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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은 이해받을 수 없다 - 영화 『국제시장』 감상

이하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를 알퐁스 도데의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과 비교를 해보자.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에서 풍차방앗간의 허세가 드러났을 때, 마을 사람들은 십시일반 일거리를 만들어서 영감의 마지막 자존심인 풍차방앗간의 가동을 보장해준다. 영감이 눈을 감는 그날까지. 그러나 『국제시장』은 그렇게 훈훈한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70대가 된 덕수는 마을(국제시장)사람들은 커녕 가족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 자식세대는 낡은 가게 '꽃분이네'에 집착하는 그를 시대착오적 고집불통 영감탱이로만 본다.

그리고 이것은 자식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세대인 여동생 끝순은 주인공의 덕을 많이 봤고 또 그가 다리를 절게 되는 원인까지 제공했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며 '꽃분이네'에 집착하는 마음도 모르고 덕수를 구박하는 대열에 동참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평생 생사고락을 같이 한 친구 달구도 이 점에선 마찬가지이다. 그는 발빠르게 현재에 적응해 낡은 '꽃분이네'와 대비되는 최신 멀티플렉스 극장주로 변신해 주인공을 핀잔주는 입장에 선다. 주인공을 위해 많은 희생을 했으며 나쁜 점은 하나도 없는 인물로 그려지는 아내 영자조차도 덕수를 이해 못하는 측면이 상당하다. 아내에겐 덕수가 선장이 되고 싶었다는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고, 덕수가 왜 남진을 그렇게 고집하는지도 모른다.

굳이 말하면 주인공과 비슷한 입장에 서 있는 인물은 어머니이다. 어머니와 주인공은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목표를 위해 발버둥쳤다는 점에서 입장이 일치했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30년 전인 1984년에 돌아가셨다. 그 30년이 흐르는 동안 덕수는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집불통 영감으로 굳어져간 것이다.

이 갈등은 결말에서 주인공이 아버지의 환상 앞에서 지금까지 '가장이 되어 가족을 지키라'라는 마지막 부탁을 따르기 위해 노력을 다했음을 고한 후 과거를 정리하는 것으로 해소된다. 덕수는 아내에게 "인자는 (아버지가) 못 오시겠지"라며 필생의 숙원이었던 가족재결합의 희망을 상징하는 거점인 가게를 포기한다.


아무리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더라도, 또 그게 당사자에게 아무리 중요한 것이더라도, 결국 가족 더 나아가 세상은 당신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 당신 세대들조차도 당신의 편은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의 세계에서 당신은 결국 혼자이다. 유일한 해법은 당신이 스스로 결단을 내려 먼저 손을 내밀고 세상과 화해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영화가 내게 준 거친 메시지인데, 나로서는 이것이 구세대에게 온정적이라거나 삼키기 쉬운 처방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덧붙임: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캐롤』을 연상케 하는 데가 있다. 스크루지 영감은 크리스마스 유령의 손에 이끌려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본다. 『국제시장』의 경우 우리는 오늘의 덕수를 만들어낸 과거와 현재를 본다. 미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고집을 계속 부릴 경우의 경로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덕수는 아버지 유령을 만나고 그에게는 선택이 주어진다.


덧붙임(2):
핵가족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사람은 일생동안 두 개의 가족에 소속되어 살아간다. 즉 태어나서 부모와 형제로 구성된 [첫 번째 가족]에 속해 있다가 결혼을 기점으로 첫 번째 가족에서 떨어져나와 나와 아내, 자식으로 구성된 [두 번째 가족]을 구성한다.

이제 영화는 덕수의 인생을 특징짓는 4개의 사건을 보여주는데, 이 모든 것은 [첫 번째 가족]을 위한 것이다. 1)흥남철수-첫번째 가족에 대한 의무의 부여, 2)파독광부-남동생 대학보내기, 3)베트남행-여동생 시집보내기, 4)이산가족상봉-잃어버린 여동생 찾기. 세 번째 사건인 '베트남행'에 이르러 [두 번째 가족]을 대표하는 아내는 [첫 번째 가족]에 매진하는 주인공과 충돌한다. "당신 인생인데, 그 안에 왜 당신은 없냐구요!"

