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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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비상으로

전 세계의 강대국이 모두 뛰어들어 싸웠던 제2차 세계대전, 이 전쟁에서 가장 탁월한 전투력을 발휘했던 것이 독일군이었다는 데는 광범위한 동의가 이루어져 있다.

잘 알려진 군 사가(軍 史家)인 판 크레펠트 또한 이를 지지하는 저서를 남긴 바 있다. 그는 독일군 신화의 허상을 깨겠다고 연구에 뛰어들었다가 독일군의 저력을 확인하고 전향한 사람도 있을 정도라면서, 독일군의 전투력에는 장비의 질적 우수성이나, 뛰어난 전략 같은 것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T.N.두푸이의 다음과 같은 논평을 인용한다.

결국 연합군이 최후의 승자가 되었지만 독일군이 일관하여 숫자가 훨씬 많은 연합군과 싸워 이겼음을 기록은 보여주고 있다. 개인 대 개인을 비교하면 독일 육군 병사들은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영국군이나 미군을 상대하여 그들이 당했던 것보다 50% 더 높은 손실을 계속 가하였다. 이것은 독일군이 공격하든 방어를 하든 항상 마찬가지였으며 숫적으로 적거나 부분적으로 우세하였을 때, 공중 우세를 달성하였거나 그렇지 못하였을 때, 이겼거나 패하였을 때에도 항상 그러하였다.

크레펠트는 그 비밀을 독일'군'을 구성하고 있는 일련의 독특한 조직문화에서 찾는다. 지휘원칙, 교리, 상벌, 군행정 등 모든 것이 전투효율의 극대화를 중심으로 잘 짜여져 있어서 놀라운 조직의 응집력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리한 상황에서 탁월하게 싸울 뿐 아니라, 반대로 압도적으로 강한 적에게 둘러싸여 모든 희망이 사라진 상태에 몰려도 무너지는 대신 끝까지 적에게 큰 피해를 주며 버티는 저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이 정도면 조직으로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단한 독일군의 첫 작전에 대해, 당시 독일군 3군단 정보참모였던 폰 멜렌틴은 흥미로운 일화를 남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전은 독일 병사들에게 “피를 흘리는 전쟁을 맛보게 했고”, 그들에게 실탄을 가지고 하는 실전과 평화시 기동훈련과의 차이점을 일깨워 주는데 상당한 가치가 있었다. 개전 초기에 아무리 잘 훈련된 부대라 할지라도 전투 상황 하에서 얼마나 “두려움을 갖게 되고 흥분하기 쉬운가”를 나는 알았다. 저공을 나는 항공기 한 대가 군단 전투 사령부 상공을 선회할 때 모든 독일 병사들은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들고서 사격을 가했다. 한 공군 연락장교는 모든 사격을 중지시킨 후, 흥분된 병사들에게 이것은 독일의 지휘용 항공기인, Fieseler Storch라고 소리치며 뛰어 다녔다. 잠시 후 항공기가 착륙하고 독일군 근접항공지원담당 공군 장군이 내렸다. 그는 이 우스꽝스러운 일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 했다.

객관적이고 거시적으로 보면 훈련 및 장비가 모두 부적절했던 폴란드군은 쉬운 상대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독일은 2차대전의 첫 교전국이었던 폴란드를 아주 가볍게 제압했다. 하지만 지금 살펴본 것처럼 당사자들 개개인도 꼭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일상에서 비상으로의 전환, 특히 갑작스런 전환은 매우 어렵다. 훈련만 하다가 전쟁에 투입된다거나,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 갑자기 사고를 맞이한다든가 하는 일들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 이렇게 갑작스런 전환과 신속히 해내야 할 과제가 함께 주어지면, 그 문제에 직면한 개인이나 조직은 대단한 어려움을 겪게 되고 객관적으로 보면 매우 쉬워보이는 일조차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보통이 된다.

