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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신앙과 바른 행실 공동체
이하는 이 글을 적당히 발췌번역한 것이다. 최근에 내가 국내 인터넷에서 들은 몇 가지 논점에 대해 "아 그건 그런 게 아닌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게 좀 있어서, 나름 의견 대신 옮겨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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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야마 노부오(金山宣夫)가 『국제감각과 일본인』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일본 사회에는 두 가지의 큰 특징이 있다. 첫째는 일본의 (의사)근대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정신적 요소(시민종교)로서의 진정성(マコト)주의. 그리고 두 번째는 사회적 규범·문화적 기반으로서의 바른 행실(シツケ) 공동체라는 사고방식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다.

* 개인 레벨의 일본인은 “진심(성의)을 다해 노력하면 잘 풀리게 되어 있다”는 거의 종교적이라고 해도 좋은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으며, 또한 그런 믿음을 고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다른 한편으로 사회 레벨의 일본인은 각자가 갖고 있는 진정성을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에게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내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보여주는 방법이 바른 행실로서 단단히 주입된다. 젓가락 드는 법에서부터 회사에서의 의리잔업(*)까지 바른 행실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다.

(*) 동료가 잔업을 하게 되면 나는 일이 없어도 같이 남아 잔업에 동참함으로서 나의 진정성을 어필해야 직장에서 의리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것

그런데 일본인이 형식적인 것을 중시하는 데 대해서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훈육 받은 대로 바른 행실을 하면 진정성을 보인 것이 되기 때문에 형태만 있고 내용이 없는 행동이 벌어진다는 본말전도된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러나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면 쓸모가 없는 형식일지라도, 형식을 실천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진정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모두가 형태를 보여줌으로서 진정성 신앙이 유지되고 있다. 일본인의 근면함, 지나칠 정도의 착실함이 모두 진정성 신앙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사회를 이 모습 그대로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형태 중시가 필요불가결하다고 말할 수 있다.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숭고한 행위는 자기희생이다. 합리적으로 일을 진행해서 비용을 줄이는 것보다도, 비합리적인 수법을 동원해 희생을 치르는 쪽이, 자신의 진심을 더욱 강력히 어필할 수 있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매뉴얼의 실천만 갖고서는 합리적으로 실제 도움이 되었기에 진정성을 어필하는 힘이 약한 것이다.

어찌되었든 진정성과 바른 행실이라는 것은 수레의 두 바퀴 같은 것이어서, 한 쪽이 없어져버리면 다른 한 쪽도 제대로 동작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바른 행실이 붕괴되면 앞서 말한 방식으로 진정성 신앙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반대로, 만약 진정성 신앙이 붕괴되면, 예를 들어 “진정성을 갖고 노력해도 어차피 안 되는 건 안 된다”라고 모두들 생각해버리게 되면, 형식이나 바른 행실도 돌볼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요즘 일본을 보고 있으면 어느 쪽이 먼저 무너진건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양 쪽이 무너져가면서 서로의 붕괴를 가속시키는 멜트다운 상태에 빠져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면 최근 시끄러운 양극화사회론은 진정성 신앙의 붕괴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일본인의 마음 속에서 완전히 붕괴된 것이 아니라, 진정성과 바른 행실이 잘 기능했던 좋았던 옛날에 대한 환상과 향수는 뿌리 깊게 남아있는 것 같다. “진정성을 갖고 노력한 사람이 보답받던 시대” “부모가 자식에게 제대로 행실을 가르쳤던 시대” 등에 대한 향수 말이다. 감정적으로는 이해 못할 이야기도 아니다.

그럼 앞으로 일본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시계 바늘을 되돌려 진정성 신앙과 바른 행실 공동체를 부활시키자는 생각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제2차세계대전 후의 부흥기에 진정성 신앙과 바른 행실 공동체가 커다란 역할을 했었던 것은 틀림없지만, 버블 붕괴 후의 시대에도 그것이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시대에 맞지 않으니까 붕괴된 거다라는 지적도 있다.