즉 이 영화는 가족을 위해 주인공의 삶을 희생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첫 번째 가족]을 위해 [두 번째 가족]을 희생한 이야기이다. [두 번째 가족]은 거의 아내가 챙겼고, 이는 두 번째 가족 사이에서 고립된 주인공과, 할머니만 찾는 손자손녀들 같은 장면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니 젊은 세대가 자신과 가까운 [두 번째 가족]의 입장에 서서 영화를 본다면, 주인공이 고생했다는 건 알겠는데, 계속 후순위로 밀린 [두 번째 가족] 입장에서 별로 고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남들은 30세 전후에 하는 [두 번째 가족]으로의 중심전환을 덕수는 70이 넘어서야 한다. 늦깎이 어른이 된 셈이다. 돌이켜 보면 네 번째 사건이 끝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시점(40대 초반)에는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by sonnet | 2015/01/04 02:37 | 문화 | 트랙백 | 덧글(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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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paro1923 at 2015/01/04 06:53
적어도 정치적인 시각을 끼워넣을 정도의 영화는 아니었다고 보는데, 어쩌다 그렇게 불길이 일어버린 것일지...
Commented by 카이하넬 at 2015/01/04 09:59
허지웅이 한 마디한 걸 이때다 하고 달려든 듯 합니다.

국제시장 영화자체를 깐 것도 아닌데 그냥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듯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5/01/04 12:11
어떤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니까, 그게 불리한 이야기를 피해가는 약은 전략이다. 뭐 이런 이야기겠죠.
Commented by 진보만세 at 2015/01/04 13:34
"개인적인 경험의 세계에서 당신은 결국 혼자이다" - 글월의 핵심이라 여겨집니다.

아무리 부모 자식간이라 할 지라도, 가장 가까운 혈육이나 사랑이 중병에 걸려 고통을 받는다 할 지라도 결국 고통받고 죽어가는 당사자, 즉 '개인'이 짊어지고 '개인'만이 안고가다 끝나는 것이 아닐런지

세간에서 말하는 '단장'의 슬픔이나 통곡도, 사실 주변인들이 피해 or 고생의 지인들을 보고 '감정이입'해서 느끼는 '본인'의 '만들어진' 관념에서 우러나온 슬픔이자 통곡이지 '온전하고 무결한 100%' 이해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없고..

소설가 '김훈'씨는 이 '개인'과 '개인'간의 메워질 수 없는 영원한 간극을 두고 '지옥'이라 평하기도 했죠..

해법으로 '화해'를 제시하셨지만, '화해 = 패배'로 인식되는 21세기 작금의 한국사회에선 말씀하셨듯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 사료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5/01/04 14:00
맞습니다.
Commented at 2015/01/04 12: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5/01/04 13:59
네. 두 번째 문단에 동의.
기본적으로 오락영화라서 그냥 보고 즐기면 되는데, 굳이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간다면... 또 그렇게 일방적으로 노년세대의 손을 들어주는 결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at 2015/01/05 18:36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at 2015/01/04 14: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5/01/04 19:06
한 쪽에 걸어야 한다면 말씀하신 쪽에 걸어야 할 것 같아요. (웃음)

저는 전반적으로 이 영화의 만듦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등짝에 이만기, 현대건설 적어주는 건 목에 관삽입하고 뭐 주입하는 느낌이고... 추억의 현장마다 연달아 폭발로 정리하는 거나...분노의포도나 워터프론트 같은 느낌으로 세련되게 만들면서도 계속 블록버스터일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
Commented by 잉여킹 at 2015/01/04 16:02
정작 덕수와 같은 세대 같은 처지의 사람들 - 첫번째 가족을 위해 두번째 가족을 희생한 - 이나, 그 아버지의 이념(?)을 먹고 자라 그 이념을 새긴 사람들 - 이 영화에 열광하는 사람들 - 에겐 거친 현실 얘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외로운 세상에서의 공감과 위로를 주는 영화겠죠.

그런 부류의 젊은이들이 주로 서식하는 모 커뮤니티에서 자신들을 고독한 투사들로 미화하는 면도 어찌 보면 비슷하고 말이죠. 거기에 반발하는 허지웅 등도 결국은 첫번째 가족을 위해 두번째 가족을 희생하고 싶지 않은 반발심 - 그들이 이 영화의 내용을 '아버지가 밥상머리에서 맨날 하던 얘기의 영화화' 라고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 이 작용한 듯도 하구요.

뭐 그렇게 보면 넓은 의미로는 충분히 정치적이지 않나 싶네요. 첫번째 가족을 위해 두번째 가족을 희생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문제. 혹은 대가족 시스템과 핵가족 시스템의 충돌.
Commented by sonnet at 2015/01/04 19:21
그러려면 추억의 네 에피소드 부분만 인정하고 '현재' 파트에 나타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으로 무시해야 가능할 것 같아요. 러닝타임만 놓고 보면 확실히 회상 부분이 길지만, 현재가 결론을 내는 지점이라 거길 무시하면 개별 에피소드들이 연결이 되질 않죠.