어떤 일에 대해 사후적으로 이렇게 혹은 저렇게 했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리고 그런 것을 지적하는 것도 평가와 반성을 위해 중요한 과정이긴 하다. 하지만, 그러한 지적사항 하나하나가 비상사태 때 실제로 다 지켜질 수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가혹한 판단이다. 종합적인 평가에는 일상에서 비상으로의 전환이 가져오는 엄청난 충격이 충분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참고
Von Mellenthin, F. W. Panzer battles, 1939-1945.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1956. (민평식 역. 『機甲戰鬪』. 서울: 병학사, 1986. pp.20-21)
Creveld, Martin van. Fighting Power: German and U.S. Army Performance, 1939-1945. Greenwood Press, 1982. (주은식 역, 『전투력과 전투수행』. 서울: 연경문화사, 1994. p.15)
by sonnet | 2014/05/28 15:05 | 정치 | 트랙백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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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일화 at 2014/05/28 15:21
간만에 뵈니 반갑네요. 여전히 대제님 다운 좋은 글입니다.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4/05/28 15:21
네, 지적하신대로, 비상사태에서의 성취도 저하에 대해서 고려해야만
공정한 평가가 된다는 것에 동감하는 바 입니다.

다만 정책결정자의 입장에서,
비상시에도 최대한 일상시 같은 성과를 바라는 국민의 요구와
비상사태의 성취도 저하가 자연스럽다는 현장의 볼멘 소리 사이에서
정책결정자가 어떤 조화로운 결정을 내리는 것이
향후에 재발할 비상상황 대비를 위해 최선인지가 고민입니다.
Commented by Graphite at 2014/05/28 15:21
사고를 보는 내내 앨리어슨의 결정의 엣센스가 떠오르더군요. 2모델에서 설명한 바들이 티비 생중계를 통해 그대로...
Commented by Cene at 2014/05/28 17:08
좋은거 또 배우고갑니다
Commented by 피그말리온 at 2014/05/28 15:32
의사가 자기 가족은 직접 수술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 아닐까 싶네요...물론 예외도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예외고...
Commented by rumic71 at 2014/05/28 15:38
알베르트 에른스트는 그 폴란드군과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죠...
Commented by 시쉐도우 at 2014/05/28 21:41
군대가 국가를 가진 것이라고 하는 프로이센에서 유래하는 특유의 문화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무엇! 이라고 분리해내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우리의 경우엔 '가라'문화가 너무 오래 녹아있으니...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는 고양이목에 방울달기 급이 아닐까 합니다.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14/05/29 06:47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 구조작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휘체계의 혼란 같은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음모론을 들이대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더군요.
Commented by 우당 at 2014/05/29 08:52
1.세월호에 빗대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번 사태에서 '관피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스템적인 문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를 단순히 '일상에서 비상으로의 전환'에서 나오는 불협화음으로 치부하기는 어렵지요. 위 독일군 사례를 보자면, 공군장교가 병사들을 만류하고 안정시킨게 아니라 오히려 혼란을 부추겼고, 그 까닭은 공군장교가 사실 공군경험이 없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임명된 사람이어서 본인이 업무파악이 안되어 있었다..뭐 이런 상황에 가까운 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우당 at 2014/05/29 09:01
2.음모론에 반대하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안함 사건때에도, 경계근무서던 병사가 물기둥을 보았다고 보고했는데 중간에 이 보고가 묵살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가지고도 음모론이 제기되던데..제 군대경험을 생각해보면(대위 출신입니다), 보고가 이유없이 누락되는 경우는 매우 흔합니다. 서류가 행보관 책상에서 분실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민간에서 5분이면 될 서류처리가 5주는 걸리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별 2개짜리 사단장의 도장찍힌 명령서 조차도 중간에 없어져서 대령이 다시 작성하고....뭐 흔하디 흔한 일이어서 음모론이 나올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군의 지휘체계와 보고체계를 병사의 입장에서만 겪어본 일반인들로써는, 음모론이 나오는것도 당연하다..생각됩니다. 설마 저렇게 허접할리야...음모가 있는게 분명해..하는 생각.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14/05/29 11:46
