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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의 악몽(Student Body)

신천지의 악몽(Student Body)

저자: F. L. Wallace
출간: 1953년
비고: 영문본은 Project Gutenberg에서 열람가능.


개척 행성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맞는 아침이었다. 해프너 행정관은 우주선에서 나와 아직 완전히 동이 트지 않은 대지로 걸어갔다. 새벽 어스름이 깔린 벌판을 흘낏 쳐다보던 그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그는 즉시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더니, 3분 뒤 생물학자와 함께 다시 나타났다.

“어젯밤에는 위험한 게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해프너 행정관이 질문을 던졌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나?”

다노 마린은 물끄러미 바깥 광경을 쳐다보았다.

“그렇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고 당혹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건 전혀 웃을 일이 아닐세. 나중에 다시 얘기하지.”

생물학자는 우주선의 옆에 멈추어 선 채, 잠들어 있는 이주민들의 침상으로 걸어가는 행정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애실 부인.”

행정관은 잠자고 있는 한 사람의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녀는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며 뒤척이다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덮고 있던 이불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입었던 잠옷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알몸이 된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서 본능적으로 몸을 가렸다.

“괜찮습니다, 애실 부인. 전 여자의 알몸을 훔쳐보는 취미는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뭘 좀 입으셔야겠군요.”

그때쯤에는 대부분의 이주민들이 잠을 깬 뒤였다. 해프너 행정관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우주선에 입을 만한 옷이 없는 분들께는 배급소에서 옷을 나눠 드리겠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해 드리죠.”

이주민들은 별로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은 채 우르르 흩어졌다. 한때 그런 감정을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복잡한 우주선 안에서 1년 반을 보내는 동안 거의 무디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다들 입고 있던 옷이 죄다 사라져버린 일은 사람들에게 대단한 충격이었다. 이 사건은 그들이 지금까지 겪어온 숱한 일들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이었다.

우주선으로 돌아가던 길에 해프너 행정관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뭐 짚이는 게 없나?”

다노 마린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있을 리가 없죠. 행정관님이나 나나 이 행성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기는 마찬가지니까요.”

“맞는 말이야. 하지만 자네는 생물학자가 아닌가?”

마린은 거친 이주민과 개척자들 사이에서 유일한 과학자인 탓에 그동안 자신의 전문분야와는 상관없는 질문에도 무수히 대답을 요구받아왔다.

“야행성 벌레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비록 근거 없는 대답이긴 했지만, 그는 과거에 메뚜기 떼들이 넓은 초원을 단지 몇 시간 만에 초토화시켜버리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잠자는 인간을 깨우지 않고도 옷만 죄다 먹어버릴 수 있을까?

“제가 조사해 보겠습니다. 뭔가 발견되면 알려드리죠.”

“알았네.”

해프너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우주선으로 들어갔다.


--


다노 마린은 이주민들이 잠을 잤던 자그마한 숲속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거기서 자도록 허용한 것은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18개월 동안 복잡한 우주선에 갇혀 지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선한 공기와 머리 위에 나뭇잎들이 나부끼는 광경을 보고 싶어지리라.

마린은 숲속을 살펴보았다.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남녀 이주민들은 우주선 안에서 옷을 입고 있을 것이다.

나무는 그다지 크지 않았고 잎들은 짙은 암녹색이었다. 햇빛을 받은 거대한 흰색 꽃들은 실제보다 크게 보이기도 했다. 지구가 아니므로 물론 목련나무가 있을 리는 없었으나, 그 나무는 마린에게 목련처럼 보였고 이후로 그는 그것을 목련나무라고 생각했다.

사라진 옷의 문제는 실로 미스터리였다. 생물학적 조사가 눈에 띠게 큰 실수를 저지른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조사에 따르면 이 행성은 지금까지 발견된 천체들 중 인간이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다. 곤충은 거의 없고 위험한 동물도 없으며 기후도 가장 온화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 행성을 ‘숲속의 빈터’라는 뜻으로 ‘글레이드’라고 불렀다. 육지 지역은 거의 다 넓고 쾌적한 초원이었다.

이 행성에는 생물학적 조사로도 포착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마린은 무릎을 꿇고 샅샅이 살피며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만약 곤충의 짓이라면 이주민들이 자다가 돌아누울 때 뭉개진 사체라도 틀림없이 있을 터였다. 그러나 살아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곤충은 없었다.

그는 실망한 채 일어나 숲속을 이리저리 천천히 걸어 다녔다.

나무일지도 몰랐다. 밤사이에 옷의 재료를 녹일 수 있는 기체를 발산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는 손으로 나뭇잎을 하나 따서 소매에 문질러 보았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것으로 단정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는 나뭇잎들 사이로 푸른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그것은 지구의 태양보다 컸지만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글레이드에서는 지구의 태양과 거의 비슷한 크기로 보였다.

덤불 밑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반짝이는 눈을 그는 그냥 지나칠 뻔했다. 생물학의 영역은 대기 중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포괄하며, 따라서 당연히 덤불과 그 속에 사는 동물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손을 벌려 위에서부터 덮쳤다. 그놈은 찍찍거리며 도망쳤고, 그는 숲속을 벗어나 계속 뒤쫓은 끝에 겨우 잡을 수 있었다. 그가 집어 올리자 그놈은 몸을 웅크리며 덜덜 떨었다. 그러다가 그가 부드럽게 말을 걸자 겨우 공포가 누그러진 듯했다.

우주선으로 데려가는 동안 녀석은 만족스러운 듯 그의 재킷을 계속 물어뜯었다.


--


해프너 행정관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안을 노려보았다.

그것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동물로, 몸집이 아주 작고 진화가 덜 된 설치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듬성듬성 털이 나 있었지만 뻣뻣해서 보기 싫었다. 아마도 털가죽 시장에는 결코 등장하지 못할 것이다.

“이놈들을 이 지역에서 전부 없애버릴 수는 없을까?”

해프너가 물었다.

“거의 불가능합니다. 생태학적으로 본다면 말입니다.”

행정관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다노 마린은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행정관님은 생물학적 방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아실 겁니다. 새로운 행성이 발견되고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다고 판정되면 장비를 갖춘 조사선이 파견됩니다. 우주선은 행성의 거의 전 지역을 저공비행하면서 원격 탐지 장치로 행성에 사는 모든 동물들의 신경 움직임을 기록합니다. 그 장비는 곤충을 비롯하여 두뇌를 가진 모든 동물들의 신경 패턴을 구별할 수 있죠.

어쨌든 조사선은 행성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의 분포를 알아내고, 또 표본도 몇몇 채집합니다. 측정된 것과 실제 동물의 신경 패턴을 대조하여 확인하지 않는다면 기록된 것은 단순한 낙서에 불과할 테니까요.

생물 조사에 따르면 이 동물은 행성에 존재하는 네 가지 포유류 중의 하나입니다. 또한 수가 가장 많은 우점종이기도 하죠.”

해프너가 투덜댔다.

“그러니까 뭔가, 우리가 놈들을 여기서 죽여서 없애더라도 주변 지역에서 또 몰려들 거란 얘긴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있는 이 반도에만도 수백만 마리가 있을 겁니다. 물론 대륙과 연결되는 좁은 지역에 방어막을 친다면 이 지역에서 없애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요.”