그런데 현재를 보면 덕수는 열심히 산 것 같지만, 어째서인지 스크루지 영감이 되어 있고, 그리 좋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 지점에서 영화는 계속 그렇게 살지말라고 슬쩍 권하는데, 이것도 못들은 척 해야 하구요.
Commented by 잉여킹 at 2015/01/04 16:13
그래도 '첫번째 가족을 위해 두번째 가족을 희생한 이야기' 라는 건 꽤 적절한 평이네요. 정당정치와는 다른 측면에서 다분 정치적인 내용의 영화라 그런지 글쓴이의 이념과 사상에 따라 극과 극의 구름잡는 평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저 표현은 핵심을 찌른듯한 말인 듯.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넘어가는 압축성장 시대의 과도기적 혼란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Commented by 행인1 at 2015/01/04 19:08
1. 첫번째 가족을 위해 두번째 가족을 희생시키는 줄거리라니 약간만 비틀면 '사랑과 전쟁' 소재거리가 될성 싶기도...

2. 세상과의 불화와 화해라니 왕년에 어느 소설가분이 낸 책 제목 같기도 하네요.
Commented by 아직미정 at 2015/01/04 21:29
와! 제가 평소에 하던 생각과 이 영화를 관람하고 든 감상 모두 이 글과 비슷해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영원히 1인칭이고 타인과 나사이에는 필연적으로 불이해가 수반되는 것아닐까요? 이 영화를 둘러싼 여러가지 잡음들은 현사회의 품격이랄까요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같아서 개인적으로 보기좋지는 않네요. 글 잘읽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5/01/06 20:22
말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band at 2015/01/04 22:45
영화는 안봐서 자세히는 모르고 감정이입은 두번째 가족에 해당되는 입장이라......가족이라는 구성요소는 18세 이후로는 철저히 이해관계로 연결되었던 느낌입니다. 내가 성공(돈많이 벌어야)해야 동정이라도 받지......잘해줘봤자 돌아오는건 없는......
Commented by 나츠메 at 2015/01/05 01:15
덕수에게 요구되는 공동체적 기대는 아버지를 대신한 '가장'으로 지시되는 것에 반하여, 가장의 역할을 요구하는 구성원 간에는 정작 가장에 대한 이해와 합의가 부족했던 점. 그로인해 '희생하는 삶'을 살았으나 정작 그 희생이 개별적 자아의 숭고한 선택으로 이해받지 못 하고 노인네의 '주책없는 고집'으로 수용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전쟁과 흥남부두 철수, 국제시장에서의 억척스런 삶, 파독광부 등등, 대외적인 삶에 있어 덕수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 장면마다 한 가닥씩 발을 걸치며 나름의 사회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고집불통 노인의 가족사적 접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성취를 이룬 세대가 맞이하는 노년기의 삶의 단면을 다각적으로 부각하려 한 시도가 아닌가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5/01/06 20:27
하나 질문하고 싶은데, 주인공이 아버지의 부탁하고 아내의 요구 사이에 균형을 잡았다고 생각하세요? 유연하게? 저는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Commented by 아텐보로 at 2015/01/05 05:12
국제시장을 보면서 뭔가 붕뜨는 느낌이 들었는데 정리를 잘해주신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아리 at 2015/01/05 12:51
그저 한없이 주인공이 불쌍해지더군요. 김윤진과 뜬금없이 국기에 대한 경례하는 장면도 얼마나 국가가 거대한 압박의 대상으로 다가오면 저럴까 싶기도 하고. 아마 저 세대가 맹목적인 애국심을 기대할 마지막 세대 아닐까 싶더군요.
Commented by ㅈㄴㄱㄷ at 2015/01/05 14:19
제목 보다보니 you are (not) alone 이란 표현이 생각납니다.
Commented by jaggernaut at 2015/01/06 16:09
저는 그보다는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에서 주인공 마일즈가 자기 할아버지인 표드르 보르코시건 백작을 회상하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마지막 과거의 보르이자 최초의 새로운 보르였다는.

그의 할아버지는 구 계급제도를 상징하는 완고한 인물이었던 동시에 최초로 신문물과 기술을 받아들여 거기에 적응하고 모국의 독립을 성취한 인물이었습니다.

덕수라는 인물도 이와 비슷하더군요. 과거 전산업시대의 가족이라는 가치에 매달린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산업화의 각종 변화를 빠르게 수용해서 나름의 성취를 이룬 인물이죠.

두번째 가족의 아들, 딸들 누구도 굶주리게 하지 않았고 분위기 상으로는 교육도 받고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것으로 보아 두번째 가족을 첫번째 가족에게 희생시켰다기 보다는 그런 희생을 막기위해 자기 꿈도 접고 묵묵히 걸어갔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진짜 희생이 되려면 갑자기 집을 팔아서 가게를 사고 자식들 학비로 가게를 유지해서 원망받았다 정도 내용은 있어야겠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5/01/06 20:22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덕수가 첫 번째 가족과 두 번째 가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려면 영화에서 덕수의 일생을 묘사하기 위해 "선택"된 4개의 에피소드 중 절반은 두 번째 가족을 위한 사건이었어야 하겠지요.