우당 // 세월호가 침몰하던 당시 초동 대처 상황을 보면 예상치 못한 대형 사고를 당해 혼란에 빠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전을 처음 경험한 군대와 비슷하죠.
Commented by 우당 at 2014/05/30 13:18
실전을 처음 접한 군대의 문제점도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죠...장교들의 명령에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병사가 문제일 수도 있고, 실전을 안한다는 전제하에서 인맥으로만 얽혀서 장교를 임명하는 시스템이 문제일 수도 있죠. 오늘날 사건에 '관피아'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병사의 문제라기 보다는 장교의 문제가 더 컸다는데 국민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14/05/30 23:50
우당 // 나는 초동대처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거 아닙니까.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게 아닙니다.
Commented by 붕어 at 2014/06/01 19:28
우당님//솔찍히 국민의 공감같은 건 광우병때도 들어났지만 문제해결에 있어 없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울나라입니다. 그리고 세월호 자체엔 어린양님 말대로 실전준비가 전혀 안된 승모원들이 자신들이 살겠다고 계획적으로 배를 버린 것이 피해가 확산된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하다못해 선원 말을 안들은 사람들이 상당수 살아났단 걸로 증명할 수있지요.
Commented by 붕어 at 2014/05/29 11:40
그런 문제 때문에 훈련은 실전같이 실전은 훈련같이 하란 소리가 있는 것이겠지요. 근데 그래봐야 속담대로 실전을 많이 해본 노인들이 젊은이들을 이기는 경우가 많겠만요.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14/05/29 13:09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생각하게 되는 게 많죠.
제 생각엔 원인 가운데 하나가 공직사회의 인적구성일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공무원하려는 사람이 많지만, imf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죠. 저희직렬의 경우도 300명 들어와서 200명 사표쓰고 나가고, 90명 들어와서 70명 때려치고 나갔다고 합니다. 문제는 무능한 사람들이 나간 것이 아니란 거죠. 이 시절 들어온 사람들이 현장에서는 간부급으로 있습니다. 일이 제대로 될리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사고 장소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근무를 선호하는 지역이 아니라, 이른바 유배지라고 불리는 지역이라면 사고뭉치 내지 무능한 사람 처박아둔 곳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상황 터지면 볼만해지는 거죠
Commented by 아이군 at 2014/05/31 01:03
동감입니다. 궂이 세월호를 찾지 않아도, 공직사회와 접촉하게 되면 아래쪽의 똑똑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 위쪽의 답답하고 멍청한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물론 상부로 올라가면 아니겠지만, 적어도 보통 일로 만나는 케이스는 똑똑한 과장 아래급과 멍청한 부장 위급... 뭐 적어도 제 경우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덤으로 조직문화도 서울대 연고대 출신이 와글와글한 조직이 말도 안돼는 군대식 문화로 돌아가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비슷한 급의 기업문화와는 적어도 20~30년 차이가 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공기업이나 공무원 사회에 대해서 개혁 운동이 있는지는 꽤 되었는데, 인적 구성이 이래서야 시간이 한참 걸릴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14/06/01 11:39
'사후적으로'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가혹한 판단'을 내리고는 스스로를 초야에 은거하는 제갈공명이나 남명 조식쯤으로 착각하는 위인들은 종종 나오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paro1923 at 2014/06/01 17:21
이래서 '윗분들은 마시는 공기도 다르다'는 얘기가 나오는 한 원인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 입장이 다르니...
Commented by 붕어 at 2014/06/01 19:31
그건 어떤 집단이나 같지요. 문젠 궁극적 목적을 위해 얼마나 위아래가 잘 소통하는 것일겁니다.
Commented by Allenait at 2014/06/03 08:41
막상 다급해지면 119가 몇번인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Commented by 섭동 at 2014/08/01 18:08
전문 소방관도 아닌 보통 사람이 잘 대응한 경우도 있군요.

[단독]“훈련한 보람” 서울대 기숙사 대형화재 막았다
이철호기자
입력 2014-08-01 03:00:00 수정 2014-08-01 10:03:56
관악사 919C동의 ‘퍼펙트 防災’
5월 9일 서울대 기숙사인 관악사에서 진행된 합동 비상대피훈련에서 기숙사생이 소화전으로 불을 끄는 훈련을 받고 있다. 이날 서울대는 전 직원과 관악사 919C동 80여 명이 참여한 대피훈련을 실시했다. 이 훈련은 지난달 27일 실제 이 기숙사에서 일어난 화재를 조기 진압하는 데 큰 효과가 있었다. 오른쪽은 학생 대피 때 맹활약한 김경환 조교. 서울대 제공“
그 큰불을 잡는 데 고작 ‘13분’이라니…. 이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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