행정관은 얼굴을 찌푸렸다. 방어막을 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미리 배정되어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녀석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사나?”

행정관은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못 먹는 게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곤충, 과일, 채소, 견과, 선인장 그리고 곡물 등이죠.”

다노 마린은 미소를 지었다.

“저는 놈들을 ‘식충이’라고 부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옷을 먹어치운 것도 결국 이놈들 짓인 것 같군요.”

해프너는 얼굴의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나는 우리 옷이 충해를 입지 않는 줄 알았는데.”

마린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27개 행성에서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28번째 행성에서 소화액이 더 뛰어난 친구를 만난 거죠.”

해프너의 얼굴이 갑자기 해쓱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가 심는 곡식에도 해를 미칠까?”

“지금 당장 대답을 원하신다면, 그렇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우리 옷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했겠지요.”

해프너는 결심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네. 곡식이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그놈들을 몰아낼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게. 기숙사를 건설할 동안은 모두 우주선 안에서 자도록 하고.”

마린은 현재로서는 독립 거주 유닛이 가장 알맞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에게는 결정권이 없었다. 식민지 건설 계획을 짜는 것은 행정관이었다.

“식충이들은…….”

마린은 얘기를 시작하려 했지만 해프너는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연구해보게.’하고는 이내 자리를 떠났다.

생물학자는 한숨을 쉬었다. 식충이가 정말 괴상한 동물이긴 하지만, 글레이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결코 아니다. 이 행성에는 육상 동물의 종류가 극히 적다. 파충류는 존재하지 않고, 대신에 조류는 아주 많으며 포유류는 겨우 네 종류만 살고 있다.

비슷한 다른 행성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번성하고 있는데, 이상적인 기후를 가진 글레이드에선 그렇지 않은 것이다. 왜 그럴까?

그는 이 문제에 흥미를 느껴 생물 방제 센터에 질의한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박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라고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로 손을 뻗쳐 식충이를 들어올렸다. 글레이드에 포유류가 산다는 것 자체는 이상한 사실이 아니다. 이를테면 ‘평행 진화’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서, 거의 유사한 환경 아래에선 비슷비슷한 동물들이 진화, 발생하는 것이다.

지구에서는 석탄기 후반의 숲에서 식충이와 비슷한 원시 포유류가 나타나 온갖 종류의 포유류로 진화, 발전하였다. 그러나 글레이드에서는 그와 같은 다양한 진화가 발생하지 않았다. 무엇이 진화 가능성을 막아버렸을까? 그것을 알아내는 일이 식충이를 없애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마린은 식충이에게 바늘을 꼽았다. 녀석은 찍찍대다가 축 늘어졌다. 그는 식충이의 혈액을 채취한 다음 다시 우리에 집어넣었다. 죽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동안 그는 그 동물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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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목청이 큰 편인 병참장교가 꽥꽥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게 쥐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생물학자가 물었다.

“직접 보쇼.”

화난 목소리로 병참장교가 대답했다.

마린은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쥐의 흔적이었다.

그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병참장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쥐와 비슷한 동물이라는 말은 그만두쇼. 나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 내 질문은 놈들을 어떻게 없애냐는 거요.”

“독약을 써봤습니까?”

“무슨 독약을 쓰면 되는지 가르쳐 주면 당장 쓰겠수다.”

대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니었다.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알지도 못하는 동물에게 독이 되는 약물은 무엇일까? 생물 조사에 따르면 이놈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동물이었다.

이것은 뜻밖에 심각한 문제였다. 현재의 이주민들은 새로 농사를 짓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다. 그러나 3년 뒤에는 새로운 이주민들이 도착한다. 현재의 이주민들은 새롭게 증가하는 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을 비축하기로 되어 있다. 그들이 경작하는 농작물을 저장할 방법이 없다면, 결국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그는 창고 끝까지 걸어갔다. 창고는 식민지의 개척 초기에 건설되는 일반적인 건축물이었다. 건축미가 돋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튼튼하다. 먼지가 쌓인 바닥과 벽은 1인치 두께로 보강되어 있으며 천장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은 분자 시멘트로 단단히 접착되어 있었고, 창문도 없이 출입문만 두 개 있었다. 따라서 쥐 같은 설치류의 침입은 당연히 막을 수 있어야 했다.

자세히 조사해보니 뜻밖에도 균열이 있었다. 바닥은 유리처럼 단단하여 어떤 동물도 침입할 수 없지만, 대신에 유리처럼 잘 깨지기도 했다. 창고를 건축한 작자들은 지구로 빨리 돌아가는 데에만 급급한 나머지 바닥의 두께를 고르지 않게 만들어 놓은 것이 틀림없다. 무거운 장비가 놓여 있었던 자리는 바닥에 금이 가 있었다. 굴을 파고 사는 동물이 침입하기엔 딱 좋은 장소였다.

다른 창고를 건설하느라 자재가 모자라기 때문에 수리하기는 곤란했다. 이미 창고 안으로 침투해버린 그 쥐를 닮은 동물은 안에서 없애버려야만 했다.

생물학자는 몸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마리 생포해서 보내주십시오.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해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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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에 실험실로 한 다스 정도의 표본이 배달되었다.

그들은 정말 쥐와 많이 닮은꼴이었다.

놀라운 동물이었다. 동일한 독약에 대해 같은 반응을 보이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1분도 안되어 한 놈을 뻗게 만드는 화학물이 다른 놈에게는 전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가 식충이를 잡기 위해 개발한 약물도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그동안에도 창고에서는 약탈이 계속되었다. 검은 쥐, 흰 쥐, 회색과 갈색이 섞인 쥐, 짧은 꼬리와 긴 귀를 가진 쥐……. 놈들은 비축해둔 식량을 먹어치우고 먹지 못하는 것은 엉망으로 망쳐놓았다.

마린은 행정관과 함께 얘기하면서 그가 발견한 문제점을 강조한 다음, 생각해 낸 해결책들을 건의했다.

“하지만 새로운 창고를 지을 수는 없다네.”

해프너의 대답은 단호했다.

“원자 생성기가 조립될 때까지는 절대로 안 되네. 그리고 조립된 다음에도 그게 필요한 곳이 너무 많아.”

행정관은 머리를 팔에다 파묻었다.

“두 번째 방법이 좋겠군. 우선 하나 만들어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험해보도록 하지.”

“적어도 세 대는 있어야 하는데요.”

“하나야.”

해프너는 고집을 부렸다.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기 전에는 장비를 거기다 함부로 투입할 수 없네.”

그 점에서는 사실 해프너의 말이 옳았다. 그들이 세 척의 우주선에 싣고 온 장비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아무리 많은 장비를 가져오더라도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는 턱없이 모자랄 것이지만, 장비는 항상 부족했다.

그는 명령서를 기술자에게 전달했다. 도중에 그는 더 고성능으로 제작되도록 슬쩍 설계도를 변경했다. 원하는 대수만큼 얻을 수 없다면, 대신 하나를 만들더라도 더 좋은 것으로 제작해야 했다.

이틀 뒤, 마침내 기계가 완성되었다.

그것은 조그마한 상자에 든 상태로 창고에 운반되었다. 상자가 열리자 그 기계는 재빨리 뛰어나와 균형을 잡고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고양이로군요!”