두 번째 가족의 핵심은 자식들이 아니고 아내입니다. 아내가 덕수랑 비슷하게 두 번째 가족 대신 친정부모형제에 올인했으면 그 집은 완전히 콩가루가 났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 아내가 희생했으니 버틴 거죠. 아내의 불만은 '베트남행'을 놓고 벌인 부부싸움에 잘 드러납니다.

게다가 첫 번째 가족 사이의 불균등한 부담(저만 아는 시누이도 문제거니와, 서울대간 동생은 뭘했길래 이산가족 찾기 할 때도 덕수는 달구를 데리고 뛰어다녀야 하나? 같은) 같은 것도 두 번째 가족 입장에선 당연한 불만거리일테구요.


이건 여담이지만 덕수의 첫 번째 가족은 묘하게도 대가족이 아니라 핵가족입니다. 대가족이었으면 할아버지 할머니 여러 삼촌들까지 붙어서 피난갔을 거고, 또 피난와서도 덕수 같은 코흘리개 꼬마에게 부담이 집중되지 않았을텐데 (이야기의 극적요소를 강조하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렇지 않았죠.
Commented by jaggernaut at 2015/01/06 22:46
두번째 가족에 대한 헌신은 월남에서 보낸 편지, 꽃분이내를 인수하기 위하여 집을 팔지 않고 자기의 꿈을 접는 모습에서 이미 묘사되는 내용이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덕수라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두번째 가족과 첫번째 가족이란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죠. 그가 지키고자 한 전통적 관념의 가족이란 대가족 하에서의 가족이니까요.

소넷님이 지적한 아내의 올인으로 인한 파국은 덕수 관점의 대가족에서나 핵가족에서나 동일하게 초래될 수 있는 파국입니다. 덕수가 그런 올인을 했다면 그는 그냥 집 팔아서 꽃분이네 인수 및 동생 시집보내기를 완수하고, 자기는 그냥 해양대를 가버렸겠죠.

즉, 저는 덕수와 아내 양자 모두가 희생을 하였고 두번째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분명히 형제간의 불균등한 부담이라는 영역은 존재합니다. 그점에 있어서는 동의합니다만, 그 경우에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은 덕수가 아니라 다른 형제들이죠. 다른 형제들이 전체 가족에 대한 헌신을 하지 않은 것이 비난받을 일이지 덕수가 그런 헌신을 한 것이 비난 받을 일은 아니잖습니까. 그가 가족의 생계를 팽개치고 거기 간 것도 아닌게 분명한데 말이죠.

더 무서운 것은 아무도 자식, 아내 등이 아버지의 꿈도, 추억도 물어보지 않았다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를 버려가면서 부양해온 사람을 그냥 돈벌어오는 기계 이상으로 안봤다는게 신기하더군요. 제가 청소년기에 조부나 외조부로부터 밤을 새어가면서 옛날의 일들이나 어렸을 적의 꿈 등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서 들은적이 있어서 더욱 그랬습니다.

진짜로 희생을 강요한 것이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아버지의 사정을 알면서도 그에 공감하지 못하는 가족들과의 갈등이란게 존재했어야 하는데, 아내가 유일하게 월남 가기전에 갈등을 빚은 것을 제외하면 그런 모습이 전혀 안나오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5/01/07 03:24
저도 본문에 썼지만, 주인공이 선장이 되고 싶었던 것이나 가수 남진과의 특별한 인연 같은 것을 아내가 모르고 있는 것은 어딘가 좀 이상하죠. 그런데 그게 정말 말씀하신 대로 아내가 관심이 없어서일까요?

서독에서 덕수와 영자가 데이트를 하다가 영자가 물어보죠.

"제가 어떤 사람인지 한국에선 어디 살았는지, 가족은 어찌되는지."
"그딴 걸 뭐하러 물어봅니까?"
"정말 궁금하지 않아요?"
"뭐 가난했겠죠. 또 큰딸일거고, 동생들이 제비새끼처럼 밥달라고 입벌리고 있을거고, 여기서 번 돈은 남김없이 한국으로 부칠거고."

이게 진짜 영자일까요? 사실 알 수 없죠. 오히려 이건 덕수 자신의 이야기지요. 자기 이야길 영자에게 투영하면서 실제 영자가 어떤지는 별로 알고싶어하지 않죠.

