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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전통 붕당관
원래 동아시아에서 전통적 붕당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앞서 언급했듯, 하나는 옹정제가 쓴 「어제붕당론」이 대표하는 것으로, 모든 붕당을 악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모든 신민은 군주에게 직접적으로, 일원적으로 충성을 바쳐야지, 그 사이에 붕당이 끼어드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이때 붕당은 권력 정통성의 유일한 담지자인 군주에 대한 충성을 방해하는 존재로 가차 없이 규탄된다.

또 하나는 송나라 학자 구양수의 「붕당론」으로 대표되는 것으로, 군자의 붕당과 소인의 붕당을 준별하여, 전자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양수의 붕당론 역시 군자당만을 인정하고 상대 당을 소인당으로 매도하여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복수 정당의 공존을 인정하는 근대적인 정당관과는 다르다. 구양수는 군자당만을 유일당으로 인정하고 이 유일당이 군주 권력을 보다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오히려 옹정제의 군주독재 체제를 옹호하고 보완하는 길로 들어설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근대 이후 중국의 국민당이나 공산당의 일당 통치와 당국 체제(黨國體制)의 옹호, 군국주의 일본의 대정익찬회(大政翼賛会) 등은 바로 이런 붕당관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조선에서는 17세기에 복수 붕당의 공존 가능성이 잠시 보였으나 결국 격렬한 당쟁의 반복, 그리고 이를 억누르려는 왕권 측의 반격(탕평책)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19세기 들어 처음으로 활발한 당파 정치와 당쟁을 경험한 일본에서 역시 당파 정치와 붕당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당파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경우에도 자신의 당은 정의당이고 상대 당은 속론당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난 예는 거의 없었다. 구양수 「붕당론」의 재판인 것이다. 당파 정치의 장점을 인정하고 복수 정당 공존을 긍정하는 이론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그 연장선상에서 메이지 초기 정당론도 정당 무용론과 ‘올바른 유일 정당론’[公黨]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판자들은 정당이 공익과는 관계없이 사적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결국 공적 이익을 해친다고 보았다. 그리고 정당 간의 투쟁은 사회적 낭비이며, 나아가 사회를 동요시키는 불안 요소로 파악했다. 이런 관점은 현재 한국이나 일본의 시민이 정당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동아시아의 정당들은 100여 년 동안 이런 자신들에 대한 혐의를 불식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군(君)과 민(民) 사이에 정당이 끼어들지 않는 일군만민(一君萬民)적인 정치체제를 지향하든가, 정당을 인정하는 경우라도 유일정당만이 군(君)과 민(民)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메이지 시기 정당 활동을 하던 사람들도 대체로 이런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초의 정당인 애국공당(愛國公黨)은 자신들이 사당(私黨)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당명에 ‘공당(公黨)’을 붙였으며, 자유당(自由黨)은 자신들이 진정한 당이고 상대 당은 가짜 당(僞黨)이라고 규정하여, ‘위당박멸(僞黨撲滅)’을 모토로 삼았다. 이것은 막말기 당파 정치기에 당파들이 스스로를 ‘정의당’이라고 칭하고, 상대방을 ‘속론당’ 등으로 매도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이런 논리는 상대 당의 타당 가능성과 자신들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 당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일 정당 체제로 가는 맹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자유당과 쌍벽을 이루던 입헌개진당(立憲改進黨)이 그 발기 취지서에서 목표를 ‘유일 정당’의 건설로 삼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나중에는 복수 정당의 공존을 받아들이게 되지만, 정당 도입의 초창기에 정당을 부정하거나 유일 정당을 지향하는 관념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는 점은 정당에 대한 이후 일본인의 태도를 크게 규정했다고 볼 수 있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초까지의 다이쇼(大正) 정당정치가 그토록 맥없이 무너지고 독일 나치당을 모방한 대정익찬회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탄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전후 완벽한 민주적 선거가 보장된 상태에서도 유권자들이 자민당의 일당 지배를 약 50년 동안 용인한 점, 그리고 현재의 정당정치가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점 등도 이런 맥락에서 보고자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박훈,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민음사, 2014, pp.219-221



널리 자리잡은 전통적 정치관이 지속적인 영향을 준 것도 있겠지만, 정의가 여기도 있을 수 있고 저기(반대당)도 있을 수 있다는 건 역시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지기는 함. 그런 의미에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자연스러운 장기존속가능한 다당제(loyal opposition)라는 개념은 때가 되면 세계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발명될 수 있는 그런 흔한 물건이 아니라 독특한 발명품인 것 같음.
