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새 또 사고가 한 건 났는데(17일 판교 환풍구 추락 사건), 다들 보셨겠지만 사건 자체는 꽤 단순한 내용이고 뭔가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거나 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보인다. 다만 그 뉴스를 본 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누어 논쟁을 하는 모습은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이름붙이자면 "사고책임 논쟁 : 개인 대 시스템"이라고나 할까?
우선 개인 책임 주장은 개인이 부주의하게, 혹은 위험을 무릅쓰고 위험한 곳에 올라갔기 때문에 사고의 주된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대하는 입장은 사회의 평균적인 개인에게 높은 수준의 안전지식이나 주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의 한계를 충분히 감안하여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이 개인의 약점을 커버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였으므로 이것은 시스템의 책임이다라는 것이다.
구경하고 있으면 이 논쟁은 기본적으로 각자 자신이 지지하는 쪽에서 반대편으로의 책임 떠넘기기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느 쪽도 내가 보는 관점과는 잘 맞지 않아 약간 답답하기도 했다.
우선 "평균적인 개인에게 높은 수준의 지식이나 주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은 타당한 말이다. 그리고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할 때 그러한 제한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다만 그것이 시스템이 평균적인 개인이 보이는 약점을 다 잘 커버해줄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여기에 시스템 책임론의 맹점이 있다.
시스템은 시스템 고유의 약점을 다수 갖고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개인들의 약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관점이 타당성을 인정받으려면 그와 비슷하게 시스템의 약점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스템 책임론자들이 가리키는 그 시스템 또한 피해자들과 별 차이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고 위험을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던 책임자는 궁지에 몰리자 자살하고 말았다. 그가 내일 혹은 다음 주에 자살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궁지에 몰리게 될 것을 알고서도 위험을 무릅쓴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럼 일상생활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통상적인 주의를 기울이는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평소 행사운영 경험에서 유추된 통상적인 주의를 기울이는 행사운영자가 만났을 때, 모든 사고가 예방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 점이 개인-시스템 책임논쟁에서 아주 기묘한 점이다. 논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A가 아니면 바로 B가 되는 것처럼 즉 A에 책임이 없음을 주장하면 자동적으로 책임이 B에 떨어지는 것처럼 혹은 그 반대인 것처럼 행동했다.
즉 이런 식이 된다.
"개인 책임" + "시스템 책임" = 전체
나는 이런 그림은 사고를 이해하는 데 있어 적절치 않다고 본다. 내 입장은 이렇다.
"개인 책임(A)" + "시스템 책임(B)" + "아무도 책임지지 않거나 책임질 수 없는 위험의 영역(C)" = 전체
그리고 C 영역은 노력해서 얼마간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C 영역을 인정하지 않으면 A또는 B에 그 책임이 추가로 전가되기 때문에,
부당하게 가혹한 평가를 내리게 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내 추측을 좀 더 덧붙여보자면, 사람들은 문제가 누군가의 책임으로 확정짓고 그 부분을 비난하거나 수정시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딱부러지는 결론을 원하는 것 같다. 개인이 변화하기도 힘들고 시스템으로도 커버가 되지 않으므로 문제는 잠복해 있다가 언제고 우리를 다시 찾아올 것이다 이런 우울한 결론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