이 부분은 덕수의 성격 혹은 대인관계의 약점을 잘 보여줍니다. 덕수는 언제나 자기 혼자 끙끙 앓으며 고민해서 혼자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사람이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그 의견이 일리가 있을 때 흔쾌히 상대의 의견을 따라 자기 의견을 굽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가 그걸 모르는 것은 주로 덕수가 그런 이야기를 숨겨서이지, 아내가 무관심해서는 아니라고 보는 겁니다. '그딴 걸 뭐하러 이야기하냐?' 이렇게 생각했을 게 뻔하니까요.


이어서 '베트남에서 보낸 편지'를 생각해보죠. 뭐라고 했나요?

"나는 아무 일 없이 편하게 일한다. ... 전쟁과 상관없는 곳에서 참 무사태평으로 지낸다."

이게 사실이냐면 새빨간 거짓말이죠.

덕수는 쉽게 말해서 아내(가족)에게 좋은 것은 아내(가족)가 아니고 내가 안다 내지는 내가 결정한다는 것을 평생 초지일관 밀어붙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영자는 덕수가 뭐든 떠먹여줘야 하는 어린애가 아니고 그 의견을 존중받아야 할 어른입니다. 여동생 끝순처럼 철없는 인물도 아니니까요..

덕수가 베트남으로 갈 때도 또 가서도 계속 거짓말을 하는 건, 허심탄회하게 사실대로 말하면 아내가 옳기에 아내 뜻에 따라야 하기 때문 아닐까요?

사실 서독에 광부로 갈 때도 엄마나 고모가 말립니다. 그 때도 말을 듣지 않았고, 이 때도 말을 듣지 않아요. 늘 이런 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주인공이 객관적으로 고생을 엄청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게 과연 가족에게 잘 한거냐에 대해 회의적인 겁니다. 베트남가서 돈은 벌었지만 다리를 절게 된 것이 아내를 사랑하고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적당한 방법이라곤 보기 힘들지 않나요?


이것은 제가 보는 결말의 가치와도 이어집니다. 이 결말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희망은 스크루지 영감이 거듭나듯이 덕수가 평생 갖고 있던 고집을 드디어 내려놓은 점이라고. 아마 아내에게도 좀 더 솔직한 남편이 될 수 있을거라고.
Commented by jaggernaut at 2015/01/07 09:39
그 시점에서 목돈을 쥐어서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전쟁터에서 일하는 방법 밖에 없었던 사람에게는 조금 가혹한 평가가 아닌가 합니다.

결론에 있어서는 소넷님께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결국 주변의 가치는 변했고, 그가 헌신한 가치를 이해해 줄 사람은 유령 내지는 자기 마음속의 아버지의 추억 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과의 조화를 얻어내는 방법은 덕수가 변하는 방법 뿐이겠지요.

다만 그 비판의 대상은 덕수만이 아니라 덕수의 아들, 딸들도 해당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조부 외조부와 이야기해본 경험으로는 배경의 이유를 알기 위하여는 상당히 돌아들어가야 하더군요. 질문의 형태가 왜 그일을 그렇게 하셨나요가 아니라 전혀 관계없는 일로 시작해서 그 당시의 주변 상황으로 이어가다 보면 갑자기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영화 전체에 걸쳐서 덕수에게 변화를 해야한다는 이야기 외에도 "왜 당신들은 윗세대가 그렇게 살았는지 궁금해하지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도 않았나?"라는 현재 세대에 대한 비판도 들어있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5/01/12 20:41
네. 말씀하신 대로 가혹한 결론이긴 하죠. 그래서 이 영화의 일부 비판자들과는 달리 저는 이게 일방적으로 고령층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편을 들어주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끝에 희망을 좀 보여주긴 하지만 뭔가 화끈한 보상이나 인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전반적으로 꽤 서글픈 이야기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은 이런 점에서 확고한 미담이죠.)