만족한 목소리로 병참장교가 외쳤다. 그는 검은색의 털북숭이 로봇으로 손을 뻗었다.

“쥐가 건드린 물건을 만진 적이 있다면 손을 치우는 게 좋을 겁니다.”

생물학자가 경고했다.

“쥐의 모습이나 소리는 물론이고, 냄새에도 반응을 보이니까요.”

병참장교는 급히 손을 치웠다. 로봇은 저장된 물건들 사이로 조용히 사라졌다.

일주일이 지난 뒤, 창고에는 아직도 쥐가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


행정관은 마린을 거주지구 중앙에 위치한 자신의 작고 튼튼한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식민지는 점점 발전하여 도시로서의 모습을 조금씩 갖추어 갔다. 해프너는 자기 의자에 앉아 식민지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쥐를 잡는 일을 아주 잘 해 내었네.”

생물학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진 않았죠. 여기에 쥐 같은 것은 없어야 된다는 사실만 제외하곤 말입니다. 생물 조사에 따르면…….”

“생물 조사에 대해선 잊어버리게.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니까.”

그는 뒤로 기대어 앉아서 생물학자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네가 해 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어. 어쨌든 지금은 인력이 모자라는 형편이라서 말이야. 자네가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행정관은 언제나 일손을 필요로 했다. 이 행성이 과잉인구로 허덕이기 전까지는 계속 그럴 것이다. 그는 항상 자신의 부하들이 해야 할 일을 다른 엉뚱한 사람에게 떠맡기곤 했다. 다노 마린은 생물 방제 센터에서 파견된 것이므로 행정관의 명령을 따를 필요는 없었지만, 그에게 협력하는 편이 좋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일은 아닐세.”

해프너가 말했다. 마린의 한숨소리를 정확하게 해석한 것이다. 그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는 굴착기를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네. 자네가 그것을 좀 사용해주었으면 하네.”

그것은 그의 연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므로, 다노 마린은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알다시피 우린 음식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을 수입하고 있다네. 그런데 여기까지 자재를 운반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가능하면 행성에 있는 자원을 이용해야 하지. 우리는 석유가 필요해. 앞으로 자동차를 많이 사용해야 할 멘데, 자동차를 굴리려면 기름이 필요하지 않나. 물론 조만간에 합성 공장을 건설할 테지만, 유전을 발견할 수 있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거야.”

“행정관님은 글레이드의 지질이 지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는군요?”

행정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닐 이유가 없잖나? 이곳은 지구하고 쌍둥이나 마찬가지야.”

아닐 이유가 없다고? 겉만 보고 그렇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곳은 정말 지구를 닮았지만,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을까? 하지만 마린은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쨌든 굴착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글레이드의 역사를 알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해프너가 일어섰다.

“자네가 준비되면 기술자가 굴착기 꺼내는 것을 도와줄 걸세. 출발하기 전에 연락해 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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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착기는 이름과는 달리 진짜 굴착용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움직이는 삽날이 달려있지도 않았고 땅을 파기는커녕 1센티미터의 먼지도 긁어낼 수 없었다. 굴착기는 지표 밑의 상태를 알아내는 일종의 탐지기이며, 관찰 가능한 깊이는 제한이 없다. 한 사람이 일주일쯤은 아무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느릿느릿한 무한궤도 차량인 것이다.

굴착기는 거대한 초음파 발생장치와 초음파를 지하로 발사하는 강력한 송신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또 수신기는 원하는 깊이에서 반사된 음파를 모으는 커다란 음파 렌즈와 이것을 전기 에너지로 바꾸어 스크린에 그림으로 나타내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10마일쯤의 깊이가 되면 화면은 흐려지지만 지층의 주요 구성물질을 알아내는 데에는 이상이 없다. 3마일 정도 깊이는 화면에도 깨끗하게 나타난다. 굴착기는 땅 속에 묻힌 동전에서 반사된 음파를 수집하여 동전이 주조된 연도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한 해상도를 지니고 있었다.

굴착기는 지질학자에게는 생물학자의 현미경에 해당하는 장치이다. 생물학자인 마린은 이러한 유사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반도의 끝에서 시작하여 지그재그로 대륙과 연결된 지협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능률적인 경로를 따라 반도 전체를 탐사했고, 밤에는 굴착기 속에서 잠을 청했다. 셋째 날 아침에 그는 석유의 흔적을 발견했으며, 그날 오후에는 유전을 발견했다.

그는 즉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이미 석유를 발견했으므로 이제 자신의 개인적인 연구를 수행하기로 결심했다. 다람쥐 형태의 동물과 그보다 훨씬 큰 초식동물은 숲 지역에서 살았다. 평야에서 사는 두 종류의 동물은 숲속에 사는 극단적으로 크기가 다른 두 동물들의 중간 정도 크기였다.

약 2천 년간에 해당하는 처음 몇 미터가 지나자 화석이 거의 존재하지 않다가, 지구의 석탄기 후반에 해당하는 지층에 이르러서야 다시 화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각 시대 환경에 걸맞은 동물들의 화석이 나타났다. 그 깊이부터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지구와 아주 유사했다.

그는 이 당혹스런 결과를 놓고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들에서 똑같은 탐사를 몇 번씩이나 반복했다. 결과는 항상 동일했다. 최근 2천 년간은 화석이 존재하고 그 이전의 약 1억 년간은 화석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그 이전으로 가면 지구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화석 분포가 나타났다.

약 1억년 동안 글레이드에 뭔가 특이한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무엇이었을까?

닷새째 되던 날, 그의 탐사는 라디오에서 중계된 목소리에 의해 중단되었다.

“들리나, 마린?”

“네!”

그는 교신 스위치를 켰다.

“얼마나 빨리 돌아올 수 있나?”

그는 사진으로 된 지도를 살펴보았다.

“3시간이면 됩니다. 서두른다면 2시간 정도도 가능하겠군요.”

“두 시간 안에 돌아오게. 석유는 신경 쓰지 말고.”

“석유는 이미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와서 직접 보는 게 좋겠어. 돌아온 다음에 의논하도록 하지.”


--


그는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장비들을 다시 굴착기에 실었다. 그리고는 굴착기의 방향을 돌려 가능한 빠른 속도로 전진을 시작했다. 굴착기가 지나간 길에 먼지가 하늘높이 날아올랐고, 앞 쪽에서는 동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져 달아났다. 그는 숲이 아주 작은 경우에는 비켜갔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부서진 나무 조각들을 마구 튕겨내며 그대로 돌진하여 통과했다.

그는 거주지구의 옆에 도달하자 굴착기를 천천히 감속시켜 멈추었다· 창고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하고 있었고, 트럭이 들락날락하면서 물자들을 바깥으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는 창고의 한 구석에서 기술자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해프너를 발견했다.

그가 다가가자 해프너가 돌아섰다.

“마린, 자네의 쥐가 아주 크게 자랐다네.”

마린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로봇 고양이가 마룻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살펴보았다. 강철로 된 뼈대가 부서지진 않았지만 심하게 휘어져 있었다. 튼튼한 플라스틱 가죽은 완전히 뜯겨져 나갔고, 내부의 섬세한 부속품들은 씹혀서 뭐가 뭔지 알아볼 수도 없는 쓰레기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고양이 주위에는 어느 모로 보나 지나치게 몸집이 큰 쥐가 몇 십 마리나 흩어져 있었다. 고양이는 열심히 싸운 모양이었다. 죽은 쥐들은 머리가 없거나 다리가 부러져 있었으며 모두 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로봇 고양이 하나가 놈들을 전부 다 감당하기에는 중과부적이었던 것이다.