그럼 진정성과 바른 행실을 버리고 새로운 일본 문화에서 희망을 찾아내야 하는 것일까? 그 경우 지금까지 일본인의 장점이라고 일컬어져왔던 근면함, 지나칠 정도의 착실함도 동시에 없어진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형식에의 집착을 버리면서 그러면서도 근면함과 완고할 정도의 착실함은 살리고 싶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안일한 것 같다. 그러면 양 쪽의 중용을 목표로 해야 하는 걸까? 그것도 위험을 안고 있는 도박이다. 양쪽의 장점을 잘 합칠 수 있으면 좋기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양쪽의 단점만 합쳐 놓은 예로 가득 차 있다. “띠로는 짧고 멜빵으로는 길다”란 말이 있는데, 옛 사람들이 좋은 속담을 남긴 것 같다. 조금씩 이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결국 일이 꼬여버린다는 것이 가장 일본적인 패턴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최근의 나는 “일본인의 이런 정신성이나 일본문화는 지금 이대로 세계유산으로 남겨야 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인이 진정성 사상과 바른행실 공동체를 버리고 ‘보통의 서양식 나라’가 되었을 경우, 그것으로 21세기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하게 끝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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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덧붙이자면 이 글의 필자는 일본은 고도성장기가 오기 전부터 "노력하면 성공한다(성공해야 마땅하다)"는 믿음이 강했다고 주장한다. 그게 단순히 고도성장기의 좋았던 경험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고 그 전부터 일본 사회는 그랬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국도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정성 사상/바른 행실 공동체의 패턴은 사실 일본처럼 철저하진 않아도, 한국에도 어느 정도는 분명히 있다/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일제시대에 수입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지킬 수 있느냐에 대한 마지막 질문은 한국의 경우 그게 철저했던 적이 없으니 더 쉽게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정도?
by sonnet | 2014/04/08 01:00 | 문화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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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대공 at 2014/04/08 01:05
그래서 요즘 일본에 반동이 강한걸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4/04/08 01:19
거기까지는 잘... 하지만 뭔가 헤맨다는 느낌이 있긴 해요.
Commented by 긁적 at 2014/04/08 01:34
제 이야기가 (.....) 전혀 의미 없는 일에 자원을 투자해야 좋은 사람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이 보이더군요. 특히 부모님 세대의 사람을 상대할 때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좋은 결과를 내는 사람이 더 능력 있는 사람인데, 결과와 상관 없이 보다 많은 희생을 한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경우를 꽤 많이 보았습니다. 옛날의 사회 또는 경제환경상 저런 방식의 평가가 좋은 결과를 내는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합니다만 도대체 어떤 환경이 주어져야 저런 방식이 유리해지는지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4/04/10 19:34
야근,주말근무 등으로 인사 평가를 하는 무능한 관리자 생각이 납니다. 관리자가 업무 성과를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안 되면, 근무 시간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실용과 관계 없는 형식적 진정성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걸 보면, 구 일본 제국군의 전설적인 무능 생각이 납니다.
Commented by 루시앨 at 2014/04/08 09:46
사실 역사를 길게, 그리고 세계의 다른 지역들까지 본다 치면, 노력한 만큼 및 진정성을 보인만큼 뭔가를 얻어가는 체제는 매우 특이한 경우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어쨌든 몇 세대가 넘는 시간동안 지속되어오긴 했으니, 금방 사람들이 바뀐 룰에 적응하긴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그 시절을 자신의 전성기로 보낸 어르신들의 경우 더더욱... 그래서 그 룰이 작동할만한 여지가 많은 라이센스 사업이나 공공 부문으로 사람들이 균형보다 좀더 오버해서 몰리지 않나 싶기도 하구요. 여튼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Commented by Ya펭귄 at 2014/04/08 09:48
대략 저것들을 한국적 환경에서 비춰보자면...

1. 진정한 노력이라는 것이 업무상의 성실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실제적 필수요소라서 그것이 없는 직원들은 못버티는 게 맞지요. 당장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건만 해도 업무에 대한 성실한 처리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2. 의리잔업쪽도 약간 이야기가 다른게... 이게 단순히 '내 일이 없는데도 눈치때문에 억지로 연장근무를 한다.' 가 아니라 '남의 일인데도 스스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을 찾아내서 도와준다'라는 식의 실질적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게 기본이지요. 사실 전자와 같은 방식으로 움직여봐야 좋은 소리 못들음... 잔업수당 타려고 놀러왔느니 아니면 할일도 없는데 자리나 채우고 앉아있느니 하는 뒷담화나 듣지... 그리고 후자의 경우에는 그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미 필자가 언급하는 '바른 행실을 보여주기만 하는' 단계를 벗어나게 되지요.

Commented by at 2014/04/08 15:03
1. 글 본문에선 "형태만 있고 내용이 없는", "실용적 관점에선 쓸모가 없는", "비합리적인 수행을 통해 희생을 치르는" 것이지 성실성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 싶네요.

2. 남의 일을 찾아내서 도와준다는 방식으로 하면 결국 프로젝트의 각 과업별 책임소재가 모호해지고 분업을 통한 생산성 증대 효과가 발생하지 않아 말아먹는 경우도 꽤 생기지요. 어떻게 보면 양날의 검입니다.
Commented by dunkbear at 2014/04/08 09:51
- 미국의 소위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이 깨지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 진정성과 바른 행실의 두 수레바퀴가 엇박자를 내면서 나온 초기 현상이 노인들의 고독사나 히키코모리 현상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들은 타인에 대한 진정성이 결여되면서 굳이 바른 행실을 하지 않는 - 그러나 나쁜 행실도 하지 않는 - 무관심이 결합한 결과로 일본의 두 가치관이 무너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되서 말이죠.