덕수의 자식 세대는... 음 그냥 이 영화에서 제대로 다뤄지질 않는 부분이라서요.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이런 일은 과거의 저런 일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렇게 된 거다를 계속 보여주는 구조인데 그게 없으니까요. 자식세대에 대한 비판이 자리를 잡으려면 그냥 그걸 보여주는 다섯 번째 에피소드가 추가로 붙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olamide at 2015/01/07 11:06
즐겁게 읽었습니다. 국제시장 영화를 보지 않았음에도 장면 장면을 상상하며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소넷님의 글솜씨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구성하는 솜씨 뿐만이 아니라, 가족을 두 가지 유형으로 가름하신 것도 아주 재미난 접근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입장에서) 다만, 국제시장을 보시고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상하셨다는 부분에서는 명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첫째, 극의 구성을 책임지는 네이게이터로 유령이 등장한다는 것, 둘째로는 악인이었던 주인공의 개심을 위해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거치는 충격적인 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넷님의 덧붙임을 보면, 이 두가지 조건을 모두 고려한 것처럼 보입니다만... 제 기준으로는 아버지 유령이 극의 구성을 처음부터 끝ㄲㅏ지 이끌고 갔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또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스크루지의 개심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미래인데, 국제시장에는 미래 부분이 결정적으로 빠져있다는 점에서 둘이 긴밀하게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한참 생각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5/01/12 20:49
영화를 보면 [동생을 잃어버린 죄책감+그로 인해 실종된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이 주인공의 인생을 결정지은 핵심사건임은 분명히 드러납니다. 아버지가 가장이 되라고 해서, 자신이 해석한 가장의 역할(모든 문제를 혼자 떠안고 혼자 결정하는 가부장)에 충실하게 살았으니까요. 중간중간의 중요한 사건들이 그것과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손녀딸의 팔을 확 잡아당겨서 다치게 한 것은, 어릴 때 동생의 손을 놓친 사건과 연결되고 다 이런 식이죠.

미래의 유령이 없는 부분은 말씀하신대로 크리스마스 캐럴과 다른 부분입니다. 그래도 저는 시나리오 작가가 크리스마스 캐롤과 닮은 이야기라는 걸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입증하긴 또 마땅치가 않네요.
Commented by 사처포 at 2015/01/09 11:48
덕수와 비슷한(?) 또래로서 몇 가지 감상을 적어보면

가치관 :1)가족은 당연히 가장, 남성이 책임져야 한다.
필요하면 개인의 꿈은 접어야 한다.
2)공동체(국가)가 필요로하면 개인은 희생해야 한다.
3)자식 낳아 가정을 꾸리는 것은 부모 내지는 선조에 대한 당연한 의무다.

실제 : 먹고 사느라 땅만 쳐다보며 일했는데 ...
나이 먹고 고개를 들어보니 세상은 진화했드라.
1)뼈빠지게 일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돈을 스마트(?)하게 버는 게 좋은 것 이다.
2)본인의 가족은 부모나 조상보다 본인의 행복을 우선 고려한다.

개인 생각 :
-타인(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 가족, 친구 등)과 이해하고 소통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이건 개인의 유연성을 떠나서 ... 언어가 가진 절대적인 장벽 때문일지도.
(그렇다고 대화,소통 노력이 소용없다는 뜻은 아님 ^^ )

-바깥과의 소통에는 사람 각자가 가진 "존재의 구속성"(시간,공간상 제한된 경험) 때문 에 즉 타인과의 공유집합이 적으므로, 상호 이해가 어렵다.

-생존력과 상상력
엄밀히 따지면 생존력의 중요 부분이 상상력이겠지만,
70년대 말까지 거의 동물적 생존본능으로 버텨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고 가정한다면,
그 이후(공업화 이후)에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라고 봄.
보통 사람들에게 이러한 진화과정을 유연하게 적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좀 무리인 듯.

뱀 다리.
우리의 역사는 격변의 연속 :
일제 강점, 광복과 분단, 6.25전쟁, 군사독재와 공업화,
민주화 투쟁, 정보화 등등 ...

그렇다면 영화제작자들에게는 조금만 눈을 돌리면 ... 보물창고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듯...

"국제시장" 같은 영화는 그 엄청난 소재들로 소화불량에 걸리기 쉬운데,
흥남철수, 이산가족 찾기, 군사독재, 민주화, 등등
이런 주제별 영화를 밀도있게 만들 수 있다면..... 진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15/01/10 08:59
보물창고일지도 모르고, 동시에 '판도라의 상자'가 될지도 모르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과거사 및 이념 논쟁을 비롯해서 말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15/01/12 20:31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나하나 다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하르나츠 at 2015/01/10 22:30
특히 덧붙임(2) 에 공감이 가네요. 첫번째 가족에 스토리의 중심이 맞춰져서 두번째 가족한테는 별로 초점이 안가더라구요. 그래서인지 두번째 가족 세대인 저는 공감을 느끼기 어려웠네요.
Commented by 밀파크 at 2015/01/10 22:55
소넷님의 의견에 매우 동의합니다.

영화를 오늘에서야 보고 와서 이 글을 보았는데, 영화에서 중간에 친구가 '니는 아직도 어른이 아닌기라'라고 한다든가, 결말에 가게를 포기하는 덕수에게 아내가 '이제 철들었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인상이 정말 강했습니다.

결국 덕수는 흥남부두의 기억에 사로잡혀 어른이 되고 있지 못하다가, 그 모든 일의 끝에서 자신의 옛 기억과 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 진정한 사회적 어른이 되는 것이죠. 친구나 부인은 그런 그를 간파하면서도 옆에 있어준 고마운 존재인 거구요.