생물 조사는 글레이드에 왕쥐는 커녕 생쥐조차도 없다고 했다. 왜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까?

생물학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틈이 전혀 없게 바닥을 2인치로 보강한 창고를 새로 지어야지. 파손될 우려가 있는 것은 모두 거기에 저장할 걸세.”

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면 해결이 될 것이다. 물론 시간이 걸리고 그들이 최근에 설치한 원자 생성기를 모두 투입해야 한다. 다른 모든 건물들의 건축은 연기되어야만 한다. 해프너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양이를 더 많이 만드는 게 어떨까요?”

마린의 제안에 행정관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창고 문을 열었을 때 여기에 없었지? 창고는 쥐들로 가득 차 있었네. 얼마나 많은 로봇이 필요할지 짐작하겠나? 다섯? 열? 난 모르겠네. 어쨌든 기술자는 고양이를 세 대 정도 더 만들 수 있는 부품은 있다고 하더군. 저기 박살난 것은 수리가 불가능하고.”

기술자가 아니더라도 그걸 수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해프너는 말을 계속했다.

“더 많은 로봇을 만들려면 우주선의 컴퓨터를 분해해야 한다는군. 나는 그렇게는 할 수 없네.”

당연한 말이다. 우주선은 다음 이주민들이 올 때까지는 지구와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것이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우주선이 작동 불능상태에 빠지도록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해프너는 그에게 돌아오라고 했을까? 단지 현재 상황을 보여줄 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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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프너는 그의 생각을 눈치 챈 듯했다.

“밤에는 창고에서 꺼내온 물자에 조명등을 비추며 감시할 생각일세. 새 창고로 식량을 옮기기 전까지는 전기충격총으로 무장한 경비병을 세울 거고. 열흘 정도 걸리겠지. 속성 재배 작물 들이 익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야. 내 생각으로는 왕쥐들이 이 작 물들을 노릴 것 같아. 우리의 미래 식량을 보호하려면 자네가 가져온 동물들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야.”

생물학자는 대답을 했다.

“하지만 가능한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조사를 시행하지도 않고 동물을 풀어놓는 것은 위법입니다.”

“그러려면 10년 내지 20년은 걸릴 걸세. 지금은 위급한 상황이고 책임은 내가 지겠네. 원한다면 공증이라도 하지.”

생물학자는 어쩔 수 없이 압력을 받아들여야 했다. 토끼에 의해 재난을 겪은 옛 지구의 오스트레일리아나 달팽이들이 지배하게 된 어느 행성의 비극이 또다시 재현될지도 모르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달리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큰 쥐에 대항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반론을 내 보았다.

“호르몬이 있지 않나. 그걸 사용하게.”

행정관은 그리고는 다시 기술자와 창고 건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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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은 연구실로 돌아가 이주민들이 데리고 온 가축들에게 일련의 조치를 취하였다. 그는 첫 번째 주사를 놓은 뒤 동물들이 갑작스런 성장에 따른 충격을 이겨내는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자 그들을 양육기에 넣고 가르기 시작했다.

그는 왕쥐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 왕쥐의 개체별 크기 편차가 매우 높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왕쥐의 내장도 마찬가지였다. 내장의 모양은 정상적이었지만 그 크기는 비정상적으로 매우 다양했다. 이빨도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놈들은 튼튼한 턱과 강한 이빨을 지니고 있었고, 어떤 놈들은 튼실한 뼈대에 어 울리지 않게 작은 이빨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생물학자가 만나본 것 중애서 가장 뒤죽박죽인 표본이었다.

그는 현미경으로 조직을 관찰한 다음 결과를 도표로 만들었다. 각 세포의 차이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그를 생각에 잠기게 하기엔 충분했다. 생식 세포들이 특히 이상했다.

날이 저물어갈 무렵 그는 소리 없이 작동하는 건설 장비가 만들어내는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연구실 밖을 내다보자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곡식들의 소각이 모두 끝나자 연기는 그치고 온기만 남아 하늘로 피어올랐다.

그들은 언덕 위에다 건설 공사를 하고 있었다. 작은 동물들이 가장 취약한 식량더미를 공격하기 위하여 덤불 사이를 살금살금 기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이주민들이 공사를 끝냈을 때 언덕 위에는 덤불이 풀잎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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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농경시대에는 테리어가 사냥개였다. 그들은 작은 몸집을 설치류에 대한 맹렬한 사나움으로 상쇄했다. 그들이 이제까지 지구의 곡창지대와 들판에서 명성을 쌓아온 것처럼, 이제 같은 상황이 벌어지려는 행성의 식민지에서 같은 역할을 할 때가 온 것이다.

이주민들이 데려온 개들이 바로 테리어였다. 그들은 여전히 빠르고 설치류 사냥에는 가장 알맞았지만 선조들처럼 작은 몸집은 아니었다.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마린은 그들의 기술과 민첩성을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은 채 테리어들을 세퍼드만한 크기로 키우는데 성공한 것이다.

왕쥐떼들은 속성 재배 작물들이 자라는 들판으로 옮겨왔다. 물론 이 작물들은 이주민들을 위하여 심어진 것이다. 속성 재배 작물은 단 몇 주 만에 파종과 재배, 그리고 수확까지 전부 끝낼 수 있었다. 한 장소에서 네 번 파종하고 나면, 그 토지의 양분은 고갈되고 만다. 그러나 식민 행성의 초창기에는 토지가 충분하므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마침내 속성 재배 작물들 사이에서 살고 있는 왕쥐떼를 향해 개들을 풀어 놓았다· 그들은 들판을 가로질러 다니며 쥐를 사냥했다. 덤벼들어 덥석 문 다음 고개를 휘저으면, 왕쥐는 등이 부러진 채로 저만치에 털썩 떨어졌다. 그러면 개는 다음 목표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개들은 어두워질 때까지 쥐들을 쫓아다니며 사냥을 계속했다.

밤이 되자 입가가 피로 범벅이 된 개들이 탈진한 채로 돌아왔다. 마린은 개들에게 생체 활성 인자로 양분을 주사하고 상처를 치료해 준 다음 수면 주사를 놓아서 잠재웠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마린은 자극제를 주사하여 개들을 깨우고는 다시 전장으로 풀어놓았다.

낮에는 음식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왕쥐들이 깨닫는데 이틀이 걸렸다. 이제 그들은 밤에만 조금씩 떼를 지어 몰려오기 시작했다. 쥐들은 포도 덩굴에 기어올라 열매를 물어뜯었고, 곡물의 줄기를 꺾어버리고 채소는 뿌리째 뽑아냈다.

다음날, 이주민들은 조명시설을 준비했다. 개들은 해가 떠있는 동안에도 기어 나오는 몇몇 모자란 왕쥐들을 사냥하기 위해 이주민들과 함께 순찰을 돌았다.

해가 지기 한 시간 전에 마린은 개들을 불러들여 강제로 쉬도록 만들었다. 그리고는 날이 어두워지자 지쳐서 비틀거리는 개들을 침상에서 불러내어 다시 들판으로 내보냈다. 쥐의 냄새가 개들의 활기를 되살렸는지, 낮 동안처럼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그런대로 열심히 사냥을 하고 다녔다.