by sonnet | 2018/08/07 12:16 | 정치 | 트랙백 | 덧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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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Fedaykin at 2018/08/07 12:33
민주주의 기반으로 계급과 계층을 대변하는 당이 나오지 않는 이상 붕당이라는건 지지받기 어려운 형태일까요. 흠...
Commented by sonnet at 2018/08/27 00:32
사실 제 개인의견만 말씀드리자면, 저는 대중(계급)정당은 실제 우리나라 정치를 설명해 주는 이론도 아니고 나아갈 길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sociolib at 2018/08/27 12:08
그러면 sonnet님께서는 우리나라 정당정치가 나아갈 길은 대중정당이 아니라 간부정당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인지, 그렇다고 하면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드린 질문은 간단한데 답을 간결하게 하시기는 여의치 않은 경우일지 걱정됩니다.. 혹시라도 너무 번거롭게 해 드리는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8/08/27 14:22
이게 늘 그렇지만 규범적인 것과 실증적인 것으로 나뉘는데요.

일단 저는 한국 주요 정당이 예나 지금이나 대중정당이 아니고, 역사적으로(경로결정적으로)도 유사하지 않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한국 정당의 미래 모습은 이런 현실(정당을 둘러산 환경, 역사적으로 형성된 기대expectation, 내부 동학 등)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결국 현재를 많이 상속하고 일부만 현재에서 파생된 모습으로 연속선상에서 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과거(실증적)가 미래를 강하게 구속할 것이기 때문에, 미래의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을거라고 보는 입장이어서, 규범적인 주장을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듯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겠네요.
Commented by 일화 at 2018/08/08 10:34
이렇게 보니 박멸의 정치에도 나름의 전통이 있었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8/08/27 00:33
사실 이거는 유구한 전통입죠.
Commented by deokbusin at 2018/08/08 21:17
사실, 서양 의회정치에서 다당제가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영국 의회에서 토리와 휘그로 분화되는 18세기 부터고, 그 이전에는 의원들이 각개약진 하거나 아니면 한국과 일본과 비슷하게 의회내 유일 권력 장악을 목표로 악착같이 다투거나 둘 중 하나였죠.


뭐, 근대 의회민주주의 제도의 정신적 기반은 군주가 유력자들을 휘어 잡는데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쫓겨나버린 고대 아테네 정치의 전통과, 군주는 인정하지만 그 군주가 전제적으로 자기들을 지배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반대함으로써 "통치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중세 게르만 전사의 전통이 융합한 것이라서, 그러한 정신적 기반이 전혀 없는 동아시아에서 의회 민주주의 정치가 서양-특히 미영불독-에서 보여지는 것과 동일하게 작동하기를 바라는 것이야 말로 염치가 없는 일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18/08/27 00:34
거기까진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가 70년(혹은 6공의 30년) 간 해오고 있는 정당정치를 잘 설명하는 이론은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까지는 수입 이론의 기계적 적용이 너무 강하다는 생각이...