다만 영화에서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전적으로 긍정하는 것이 친구도 부인도 아닌 어린 손녀딸이라는 점 또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감독의 의도는 어르신 세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해의 손길을 뻗칠 때 서로가 다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데까지 미치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5/01/12 20:26
예, 손녀딸도 말씀하신 것 같은 희망을 암시하는 그런 복선이죠.
Commented by 지나가던과객 at 2015/01/12 16:00
소넷님의 글을 보니 아버지의 유언대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주인공이 가족을 지키는데 급급해 가족과의 소통이 없었고, 그 때문에 가족들은 덕수의 마음을 이해못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결론 : 어쨌든 소통이 중요한기라!!
Commented by sonnet at 2015/01/12 20:23
노력도 했고 고생도 했는데 소통은 부족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소통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기 시작한 것도 근래의 유행(?)인 것 같아요. 예전엔 그냥 상명하달 식으로 내려꽃는 게 당연한 그런 분위기였으니까요.
Commented by 중도 at 2015/01/14 00:01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아버지 세대와의 여러가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저는 영화가 전하는 메세지가 어둡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덕수 아버지 유령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보았습니다. 현실에서는 가장으로서의 삶의 무게를 내려놓게 도와줄 존재가 없기 때문에 돌아가실 때까지 변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감독께서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영화속에서나마 홀가분하게 해드리고 싶었던게 아닐까요.

그리고 가족이 맞춰드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한 영화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고 봅니다. 어린 손녀딸이나 가능한 거니까요.

그시대의 아버지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정을 부양하는 가장의 책임을 평생 짊어지셨기 때문에 연세가 드셔도 가장의 책임을 내려놓기 못하고 가부장적인 권위의식 또한 내려놓지 못합니다. 그결과 편히 여생을 쉬면서 돈도 쓰면서 여행다니는것도 못할뿐더러, 더이상 권위나 상명하달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서 고집불통으로 소외되는게 흔한 일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덧붙임에 관련된 의견입니다.
영화에서는 소넷님 말대로 덕수가 [첫번째 가족]에만 헌신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설령 덕수가 [두번째 가족]을 위해 희생했더라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혼자 다 짊어지는 고집불통 권위적 성향을 지니기 때문에 소외되는 것이지, 두번째 가족에게 소홀했기에 소외되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5/01/18 00:32
말씀하신 대로 첫 번째 가족에게 했던 방식을 그대로 둔 채 방향만 돌려서 두 번째 가족에게 했다고 해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을 겁니다.

그럼 대안적으로 어떤 삶의 방법이 있었겠느냐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제 생각은 '과유불급'이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적당한 선에서 요구를 끊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가족의 필요, 두 번째 기족의 필요, 아내나 나의 개인적 삶 등의 상충되는 요구 사이에서 지나치거나 모자람 사이의 균형을 잡아 치우치지 않는 선택을 해야 되는데, 결국 그러려면 (무제한의 자원을 갖고 있는 유복한 상황이 아니니) 과한 요구는 쳐냈어야 한다는 거죠.
Commented by 카린트세이 at 2015/01/27 20:06
얼마전에 이 영화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가졌었는데, 대제님도 비슷한 생각을 하셨다니 뭔가 신기한 느낌이군요... 특히 p.s 2 는 정말 공감가는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한국 남자들이 공유하는 정서적 미성숙과 자기연민 등을 감정적으로 보여준 모습이 영화의 성공을 크게 좌우하지 않았나 싶은 느낌입니다.

저로서는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같은 삶보다는 주인공 친구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문제가 많은 삶이긴 했지만서도, 내가 만약 둘 중 누군가의 삶을 선택해야한다면, 그쪽이 좀 더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평온한 삶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Commented by 히알포스 at 2015/02/12 00:19
[크리스마스 캐럴] 은 원작 소설도 보고 애니메이션으로도 봤지요. (애니메이션은 여동생하고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본다고 마련했다가 여동생이 보기 싫다고 하는 바람에 저 혼자 봤다는 슬픈 사연이) [코르네이유 영감의 비밀] 은 지금 여기서 처음 봅니다.