왕쥐들은 주변의 목초지에서 몰려왔다. 이전처럼 혼자가 아니면 두셋씩 짝을 지어오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떼를 지어 몰려오고 있었다. 요란스럽게 찍찍거리고 풀잎을 마구 짓밟으면서 들판을 향해 다가왔다. 어두워서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마린은 그들의 소리만 듣고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들판에다 거대한 조명등을 비추도록 지시했다.

왕쥐들은 밝은 불빛에 놀라 황망하게 주변을 맴돌았다. 개들이 몸을 떨며 으르렁거렸지만, 마린은 그들이 뛰쳐나가지 못하도록 붙들었다. 잠시 뒤 쥐들이 다시 행진을 시작하자 마린은 비로소 개들을 풀어놓았다.

개들은 공격하기 위해 기운차게 뛰어들었지만 왕쥐들의 본대에는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그들이 본대에서 떨어진 몇몇 놈들을 공격하자, 나머지 쥐들은 더욱 견고하게 대열을 이루었다. 그 뒤로는 왕쥐들을 공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적당한 장비만 있다면 그렇게 뭉쳐있는 쥐떼를 불태워버리는 것은 어려울 일이 아닐 테지만, 그들에겐 장비가 없었고 또 앞으로도 당분간은 갖지 못할 터였다. 게다가 설혹 장비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소중히 보호해야 할 작물까지 함께 불태울 우려가 있었다. 결국 개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들판의 끝에 도달하자 왕쥐들의 대열이 갑자기 흩어졌다. 그들은 공통의 적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는 잘 단결할 수 있었지만, 먹이를 보게 되자 각 개체의 본능적인 식욕이 앞서서 각자 흩어져버린 것이다. 굶주림은 적보다 더 무서웠던 셈이다. 개들은 즐겁게 사냥을 시작하여, 굶주린 설치류들이 정신없이 곡물을 먹고 있는 동안 하나씩 공격하여 쓰러뜨렸다.

마침내 동이 틀 무렵이 되자 왕쥐들의 위협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그 다음 주에 이주민들은 곡식을 추수하여 저장하기 위한 처리를 하고 다음 파종까지 마쳤다.

마린은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상황 분석에 몰두했다. 식민지는 한 가지 위기를 겨우 헤쳐 나갔다 싶으면 또 다른 위기를 맞곤 했다. 각각의 위기 자체는 크게 심각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런 문제점들에 계속 부딪친다면 식민지 건설은 결국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글레이드를 완전히 식민지로 개척할 때까지 필요한 장비들을 모두 갖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실패의 원인은 생물학적 조사에 있는 듯했다. 생물학적 조사는 지금까지 그들의 식량을 위협해온 골칫덩어리들을 처음부터 발견해내지 못했다. 행정관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생물학적 조사 방법은 완벽한 것이다. 조사 결과 생쥐나 왕쥐가 글레이드에 없다고 나왔으면, 실제로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조사가 행해졌을 당시에는.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과연 쥐가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것이다.

마린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벽을 바라보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가설들을 하나씩 점검해 나갔다.

그는 벽에서 눈을 돌려 식충이의 우리를 바라보았다. 식충이는 글레이드의 숲에서 사는 다람쥐만한 동물로서,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흔한 동물이었다.

그러나 식충이는 생각보다 훨씬 놀라운 동물이다. 평범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은 인류가 개척하여 자리 잡은 수많은 세계에서 마주친 수많은 동물들 중 가장 심상치 않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마린은 점점 더 그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식충이를 바라보았다. 어둠이 깔리고 식충이가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 그대로 앉아서 지켜보았다. 정상적이라. 그런 단어는 글레이드에선 적용되지 않는다.

식충이는 그에게 한 가지 단서를 알려주었다. 그는 나머지 단서들을 더 알아내야 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지만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료와 관찰이 필요했다.

그는 거주지구의 가장자리에 주의 깊게 장비를 설치했다. 바로 그곳에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전에 굴착기로 수행했던 조사 결과를 분석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각각의 단편적인 사실들이 하나씩 모여서 마침내 하나의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련은 이윽고 자신의 이론이 옳음을 확신하게 되자 해프너를 찾아갔다.

행정관은 매우 기분이 좋아보였다. 식민지의 목표가 일차 달성되었기 때문에 느끼는 느긋함이 반영된 것이리라.

“앉게나.”

그는 사근사근한 태도로 말했다.

“담배?”

생물학자는 담배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생쥐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어 하시리라 생각해서요.”

해프너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네.”

“저는 왕쥐들의 근원도 알아냈습니다.”

“왕쥐들도 이젠 문제될 게 없지 않나. 우린 잘 해내고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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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 하고 마린은 생각했다. 그는 어떻게 말을 꺼낼까 궁리하고 있었다.

“지난 2천 년간 글레이드는 지구와 비슷한 기후와 지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약 1억 년 전에도 역시 지구와 비슷했었구요.”

마린은 너무도 뻔한 이야기를 새삼스레 꺼냄에 따라 행정관의 얼굴에 약간 흥미로운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직까진 뻔한 이야기지만, 그러나 결론은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으리라.

“1억 년 전과 2천년 전 사이의 기간 동안에 글레이드에는 어떤 일이 발생했습니다.”

마린은 얘기를 계속했다.

“그 원인은 모릅니다. 우주 역사에 관련된 일이니 앞으로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르지요. 태양이 갑작스럽게 신축을 반복했을 수도 있고 행성 내부의 힘의 평형이 깨졌거나 밀도가 불균질한 성간(星間) 먼지를 만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쨌든 간에 글레이드의 기후는 변화했습니다.

그 변화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했고 게다가 지속적으로 계속 발생했습니다. 약 1억 년 전을 전후하여 글레이드에는 지구의 석탄기(石炭紀)와 비슷한 밀림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공룡을 닮은 거대한 파충류와 자그마한 포유류들이 번성했지요. 최초로 발생한 격렬한 변화는 옛날 지구에서처럼 공룡들을 전멸시켰습니다. 그러나 식충이의 조상이 되는 원시 설치류들은 재빨리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했기 때문에 전멸하지 않았습니다.

기후가 어떤 식으로 변했는지 간단히 예를 들어보지요. 몇 년 간 사막이던 지역이 갑자기 밀림으로 변합니다. 다시 몇 년이 지나면 이번엔 초원이 형성됩니다. 이런 순환적인 변화가 계속 반복되는 겁니다. 이 모든 급격한 변화가 식충이 한 마리가 살아있는 짧은 기간 동안에 일어난 것입니다. 더구나 계속해서 반복되었구요. 대략 1억 년간은 글레이드의 ‘정상적’인 생태환경이란 게 이런 식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화석이 형성되기 힘듭니다.”

해프너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차츰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급격한 기후의 변화가 2천년 전에 갑자기 멈추었다는 거로군. 그런 일이 다시 시작될 것 같은가?”

“모르겠습니다.”

생물학자는 솔직하게 답변했다.

“노력하면 알아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행정관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노력해 봐야지.”

‘그렇겠지요.’ 하고 생물학자는 생각했다.