Commented by paro1923 at 2018/08/09 02:46
하긴, 우리나라 정치도 서로 자신들'만'이 정의라고 외치는 정당들이 아귀다툼을 하는 상황이죠. 그나마 민주화 이후로 '더 나쁜' 독선에 빠진 정당을 투표로서 발목잡는 정도의 양식은 가지게 된 것 같지만, 어지간히 실정(失政)을 하지 않는 한 군주(이 경우엔 대통령)를 붕당보다 더 신뢰하는 점에선 우리나라는 아직 전제군주정 시절 마인드도 짙은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8/08/27 00:38
저는 6공에선 약 10년 주기로 정권이 오가고 있는 것이 정당정치의 정착을 위해선 비교적 건전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야당으로 있다가 재집권은 가능하다는 관례를 쌓고 있으니까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18/08/27 02:46
하지만 여전히 '특정 야당'만이 서로 공을 주고받는 사실상의 양당제라는 점에선 갈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8/08/27 13:43
1. 한국은 6공화국(87년체제) 이후 2.5당(양당체제 + 여기 만족하지 못하는 군소정당 하나) 정도로 굴러가는 것 같은데, 그 중에서도 .5당 쪽은 훨씬 불안정하다 내지는 생존이 어렵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2. 저는 내각제와 다당제는 잘 동작하나 대통령중심제와 다당제는 상성이 별로다라는 학설이 일리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래서 저는 장기적으로 양당제(또는 불만세력을 체제 내에 묶어두고 희망고문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2.5당제)가 예상가능한 제일 좋은 미래가 아닌가 합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18/08/28 01:47
의외의 학설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영국은 역사적 배경이 아예 다르고,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떠올려보니 그럴듯하긴 합니다. 일본도 이른바 '자민막부'라고는 해도 실제로는 공명당 등과 합종연횡을 하니...
Commented by d/s at 2018/08/12 08:55
이 글을 읽고 떠오르는게 이슬람 내 교의 논쟁..
Commented by sonnet at 2018/08/27 00:36
사실 또 적지 않은 종교논쟁이 숙청과 전쟁으로 비화하곤 했잖습니까.
Commented by 잡지식 at 2018/08/16 02:31
전직 대통령들이 망명-암살-수감-자살-탄핵의 브루스를 추는건 이런 풍토가 큰 요인이려나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18/08/23 01:33
'자살 - 탄핵'을 제외한 나머지 경우에는 아예 공당이니 위당이니 하는 게 끼여들 여지조차 없었던 것 같지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8/08/27 00:39
조금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at 2018/08/18 13:40
정통붕당관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고요.
윗분말대로 대통령을 정당보다 신뢰하기도 하고 정당은 사당으로 보는 반면 대통령은 공명정대한 정의의 실천자이길 원하고 있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사견이고 뱀발인데 좋은 차르 신화같은 면도 남아있어서 정당을 나쁜 신하로 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8/08/27 00:36
좋은 황제에 대한 환상 이야기는 마오주석에게 기대를 걸었다가 얻어터져 죽은 선비들을 나열하면서 중국 연구자들도 많이 하는 것 같더군요.
Commented by 정보분석관 at 2018/09/12 09:12
전공시간에 배운 얕은 지식을 말해보자면 deokbusin 님이 말하신 게르만 전통이란 기사의 쌍무적 계약을 말하는것으로 전제정치가 아닌 봉건적 관계가 군주-신하, 귀족-길드의 시민, 중앙-지방 에서 오른쪽의 자율성을 배태했다고 보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모르시나 싶어서요..
Commented by ㅇㅇ at 2018/10/21 19:51
붕당이 뭐든 간에 국가공권력과 개개인 사이를 가로막는 존재가 되선 안되겠죠 경제로 치면 과도한 유통구조 중간상인 언론으로치면 조중동같은 언론권력 즉... 공권력에 개기고 국민을 우롱하는 중간권력이 활개치면 문제가 생긴다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자유주의 보다는 공화주의로 가는게 맞는것 같네요 유감이지만 자유주의는 개인주의도 아니고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 중간권력 카르텔의 자유로 변질되는 걸 세계역사속에서 많이 봤거든요 한국사로 치면 조선시대 유교양반사대부 같은.. 오늘날 한국으로 치면 대기업이나 조중동같은.. 아무튼 저런류의 중간권력이 나라와 국민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면 저런 세력을 견제할 또다른 집단이 필요한것 같네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18/10/25 02:56
실제로는 그런 '견제'를 외치며 나온 집단이 또 다른 '중간권력'으로 변질되는 게 대부분이지만요. (말씀하신 형태의 집단이 바로 '붕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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