음......영화 [국제시장] 에 대해서 저도 뭔가 주위에서 얘기하는 감상을 덧붙여서 얘기하고 싶은데....정작 제가 [국제시장] 을 보지는 않았네요. 그러니까 자르고......다만 영화 리뷰 쪽에서 유명한 이 곳에서 쓴 감상이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다만 이 곳의 평가보다는 혹하지만요.

http://www.djuna.kr/xe/index.php?mid=review&page=3&document_srl=12024549
Commented by 공룡 at 2016/05/19 23:10
재미있는 해석이에염. 그리고 영화를 이렇게 해석한다면, 현재까지도 네X트 판 같은 잡담성 게시판에 올라와 독자를 암걸리게 하는 '답답한 아버지' 류의 이야기들에 대한 이해의 열쇠가 될 수도 있겠죵. 이젠 두 번째 가족으로 삶의 중심이 넘어와야 할 시점이 한참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첫 번째 가족에 대한 (아무도 요구하지 않지만, 자기 스스로 부여한)책임감을 벗지 못해서 두 번째 가족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그런 아버지를 보는 자식들이 답답하다고 올리는 글들이용. 그런 아버지들이 속한 세대가, 어떤 과정을 통해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볼수 있을거고여.

다만, 쥔장니뮤가 말씀하신 대로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오락영화이고, 그런 만큼 이야기를 단순하게 해석하는 것이 더 명료하지 않을까 싶어염. 이 경우, 이 영화가 폭 넓은 인기(특히 평소 영화에 딱히 관심이 없던 세대의 인기)를 얻은 기반은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던, 자기 젊은 날의 곶통'에 초점을 맞추고 조명한 영화로써 그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 낸 것이 아닐까 싶은데염. 이 면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딱히 정치적이지는 않지만 노년세대의 손을 들어주는(또는 잡아주는) 영화가 맞다고 봐야 하지 않나 싶어염. 아주 단순하게, 그 세대가 듣고 싶어하던 이야기를 해 줌으로써 그 세대가 영화에 이입하고, 동질감을 느끼며, 위로와 공감을 얻게 하는 것이 영화의 목적이 아닌가 싶지염. 그니까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갈등' 이라는 구도 없이, 단순히 관객 집단의 한 부분집단인 노년 세대의 손을 들어주는 영화라고 보는 게 이 영화를 제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거 아닐까여?
Commented by 공룡 at 2016/05/19 23:33
견강부회에 아전인수일지도 몰르지만, 이렇게 보면 이 영화의 많은 미스터리가 설명될 수 있다고 봐염. 예를 들어, 왜 노년세대의 고생을 그려낸 영화라면서 그 고생 자체를 그렇게 희화화 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이 영화는 애초에 '그 고생을 모르는 세대에게 너희 아버지들이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갈쳐주려는 영화가 아니라고 하면 되지여. 그 시대를 겪어본 사람들을 관객으로 상정했다면, 굳이 섬세하게 설명 안해도 다 아는 걸 굳이 구질구질하게 설명하다가 관객을 불쾌하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여. 또 이 영화의 극우성(?)을 손상시키는 특징으로 흔히 거론되는 국가적 상징물에 대한 희화화 역시 이해가 돼여. 노인냥반들이 젊은 애들 앞에서아 요즘 젊은것들은 애국심이 없다고 틀딱거리지만, 정작 그 시대를 살아올때는 나라에 서럽고 속터지는 감정 수 없이 느끼지 않았겠어여?
Commented by 야채 at 2016/05/21 13:53
노인 세대의 공감과 동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라는 것과 노인 세대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건 전혀 다르다고 봅니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젊은날의 모습을 보고 공감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그 모습은 영화에서도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결말이 다른 사람들이 그 모습을 이해하게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공룡님의 평을 보면서 공감하기 어려운 점은 이 영화가 '누구 편'을 들고 있는가를 먼저 추측(혹은 선언?)한 후 그것을 중심으로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를 짐작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그보다는 직접적으로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누구 편'을 드는지를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이 딱히 해석을 더 단순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Commented by ㅇㅇ at 2018/01/31 22:11
하여간 배배꼬여서 먼저 누구 이해하려곤 하지않고 네가 잘못한거야 아무도 널 이해 안해줘 라고 쏘아붙이는 점이 글쓴이의 인격수준을 보여주네요

뭐 고집불통에 욕만 먹는 주인공 입장에서 야 이분은 말이야~ 하고 소리치고 싶진 않습니다

왜냐면 저도 20대고 솔직히 저에게는 너무 와닿지 않는,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지나간 일이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이해의 길이 트이지 않을까 싶었는데요

그쪽의 이딴 리뷰를 보고나니 싹다 부정당하고 다시한번 영영 이해못할 사이로 완전 틀어지게끔 만드는 글이구나 싶어서 매우 불쾌하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8/02/01 13:28
짧은 대답 : 그럼 계속 불쾌하시면 됩니다.

긴 대답 :
저는 "아집을 버리고 해탈해서 세상과 화해하고 구원을 얻는다" 정도의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도 실행만 된다면 멋진 결단이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특히 남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실천 가능한 방법이기 떄문에요. 그리고 서두에서 말했지만,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 같은 이야기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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