“요점은 그 당시 식충이들의 생존이 대단히 힘들었다는 겁니다. 조류는 알맞은 기후를 찾아 날아서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수가 살아남았지만, 반면에 포유류는 한 종류밖에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자네 말은 틀리지 않나?”

해프너가 지적했다.

“포유류는 다람쥐만한 놈에서부터 물소만한 녀석까지 네 종류가 있지 않나.”

“한 종류입니다.”

마린은 단호하게 반복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종입니다. 만일 커다란 동물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아지면, 소위 작은 ‘종’의 일부가 커다랗게 성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특정 종류의 먹이를 구하기가 힘들어지면, 즉시 다음 세대에서 식량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종으로 변화합니다.”

“그게 생쥐였다는 말이지.”

해프너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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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이 그의 생각을 완결시켜 주었다.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 생쥐는 존재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들은 다람쥐 모양의 식충이에게서 생겨난 것이죠.”

해프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왕쥐도?”

“더 커다랗게 자라난 다음 세대죠. 결국 우리 인류도 그들에게는 새롭게 변화된 하나의 환경이니까요. 그리고 그 동물들이 겪어본 중에서도 아마 가장 혹독한 환경일 겁니다.”

해프너는 식민지를 통치할 수 있도록 훈련된, 실용적인 사고방식의 인물이었다. 즉, 과학적 개념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돌연변이라는 얘기인가?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생물학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지구에서라면 돌연변이라고 부르겠지만, 여기서는 그저 정상적인 진화일 뿐입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행정관님에게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식충이는 겉모습이 지구의 다람쥐와 닮기는 했지만 유전자나 염색체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들도 분명히 유전성을 지니고는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생체의 특성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그 유전 메커니즘이 어떻든 간에 이 생물은 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생명체보다 빠르게 외부 조건에 적응합니다.”

해프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겠군.”

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을 이었다.

“물론 우리가 이 행성에서 모든 동물을 말살해 버린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방사능 오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생물학자가 물었다.

“그들은 더 지독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행정관은 대안을 골똘히 궁리했다.

“이 행성을 포기하고 놈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너무 늦었습니다.”

생물학자는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놈들은 이미 지구에도 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인류가 살고 있는 우주의 모든 행성에도 퍼졌을 테구요.”

해프너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린이 생각했던 일들을 그도 떠올린 모양이었다. 글레이드를 개척하기 위해서 처음에 세 척의 우주선이 왔었다. 그중 한 척은 만일을 대비하여 이주민들과 함께 남아 있지만, 나머지 두 척은 모든 일이 잘 진행되고 있으며 더 많은 보급 물자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지구로 돌아갔다. 그 우주선에는 이 행성에서 채집한 동물들과 표본도 실려 있었다.

동물들이 갇혀 있는 우리는 물론 견고하다. 그러나 더 작은 종류라면 빠져 나올 수 있으므로, 지금쯤은 우주선의 창고에 숨어 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그 우주선들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주선이 지구에 도착하고 나면, 지구의 생물학자들이 그 사실을 알아챌 수 있을까? 당분간은 힘들 것이다. 새로운 종류의 쥐들이 지구에 창궐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변종이 발생한 것이라고 쉽게들 해석할 것이다. 별다른 사전 지식 없이는 새로 생겨난 변종 쥐와 글레이드에서 가져온 동물 표본을 연관 지어 생각할 만한 이유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는 남아있어야 합니다.”

생물학자가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연구를 계속해야 합니다. 이 행성이 연구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그는 지구의 거대하고 복잡한 빌딩군들을 떠올렸다. 그들을 모두 철거하고 쥐들이 물어뜯을 수 없는 재질의 것으로 대치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물론 그 작업을 하는 동안 수십억의 사람들을 지구 밖으로 이주시킬 방법도 없다.

글레이드는 이제 식민지가 아니라 거대한 연구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행성 하나를 개척했지만 그와 동시에 열, 스물, 혹은 그 이상의 행성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뭐든지 먹어치우는 저 식충이들의 가공할 환경적용과 번식력을 감안해본다면 말이다.

목이 쉰 듯한 동물의 울부짖는 소리가 생물학자의 생각을 방해했다. 해프너는 고개를 획 돌리고 창문 밖을 노려보았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벽에 걸린 장총을 집어든 뒤 밖으로 뛰어 나갔다. 마린은 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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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관은 두 번째 속성 재배 작물이 익어가는 들판을 향했다.

그는 자그마한 언덕 위에 도달해서는 그 자리에 멈추어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총의 강도를 ‘최대 충전’으로 돌려놓고 겨냥한 다음 발사했다. 들판에 있는 동물을 맞히기엔 너무 높았다. 녹색 채소밭에서 한 가닥 갈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좀 더 주의 깊게 겨냥한 다음 다시 발사했다. 총구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난 뒤 강렬한 에너지가 동물의 앞발을 강타했다. 그 짐승은 펄쩍 뛰어올랐다가 다시 떨어져서 축 늘어졌다. 사체가 지글지글 타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해프너가 죽인 동물 앞으로 다가갔다. 얼룩무늬가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놈은 호랑이를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행정관은 그 짐승의 사체를 발로 톡톡 건드려 보았다.

“창고에서 쥐들을 몰아냈더니 들판에서 왕쥐가 골치를 썩혔지.”

행정관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들판에다 개를 풀어놓았더니 이젠 호랑이까지 등장하는구만.”

“쥐보다는 쉽죠.”

마린이 말했다.

“호랑이는 총으로 쏘아 잡을 수 있으니까요.”

그는 행정관이 방금 쏘아죽인 짐승 옆에 죽은 채 쓰러져있는 한 마리의 암캐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굽혔다.

공포에 질려 멀리 달아났던 다른 개 한 마리가 낑낑거리며 돌아왔다. 다들 용맹한 사냥개였지만, 호랑이에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애처롭게 낑낑거리며 자기 짝의 얼굴을 핥았다.

생물학자는 만신창이가 된 암캐를 안아들고 연구실로 향했다.

“이미 늦었어.”

해프너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개는 이미 죽었다구.”

“하지만 뱃속의 강아지는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개들이 필요합니다.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해서 쥐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해프너는 언덕을 올라가는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왔다. 안고 있는 팔 너머로 늘어진 개의 머리가 흔들거리고 피가 옷으로 스며들어왔다.

“우리가 도착한 지 3개월이 지났네.”

행정관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개를 들판에 풀어놓은 지는 2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고. 그런데 아까 그 호랑이는 이미 다 큰 놈이란 말일세.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마린은 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잠시 비틀거렸다. 해프너는 마린의 당황한 심정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생물학자로서 그가 알고 있던 모든 이론이 뒤집혔다. 진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특정한 세계에서의 유기 생명체의 역사이다. 그 세계의 밖에서는 진화의 이론이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인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많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인류의 지식체계에서 회색 지대로 남아 있다. 외계의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는 인류의 무지가 거의 무한에 가까울 수도 있다.

생명의 탄생은 단순하다. 생명은 수없이 많은 행성에서 발생 했다. 온순한 초식동물과 사나운 육식동물……. 대부분의 동물들은 새끼를 낳는다. 그리고 새끼들이 자라서 성숙하면 다시 짝을 짓곤 했다.

