다. 1960년대에 공식적인 경영 교육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Beatrice가 보유한 소수의 스태프들은 대부분 회계사였고, 근대적인 경영관리 기법들을 인수된 회사들에게 전수해주고, 그들이 자기 회사를 경영하고 확장할 수 있게 도와줌으로서 해당 조직에게 귀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경영관리 교육은 Beatrice가 자회사 경영진에게 제공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Beatrice는 자회사 대표들과 정기 미팅을 갖고, 거기서 경영상의 문제들을 토론하고, 경영대학 학자들을 불러 강연하게 했다. 또 이런 미팅에는 소그룹 세션이 포함되어 있어서, 거기서 동종업계 회사들에서 온 경영진들이 모여 공통의 문제들을 논의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영관리 교육과 시스템을 이들 작은 기업에게 제공해 줌으로서, Beatrice는 이들 기업이 훨씬 더 가치 있도록 만들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Beatrice는 이들 작은 비상장 기업들에게 자본을 제공해 줌으로서, 그들이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경제호황기에 사업을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 시기의 자본 공급자들, 특히 상업은행들은 작고 정교하지 못한 경영진들에게 기업확장자금을 대출해 주기를 꺼렸으며, 은행들이 이들의 사업이 망했을 때 담보의 가치를 판별할 역량이 있는 전문가들을 별로 보유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반면 Beatrice는 낙농 부문으로부터 상당한 자금을 끌어다 이들 회사에 “빌려줄” 수 있고, 그들의 차입금이 잘 쓰이고 있는지 효과적으로 감시할 능력도 있으며, 경영관리 전문가들을 제공하고 그럴 필요성이 생긴다면 대체 경영진을 투입할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 Beatrice는 이들 사업부의 운영을 더 큰 회사로 통합하지 않으면서도, 이들 회사와 자사에게 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by sonnet | 2018/11/21 23:41 | 경제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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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Fedaykin at 2018/11/22 11:43
아아...여기까진 너무나 아름다운 자본주의의 사이클이군요. ㅠㅠ
Commented by 일화 at 2018/11/25 19:25
인수합병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모범사례네요.
Commented by 루시앨 at 2018/11/28 03:45
앞부분만 놓고보니 옐로 모바일이 생각나네요 ㅎㅎ 인수 합병 전략은 꽤 다르지만 수익 추구에 있어서는 같은 모델처럼 보입니다. 암튼 뒤가 기대됩니다 :)
Commented by dd at 2018/12/01 15:37
이글과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진행중인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의 결말은 어찌될거 같으신가요? 자꾸 미국쪽에서 "완전한 비핵화가 선결조건"이라는 당연한 말이 당연하지 않은것처럼 나오는걸 봐선 약간 불안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8/12/03 21:13
별 근거는 없지만 그냥 찍기로만 말씀드리자면, 협상 타결 후 실행 과정에서 합의 붕괴 (기존에 반복되었던 실패유형) 를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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