- 개인적으로는 미국이나 일본이나 우리나라 모두 아메리칸 드림이든, 진정성과 바른 행실이든, 개천에서 용이 나온다등의 "myth"는 결국 예나 지금이나 "myth"에 불과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예전에는 "myth"가 아닌 "진퉁"이라고 볼만한 케이스가 많은 편이라서 - 예를 들면 자수성가형 성공 등 - 다들 그렇게 믿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 오래간만에 sonnet님의 글을 보니 좋네요. 저도 분발 좀 해야겠습니다. 허접한 블로거지만요. ㄲㄲㄲ
Commented by 붕어 at 2014/04/11 17:07
울나라나 일본은 몰라도 아메리카 드림은 새출발이 주어지는 경기장이란 점에서 아직 끝난건 아닙니다. 선진국이나 흥미가 줄었지 다른 곳보단 월등히 조건이 좋지요. 울나라도 아직 재산권 같은 분야에선 확실히 딸립니다.
Commented by 함부르거 at 2014/04/08 10:08
우리 나라야 눈치 빠르고 시류를 잘 타는 사람이 별 노력 없이도 성공한 사례가 많으니 일본보다야 그런 신념이 약하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해방 직후부터 50년대의 혼란기에 그런 일이 많았으니까요.

한국에선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신념도 분명 있지만 그 이상으로 '운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도 강하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검은새 at 2014/04/08 10:49
사실 한국은 한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하기만 하면 되던 경제학으로 말하자면 세이의 법칙이 성립하던 국가였고(이는 패전직 후의 일본도 같은 상황이었고...) 심지어는 그 상황을 경험한 세대들이 아직도 현역이기 까지도 한 국가이기 때문에 저러한 성실성에 대한 신념이 많이 남아 있어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이랑 일본은 뭐 발전과정이 거의 흡사하니까요...

다만 시대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보니 생성되는 관념도 같으면서도 다른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일화 at 2014/04/08 11:37
결론이 무척 마음에 드는군요(응?!).
Commented by 액시움 at 2014/04/09 10:57
근데 저 글의 저자는 뭘 근거로 일본인들이 진정성/바른 행실의 성향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A국의 사람들은 이러이러한 성향을 보인다~ 라는 주장은 하도 많이 들어왔고, 심지어 동일한 대상에 대해 주장자마다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매우 수두룩해서.... 근거는 대부분 "그냥 내가 만나본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했음. ㅋ"이구요.

여태까지 "일본인은 이런 나라다.", "미국인의 마음 속을 파헤쳐보자.", "중국의 생각을 알아야 중국에 맞설 수 있다." 이런 식의 책들을 몇 권 읽어본 결론으로 이와 같은 국민심리분석(?)은 신뢰하기 힘들다...라는 것이 도출되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4/04/09 15:00
지적하신 대로 이런 류는 결국 무슨 정교한 방법론을 따라 이루어진 체계적 연구의 결과물이 아니고 시사적 문필가의 개인 생각에 가까운 겁니다.
Commented by 붕어 at 2014/04/11 17:28
갠적으론 일본 같은 경우 남의 것을 소화하고 개선하는데 최적화되었다고 봅니다. 우리도 그걸 복사했고요. 이 상황에서 원본보다 효율이 좋으려면 더 일을 더하는 것이 간단한 해결책이기에 형식적 진정/행실같은 것이 중시되었다고 봅니다. 문젠 선두주자에 가까워지니 남의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야 나가야 되니 중시하던 것들이 별 도움이 안되서 혼란이 오는 거라 봅니다. 언제나 아래에서 따라오니 이 기능이상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마도 말씀하진 형식주의를 고수할 경우 울나라도 일본을 따라 불황의 세계에 살아야 될겁니다. 자본 많은 사회에서 성숙기의 산업들을 자동화하는 건 로마때부터 있었지요. 정치인들이 쉽게 창조 같은 걸 이야기하지만 말과 결과를 볼때 이걸 할 방법을 알고 실천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의심스럽습니다.
Commented by 레이븐가드 at 2014/04/15 13:05
이거 참... 사회가 바뀌면 개인이 바뀌고, 개인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인데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변하는 세상에 적응할 자신이 없다고 선언하는 셈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사회를 제대로 운영해서 국민에게 새로운 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 동기 부여를 못 하니 사회도 못 버티겠다는 발상이 놀라운데요.

마치 2차 대전 말기에 히틀러가 독일 민족은 전쟁에 졌으니 생존할 자격이 없다 운운하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정권의 요상한 극우 성향 같은 걸 보면 진짜로 일본 사회의 시대 의식은 태평양 전쟁 무렵에 멈춰 있는 걸지도...
Commented by paro1923 at 2014/04/21 23:25
근본적인 변화를 두려워하는 모습이 일본 역사 곳곳에서 보이곤 하죠.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비록 전통과 단절되어 겪는 부작용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잘못된 걸 버리는 데 있어서 일본보다는 그래도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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