그는 연구실에서 보냈던 그날 밤을 회상했다. 그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그가 다른 장소에 있어서 그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글레이드의 동물들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결코 알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해프너에게 주의 깊게 설명했다.

“만일 생존 계수가 높고 개체의 크기 차이가 아주 많다면, 새끼들이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서는 곤란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놈들은 완전히 다 자란 성체 상태로 태어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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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만사가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식민지는 꾸준히 발전했다. 속성 재배 작물의 재배 면적은 점점 줄어들었고 대신 훨씬 다양한 곡물들이 파종되었다. 새로운 건물들이 건설되었으며 그 안에 저장된 물자들은 쉽게 검사할 수 있도록 넓게 퍼뜨린 상태로 보관되었다.

강아지들은 살아남아서 성장호르몬의 덕택으로 1년도 안 되어 완전히 성숙했다. 적당한 훈련을 받은 후에 그들은 들판에 있는 늙은 개들과 합류했다. 왕쥐들과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왕쥐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히긴 했지만 그럭저럭 식민지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다.

진화하지 않은 원래의 동물인 식충이는 전기 코드를 그들의 새로운 메뉴로 삼았다. 식충이를 막으려면 전원을 항상 켜두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전이 발생하여 시커멓게 탄 시체를 치워야할 때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 자동차는 덮개를 단단하게 씌우거나 견고한 건물 안에 주차시켜야만 했다. 골치 아픈 동물들의 수는 더 이상 증가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말살시킬 수도 없었다.

가끔씩 호랑이가 공격해 오기도 했지만 아주 컸기 때문에 손쉽게 총으로 사살할 수 있었다. 호랑이가 밤에도 출몰하기 시작하자 이주민들은 24시간 경비를 섰다. 불빛이 도달하지 않는 먼 곳에는 적외선 탐지기를 사용했다. 호랑이가 아무리 빨리 달려들더라도 결국은 자신의 죽음만 재촉할 뿐이었다. 처음 호랑이의 공격을 제외하고는 한 마리의 개도 잃지 않았다.

호랑이는 모양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달라졌다. 겉모습은 여전히 크고 강력한 육식동물이었다. 그러나 호랑이에 대한 살육이 계속됨에 따라 마련은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죽은 호랑이의 내부 기관이 갈수록 작아졌던 것이다.

마린의 연구실에 마지막으로 운반되어온 놈의 내장은 갓 태어난 새끼호랑이처럼 작은 크기였다. 그 자그마한 위는 고기보다 젖을 소화하는데 더 알맞을 터였다. 거기로부터 그렇게 큰 몸집을 지탱하는 에너지를 얻는다는 건 기적에 가까웠다. 그러나 어쨌든 그 동물은 죽기 전 15분 동안 살인적인 힘으로 격렬하게 날뛰었으며, 그 통에 의무실엔 잠시 난리가 났지만 다행히 치명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그것이 그들이 사냥한 마지막 호랑이었다. 그 이후로 호랑이의 공격은 없었다.

계절이 바뀌었으나 별다른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식민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유입된 외계의 문명은 그 전능수(全能獸) -이 이름은 마린이 붙인 것이다- 들도 배겨내지 못할 만큼 가혹한 환경이 아니었나 하는 의견도 있었다. 전능수들은 과거에 파멸적인 재앙을 겪고도 살아남았지만, 그들이 새로이 만난 ‘지구 인류’라는 환경은 너무나 힘겨운 시련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주민들의 착각일지도…….


--


이주민 2진이 도착하기 석 달 전에 새로운 동물의 흔적이 포착되었다. 경작지에서 곡물들이 약탈당하기 시작했다. 육식동물이 아니었으므로 호랑이일 가능성은 없었다. 또 곡물이 약탈당한 방식으로 미루어보건대 설치류들의 짓도 아니었다.

이제 곡물은 중요하지 않았다. 창고에는 식량이 충분히 비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동물이 더 큰 피해를 입히기 전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그 동물이 무엇인지 빨리 알아낼수록 더 빨리 대응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개는 쓸모가 없었다. 정체불명의 동물은 경작지를 배회하고 다녔지만, 개들은 그 동물을 공격하기는커녕 동물이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주민들이 다시 경비를 서기 시작하자 그 동물은 경비원들을 피해 다녔다. 경비병들이 순찰을 시작한 지 일 주일이 지났지만 놈의 털오라기 하나도 볼 수 없었다.

해프너는 순찰을 중지시키고 그 동물이 가장 자주 나타나는 지역에 경보 시스템을 설치했다. 그 동물은 경보 시스템을 발견하자 그것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에만 나타나기 시작했다.

해프너는 기술자와 상의한 끝에, 몸에서 나는 방사열에 반응하는 경보기를 제작했다. 옛날의 경보 시스템은 딴 곳으로 옮겨 설치하고, 새로 만든 경보기를 그 장소에 파묻었다.

이틀 뒤, 먼동이 트기 직전 경보가 울렸다.

마린은 거주지역의 한쪽 가장자리에서 해프너와 만났다. 그들은 모두 소총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자동차 소리를 듣고 놈이 도망가지 않도록 살며시 걸어서 접근했다. 경작지 둘레를 한바퀴 빙 돌아 뒤에서부터 조용히 접근했다. 경비원들에겐 비상이 걸려 있었다. 그들이 위험에 처하면 경비원들이 즉시 출동할 것이다.

그들은 덤불 아래로 조용히 기어갔다. 놈은 들판에서 곡물을 뜯어 먹고 있었다. 시끄럽지는 않았지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개들은 짖지 않았다.

그들은 조금 더 가까이 기어갔다. 글레이드의 푸른 태양이 떠올라 그 동물의 모습을 환하게 비추었다. 해프너의 손에서 총이 떨어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벌려진 입을 굳게 다물고 총을 다시 집어 들었다.

마린이 손을 들어올려 막았다.

“쏘지 마십시오.”

그가 속삭였다.

“나는 이곳의 지휘자야. 저 놈은 위험하다구.”

“예, 위험합니다.”

마련은 여전히 속삭이는 목소리로 동의했다.

“그게 행정관님이 쏘아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저 놈은 행정관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합니다.”

해프너가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자 마린은 말을 계속했다.

“전능수들은 변화된 환경에 적용할 수 없자 생쥐로 진화했습니다. 우리가 생쥐를 잡자 왕쥐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왕쥐를 사냥하자 다시 호랑이로 진화했구요.
호랑이는 우리에게 가장 쉬운 상대였죠. 그러자 잠시 그들은 진화를 멈춘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멈춘 것이 아니었죠. 또 다른 동물, 행정관님이 지금 보고 있는 저 놈이 생겨난 것입니다.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모르지만, 전능수들이 저놈을 만들어내는 데 2년이 걸렸습니다. 같은 진화가 지구에서는 100 만년이 걸렸구요.“

해프너는 총을 내리지도, 내리려 들지도 않았다. 그는 그 동물에게 완전히 넋이 빠진 것처럼 보였다.

“모르시겠습니까?”

마린이 언성을 높였다.

“우리는 전능수들을 말살할 수 없습니다. 놈들은 이미 지구와 그 밖의 행성마다의 도시에서 쥐의 모습으로 활개치고 있을 겁니다. 인류는 원래 지구에 있던 쥐조차 멸종시키지 못했는데, 무슨 재주로 전능수들을 멸종시킨다는 말입니까?”

“그러니까 멸종시키려는 노력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지.”

해프너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마린은 그의 총을 쳐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전능수가 만들어낸 쥐들이 우리 지구의 쥐보다 우수할까요?”

그는 피곤한 듯이 물었다.

“전능수들이 이길까요? 아니면 지구의 쥐들이 이길까요? 아니면 서로 평화협정을 맺고 연합하여 인류에 대항하기 시작할까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전능수들은 생존계수만 높다면 그런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진보가 일어난 겁니다. 호랑이가 실패하자 저 놈이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저 놈을 쏘아죽여서 이 진화도 실패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전능수들은 다음에는 과연 어떤 놈을 만들어 낼까요? 우리가 저 놈과 싸워서 이기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저 놈 다음에 나타날 동물과는 절대로 상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


그 동물이 말소리를 들었다. 그놈은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천천히 뒤로 돌아서더니 가까운 숲으로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생물학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그 동물은 급히 숲으로 달려가더니 나무 그늘 사이에 멈추어 섰다.

마린과 해프너는 총을 내려놓았다. 그들은 무기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양 손을 크게 벌리고 숲으로 접근했다.

그 동물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옷이라는 것에 대해 학습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인지 벌거벗은 채였다. 마찬가지로 무기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놈은 나무에서 흰색의 커다란 꽃을 꺾더니 평화의 상징으로 조용히 내밀었다.

“어른처럼 보이긴 하지만 내부도 그럴지 궁금하군요. 저 몸속에는 뭐가 있을까?”

“나는 그의 머리에 뭐가 들어있을지 궁금하다네.”

해프너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받았다.

그놈은 인간을 그대로 빼다 박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by sonnet | 2014/07/21 12:30 | 문화 | 트랙백 | 핑백(1) | 덧글(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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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onnet at 2014/07/21 12:43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가 인종-민족 갈등에 대한 은유로 읽으면 그럴듯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전능수가 실제로 모습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인식 속에서의 모습이 바뀐다는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듯 하거든요.

1) 신경도 쓰이지 않는
2) 신경쓰이는
3) 위협적인
4)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됨
5)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감)
대략 이러한 순서를 밟아 나아가는 것이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4/07/21 13:49
정말 악몽이로군요. 저 신인류...는 과연 무엇이 될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4/07/21 14:22
인류가 공격을 포기한다면 저 모습을 유지하겠지만, 싸우기로 하면 뭐가 될지는...
Commented by shaind at 2014/07/21 13:53
sonnet님 식으로 해석하면 또한

1) 소수민족이 신경쓰이는 존재가 되어서
주류사회가 귀찮은 존재로 취급하자

2) 그에 대응하여 소수민족은 위협적인 존재로 변화하고
그래서 주류사회와 투쟁에 직면하며

3) 그런 투쟁의 결과로 소수민족은 차츰 주류사회와 대등한 존재로 성장하고 인정받는다

라는 식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4/07/22 11:19
신흥 종교가 기성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로리 at 2014/07/21 14:06
예전에 공포특급 소설에서 읽은 아야기네요 ^^
Commented by sonnet at 2014/07/21 14:21
이 번역은 25년쯤 전에 천리안 멋신의 누군가가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ecutive officer를 부장이라고 번역한 것이 좀 별로라고 생각해서, 그걸 행정관으로 고친 것을 빼면 특별히 손 댄 것은 없습니다.
Commented by Masan_Gull at 2014/07/21 14:35
저는 모바일에서 제목만 보고 특정 종파를 생각해버려서...(...)
Commented by sonnet at 2014/07/22 11:18
하하
Commented by 마스터 at 2014/07/21 15:01
인류로서의 자기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에겐 인류의 손으로 -자신들이 멸망하더라도- 신에 가까운 존재를 탄생시킬 수 있는 기회도 되겠다는 뻘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4/07/22 11:18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처럼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이 아니고 에일리언 반 프레데터 반...
Commented by 듀란달 at 2014/07/21 15:22
전 그냥 텍스트로만 읽었는데 소넷님 말씀처럼 인종갈등을 투영하니 말이 통하는군요.

좋은 번역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붕어 at 2014/07/21 15:35
무서운 결말이군요. 심각한 오염이 없다고 보장될때까진 개척 행성에서 모든걸 이동하는 걸 금지키는 법이 필요하단 걸 알려주는군요. 하긴 이미 나사도 울 세균과 물질에 태양계에 이주하지 못하게 탐험선들 소독 처리하고 있지만요.
Commented by 붕어 at 2014/07/21 15:45
인종문제로 볼땐 추가로 무조건 강경 투쟁을 한다고 한다고 인정을 받을수 없단 것도 이야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주민에게 위헙적이기만 한 호랑이는 실패한 진화였으니까요.

제가 보기엔 전능수가 개와 같은 존재를 만들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주민들의 이익에 연합을 해서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도 좋은 방법중 하나일 건데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15/01/24 06:08
늑대처럼 인식되어 역시 박멸당하는 시나리오도 있죠.
Commented by 일화 at 2014/07/21 15:38
말씀대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내용이네요.
Commented by Allenait at 2014/07/21 15:45
이거 재미있네요. 호러 계통 이야기인가? 했더니 sonnet님 해석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제목만 보고 모 종파가 떠올랐습니다.
Commented at 2014/07/21 15: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격화 at 2014/07/21 16:34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단편.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sociolib at 2014/07/21 20:50
그런데 왜 원제가 "student body"인 걸까요? 우리말 제목 "신천지의 악몽"과는 영 접점이 없어 보이는데... 영한 사전엔 student body가 총학생수, 전체 학생을 뜻한다고 되어 있던데, 제가 상상력이 부족한 탓인지 이 소설 내용과 연결을 잘 시키지는 못하겠네요.
Commented by 마스터 at 2014/07/22 00:27
학습(해서 진화)하는 육체=전능수라는 뜻이겠죠. 오히려 신천지의 악몽이란 번역제가 작품을 이해하는 방향을 강요하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4/07/22 11:19
저도 그냥 식충이=전능수의 특성을 지칭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14/07/21 23:38
저런 엄청난 결말이...
Commented by 곰소문 at 2014/07/22 09:20
이거 뒷이야기는 더 없나요?
무척 재미있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4/07/22 11:17
제가 알기로는 여기가 끝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끝나야 독자가 여운을 갖고 각자 자기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런지)
Commented by nishi at 2014/07/22 12:37
본문 42쨋줄에 오타가 있네요. 잠을 갔던 -> 잠을 잤던이 맞지 않나 싶네요.

재미있는 글이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4/07/22 16:38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해 두었습니다.
Commented by 액시움 at 2014/09/08 22:44
특정 종파가 떠오른다는 댓글들이 많은 것을 보니 그 종파가 이미지 하나는 잘 만들어 퍼뜨려두었군요
Commented by at 2014/09/11 11:38
2001 밤의 이야기에 한 에피소드가 이 소설을 참조한 거였군요.

Commented by 돌고래N at 2015/01/23 16:10
읽다가 말미에서 사담 후세인이 생각났네요.
서구 입장에서 말이 통하는 놈을 잡아버렸다가
'보고 싶지 않은 다음 단계'라는 헬게이트를 열어버렸죠.
Commented by 두바이 at 2016/08/07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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